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
회귀빨로 지존 헌터
- 4권 22화
'그냥 인간은 아니라는 건가?'
전투력이 높은 인간들도 엘프를 따라올 때는 금방 지치곤 한다.
정확하게 그들의 행동을 인지할 수 없어 정신적으로 피곤해진다.
정신적 피로함은 육체적 피로를 더욱 빠르게 끌어올리기 때문에, 체력적인 한계에 빨리 부딪힌다.
이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꽤나 먼 거리를 쉬지 않고 쫒아왔기 때문에 타르가의 입장에서는 꽤나 놀라울 뿐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놀란 것을 겉으로 표현해 내지 않은 채, 그들을 여전히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영리는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에서의 휴식은 꽤나 달콤했다.
"휴우, 다행이에요."
"응?"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말하는 은비였다.
체력적으로 가장 강한 그녀는 아직 한계를 느끼기 전이었다.
"엄청 빨리 이동하고 있었어요, 가까스로 따라오기는 했는데."
아무도 지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기감이 예민한 영리만이 눈치를 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 난 태욱의 뒷모습만 보고 따라갔는데."
"나 역시."
만약 이대로 계속 진행을 했더라면 모두 탈진 아닌 탈진을 했을지도 몰랐다.
영리의 말을 들은 태욱이 가장 크게 놀랐다.
꾸욱.
주물주물.
온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는데, 꽤나 이질적이 느낌이 그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지친 것인가?'
하나둘씩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는 놀랐다.
"이게 뭐야?"
"왜 이렇게 뻐근하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피곤함이었다.
'설마?'
태욱은 슬그머니 스킬을 발동시켰다.
-흉내 내기.
엘프인 타르가는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움직였다.
주변을 경계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온전한 위치를 들키는 것이 거북스러운 것인지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다.
-숲의 발걸음.
태욱의 스킬 창에 새로이 떠오른 명제였다.
'뭐지?'
그저 걷고 있을 뿐인데,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마도 패시브 스킬이겠지.'
엘프들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
물론, 헌터들에게도 패시브 스킬을 가진 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을 확인했을 때,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스킬임을 알 수 있었다.
-숲의 발걸음.
숲속을 이동하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기척을 느낄 수 없도록 자연스럽게 숲과 동화된다.
숲의 마나를 받아 빠른 속도로 회복이 가능하다.
정확하게 능력치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었다.
설명만 봤을 때는 상당히 높은 등급의 스킬임에 틀림없었다.
'만약 저렇게 걷고 있는 것이 회복을 하기 위함이라면?'
태욱은 조금씩 신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아주 천천히 움직이던 그의 신체는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휘릭.
휘릭.
주변의 풍경들이 재빠르게 뒤로 이동하는데,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몸속에 힘이 가득 차오르는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건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엘프들의 행동의 원인을 알게 됐다.
'가만히 서서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숲의 정기를 받는 것이 회복에 유리하겠군.'
그리고 또 하나.
숲에 처음에 발을 들였을 때 엘프들의 위치를 전혀 알 수 없었던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된 것이다.
엘프들의 생태를 조금 더 파악을 하게 됐을 때, 마침 타르가가 다가왔다.
"휴식을 마쳤으면 이제 이동을 할까요?"
"네, 알겠습니다."
타르가의 입장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인간들이 마을 경계선 밖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최소한의 휴식을 통해, 하루 안에 이동할 계획을 모두 머릿속으로 마쳤기 때문에, 더 이상의 여유 시간을 두기 힘든 것이었다.
"조금 천천히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저기 해가 넘어가기 전에 숲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타르가가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해를 가리켰다.
고목이 많은 숲속에서 해가 지는 시간은 꽤나 빠르다.
그러한 습성에도 숲 건너편으로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은 숲을 가로질러 온다는 것이다.
"자, 자, 그럼 이동하도록 하죠."
은비가 양팔을 돌리며 호기롭게 이야기했다.
잠깐의 달콤한 휴식이 끝나고 태욱 일행은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타르가가 처음과 달리 뒤에 있는 인원들의 행동에 신경을 쓰면서 움직였기 때문에, 탈진이 빠르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아, 이렇게 이동하니까 좋은데요?"
"그래, 언제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셔 보기나 하겠어?"
분위기도 처음과 다르게 많이 반전이 됐다.
따라가기만 급급했던 처음과 달리, 휴식 후의 이동은 주변 광경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워진 것이다.
"이렇게 고요하기만 하면 뭔가 딱 하고 벌어지던데?"
은비의 말에 지원이 그녀의 등을 때렸다.
짝!
꽤나 크게 살갖이 부딪히는 소리가 숲을 울렸다.
"뭐하는 거야?"
화들짝 놀란 은비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음 편한 소리 하길래 정신이 나간 것 같아서 말이야."
"뭐라고?"
서로 틱틱대기는 했지만, 사막 속에서의 날카로운 분위기는 사라졌다.
아마, 고온과 메마른 공기가 만들어 낸 일종의 짜증이 뒤섞여 신경질적인 분위기가 연출됐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좀이 쑤시면 혼자 운동이라도 하든지, 이상한 말을 또 하기만 해 봐."
지원의 말이 마치 신호탄이라도 된 듯이 저 멀리에서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콰가가강!
마치 커다란 운석이 지표면과 충돌했을 때 나타나는 소리와 같았다.
가장 먼저 반응을 한 사람은 바로 타르가였다.
'뭐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은 엘프 마을을 향해 있었다.
경계선에서 소리가 났다면,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을 터인데, 마을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장소에서 소리가 나니, 깜짝 놀란 것이다.
"저, 잠시 이곳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타르가는 태욱을 향해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외부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곳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한눈에도 그의 다급함이 표정으로 드러났다.
"저희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겠습니다."
그의 팔을 잡고 태욱이 이야기했다.
"한시라도 바쁘니, 그냥 이곳에서 대기해 주셨으면."
타르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욱은 계속해서 그를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요리조리 빠져나간 타르가가 저 멀리 숲 깊숙한 곳을 향해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타르가!"
태욱은 그의 이름을 불러 멈춰 세우려고 했지만, 그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이곳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숲의 울림으로 변한 타르가의 목소리가 태욱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됐다.
"뭔가 마을에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안 봐도 뻔한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냉철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그였다.
그러나, 큰소리가 난 이후, 그곳을 향해 신속하게 이동했다는 것은 분명 큰일이 난 것이 틀림없었다.
이대로 대기해야 되나?
아니면 돕기 위해 이동을 해야 되나 고민이 되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도울 수 있으면 도와야 되는 거 아니야?"
"응?"
태욱의 고민하는 모습에 은비가 다가와 물었다.
"이곳을 통과시켜 주려고 한 엘프들이잖아?"
"그렇지."
"그럼 적어도 보답을 해야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태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위급한 일이 아니라면?
타르가가 이곳에 일행들을 두고 자리를 벗어났을까?
휴식을 취할 때도 그들의 곁에서 계속해서 자리를 맴도는 타르가였기 때문에, 정황상 위급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엘프의 마을 경계선 내부이고 함부로 이동을 했다가는 언제 공격을 당할지 모른다.
타르가가 일종의 보호벽과 같기에 지금까지 아무런 충돌이 없던 것이다.
"엘프 마을에 도움을 줘야 된다고 생각해."
지원 역시 태욱의 곁으로 다가와 은비의 말에 동조했다.
"우리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어, 눈앞에 위기가 찾아왔는데 모른척하고 그냥 넘길 수는 없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동료들의 계속되는 성토가 이어졌다.
'그래, 도움이 필요해. 손길을 뻗는다면 거절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잖아?'
결심이 선 태욱은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한시라도 빠르게 움직이는 게 좋겠지?"
"그럼,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태욱 일행은 타르가가 사라진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Chapter 6
쾅!
콰가가가강!
커다란 고목이 타격을 받고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
"까악까악."
나뭇가지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던 새들은 하늘로 날아올라, 다른 안식처를 찾았다.
쾅.
쾅쾅.
연속적인 파괴음이 들리더니 또 다른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나갔다.
"카아아앙."
마치, 기관지에 가래가 들끓는 소리를 연신 내뱉는 커다란 물체가 있었다.
"카아아악!"
정체는 바로 사이클롭스였다.
하나의 눈을 가지고 있고,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는 거인과(巨人科) 몬스터였다.
보통 사이클롭스는 바위로 산을 이루고 있는 높은 곳에 있다.
주변의 바위를 이용해 접근해 오는 다른 생명체들을 막아 낸다.
엄청난 괴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손에 집히는 대로 던져 맞추는 그들의 행보에 거스를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이 압박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주변이 탁 트여 있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나의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야를 조금이라도 가려져 있는 곳은 그들이 생존하기 적합하지 않다고 스스로 판단한다.
지금 싸이클롭스의 행동은 지극히 본능에 충실했다.
주변을 가리고 있는 고목들을 모두 치워 내고 자신의 안전 바운더리를 만드는 것이다.
넓은 공터가 그의 목적이 아닐 것이다.
반경 100m내에 아무런 방해물도 없어야 심적인 안정을 느끼는 것이다.
사이클롭스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해 숲 내부에 공터를 만들고 있었고, 그를 방해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슈슈슛.
단번에 화살 3개가 연속해서 날아왔다.
푸푸푹.
인기척을 느끼기라도 한 것인지, 사이클롭스는 자신의 팔을 들어 화살을 막아 냈다.
강한 가죽을 지니고 있는 사이클롭스였지만, 화살은 단번에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카카카카악!"
단숨에 손에 쥐어 있던 나무를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내던졌다.
후후후훙.
나무 기둥이 날아가는데, 마치 공기를 찢어 버리는 소리가 났다.
콰가가가강!
한 번으로는 그의 분노가 해결되지 않는지, 주변에서 나무를 또 한 그루 뽑아냈다.
콰직, 콰드드드득.
뿌리째 뽑혀 나온 나무가 다시 한 번 허공을 갈랐다.
휘리릭.
쏜살같이 날아간 나무가 다른 나무에 부딪혔다.
우지끈.
날아온 나무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부딪힌 나무가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숲 밖으로 몰아내!"
사이클롭스의 행동에 제제를 가한 것은 엘프들이었다.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어난 대소동에 주위에 있는 경계병 엘프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처음 본 광경에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어디가 뚫린 거야? 연락이 되지 않는 곳이라도 있나?"
"아직 확인된 바 없습니다. 모든 연락 체계는 완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