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회귀빨로 지존 헌터
- 6권 25화
트롤의 피.
멈춰져 있던 신체 기관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고 자신의 일생일대의 걸작을 만들어 낸 엘리자베스는 크게 환호했다.
"드디어! 드디어! 완성을 했다!"
기뻐 손까지 위로 높게 쳐들며 연구실 내부를 방방 뛰어다녔다.
마네킹처럼 가만히 서 있던 키메라의 눈이 번뜩하고 뜨여졌다.
"나를 알아보겠느냐?"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만든 키메라에 질문을 던졌다.
정확한 사고가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묶여 있는 인형처럼 엘리자베스의 명령에 따르는 키메라는 필요가 없었다.
"누구신지?"
키메라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엘리자베스는 기뻤다.
'드디어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고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을 할 수 있으니 굳이 엘리자베스에게 복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항상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니 그녀의 말에 복종을 하던 키메라들과는 달랐다.
자신을 만들어 준 어머니와 같은 존재에게 칼을 들이댈 일이 없었기에 제약이랄 게 없었다.
결국 엘리자베스는 스스로 무덤을 파 버린 것이었다.
"신체 중 어디 이상한 부위는 없는가?"
윌리엄은 천천히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꽈악.
주먹을 쥐어 보거나 팔을 360도 돌려 보기도 했다.
후웅후웅.
꽈드드드득.
멈춰 있던 뼈마디가 한 번에 움직이니 약간은 기괴한 소리가 났지만, 신체 중 운용되지 않는 곳은 없었다.
"모두 정상입니다."
"내가 만들었는데, 당연한 것이겠지. 너는 이 왕국의 첫 번째 아이이니라."
엘리자베스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처음부터 윌리엄은 엘리자베스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
나빠지게 된 것은 2번째 키메라를 완성시키기 전이었다.
"무엇을 연구하고 계신 겁니까?"
"지금 너와 같은 아이를 또다시 만들고 있다."
"또 다른 저 말입니까?"
"우리 왕국에 너와 같은 아이가 많다면 더욱 좋은 일이지 않겠느냐?"
엘리자베스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다.
자신만 있으면 독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윌리엄의 마음을 캐치해 내지 못한 것이었다.
윌리엄은 조용하게 엘리자베스의 라이프 베슬에 다가섰다.
'이걸 부수면 내가 이 왕국을 독차지할 수 있다.'
그의 눈에는 탐욕스러운 감정이 피어올랐다.
라이프 베슬에게 손을 뻗었다.
퍼석.
힘없이 베슬이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악!"
고통에 찬 엘리자베스의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네, 네 녀석이!"
"이 왕국은 제가 가지겠습니다. 흐흐흐."
윌리엄의 사악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엘리자베스는 스스로가 만들어 낸 키메라에 의해 1000년의 가까운 삶을 마감한 것이었다.
* * *
윌리엄은 자신의 앞에 있는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곳은 내 왕국이다. 감히 어떤 이름을 들이대는 것인가?"
키메라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태욱은 흠칫 놀랐다.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키메라가?'
태욱의 기억 속에 있는 키메라는 오직 전투 요원이었다.
생각은 할 줄 모르고 오직 살육을 위해 태어난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은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미래가 바뀌었다는 것.
이제는 더 이상 회귀 전 자신의 기억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너의 왕국이라고?"
태욱은 침착하게 물었다.
"그렇다, 이곳은 나의 왕국."
"여기에 있던 인간들은?"
"그들은 모두 죽었다. 바로 내 손에 의해서 말이지."
윌리엄은 말이 끝나자마자 태욱에게 강한 공격을 쏟아부었다.
강인한 신체 능력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격은 상당했다.
주변에 큰 파공음을 낼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정도의 힘은 태욱이 능히 막아 낼 수 있었다.
"겁화의 채찍."
데몬의 주요 스킬이었던 겁화의 채찍이 이제는 태욱의 손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었다.
홋치.
공중을 휘두른 채찍이 윌리엄을 향해 날아갔다.
짜악.
채찍에 맞은 윌리엄의 신체에 당연하게 피해가 남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생각보다 재생력이 뛰어난 것인가?'
과거와 달라진 것.
윌리엄이 만들어 낸 스노우볼은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력한 방어력을 지니고 있었다.
데몬의 공격을 능히 받아 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신체를 바탕으로 무자비하게 들어오는 공격을 태욱은 차분하게 막아 냈다.
"크읍."
"받아라!"
단 1초 만에 일어난 공방은 수십 개였다.
강한 방어력을 바탕으로 밀고 들어오는 윌리엄의 전투 방법은 일직선이었다.
스스로의 방어력을 믿고 상대방의 뼈를 취하는 무자비한 공격이었다.
태욱은 전투를 지속해 나가며 그의 약점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아무 곳도 없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약한 부분을 찾기 힘들었다.
공격으로 상대방의 공격을 제약해야 하는 전투는 이곳에서 활용을 할 수 없었다.
'일격에 소멸을 시켜야 하는 것인가?'
완강한 공격을 막아설 수 없던 태욱은 뒤로 물러섰다.
"기사님!"
"태욱!"
뒤에서 태욱과 윌리엄의 전투를 지켜보던 두 명의 동료가 단번에 그의 이름을 외쳤다.
그들이 준비하고 있던 것은 1번의 강한 공격이었다.
태욱이 고전을 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힘을 응축시킨 두 사람의 합동 공격이었다.
현무.
주작.
백호.
청룡.
4마리의 신수를 운용할 수 있게 된 영리의 공격과 함께 강한 은비의 일격이 쏟아졌다.
콰득.
콰지지지직.
태욱과의 전투에 집중을 하던 윌리엄은 갑자기 날아든 공격에 아랑곳하지 않고 태욱을 향해 자신의 팔을 뻗었다.
조금만 더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 덕분에 윌리엄은 자신의 한쪽 팔을 날려 버렸다.
콰아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신체의 일부분이 소멸된 윌리엄이 모습을 드러냈다.
"칫."
신체를 재생하려면 시간이 꽤 필요했다.
윌리엄은 그대로 몸을 돌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모두 저 녀석을 막아!"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 헌터들이었다.
이미 신체의 일부분이 소멸해 버린 윌리엄이었기 때문에 신체 밸런스가 정확하게 맞지 않아 본래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공격력을 내지 못하는 윌리엄이었다.
그의 발목을 잡아 두는 것 정도는 다른 헌터들도 능히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를 죽이고 이곳을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려고 하는 그의 계획은 허망하게 끝이 났다.
* * *
전 세계적으로 남겨진 몬스터 웨이브는 끝이 났다.
모든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마왕에게로 향할 준비를 끝마친 태욱은 전 세계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어디서든 마왕이 나타날 거야. 아니 나타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해."
전투를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 오기 위해서는 많은 헌터의 응집이 필요했다.
위치를 찾지 못한다면 그 힘을 모두 사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태욱은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하지만, 전 세계 어디에서도 마왕의 흔적을 찾기란 힘들었다.
남겨진 곳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북극.
그곳에 마왕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뿐이었다.
드워프들을 찾아낸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지?"
당연하게 이동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태욱이었다.
드워프들을 잡아들이고 무구를 만들게 했으면 주변에 은거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안일했던 자신을 탓하며 태욱은 모든 헌터들을 북극으로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여러분 오늘을 기점으로 몬스터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것입니다."
"와아아아아!"
"그럼 마지막 전투. 우리가 승리합시다!"
그의 외침과 동시에 헌터들이 마왕 성을 향해 달려 들어갔다.
* * *
따사로운 햇살이 오두막을 비치고 있었다.
나무로 지어진 오두막 근처에는 꽃들이 싱그럽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짹짹짹."
새들은 서로가 짝을 찾는 듯 목청을 높여 소리를 내고 있었으며 식물들은 파릇파릇 새싹을 피우고 있었다.
오두막 지붕에 우뚝 솟아 있는 굴뚝에서는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 올라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오두막 안에서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음성에는 고통이나 슬픔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
그저 기쁨과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
끼이이익.
문을 열고 나온 아이의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어이고 무슨 일이야? 왜 나왔어?"
"벌써 시간이 됐어요. 할아버지."
"시간? 무슨 시간을 이야기하는 게냐? 허허허허."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아이를 향해 돌렸다.
아이는 재빨리 할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할아버지~!"
"녀석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느냐?"
미소가 피어오르는 할아버지는 아이의 목적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옛날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항상 일정한 시간에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할아버지였다.
시간이 돼도 할아버지가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자 아이가 직접 찾아 나선 것이었다.
오두막 주위에 항상 상주하고 있었기에 아이는 할아버지를 찾기 힘들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오기만 하면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 줄 거예요?"
"글쎄 말이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 줘야 우리 준이가 재미있어 할까?"
할아버지의 미소와 함께 이야기가 시작됐다.
아이는 때때로 웃음을 짓기도, 슬픈 표정을 하기도 했다.
꽤나 긴 시간 동안 들어도 아이의 집중력은 하나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아이는 할아버지와 약속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듣고서도 부족하다는 듯이 계속 할아버지에게 칭얼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이는 순망한 눈동자를 하고 할아버지를 올려다봤다.
"왜 자꾸 그러느냐?"
그 모습이 밉지 않았는지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계속, 계속 이야기해 주시면 안 돼요?"
"글쎄,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아이의 간절한 모습에도 할아버지는 단호했다.
"칫, 에이 치사해. 할아버지 이렇게 하면 나 정말 할아버지 싫어할지도 몰라."
"에이, 우리 주원이 할아버지랑 약속했지? 옛날이야기는 하루에 얼마나?"
"한 시간."
"그래, 한 시간 동안 하기로 약속했지? 그럼 이제 자야지, 낮잠 잘 시간이에요."
아이를 재우기 위해 침대로 향하며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아, 조금 만 더 들려주면 안 돼요?"
"할아버지가 자고 일어나면 들려줄게,"
"진짜? 진짜?"
아이는 기뻐서 날뛰었다.
"꼭 약속하는 거예요? 여기."
어린아이는 새끼손가락을 뻗었다.
할아버지와 아이는 손가락을 교차하고 엄지를 비볐다.
"할아버지가 약속을 안 지키는 거 봤어요?"
"아니요. 못 봤어요."
"그럼 자고 일어나야 될까요? 아닐까요?"
"일어나야 돼요."
"착하지."
노인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시간도 잠시 아이는 금세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아이가 잠이 들었다는 것을 안 할아버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하아, 이렇게 하늘도 맑은데, 언제쯤."
"어이!"
저 멀리서 다 늙은 할머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하는데 밖으로 나와 있어? 몸도 성치 않으면서."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야?"
"태욱, 네가 걱정돼서 왔지. 이제는 아무런 힘도 없으면서."
그렇다, 이곳을 찾아온 여성.
다 늙은 할머니의 정체는 바로 지원이었다.
마왕이 죽고 난 이후.
세상은 다시 사람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