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회귀빨로 지존 헌터
- 6권 6화
사실 이번 진법은 로콘의 공격을 받아 내고 스승의 진법을 개량한 것이었다.
물리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고 뇌리에 박아 넣는다면 그것이 일종의 공격이 될 수 있다.
실질적인 물리적 행동이 없더라도 얼마든지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금강철인의 진법이 하피 로콘이 정신을 잃게 만든 것이고 그것이 곧 타격이 됐다.
만약 하늘에서 비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면 단번에 그녀의 목숨을 끊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금강철인은 한 발자국 성장한 것이었다.
스승의 염원인 완벽한 진법이 지금 금강철인의 손으로 완성된 것인지는 확신을 할 수 없었지만, 그의 마음은 뜨겁게 타올랐다.
'스승님. 제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갔습니다.'
하늘을 묵묵히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는 왠지 모를 애잔함이 담겨 있었다.
* * *
다이치는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진법으로는 가장 상위에 올라와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로콘이 갑자기 비행 중 바닥으로 추락했다.
자신이 받아 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이대로 움직인다면 은신이 풀려 버릴 가능성도 농후했다.
'그녀도 죽었군.'
앞서 츄르가가 죽어 버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로콘이 죽었을 때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다이치는 단 일격을 노리고 있었다.
'적어도 한 명은 데리고 가야 내 체면이 선다.'
데몬의 수하들은 각자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완력. 진법. 암살.
수많은 특성들이 있지만, 각자의 개성에 맞춰 성장을 해 왔다.
만약 3명이서 동시에 상대를 했다면 상대방도 이렇게 쉽게 승리를 가져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데몬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세 사람의 호흡이었다.
물론 데몬 앞에서는 서로 으르렁거리거나 싫어하는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데몬의 명령이면 고개를 끄덕이며 수행해야 하는 장기말일 뿐이지, 각자 개인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다.
데몬의 생각은 3명을 조합한 것이었지만, 3명은 생각이 달랐다.
각자의 능력으로 충분히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에 깔려 있었다.
그러다 보니, 1:1을 기본으로 생각했다.
새로운 적이 나타나면 다음 순번이 나아가 상대를 하는 것이다.
자만심이 만들어 낸 무지한 결과였다.
다이치는 돌아갈 명분을 찾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의 목을 들고 가는 것이었다.
'적어도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필요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적당한 대상이 보이지 않았다.
힘으로 츄르가를 누른 녀석?
진법으로 로콘을 이긴 녀석?
어느 녀석을 상대하더라도 마땅한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때 떠오른 이가 있었다.
바로 츄르가의 전투에서 무기를 잃어버린 인간.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가 파괴된 것은 물론, 타격을 입은 듯이 몸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첫 츄르가와의 충돌에서 일어난 타격을 아직 회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저 사람을 목표로.'
다이치는 은밀하게 접근했다.
아무도 그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평상시와 같이 행동했다.
* * *
"후우. 고생했어, 금강철인."
"아닙니다. 당신 덕분에 스승님이 마지막 염원을 이뤄 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금강철인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뭐가 그렇게 진지해?"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은비가 금강철인의 등을 후려치며 말했다.
"커억, 멧돼지도 이런 멧돼지가 없지."
고개를 흔들며 그녀의 행동을 제재하는 금강철인의 모습을 본 은비가 날뛰듯 소리를 질렀다.
"뭐? 돼지? 이게 말이면 단 줄 알아?"
"언니, 기사님 고생하셨어요."
어느새 다가온 영리가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다.
"이제 시작이야. 앞으로는 녀석들보다 더욱 강력한 놈이 이곳을 찾아오겠지."
태욱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앞으로는 더 큰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전에 뿌려놓은 씨앗들이 무럭무럭자라 열매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쉬지 않고 성장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자신이 뭔가 답답했다.
"에이, 그래도 좋은 날인데, 그렇게 우중충한 표정은 필요 없잖아. 승리야 승리!"
"그래, 오늘의 승리다!"
태욱은 마지못해 동료들의 행동에 동조했다.
기뻐 소리치는 것까지 따라 하던 태욱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것을 느낀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영리.
그녀도 태욱과 비슷한 위화감을 느꼈다.
'뭔가 이상해. 현무?'
영리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인 현무를 불러냈다.
'혹시 주변에 우리를 살펴보는 녀석이 있어?'
동료들의 분위기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던 영리였기에 조용하게 주변을 살핀 것이다.
[여기로부터 5미터 아니 점점 가까워지고 있군.]
현무는 단번에 은신해 있는 다이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고작 관찰이라고 생각했던 짧은 찰나, 다이치는 은신을 풀어내고 단번에 은비에게 달려들었다.
"죽어!"
기습을 통한 일격.
그것이 반드시 통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던 다이치였다.
지금까지 다가오는 동안 누구 하나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는 녀석은 없었다.
'전혀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군.'
당연하게 자신을 확인하지 못하고 승리의 기쁨에 도취돼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기쁨의 순간.
그 찰나의 순간이 암살을 노리기 가장 정확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다이치였다.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들어간 다이치의 공격은 원하지 않던 어떤 막 덕분에 막혀 버렸다.
물컹.
이질적인 손의 감각이었다.
'뭐지?'
눈동자에는 당황스러운 감정이 담겨 있었다.
확신의 찬 공격이 이렇게 단박에 막혀 버릴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상대방의 경계가 심했다면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기뻐만 하던 행동들이 다이치를 끌어들이기에 너무 매혹적인 미끼 역할을 행한 것이다.
'이미 발을 뺄 수 없어.'
다이치는 뒤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작용과 반작용.
무슨 행동을 하면 그에 따른 결과가 저절로 만들어진다.
자신이 앞뒤 가리지 않고 움직인 탓에 지금 모든 사람의 집중을 받고 있었다.
억지로 중간을 막아 내는 것을 밀어내더라도 계속해서 공격을 감행해야 된다고 머릿속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밀어붙여.'
강한 힘으로 밀어붙였지만, 물컹이던 투명 벽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다이치의 검은 날카로웠고 뛰어드는 힘은 확실히 강했다.
최종 지점에서 가장 강한 힘을 내기 위해 모두 계산해서 움직였다.
하지만 중간에 방벽이나 방책을 뚫어 내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다른 힘이 필요한 것이다.
억지로 쥐어 짜낸 힘은 결국 물컹이던 투명한 벽을 뚫어 내지 못했다.
'젠장.'
다이치는 아랫입술을 강하게 물었다.
상황이 좋지 않게 풀려갈 때마다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버릇이 어김없이 나타났다.
* * *
영리는 총알처럼 쏘아져 튀어 나오는 리자드맨을 보고 재빨리 방어막을 펼쳤다.
"현무!"
다급하게 만들어 낸 방어막이라고 할지라도 그 내구성은 상당했다.
물컹.
오히려 딱딱한 방어막이었다면 그것을 깨뜨리고 밀고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움이 강함을 누른다.
아무리 강한 힘이라고 하더라도 부드러움으로 대응하는 것에 당할 수가 없다.
급하게 펼쳐 낸 현무의 방호 막은 날카로운 리자드맨의 검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발버둥을 치며 더욱 깊이 파고들려고 해도 리자드맨의 목적은 달성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깜짝 놀란 것은 바로 은비였다.
"와, 깜짝이야!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리자드맨의 목표 대상이었던 은비는 영리가 아니었다면 단박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녀가 리자드맨을 인식했을 당시, 이미 녀석은 검을 앞으로 뻗어 내고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냉철하게 상황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체계화된 암살자나 다름없었다.
"마왕군이 암살자도 뽑나 보지? 넌 어디서 굴러 들어온 거야?"
"......."
은비의 질문에 암살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눈으로 살기를 강하게 뿜어내기만 할 뿐이었다.
"이거 눈으로 사람이라도 죽이겠네. 아이고 무서워."
마치 약을 올리듯 이야기하는 은비의 속마음은 내심 달랐다.
'어떻게 이렇게 은밀하게 접근할 수 있지?'
대부분이 이 녀석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그나마 영리가 그를 확인했을 뿐이었다.
다급하게 현무의 움직임이 없었더라면 지금 저렇게 아래에서 위를 향해 노려보는 것은 자신이 됐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은비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부르르르르.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절로 몸이 떨려 왔다.
"괜찮아?"
곁으로 다가온 태욱이 그녀의 어깨의 손을 올리며 묻자 은비는 화들짝 놀랐다.
"까, 깜짝이야. 왜 이렇게 기척도 없이 접근을 하는 거야?"
과민 반응을 보이는 은비의 모습에 태욱은 의아함을 가졌다.
'뭐지? 내가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그녀를 걱정하기 위해 곁에서 말을 걸었을 뿐인데 괜스레 호통까지 듣게 된 태욱이었다.
은비는 자신도 모르게 암살에 의한 트라우마가 생겨 버렸다.
만약 조금이라도 인식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그녀의 기억에 드리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은비가 인식을 한 상태는 바로 검이 목의 직전까지 날아들었을 때였다.
어느 살기도 느끼지 못했고 심지어 리자드맨이 우리 가운데 있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만약 자신의 도끼가 있었다면 그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 타이밍이라면?'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절대로 막아 내지 못할 시간이었다.
고작 인식하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다.
누구보다 본능적인 움직임에 있어서 가장 좋은 반사 신경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이야기하고 다녔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살기라는 감각을 숨겨 둔 채 접근을 하는 암살자의 능력은 자신의 상상을 초월했다.
마음에 생겨난 커다란 스크래치가 그녀를 더욱 깊숙한 곳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 * *
결국 급습에 실패했던 다이치는 그 자리에서 자결을 해 버렸다.
말릴 틈도 없었다.
자신의 품에 숨겨 놨던 작은 단도를 가지고 스스로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
검 끝에 독성이라도 발려 있었는지, 죽어 가는 다이치의 입에서 하얀 거품이 피어올랐다.
"조심해, 모두 뒤로 물러서."
태욱은 혹시나 있을 위험에 대비했다.
독성을 강제로 주입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두 가지 특성이 있었다.
하나는 자신의 죽음으로 정보를 빼앗기지 않도록 만드는 것.
또 하나는 자신의 신체가 수류탄이 돼 단번에 독을 퍼트리기 위함이었다.
'셋.'
'둘.'
'하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도 다이치의 사체는 폭발하지 않았다.
'안전한 것인가?'
손을 들어 다른 사람을 뒤로 물린 채, 태욱이 조심스럽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다이치의 사체에 태욱이 손을 대자 그의 시체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손을 대는 순간 터지게 만든 것인가?'
태욱은 재빠르게 몸으로 그의 사체를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