[1화] 불가사의 현상
“…네가 베푼 선행의 대가라고 생각하거라.”
웬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노인이 내게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행?
대가?
무슨 소리인가 싶어 되물으려던 순간, 노인이 등을 돌려 저 멀리 떠나갔다.
* * *
삐뽀삐뽀.
겨울이 가장 먼저 인지한 것은 응급차의 사이렌 소리였다.
그는 눈을 번뜩 뜨고는 주위를 살피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눈앞에서 웬 구급대원이 그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꿈인가?’
“…으음.”
“환자분, 괜찮으세요? 정신이 듭니까?”
추운 겨울날, 땀을 뻘뻘 흘리며 심장마사지를 실행하던 구급대원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네?”
“와!!”
영문도 모른 채 의문을 표한 것을 긍정의 의미라 받아들인 것인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한 생명을 살린 것에 대한 기쁨도 있겠지만, 꺼져 가는 불꽃을 다시 살려 낸 구급대원의 헌신에 대한 감격의 표현이리라.
구급대원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기운이 빠진 듯한 미소를 지으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훔쳐 냈다.
그러고는 다시 겨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혼란스럽겠지만,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저를 포함한 119대원들이 환자분을 안전하게 병원으로 모시겠습니다.”
구급대원이 필사적으로 안심을 시키려 했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 겨울의 혼란스러움은 오히려 가중되어 갈 뿐이었다.
겨울은 차츰 돌아오는 정신에 왜 자신이 이곳에 누워 구급대원과 말을 나누고 있는지를 떠올렸다.
사고.
그렇다.
겨울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스포츠카에 받쳐서 아스팔트로 나가떨어졌다.
이상했다.
그런 사고를 당했으면 당연히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파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하지만 지금 겨울은 몸 어느 곳에서도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신경이 마비되면 고통을 느끼지도 못한다는데, 아마도 자신은 그 지경이 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것이 틀림없었다.
“환자분, 금방입니다. 금방 병원으로 후송할 테니, 참고 견뎌 주십시오.”
겨울이 허공을 게슴츠레 쳐다보고 있자, 불안해진 듯 구급대원이 말을 걸어왔다.
“저… 여학생은 어떻게 됐나요?”
“여학생? 아, 현장에 있던 학생은 먼저 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벼운 찰과상 말고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가요… 천만다행이네요.”
그나마 있던 긴장마저 풀린 것인지, 그 말을 남기고 겨울의 의식은 다시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신기하단 말이지.”
“그죠, 원장님. 어떻게 그런 사고를 당했는데 상처가 하나도…….”
겨울의 귀에 두 사람의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가벼운 신음성과 함께 겨울이 천천히 눈을 떴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를 비롯해 그 뒤로 십여 명이 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겨울 씨, 정신이 좀 드십니까?”
“…네.”
“어떻게, 몸 상태는 괜찮으시고요? 불편한 데 없으십니까?”
팔다리뿐만 아니라 어느 한 군데도 아픈 곳이 없었다.
겨울은 교통사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 위해 도로를 건너는 와중에 갑자기 웬 스포츠카가 달려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겨울은 스포츠카를 인지했기에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귀에 이어폰을 낀 채 핸드폰만 쳐다보며 느릿느릿 걷는 여학생 하나가 앞에 있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 본능적으로 그녀를 앞으로 밀쳐 냈다.
자신도 피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으나, 불행하게도 그 반동으로 균형을 잃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동시에 스포츠카에 몸을 강하게 받혀 튕겨져 나갔다.
몇 바퀴 구르다 머리를 아스팔트에 부딪치는 순간에 정신을 잃었다.
그러니 자신의 기억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옆구리나 허리, 혹은 갈비뼈, 어느 한 곳에라도 큰 부상을 입었어야 정상 아닌가.
“잘 모르겠네요.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서요. 부상이 많이 심각했나요?”
도움을 준 의사와 간호사들 앞에서 계속 누워 있기가 민망해 겨울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아, 움직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기, 병상 좀 올려 드려.”
“네. 환자분, 잠시만 그대로 계세요.”
위이이잉―
간호사가 세워 준 병상에 기대앉은 겨울을 향해 원장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실제로 미약한 찰과상 말고는 부상이랄 게 없으니까요.”
“네?”
“우선 이곳은 목동에 위치한 대한 종합병원입니다. 그리고 저는 원장인 홍종학이라고 합니다.”
“아, 네…….”
“한겨울 씨가 사고를 당할 당시의 목격자들의 증언을 들어 보면, 일반인이 봐도 최소 중상, 또는 사망에 이를 거라 예상할 정도로 심하게 차에 부딪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119 구급대원이 출동했을 당시에는 이미 숨이 멈춘 상태였다고 합니다.”
“…….”
“다행히 119 구급대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지금 이 자리에 한겨울 씨가 계시지만요. 정말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지만, 눈빛에는 의아함이 어린 채 홍종학 원장은 말을 이어 나갔다.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큰 수술을 준비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후송된 한겨울 씨에게는 부상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습니다. 머리에 약간의 찰과상만 있을 뿐이었죠. 그래도 혹시 모를 내상을 염려해 정밀 검사까지 들어갔습니다.”
홍종학 원장의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는 듯 보였다.
겨울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았나요?”
“아뇨. 머리의 찰과상을 제외하고는 정상입니다. 예. 현재 한겨울 씨의 몸 상태는 그 어느 때보다 정상입니다.”
겨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차에 치여도 멀쩡한…….”
“세상 어디에서는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흔한 일은 아니죠. 그야말로 불가사의 하 다고밖에는 말할 길이 없군요.”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픈 곳이 없다고 하니 안심이 되는 겨울이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던 겨울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학생은 어떻게 됐나요?”
“학생… 말입니까?”
“네. 분명 사고 현장에 한 명이 더 있었을 텐데요?”
겨울의 물음에 뒤에 있던 의사 하나가 종이 몇 개를 원장에게 건넸다.
잠시 종이를 훑어보던 원장은 안심하라는 듯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그 학생 역시 넘어지면서 발생한 찰과상 말고는 상처가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요즘 이렇게 타인을 챙기는 젊은 사람 보기 힘든데, 훌륭하십니다. 한겨울 씨의 선행 덕분에 두 사람도 크게 고마워하고 있을 겁니다.”
이상했다.
자신이 몸을 날려서 구출한 사람은 여학생 한 명뿐인데, 홍종학 원장은 왜 두 사람이라고 언급하는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던 겨울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었다.
“두 사람이요? 나머지 한 명은 누구인가요?”
“사건을 일으킨 차량에 타고 있던 분입니다.”
겨울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학생이야 구했지만, 자신은 죽을 위기에 처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심장이 멈췄다면서?’
결과적으로 죽은 사람은 없지만, 과실에 대한 법적 처벌은 피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자신에게 고마워한단 말인가.
“현재 그분은 경찰서에 출석해서 사고에 대해서 조사받는 중입니다. 아마 내일쯤 한겨울 씨한테 사과하러 찾아올 겁니다.”
또다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홍종학 원장이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를 잘 알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비쳤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그분이라 부르는 것도 그렇고.’
겨울은 병실 주위를 둘러보았다.
1인실일 뿐만 아니라, 상당히 넓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VIP 병실이 이렇게 생겼구나.’
“가해자 측이 제법 사는 집인가 보죠?”
“…대한 그룹 송훈석 회장님의 무남독녀 외동딸입니다.”
홍종학 원장이 겨울의 공격적인 말투에 슬쩍 미간을 찌푸렸지만, 겨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제야 겨울은 그간 품고 있던 의문이 해소되었다.
사고를 당한 장소는 봉천동 사거리.
당연히 인근에 위치한 병원으로 후송되는 것이 지극히 타당함에도, 현재 그는 제법 멀리 떨어져 있는 목동 대한 종합병원에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가해자가 대한 그룹 회장의 외동딸이라고 한다.
서둘러 상념을 정리한 겨울은 홍종학 원장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원장님, 입원비는 어떻게 처리되나요? 가해자 측에서 부담해 준답니까?”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병실은 어렵겠죠.”
“다행이네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불편한 게 있으면 벨을 눌러 주세요. 전담 의사와 간호사가 와서 돌봐 드릴 겁니다. 아, 김 간호사, 기본적인 정보 환자분께 알려 드리고.”
탁.
잠시 후, 십여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고 문이 닫히자, 병실이 한층 더 넓어 보였다.
새삼 VIP 병실에 감탄한 겨울은 자신의 핸드폰 먼저 찾았다.
머리맡 탁자 위에 놓여 있는 핸드폰을 찾은 그는 부재중 전화부터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 그가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 사장으로부터 잔뜩 부재중 전화가 쌓여 있었다.
겨울은 얼른 전화를 걸어서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제법 까칠하기로 유명한 사장이지만, 아무래도 교통사고라는 이유는 이길 수 없던 것인지 순순히 용서해 주었다.
전화를 끊은 겨울은 곧바로 여동생인 가을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언제나 그렇듯 퉁명스런 목소리로 받는 동생이었다.
“지금 뭐 하냐?”
[과외.]
“언제 끝나는데?”
[곧. 왜?]
“과외 끝나면 목동에 있는 대한 종합병원 1701호로 와.”
[목동… 뭐?]
“목동 대한 종합병원 1701호.”
[무슨 소리야, 갑자기? 거길 내가 왜 가? 오빠, 술 먹었어?]
“술은 무슨. 교통사고를 당해서 입원해 있어서 그래.”
[교통사고?! 뭐야! 얼마나 다쳤는데? 괜찮은 거 맞아?]
묻는 가을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걱정 가득한 가을의 목소리에 겨울은 피식 웃고는 느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걱정할 거 없어. 크게 다친 곳도 없고 멀쩡해. 그래도 내일까지 입원해 있어야 한다네.”
[후우, 깜짝 놀랐잖아. 그래서? 입원한 거 자랑하려고 전화했어?]
“그런 거 아니니까, 입을 옷하고 충전기나 칫솔, 치약이나 좀 챙겨 와.”
[아주 내가 심부름꾼인 줄 알지? 그래도 입원했다니까 들어준다, 진짜.]
“올 때 메로나.”
[진짜 죽는다!]
키득거리며 통화를 끝낸 겨울은 다시 병상에 누워서 생각에 잠겼다.
* * *
병원 로비에 들어선 가을은 1701호로 가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곧바로 내릴 수밖에 없었다.
가을의 눈에 당황스러움이 어렸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17층을 누르는 버튼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마 오빠가 거짓말한 건 아니겠지.”
만약 장난이라면 이번만큼은 참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가을은 로비에 위치한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뭐야, 이게?”
병실에 들어선 가을은 진심으로 크게 놀랐다.
자기와 겨울이 살고 있는 두 칸짜리 월세 방보다 적어도 네다섯 배는 커 보이는 입원실 때문이었다.
말로만 듣던 VIP 병실이 틀림없었다.
“어, 왔어?”
가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겨울에게 다가가 물었다.
“오빠, 어떻게 된 거야?”
“뭐가?”
겨울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 VIP 병실 아니야?”
“응, 맞는데.”
“오빠 같은 사람이 어떻게 VIP 병실에 입원할 수 있어?”
“말이 심하네. 아니, 그보다 내 상태부터 묻는 게 정상 아니냐?”
“참내, 아까 통화할 때 자기 입으로 괜찮다며.”
“…그랬나?”
겸연쩍어진 겨울은 오른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뭐 어떻게 된 건데?”
“음, 그게 말이야…….”
겨울은 교통사고가 발생할 당시의 정황부터 홍종학 원장과 나눈 대화 내용까지 가감 없이 설명해 주었다.
“…해서 말이지. 뭐, 그런 이유로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리는 중이야.”
“말이 안 되는데…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겨울의 물음에 가을이 주위를 둘러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재벌 집 딸내미가 사고 낸 거라며? 사실 엄청 다쳤는데, 오빠한테 숨기거나 그런 거 아니야?”
“어휴, 그럴 리가 있겠냐. 아주 소설을 써라.”
“꼭 걱정해 줘도 이런다니까. 소설은 지금 오빠 상태가 소설이지. 스포츠카에 부딪쳐서 숨까지 끊어졌었다며? 아스팔트 바닥에 굴렀으면 최소한 멍이라도 생겨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머리 까진 거 말고는 아무런 상처도 없다며?”
“그렇긴 해. 이게 인생에 한 번 있다는 기적 아니겠냐.”
“네네, 인생에 한 번 있는 기적 지금 쓰셔서 좋으시겠습니다. 보통 소설에서는 이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나면 무슨 능력도 생기고 그러던데, 오빤 아무것도 없어?”
“너 과몰입이다, 그거. 만날 핸드폰 붙잡고 소설 보지 말고 공부나 해.”
그 말에 가을이 짜증 가득한 눈빛으로 겨울을 쏘아보았다.
가을을 놀리는 것과는 별개로 겨울은 속으로 어쩌면 꿈속에서 만난 노인이 자신을 되살려 준 게 아닐까 생각했다.
“네가 보는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은 무슨 능력 쓰냐?”
“왜? 괜히 오빠도 능력 생겼을까 봐 설레?”
“설레긴 개뿔. 그냥 물어보는 거지.”
“나 보는 소설 주인공은 머리가 엄청 좋아지더라. 암산 같은 것도 빨리하고. 오빠, 125 곱하기 250은?”
“어…….”
가을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 왔다.
겨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암산하려 머리를 굴렸지만, 자신의 머리가 나쁘다는 사실만 또다시 확인했을 뿐이었다.
“…….”
“설레긴 개뿔. 은근히 기대한 거 같은데?”
“…조용히 해, 인마.”
“아, 그러고 보니 엄마랑 아빠한테 연락 안 해도 돼?”
“뭘 굳이. 내일 퇴원할 건데, 괜히 연락해서 걱정 끼칠 필요 있겠냐.”
“하여간 말은 잘해. 그렇게 부모님 걱정하는 사람이 오지랖 넓은 짓은 왜 했는데?”
또다시 시작되는 잔소리에 겨울은 속으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눈앞에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봤는데, 그럼 가만히 있어?”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오빠가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그만하자. 결과가 좋으면 그만이지. 좋게 끝났으면 된 거 아니야?”
“그래서, 그때는 결과가 좋았고?”
가을의 질문에 겨울은 이를 악물었다.
가을은 지금 6년 전에 발생한 교통사고를 말하는 것이었다.
겨울이 타고 가던 시외버스가 브레이크 파열로 인해서 동강에 굴러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겨울은 다리가 부러진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의식불명에 빠진 열두 명의 승객을 버스에서 구출해 냈다.
그 행동이 언론에도 널리 알려져 당시에는 용감한 시민상까지 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축구 선수로서의 꿈은 접게 되었다.
씁쓸한 과거 기억을 갈무리한 겨울은 차분한 눈빛으로 가을을 쳐다보았다.
“그럼 평소에 알고 지낸 동네 사람들을 구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왜 오빠가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 119에 신고할 수도 있었잖아.”
“구급대원들이 오는 동안 익사하면?”
“그렇게 말꼬리 물면 마음이 편해? 오빠가 그 분들을 살려 내서 받은 보상이 뭔데? 그깟 시민상?”
“…….”
“내가 매번 말하는 거지만, 자기 자신 좀 먼저 생각해. 6년 전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전혀 일면식 없는 사람을 구하고 오빠가 죽으면 어쩔 건데? 사람들이야 좋아하겠지. 정의롭고 멋진 청년이라고. 근데 오빠,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할까?”
“…걱정시켜서 미안하다.”
가을의 화가 섞인 걱정에 겨울은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가을 역시 자신이 말이 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를 가라앉혔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가을이 슬쩍 농담을 던졌다.
“…나도 오빠 없어지면 곤란하거든. 그래도 월세 내주고 있잖아. 오빠 없어지면 누가 월세 내냐.”
“아니, 말이 심하지 않냐. 내가 무슨 월세 내 주는 ATM 기계냐?”
겨울 역시 눈치껏 농담을 받으며 고개를 들어 가을을 바라보았다.
잠시 시선을 마주하던 둘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흙수저 성공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