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회귀빨로 지존 헌터
- 5권 9화
봉인돼 있던 마지막 힘을 모두 모은 것도 모자라, 자신의 진기(眞氣)를 모두 불어넣었던 것이다.
"타르가!"
태욱이 타르가의 곁으로 다가오는 검은 독운(毒雲)을 보고서는 재빠르게 도달했다.
"괜찮아요?"
타르가를 향한 태욱의 물음에 타르가는 아무런 말없이 남겨진 한 자루의 검을 그에게 건넸다.
"내....... 마지막...... 힘을 다한...... 공격이었소."
타르가의 봉인 해제된 힘이 모두 소멸한 것을 모르는 태욱은 그의 발언에 놀랐다.
"무슨 말이에요. 마을로 돌아갈 수 있어요."
"아....... 마을의...... 마지막...... 희망이어......."
"아무 말 하지 마세요."
태욱은 몰려 들어오는 독 안개를 만불독침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독운이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늦어 버린 것이다.
약간의 독이 그의 신경을 침투했고 타르가의 목숨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지속적인 전투를 벌이면서 타르가의 신념에 감복을 한 태욱이었다.
그렇기에 그를 존중했다.
연민의 정도 조금씩 쌓여 가고 있었기에 타르가의 죽음이 뒤로 밀려나가길 기도하며 타르가의 내부에 있는 독기를 조금씩 옮겨 가기 시작했다.
"쿨럭."
타르가의 입가로 선혈이 터져 나왔다.
태욱이 만불독침으로 이동시키는 방법은 독을 한 곳으로 모아 단번에 뽑아내는 것이다.
흐릿하게 퍼져 있을 때와는 달리 신체적 능력이 최하로 떨어진 타르가에게 약간의 독의 뭉침도 그에게 큰 타격이 돼 버리는 것이다.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면 회복이 가능한 타르가였지만, 여기는 전장 한가운데고 저 멀리서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는 엘리자베스가 서슬 푸른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기에 시간이 녹록치 않았다.
"마을의...... 희망의...... 불씨르......."
털썩.
태욱의 앞에 아른거리던 검이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타르가!"
태욱의 외마디 목소리가 넓은 홀을 가득 채웠다.
"반드시, 마을을 구해 내겠습니다."
타르가가 남겨 준 검을 태욱이 쥐었다.
울분으로 가득 찼던 마음이 순식간에 편해졌다.
'뭐지?'
-바람의 실라카의 쌍검.
검의 끝을 봤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실라카의 무기.
착용자의 몸놀림을 가볍게 만들어 주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패닉에 빠지지 않게 도와준다.
명경지수(明鏡止水).
흐려져 있는 정신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
샤프니스(Sharpness).
잘 관리된 검의 날은 깃털이 내려앉아도 썰려 나간다.
오토 리페어(Auto Repair).
자동으로 검이 수리된다.
엘프 마을의 유물이 그의 손으로 들어온 것이다.
타르가가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본 드래곤을 처치하고 남은 그의 마지막 유품.
아니, 마을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태욱은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꾸욱.
손끝에 전달되는 감각이 상당히 익숙했다.
'마치 손에 빨려 들어오듯 쥐어진다.'
착용자의 감각에 손잡이가 변형되는 것 같았다.
가장 폭발적인 전투력을 낼 수 있도록 설계된 쌍검 같았다.
이제는 더 이상 쌍검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아무리 오토 리페어 기능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일전에 폭발시킨 엄청난 파괴력에 한쪽이 그대로 소멸돼 버린 것이었다.
"마을의 마지막 희망."
태욱이 낮게 읊조렸다.
그 힘이 가진 엄청난 무게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절대로 잊지 않겠다."
태욱은 마음속에 있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새기고 또 새기기 위함이었다.
내뱉은 말은 다시 그의 귓속으로 들어오고 머릿속에 강렬하게 틀어박혔다.
"절대로! 잊지! 않겠다!"
다시 한 번 내뱉은 태욱의 목소리는 귀를 타고 연속적으로 들어왔다.
넓은 홀을 가득 채운 그의 목소리가 울림이 돼 가슴 깊숙이 파고 들어왔다.
"후우."
깊은 숨을 내쉬니 머릿속이 청량하듯 깨끗해졌다.
'이게 바로 명경지수의 힘인가?'
태욱은 실라카의 검의 위력을 충분하게 느꼈다.
깨끗해진 머릿속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되는지도 파악을 할 수 있게 됐다.
Chapter 3
"엘리자베스."
나지막하게 울리는 태욱의 목소리에 그녀는 발끈하듯 소리쳤다.
"엘리자베스? 감히 내 이름을 입에 올려?"
현재 엘리자베스는 흥분돼 있는 상태였다.
기분 좋은 흥분이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것을 빼앗긴 분노가 철철 넘쳐흘렀다.
가지고 놀 가치가 있는 장난감으로 생각했는데, 그것들이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부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생명을 앗아 갈 수 있는 위협적인 행동까지, 엘리자베스가 가졌던 처음의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저기 보이는 인간들을 찢고 부수고 할 수 있는 한 분노 표출을 다할 생각이었다.
"얼음의 기운이 이곳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다. 프리즌!"
그녀의 특기인 냉동 마법이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단 한 번의 마법도 사용하지 않았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데 굳이 힘을 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홀 내부가 순식간의 영하의 온도로 떨어졌다.
태욱은 마법을 시전하는 그녀의 품으로 다가섰다.
"그림자 베기."
유형화된 신체에 타격을 가하는 스킬이었다.
물리적인 공격은 그녀에게 전혀 타격이 되지 않기 때문에 태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킬 중 하나를 꺼내 썼다.
많은 스킬을 가지고 있는 그는 모든 상황에 대처를 할 수 있었다.
태욱의 모습을 본 엘리자베스는 다급하게 마법을 사용했다.
"블링크!"
재빠르게 시전한 그녀의 반사 신경 덕분에 태욱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촤압.
검 끝에 걸리는 감각이 아무것도 없었다.
"칫."
엘리자베스가 자신이 가진 스킬을 모르고 있을 때가 유일한 약점이었다.
방심하는 데다 분노하고 있었기에 기회가 있을 줄 알았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다.
태욱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타이밍에 맞춰 대규모 마법을 취소하고 재빨리 블링크로 이동을 한 것이다.
하지만 태욱의 행동이 완전 수포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타르가가 발악을 하고 태욱이 눈에 거슬릴 정도로 행동했으니, 자연스럽게 두 사람에게 시선이 머문 엘리자베스였다.
지금까지 조용하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던 태욱의 동료.
그들이 지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욱!"
지원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홀 내부에서 연속적인 사격이 시작됐다.
타타타탕.
그녀는 홀 가장자리에 사격을 할 수 있는 포탑을 세우고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목표는 하나였다.
'태욱이 이야기한 저 샹들리에.'
그가 이야기하는 것 중에 빗나가는 것은 거의 없었다.
이번에도 그의 말을 믿었다.
믿지 않고서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가능했다.
"받아라!"
지원이 준비된 사격은 정확하게 엘리자베스의 라이프 베슬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총알은 목표에 닿기도 전에 다시 바닥으로 추락했다.
강한 냉기로 인해 회전력이 떨어지며 추진력을 모두 소모한 것이다.
'탄알로는 타격을 줄 수 없는 것인가?'
천정이 높은 홀이었기 때문에 직접 타격은 힘이 들었다.
그렇기에 원거리 공격에 희망을 걸고 있었지만, 지원이 계산한 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더 강한 힘이 있었다면.'
지원은 전투에 가담을 하기는 하지만, 전투 요원으로서는 그 힘이 부족했다.
곁에서 아이디어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지략가인 것이다.
물론, 그녀가 개발한 마도 공학으로 여러 가지 효과를 보기도 했으나, 태생적으로 그녀는 연구실에서 연구를 할 때 가장 빛을 발했다.
"받아라!"
은비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도끼를 내던졌다.
후웅후웅.
커다란 도끼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하늘로 솟구쳤다.
"그레이트 실드!"
도끼의 무게감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냉기만으로는 도끼가 날아오는 속도를 막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적절하게 펼쳐진 엘리자베스의 그레이트 실드로 도끼 역시 커다란 벽에 막혀 버렸다.
퍽.
터터터터텅.
도끼는 커다란 실드에 막혀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런 젠장!"
은비는 이런 전투가 가장 힘이 들었다.
상대는 실체가 없었고 멀리서 마법을 펼쳐 내는 마법사다.
근거리를 쉽게 내주지 않고, 혹시나 근거리에 도착을 하더라도 물리적 타격으로는 1의 피해도 주지 못하니 손이 근질근질한 것이다.
화풀이라도 하듯 내던진 도끼가 아무런 효과를 발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했으니 신경질이 난 것이다.
금강철인 역시 전투를 벌이면서 큰 효과를 내진 못할 것이다.
그의 특성은 방어에 관한 것임으로 동료를 지켜 내는 데 효과적이지, 누군가를 타격하거나 피해를 주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오직 두 사람밖에 없었다.
고위 마법사이자 리치인 엘리자베스를 상대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화력이었다.
"이게 최선을 다한 건가?"
엘리자베스의 냉소적인 웃음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최선을 다한 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이젠 장난질을 받아 줄 인내심이 다 떨어진 것 같은데?"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규모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쉼 없이 흔들리는 그녀의 머리칼은 얼마나 많은 마나가 유동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찰랑찰랑.
"냉기의 감옥에 갇혀 영원히 그 고통 속에 살지니......."
길고긴 마법 영창이 엘리자베스의 입에서 이뤄지기 시작했다.
"조심해, 다들 모여!"
태욱은 전 인원들을 모이게 만들었다.
그녀가 펼치려는 마법을 눈치챘다.
블리자드(Blizzard).
대규모 냉기 폭풍이 휘몰아치는 마법이었다.
넓은 공간에서 이 마법이 쏟아진 이후 그곳에는 얼음 말고는 남아나는 게 없었다.
그런 커다란 마법이 이곳에서 발현된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이 없었다.
"최대한 방어 마법을 넓게, 체온을 올릴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태욱의 말에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지원이었다.
물리적인 힘으로 열을 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반복해서 움직이는 피스톤 운동뿐이다.
그러고는 연속 사격으로 강한 열을 뿜어내는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사격!"
타타타타타타탕.
총알의 목적지는 필요가 없었다.
그저 열을 내기 위해 반복해서 사격을 하는 것이다.
시작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총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최소한 300도 이상의 열기가 뿜어져 나올 것이 분명했다.
* * *
주작(朱雀).
불로 구성돼 있는 붉은 새.
이번에 영리가 새로 계약을 하게 된 소환수였다.
소환수로부터 연결이 된 최초의 계약이었다.
본래 영리는 현무와 계약한 상태였다.
주작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현무 덕분이었다.
-영리, 힘이 필요하다면 이 녀석도 괜찮을 거야.
"이 녀석이라니? 누굴 말하는 거야?"
-야, 모습을 드러내 봐.
현무의 울림이 생기자 붉은 불씨가 공중에 피어올랐다.
일렁이던 불씨는 어느 순간 형태가 자리 잡기 시작하더니 작은 새가 돼 영리의 곁을 맴돌기 시작했다.
"어? 작고 귀여운 새네?"
영리는 자신의 앞에 생겨난 귀여운 새를 보고 웃음을 지었다.
-누가 귀여운 새래?
주작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 미안, 화가 났구나?"
주작의 성격은 상당히 호전적이고 전투적이었다.
전투에 특화된 소환수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지, 마음만은 따뜻하고 소환사를 싫어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잘 알고 있으면 다음부터 그러지 마.
퉁명스럽게 내뱉은 주작의 말에 영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귀, 귀여워! 하하하하."
영리의 웃음이 싫지는 않았는지 주작은 빙그르르 그녀의 곁을 맴돌았다.
"너도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영리의 차분한 부탁에 주작은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그게 소원이라면 들어 주지.
주작이 대답하자 옆에 있던 현무가 한마디 거들었다.
-어차피 너 소환사가 없잖아 뭘.
-.......
현무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주작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럼 다 같이 가는 거다?"
영리는 주작과 계약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