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회귀빨로 지존 헌터
- 4권 7화
"한성보다 정부 관계 부처가 늦게 움직인 것은 사실 아닙니까?"
"정부 관계 부처가 느리게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워낙 그들이 빨리 움직였기 때문에......."
"한성은 준비를 하고 움직인 것입니까? 그들도 동시에 다가온 일 아닙니까?"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정부 관계 부처가 늦게 대응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 절차가 있었고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정부가 손을 뻗지 않았을 때, 가장 먼저 시민들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잘한 것이 없다니 그건 말이 안 됩니다."
단호한 대통령의 말에 장관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내 이번 일은 한성 중공업에 감사 인사를 꼭 해야 되겠습니다. 가장 먼저 나서 준 탓에 헌터들이 집결할 수 있었고, 또 많은 시민이 그들에게 혜택을 봤습니다."
"저희의 공로를 모두 그들에게 넘기는 것은 정부가 한 일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발표입니다."
"아닙니다. 국민들도 알고 있습니다. 국가가 있어서 안전을 보장받았다고, 다만 국민들을 위해 대대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에게 칭찬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통령은 국가적으로 위기에 달했을 때, 한성 중공업이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정확하게 국민에게 알리고 감사함을 표현할 계획이었다.
"기자들을 모아 발표 준비하세요. 정확하게 대한민국 정부는 한성 중공업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명확하게 발표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까, 대변인?"
"네, 알겠습니다."
대통령은 이미 마음속으로 못 박아 놓은 말을 밖으로 내뱉었다.
* * *
찰칵찰칵.
플래시 세례가 연선 터져 나왔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단상에 올라와 있는 대변인은 위풍당당한 기세로 카메라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국가 위기 사태에 놓여 있어 한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국민분들에게 사죄를 합니다. 저희 정부는 오늘부로 국가 위기 사태를 해제합니다."
대변인의 말은 가감 없이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흘러나갔다.
"이번 위기 사태를 겪은 정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필두로 여러분의 안전을 지켜 왔습니다."
찰칵찰칵.
연신 터지는 플래시 사이에서도 기자들은 대변인의 말을 끊지 않았다.
"더구나, 국가의 위기에 참여를 해 준 일반 기업들의 힘이 얼마나 커다란지, 그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게 된 기회가 됐습니다. 특히 전 방면에서 가장 앞서 도움을 주신 한성 중공업에 대해 정부는 감사의 말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 대변인의 입을 통해 나오니 지금까지 얌전하게 앉아 있던 기자들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손을 하늘로 뻗어 대기 시작했다.
"일단 진정들 하시고 저희 성명문을 모두 발표하고 질문을 받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뒤로 이어지는 설명을 듣기는 하지만, 모두 하이에나 같은 눈빛을 하고 대변인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모두의 관심은 하나였다.
정부가 한성 중공업의 날개를 달아 주느냐 마느냐에 관한 것이다.
감사 인사를 한다는 것은, 그들의 원하는 것을 들어 줄 수도 있다는 의미로 전달될 수도 있고, 정책을 그들이 원하게 흘러갈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아주 자극적인 기사로 쓰기에는 너무나 안성맞춤이었다.
"그럼 정부적 차원에서 한성에 지원을 할 예정입니까?"
"한성은 정부가 지정한 일정한 단체가 되는 겁니까?"
"어떤 혜택으로 한성에게 감사를 전달할 것입니까?"
기자들은 손을 뻗어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여기서 드릴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입니다. 한성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달하고 싶다는 것뿐입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의 의미만 전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지만, 대변인의 눈에는 의미를 퇴색하거나 변질시키면 불이익이 전달될 것이라고 알려 주고 있었다.
그의 말뜻을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 * *
정부의 발표와 동시에 한성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뭐야? 이걸 다 예상한 거야?"
은비는 태욱에게 툴툴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아니, 이건 예상하지 못했어."
국가적으로 좋은 이미지가 생겼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활동하기 편해졌다는 것이다.
따로 혜택을 주거나, 정책적으로 유리하지 않더라도 이미 한성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달라질 것이다.
국가가 고마움을 표현했고 그것은 전파를 타고 전 세계적으로 뻗어 나갔다.
단순하게 몬스터 공학 분야에서 유명한 정도가 아니라, 이제 한성이라는 이름만 대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가 됐으니, 편의성은 상당히 높았다.
이름을 알고 있는 것과 아예 모르는 것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 정도의 큰 차이였다.
"이제 다음 목표는 어디야?"
어깨를 휙휙 돌리며 말하는 은비는 여간 몸이 쑤시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국가 단체에서 이뤄지는 행사에 초대가 된 덕분에 한동안 몬스터의 몬 자도 못 봤다.
전혀 보지 못하고 틈틈이 스트레스 해소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여간 좀이 쑤셨다.
그러니, 태욱이 다음 목표를 빨리 선정하면 할수록 전투의 시기가 가까워지니 그에게 의사를 물어본 것이었다.
"그래서 물어볼 것이 있어."
"뭔데?"
"뭔데요?"
태욱은 말을 쉽게 꺼내기 힘들다는 듯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바로...... 우리나라 옆에 있는 곳인데......."
"어디? 필리핀? 중국? 러시아?"
은비의 질문에 태욱은 계속해서 고개를 내저었다.
저 사이에 자신이 원하는 답은 존재하지 않았다.
'괜찮을까?'
따로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서적으로 얼마 전 일본의 한 국회의원이 한국에 돈을 가져다 바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송출됐다.
덕분에 이번 기회에 반일 감정이 생겨난 사람도 있어 태욱은 조심스러웠다.
"일본이야."
긴 침묵 끝에 나온 그의 음성에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일본? 거기가 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지원은 단순하게 목적을 되물었다.
"저는 상관없어요."
영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어깨를 들썩였다.
"뭐? 일본? 난 싫어. 절대 하기 싫어."
은비는 불같이 화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태욱은 그녀가 거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둘이서 같이 신문 기사를 확인했을 때 뜨겁게 달아올랐던 은비였다.
당연히 그녀의 행동은 정해져 있던 수순처럼 흘러왔다.
"특별 소탕 헌터 부대가 필요하대."
"특별 소탕 헌터 부대?"
"정확하게는 나를 비롯한 우리 팀원들이 필요하다는 요청이었어."
태욱은 최대한 노력을 하기로 했다.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한국을 핍박하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존재한다.
일본의 정치인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최대한 은비를 설득할 생각이었지만, 그녀가 끝까지 거부한다면 어쩔 수 없이 거절할 생각이었다.
'일단 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 해 보자.'
그냥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 보자는 심산으로 태욱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사실, 그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그렇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알 게 뭐야, 어차피 일본 사람들은 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언니,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영리가 태욱의 말을 거들었다.
그녀도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태욱과 같이 은비를 설득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까, 결론만 이야기해 줘."
지원은 은비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자신이 설득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떤 결정이든 따르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누구도 그녀를 탓할 수는 없었다.
마음이 동하지 않은 상태로 강제로 움직이는 것은 누구보다 태욱이 싫어했다.
"언니, 저도 언니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렇지, 그 일본 놈은 죽어 마땅해."
"하지만, 그 사람이 모든 일본인을 대표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대부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잖아."
"예전에 태욱 오빠가 혼자 결정하고 부대로 이동한 거 생각나지 않아요?"
"그때?"
얼마 전 태욱이 혼자 결정해 군부대로 다 같이 이동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는 서로 비슷한 생각이었잖아. 다만 태욱이 혼자서 결정하는 것에 반대를 했던 것이었고."
"그래요, 저희는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모두 같은 생각은 아니었죠. 그때처럼 다른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요?"
단순한 비교를 하며 영리는 은비를 계속해서 설득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뜩잖은 표정을 한 은비는 팔짱을 낀 채로 태욱을 바라봤다.
"정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거절 의사를 전달할게, 하지만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한국과 친하게 지내려는 사람들도 일본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태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은비였다.
"그럼 내일까지 고민해 봐. 아무런 말이 없으면 진짜 거절이라고 전달할 테니까."
결정권을 넘겨주고 태욱은 밖으로 나섰다.
'그녀가 좋은 선택을 했으면 좋겠군.'
억지로 생각을 바꾸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녀의 마음이 우러나와 움직이기를 바랐기에 태욱은 망설이지 않고 자리를 뜬 것이었다.
복도 끝으로 걸어가고 있는 사이 뒤에서 은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진짜 내가 하기 싫다고 하면 안 할 거야?"
"물론이지, 네 선택을 존중할 거니까."
넌지시 물어보는 은비의 물음에 태욱은 가감 없이 대답했다.
"일단은 도움을 요청했으니까 가는 걸로 할게. 그런데 조건이 있어."
"조건?"
은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하든 상관없어. 이번에는 바로 가지만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다음은 없다고 정확하게 전달해 줘."
태욱은 그녀의 말에 씨익 하고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도우려는 의사가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꾸 한국을 매도하거나 폄하하는 발언이 있다면 일본의 도움 요청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같았다.
"내가 잘 전달할게, 날 믿어."
태욱은 은비의 어깨를 두드리고서는 핸드폰을 들었다.
* * *
일본으로 가는 일정은 최대한 빠르게 잡혔다.
국가적 위기가 찾아온 일본은 마음이 급했는지, 전용기라도 배치해 주겠다며 한시라도 빠르게 헌터들이 일본으로 왔으면 하는 의사를 표출하고 있었다.
"언제든 상관없습니다. 당장 전세기를 띄워 헌터들을 일본 내륙으로 모실 수 있다면 저희는 응당 그 값을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일본 대사관에서 나온 사람이 정부 관계자에게 이야기했지만,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