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회귀빨로 지존 헌터
- 6권 14화
'어느 방향이지?'
태욱은 그를 끝없이 살폈다.
자신과 함께 이동을 하면서도 뜯어 봤다.
목소리, 발걸음, 행동, 표정.
모든 것을 정보화해 머릿속에 입력해 나갔다.
그리고 이번 연락을 통해 태욱은 그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분명 모르고 있어,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초짜 같은데?'
태욱의 분석은 정확했다.
그는 이제 막 학교에서 교육을 끝마치고 공항 주위로 배치된 요원이었다.
갑작스런 연락에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공항으로 나섰다.
입국 심사대에 가면 분명 목표된 인물이 있을 것이란 짤막한 명령이었다.
실제로 공항에 도착하니, 어떤 헌터가 보안 요원을 날려 버리고 있는 것을 실제 두 눈으로 목격했다.
아무리 헌터라고 할지라도, 보안 요원 역시 같은 헌터들로 편성돼 있다.
서로의 차이가 엄청나게 나지 않는 이상 어린아이 데리고 놀 듯 가볍게 보안 요원을 내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뜻이었다.
하지만, 태욱은 그런 행동을 아무런 부담 없이 행했다.
수준 자체가 다름을 눈으로 증명해 보인 것이었다.
눈앞에서 그러한 환경을 지켜봐 왔으니, 절로 몸은 굳어지고 상부의 명령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었다.
상부의 명령은 관찰 보호.
보호라는 명목하에 주변에 계속 붙어 있으라는 신호였다.
"저 그럼 이제 미국으로 들어가 봐도 상관없는 건가요?"
태욱이 먼저 요원에게 물었다.
"아, 저, 그게 아직 승인 요청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래요? 전 당신이 이곳으로 오면 편하게 승인 요청을 해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아닙니까?"
순식간에 분위기는 차가워졌다.
공항 출입국 심사대에서 태욱을 말리기 위해 아무런 말이나 내뱉은 CIA 요원이었다.
그가 지금 내뱉은 말 중에 하나가 또 걸림돌이 돼 버린 것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승인 검토를 받도록 연락하겠습니다."
태욱의 압박이 이어지자, 그를 방에 내버려 두고 요원은 다급하게 상급자에게 연락을 돌렸다.
"비상 상황. 타깃이 탈출을 하려는 조짐이 보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의 앞을 막아설 자신도, 뒤를 쫓을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상급자에게 보고를 해야 마땅했다.
[추격을 하도록. 지원 요청 받아들일 수 없음.]
"하아."
무전기를 통해 전달돼 온 명령은 그를 더욱 잿빛의 얼굴로 바꾸기 충분했다.
터덜터덜 힘없이 발을 내디디며 들어오자, 태욱으로부터 믿기지 않는 제안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이상한 변명하지 마시고 상급자와 연락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태욱의 입에서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될 말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그가 어떤 사유로 이곳에 왔는지 확인을 하기 위한 시간을 버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다.
그런데, 그가 직접 눈치를 챈 상태에서 상급자에 대한 요청을 한 것이었다.
"그, 그게."
"당신에게 악감정은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를 것 같군요."
두 사람이 들어와 있는 작은 방 안은 마치 시베리아가 되는 것 같았다.
은근슬쩍 태욱이 냉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마나의 유동을 통해 그는 이제 주위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됐다.
겁화의 불꽃이나, 지옥의 냉기 정도로 강력한 온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신체가 가장 좋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정도는 충분했다.
그 능력을 통해 지금 앞에 있는 요원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차가운 분위기.
돌아가지 않는 시선.
금방이라도 힘을 발휘하면 이곳에서 죽을 수 있다는 공포.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밀려들어 오자, 요원은 할 수 없는 듯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형 무전기를 태욱에게 내밀었다.
"이것으로 연락을 하시면 상대 쪽에서 답변이 올 겁니다."
태욱은 자연스럽게 미니 무전기를 받았다.
"아아, 들리십니까?"
[.......]
그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들리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대답하십시오."
[.......]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렇다면 제가 난동을 부리면 나타나시는 겁니까? 이 앞에 요원처럼?"
[.......]
분명히 자신은 경고를 했고 그것에 대한 피드백을 주지 않은 것은 미국의 CIA였다.
명분은 생겼고 이제 태욱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시작한 것은 자신이 있는 건물의 붕괴였다.
"어스 퀘이크."
태욱은 지면을 흔드는 마법을 발현시켰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바람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큰 진동으로 이어졌다.
건물은 고작 2층밖에 되지 않지만, 흔들리는 고층 건물의 꼭대기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콰쾅.
콰가가가가강.
심지어 강한 바람까지 이어지니, 스산한 분위기까지 풍겨났다.
진동이 시작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묵묵부답이었던 무전기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럼 오실 때까지 지금의 상황을 지속하겠습니다."
태욱은 뒤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어떤 말을 하든 태욱은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과 이야기하고 싶으면 당장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라는 것이었다.
[자, 잠깐!]
태욱이 이 상황을 고수하려고 하자 무전기에서는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태욱이 보여 준 모습은 호전적이지 않았다.
물론 불의를 당한다면 그에 응당한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무턱대고 위험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로는 도저히 판단을 하기 힘이 든 것이었다.
"이제 기회는 없습니다."
콰가가강.
흔들흔들.
[지금 당장 나가겠습니다.]
태욱은 원하는 대답이 나오자, 마법을 캔슬시켰다.
"내가 직접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빠른 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방금과 같은 일이 또다시 벌어질 것입니다."
태욱을 지켜보고 있던 요원은 그가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 *
상위 CIA 팀장이 도착을 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단번에 제가 모시러 나왔어야 했는데, 제가 맡고 있는 업무가 과중한지라."
"그건 저와 상관없는 이야기 같습니다."
태욱은 단호한 모습을 취했다.
미국의 CIA 그들은 자신에게 적과 같은 포지션을 취한 것이었다.
많은 헌터가 성장하고 마왕을 막아 낼 수 있다면 태욱은 양보하는 스텐스를 취했던 것이다.
일전에 미국에서도 헌터 협회에 압박을 가했을 뿐, 큰 타격을 입힌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정보는 과거의 흔적뿐이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난 태욱의 무력은 많은 부분이 업데이트돼 있을 테지만, 그의 심성은 모두 파악하지는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신 겁니까?"
"잘 알고 계실 텐데요. 제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태욱은 스스로가 입을 열기를 바랐다.
한국에 있는 정보국이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을 리 만무했다.
그들이 드워프들을 설득을 한 건지, 강제로 납치를 한 것인지 정확한 정보를 알 수는 없었지만, 이 모든 일을 계획한 배후 세력이 CIA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희도 정보를 취합하는 기관이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무엇을 요청하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고압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태욱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당당하게 대표의 격을 취하는 CIA였다.
태욱의 위압감에도 당당하게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럼 소스라도 드려야 말씀을 하신다는 이야기인가요?"
태욱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한다면 더 큰 화를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위협 행위였다.
"저희가 취합한 정보에 의하면 드워프 때문이라는 것을 가장 높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CIA에 입에서 드워프라는 단어가 흘러나왔다.
"알고 계시면서 일부러 이야기를 하지 않으신 거군요."
"그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손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내어 놓지 않는 표정이었다.
태욱이 이곳에 온 것을 예상만 하고 있었을 뿐 자신들은 어떤 것도 계획하지 않고 있었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왜 드워프들과 접촉했습니까?"
"그들은 높은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정보 요원들이 접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그 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제게 미국의 정보국이 접근한 것처럼 드워프들에게 접근을 했다? 이것을 이야기하고 싶으신 거군요?"
"네,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사라졌을까요?"
"아직 파악 중에 있습니다. 모든 요원들이 실시간으로 현재 상황을 보고하고 있지 않으니, 시간이 지나면 확인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가 태욱 님께 보고드려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는 CIA였다.
딴에는 줄타기를 하며 시간을 벌 심산이었지만, 태욱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제가 드워프들에게 전달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과 연결해 주십시오."
당당한 태도였다.
당연하게 자신에게 제공을 해야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것은 국제적 외교 상황에서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행동이 될 수 있었다.
"그건 어렵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태욱은 위협을 하듯, 겁화의 채찍을 피웠다.
강한 열기가 순식간에 방 내부를 잠식해 나갔다.
순간적으로 몸에서 땀이 삐질 흘러나올 정도로 강력한 열기가 지속되기 시작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과 연락입니다. 다른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인간들의 세상으로 데려온 이가 할 수 있는 요청 아닙니까?"
태욱은 자신이 드워프들을 데리고 나왔기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없었으면 드워프들 발견해 내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힘으로 압박을 하시면 저희도 국가적으로 한국에 이의 신청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외교적인 상황도 연결이 돼 있습니다."
태욱의 기세등등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제재하려는 듯 "국가적 상황이다, 단순하게 정보국 요원들이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라며 그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었지만, 태욱은 대수롭지 않았다.
"글쎄요? 제가 그런 압박을 받을까요?"
"제 선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밖에 이야기하지 못함에 죄송합니다."
"거절이라는 이야기네요? 제 말을."
"죄송합니다."
"그럼 여기서 절 막을 분을 데려오시거나 그것을 승인할 수 있는 분을 불러 주십시오. 좋게 이야기하면서 풀어 나가려고 했지만, 이제는 그 시간을 넘긴 것 같습니다."
태욱은 손에 쥐고 있던 겁화의 채찍을 휘둘렀다.
촤르르르륵.
채찍의 끝에 맞은 벽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채찍이 닿은 자리에는 불꽃이 일렁였다.
"뭐, 뭐하시는 겁니까?"
태욱을 제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요원의 다급함이 겉으로 표현됐다.
지금까지는 위협적인 부분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건물이 부서지거나 타격은 없었다.
태욱이 힘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당당한 태도가 가능했던 것이었다.
"저도 제 나름대로의 행동을 하는 건데 뭐가 잘못된 건가요?"
"저희 쪽 헌터를 모두 상대하실 생각이십니까?"
"제가 원하는 요구를 들어 주지 않는다면 충분히 그럴 의도가 있습니다."
"헌터님!"
결국 참지 못한 요원이 고성을 터뜨렸다.
"제 요구가 힘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들을 돌려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연락을 취해 달라는 부탁일 뿐인데요."
강경한 태욱의 모습에 그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계속해서 거절을 한다면 태욱이 보여 줄 스텐스는 확실했다.
미국에서 난동을 부린다는 것은 확정돼 있는 사실이었다.
"5분만 시간을 내주십시오. 그럼 어떤 방향이든 확실하게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태욱은 겁화의 채찍을 거뒀다.
"정확하게 5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뭐하세요? 지금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