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
회귀빨로 지존 헌터
- 6권 5화
푸욱.
검 끝에서 상당한 감촉이 느껴졌다.
'됐다. 됐.......'
하지만 그 감촉은 츄르가가 검날을 강하게 쥐면서 파고 들어간 감촉인 것이었다.
스스로가 정확하게 찔러 들어갔다고 확신을 할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츄르가의 반응속도가 빨랐던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할 수 없어.'
태욱은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검을 강하게 찔러 넣었다.
체중을 가득 실어 검을 강하게 누르자, 조금씩 츄르가의 손아귀를 뚫고 들어가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츄르가의 돌진 속도, 태욱의 강한 힘.
두 가지가 맞물려 정확하게 츄르가의 머리를 실라카의 검이 관통했다.
콰득.
츄르가의 뒤편으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고작 0.2초 만에 일어난 엄청난 상황이었다.
위험하다고 느꼈었지만, 정말로 이번에는 태욱도 위험에 빠질 수가 있었다.
자신의 관자놀이 부근에 쥐어져 있는 츄르가의 손이 태욱을 잡아먹을 듯이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휴우."
절로 깊은 한숨이 흘러나온 태욱이었다.
"금강철인, 그는 어떻게 됐지?"
한숨을 내 쉬고 나니 절로 동료의 안위가 걱정됐다.
자신은 위기를 벗어났고 안전이 확보되자 자연스럽게 떠오른 걱정이었다.
태욱의 걱정은 괜한 기우였다.
* * *
금강철인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기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분명 또다시 공격이 찾아올 거야.'
그의 감각은 정확했다.
살랑이던 바람이 어느샌가 날카로운 살기가 돼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느끼곤 재빨리 자리를 이동했다.
'내가 펼쳐 낸 진법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이군.'
자신이 펼쳐 내는 진법에서는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상대방을 가둬 그의 마력을 사용하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둔 진법이었다.
자신의 진법과 다른 이질적인 감각이 그를 움직이게 만든 연료였다.
힘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
누가 더 예민하고 날카롭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뿐이었다.
펼쳐져 있는 마나의 총량이 변하지 않으니 당연한 이치였다.
'저곳이다.'
금강철인은 자신의 진법과 다른 기운을 풍기는 곳을 찾았다.
이곳은 넓게 펼쳐진 들판 한가운데 있었다.
침엽수보단 활엽수의 나무들이 저 멀리 우뚝 솟아 있었고 잔잔한 호수가 그 가운데 있었다.
잔디처럼 보이던 식물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토끼풀.
잡초.
잔디.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기에 처음에는 이상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 가운데.
오직 사막 속 한가운데서 자라는 식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인장.
뭉툭한 머리와 함께 길게 뻗은 몸통 그리고 그것을 지키고 있는 날카로운 가시.
물이 풍부하거나 햇빛이 적당량 쏟아지는 곳에서는 생존하지 않는 유일한 식물이었다.
'저것이 왜 여기에?'
이상점을 느낀 금강철인은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저게 진법의 약점이구나.'
진법의 틈.
그것을 발견하면 내부에서도 진법을 깨뜨릴 수 있다는 스승의 말이 떠올랐다.
'스승님. 당신의 가르침이 이곳에서도 빛을 발하는 것입니까?'
하늘을 보고 소리 없이 외친 그의 마음이 전달이 됐는지, 강렬한 햇살이 그만을 비추고 있었다.
"진법, 그것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다."
금강철인은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그곳을 강하게 찔러 넣었다.
와장창창.
깨지지 않을 것 같은 로콘의 진법이 단박에 깨져 버린 것이었다.
"꺄아아아악!"
진법이 깨지자마자 강한 울음을 터뜨리는 로콘이 눈에 들어왔다.
높은 위치에서 쉼 없이 날갯짓을 하며 금강철인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스스로 그 깊은 함정에 빠져들어라!"
금강철인은 로콘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스스로가 빠져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심해로 조금씩 그를 끌어들였다.
'진법 속에 빠져 허우적대라!'
마음속의 그의 외침은 정확하게 로콘에게 닿았다.
로콘은 자신의 시야가 갑자기 어지럽게 변한 것을 알았다.
'이게 뭐지?'
방금 전까지 진법에 빠져 허우적대던 녀석이 대뜸 그 경계를 깨뜨려 버리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이것조차 입을 떡 하고 벌릴 정도였는데, 어느새 그의 진법 속에 자신이 빠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암흑.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해도 자신이 진법에 빠질 것이란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었기에 일정한 신호 패턴도 없었다.
혼자만의 공간에 빠져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Chapter 2
리자드맨 다이치는 은신한 채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투는 언제나 마찬가지로 승기를 잡아 가고 있었다.
강한 완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츄르가.
유혹과 진법을 이용한 상대방의 계책을 말살시키는 로콘.
두 녀석의 조합이라면 쉽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들을 믿고 있던 다이치였고 자신은 몸을 숨긴 채로 언제든지 적군을 공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은신이라는 것이 주변과 동화를 하는 스킬일 뿐이지, 어떤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재적소에 사용한다면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본적으로 주변과 동화를 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눈으로 다이치를 보더라도 인식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탐색 마법과 인지 능력이 강한 녀석들이면 다이치를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찾아낸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또다시 자리를 옮겨 주변과 동화를 시도한다면, 그것은 높은 성을 새로 쌓아 올라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에 인식을 하고 있더라도 순간적으로 그의 움직임을 놓친다면?
다시 다이치를 찾기 위해 탐색 마법을 펼쳐 내야 가능한 것이었다.
은밀하게 자신의 몸을 숨기고 츄르가의 전투를 지켜보던 다이치는 당황을 했다.
갑자기 녀석의 무기가 부서지면서 일순간의 틈을 허용한 것이다.
다이치가 나설 틈도 없이 츄르가는 그만 죽어 버렸다.
'이런.'
몸을 숨기고 있는 지금 적들은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후퇴해 보고를 해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
퇴각을 모른다는 마왕군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자신을 출정시킨 마왕님의 의도는 적군을 압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자신을 보낼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힘이 강한 녀석을 이 편대에 편성했을 것이다.
'로콘을 데리고 마왕님께 보고한다.'
전투력 손실을 최하로 잡고 움직이기 위해 그녀를 구출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공중에 떠 있는 그녀는 지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뭘 하는 거야?'
자신이 신호를 보내려고 해도 이쪽을 보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다이치는 적당한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 다이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콘은 자신이 빠져 들어간 진법을 파훼하기 위해 주변을 살폈다.
오직 어둠.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과거 가장 약한 존재로서 하피 무리에서 지내던 시간이 떠올랐다.
빛은 어디에도 없었고 하루하루 근근이 생명을 이어 가고 있었다.
죽음도 몇 번이고 불사했지만, 그녀의 목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동족의 죽음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종족에서 멸시를 당하면서도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녀에게 하나의 빛과 같은 사람이 찾아왔다.
데몬.
마왕군의 전투 지휘관.
평소에는 마왕 베리엘의 충실한 수하 겸 비서로 움직이고 있었고 큰 전투가 벌어지면 반드시 나타나 승리를 가져가는 엄청난 인물이었다.
그에게 로콘은 정확하게 간택됐다.
하피 무리를 수하로 두기 위해 찾아왔던 데몬은 정확하게 로콘의 상태를 꿰뚫어 봤다.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고 스스로가 좌절감에 쌓여 있었다.
그런 그녀를 빛이 가득한 공중으로 끌어올려 준 것이 바로 데몬이었다.
"데몬 님."
어둠에 휩싸이자 데몬에 관한 엄청난 열망이 피어올랐다.
"난 여기서 이대로 있을 수 없어."
"더욱더 성장해 데몬 님의 힘이 돼야 해."
10명의 수하들 중 가장 약한 축으로 분류되는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강해지고 싶어 하는 욕구.
그것이 지금의 로콘을 만들었다.
강해지고 또 강해지면 다른 녀석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나약한 자신과 강한 자신 두 가지의 모습을 모두 격은 로콘이었다.
나약할 당시 괴롭히고 무시하고 멸시하던 녀석들의 시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강한 자신이 돌아오자 그들의 시선은 그저 우러러보며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높은 위치라는 것을 몸소 표현해 줬다.
'더욱 강해져야 해.'
그녀의 마음에는 항상 강해져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쌓였다.
위기에서 항상 한 발자국 성장하고 그것이 지속돼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앞으로도 더욱 높은 위치에 올라설 수 있다는 신념.
마왕의 끊임없는 사랑.
그것이 진법을 깨뜨리는 힘의 발판이 됐다.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울렁.
진법 속에서 커다랗게 외치는 그녀의 울음소리가 공명이 돼 되돌아왔다.
끝없이 어둠만이 펼쳐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녀의 틀을 깨어 주는 행동이었다.
"꺄아아아아아!"
꿀렁.
더욱 크고 강렬하게 울부짖은 소리가 다시 한 번 메아리를 타고 돌아왔다.
'분명 저곳에 가로막는 벽이 있다.'
방향을 찾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회전하는 커다란 벽을 향해 로콘이 날아들었다.
콰카카카캉.
단순한 부딪힘으로는 그 벽을 부술 수는 없었다.
물리적인 힘으로 탈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왕님!"
몸속에서 타고 흐르는 마나를 단번에 폭발시켰다.
쩌쩌저저적.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여전히 어둠은 가시지 않았다.
"마왕님!"
다시 한 번 신념을 담아 외친 그녀의 목소리 사이로 뭔가 날카로운 것이 파고들었다.
"커컥, 커컥."
숨이 역류하듯 뒤섞인 그녀의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신이 항상 행하던 방법.
그 방법에 그대로 당해 버린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내 모든 것을 익힐 수 있다고?'
아무리 진법의 제왕이라고 해도 다른 이의 특성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가?
진법 속에 있는 자신은 공격을 당했고 그것이 치명타가 되는 엄청난 위력이었다.
'안 돼, 안 돼!'
인지 능력이 조금씩 떨어져 가고 있었다.
억지로 정신을 부여잡고 있었지만, 희미해져 가는 정신을 결국은 손끝에서 놔 버렸다.
* * *
공중에서 맴돌 듯 움직이던 하피가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다.
쾅.
강한 파열음과 함께, 금강철인이 그곳으로 달려 나갔다.
"마지막."
확실하게 상대의 숨통을 끊어 놔야 했다.
만약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아무런 대비책 없이 추락을 했을지라도 신체 기관들이 본능에 의해 작동하는 경우가 있었다.
갑자기 자신을 위협하는 방망이가 머리를 향해 날아온다면?
그것을 막아 내기 위해 절로 손을 머리 위로 들게 된다.
이것은 방망이를 보고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본능적인 움직임이 강하다.
날아오는 방망이를 막아 내기 위해 양팔을 희생하더라도 뇌를 지키려고 하는 신체의 반응이다.
만약 하피가 의식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공중에서 추락하는 자신의 상태를 파악해 양손과 양다리를 내어 주더라도 뇌를 지키려고 하는 행동을 행할지 몰랐다.
재빠르게 도착한 금강철인은 자신의 생각이 기우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