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회귀빨로 지존 헌터
- 3권 19화
'그래, 나도 예전에는 저런 것들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찬성에게도 얼마 전까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없는 양부모님이었다.
공부?
취미?
진학?
미래?
찬성에게 어느 하나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찬성이 하고 싶다고 말하면 모든 것을 들어 주지는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 주신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었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씀인데, 그걸 그렇게 알아듣냐?"
"야. 그래도 매일 듣고 있으면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데."
순간 자신이 이야기한 것이 괜한 분란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찬성은 미소로 그의 말을 넘겼다.
학교에서 자주 이러한 사건이 쌓이다 보니, 찬성은 양부모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무슨 의도가 있는 건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렇지 않게 양아들을 들인 것인가?
연민?
동정?
무엇이라도 찬성은 기분이 나빴다.
의심을 갖기 시작한 것부터 모든 것이 미심쩍기 시작했다.
'분명 무엇을 바라고 있을 거야.'
행동마다 다른 이점을 취하기 위해 그가 하는 행동을 모두 용인한다고 생각이 미쳤다.
하지만, 불만은 나쁜 방향으로 터져 나가지 않았다.
지금 자신에게 내려온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이라도 반드시 양손으로 꼭 잡고 있어야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 가족을 밖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이렇게 이야기했다.
'화목한 가정', '따뜻한 가정'.
정작 속은 텅텅 빈 강정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 보이는 관점에서는 너무나 이상적인 가족이었다.
결국 찬성은 성인이 되자마자,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도 이제 다 성장했습니다. 청소년이라는 티를 모두 벗었다고 말씀드리기는 힘들겠지만, 저 혼자 일어설 수 있습니다."
스스로 만든 자아가, 내린 결론이었다.
지금껏 양부모가 못해 주거나,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계모? 계부? 이런 느낌도 전혀 받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따뜻함이라는 것을 느껴질 때쯤, 스스로가 판단하고 결론 내린 것이었다.
"차, 찬성아. 너는 아직 어리다. 그러니 더 있어도......."
부모님은 찬성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아무렇지 않게 지내던 아들이 단번에 독립을 한다고 말을 한다면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어머니는 이때 처음으로 찬성의 의견에 반대를 던졌다.
"지금까지 절 보살펴 주신 은혜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되갚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찬성을 어머니는 붙잡았다.
"아직, 우리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지금껏 너에게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에게 조금의 시간을 줬으면 한다."
가슴 먹먹한 어머니의 말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억지로 눈물을 참아 냈다.
'그래, 처음으로 부탁하시는 건데. 그건 들어 드려야지.'
찬성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 앉았다.
"네, 알겠습니다. 말씀하세요."
부모님은 자리에 앉아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널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해 온 적이 없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 왜 우리가 널 아들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 그건."
찬성은 말문이 막혔다.
어머니가 직접적으로 이렇게 물어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저의 대한 연민? 애정? 그러한 감정 때문에 그런 거 아닙니까?"
어머니와 아버지는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그런 감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널 선택한 이유는......."
찬성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부모님의 사정이 있었다.
처음은 죽은 자신의 아들을 대신할 요량으로 데려오겠다고 쉽게 사인을 건넸다.
지금까지 무한한 애정을 주던 대상이 사라지니, 대체자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사인을 하고 아이가 집으로 들어오자,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느끼게 된 어머니였다.
'내 고통을 줄이자고, 다른 아이에게 또 다른 고통을 선사하는 게 맞는 선택인가?'
결국 스스로의 고통은 그대로 안고 아이에게 새로운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두 부부의 노력과 더불어 찬성의 착한 심성이 밖에서 보기에 단란한 가정을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시간이 조금은 있지 않느냐?"
"입대 신청은 했지만, 입소 날짜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집을 나서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그렇다.
입대 날짜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먼저 집을 비우려고 하는 찬성의 마음이 궁금한 것이었다.
"그건, 지금이라도 빚을 지지 않기 위함입니다."
"빚을 지지 않기 위함?"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되묻는 아버지였다.
"지금까지 배풀어 주신 은혜는 되갚을 수 있는 수치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눈치 없이 이 이상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찬성아!"
어머니의 입에서 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정으로 어머니에게는 아들이 돼 버린 찬성이었다.
찬성은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선을 긋고 있는 것이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것뿐입니다. 앞으로 독립해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보내 주십시오."
단호하게 자신의 이야기만 해 나가고 있는 찬성에게 결국 아버지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럼 지금까지 받은 은혜는 어떻게 갚으려고 하느냐?"
냉랭해진 아버지의 음성에, 찬성은 준비를 해 놓은 말을 늘어놨다.
"물론 모든 것을 갚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직업군인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뿐입니다. 매달 월급의 50%씩, 보내......."
쾅!
아버지는 찬성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오랜 시간 신체를 단련해 온 탓에 꽤나 큰소리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표정에는 오직 노기만 실려 있었다.
"월급의 50%?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은혜를 갚으려면 앞으로 입대를 하기 전까지 오직 우리 집에서만 살아라."
더 이상 재고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을 하는 아버지였다.
"저, 그래도 제가 여기 있는 것보다 편하게 있으시려면."
"그래, 너 말 잘했다. 너만 마음의 준비를 끝내면 우리는 그냥 받아들여야 되는 것이냐? 네 마음도 있듯이 우리 마음도 있다. 이미 깊숙하게 너를 받아들였는데, 너를 떨어뜨리는 시간이라도 조금 줘야 되는 것이 아니냐?"
아버지의 곁에서는 연신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확고하게 이야기하는 두 사람을 말릴 수가 없었다.
그저, 최대한 마음을 빠르게 다스리고 다가오는 현실을 마주해야 된다.
아버지가 우다다 하고 토해 내는 말을 들은 찬성은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너무 나만 생각했어.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상처가 될 줄은.......'
오히려 그의 선택은 본인만을 위한 것이었다.
빠르게 집을 나서는 것도, 정을 끊어 버리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도 스스로를 편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결국 찬성이 한발 뒤로 물러나며 아버지의 의견을 수렴했다.
다음 날부터 어머니의 행동은 지금까지와는 약간 달라졌다.
제3자의 입장에서 찬성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됐다.
곁에 찬성을 부르고 그와 함께, 사소한 것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를 같이하기 시작했다.
"아들, 밥은 여기 밥솥에 있는."
"네, 눈금을 확인해야 된다고 벌써 3번째 말씀하셨어요."
"호호호. 그래? 그래도 잘 알아야지."
하지만, 그 모습은 마치 임종을 앞둔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사소한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알려 주고 있었다.
밥을 하는 법.
빨래는 어떻게 돌리는지.
효율적으로 설거지하는 방법.
청소를 하는 방법.
차근차근 어머니의 모든 스킬이 찬성에게 그대로 녹아내렸다.
2달이라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어머니와 같이 시간을 보낸 찬성은 마침내, 군 입대하는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머니."
찬성은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여성의 이름을 불렀다.
"으. 응? 뭐라고?"
지금 자신이 들은 게 맞는지 되묻는 어머니였다.
찬성은 여태껏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부모를 호칭하는 단어는 제외하고 주어를 제외한 목적어와 보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 어머니라고 부르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는 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울컥해지는 찬성이었다.
'이럴 거였으면.'
"어머니."
'더 자주 불러 드리는 건데.'
당장 이제 며칠도 안 남은 지금에서야 부를 수 있는 용기가 났다는 것이 참으로 마음이 쓰였다.
"그래, 찬성아."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 어머니였지만, 어머니 역시 쿵쾅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는 힘들었다.
'어머니라고 불렀어, 우리 아들 찬성이가 어머니라고 불렀어.'
일상 가정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 두 사람에게는 감동이 돼 찾아왔다.
* * *
연무대 입소식.
찬성은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연무대로 향했다.
군 입대를 하는 마지막 시간이 이들에게는 더욱 짧게 느껴졌다.
내려오는 내내, 찬성의 손을 놓지 않고 잡고 있었던 어머니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어머니, 괜찮아요."
"이렇게 떨릴 줄은 몰랐는데."
"괜찮아요. 저 잘 지낼 수 있어요."
마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 속 엔딩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찬성이었다.
'여기서 한마디면 이 영화의 끝을 보지 않을 수 있는데.'
자꾸 마른 입술을 혀끝으로 핥으며 연신 침을 묻혀 봐도 자꾸 갈라지는 것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입소하는 생도들은 연병장 중앙에 자리하시기 바랍니다."
주변에 가족끼리 모여 있는 가운데, 머리를 빡빡 민 사람들이 방송 소리와 함께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저, 이제 가 봐야 될 것 같아요."
"그, 그래."
어머니는 대답과는 달리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지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 손을 놔줘야 아들이 가지, 어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훈련소 입소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아버지였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이렇게 놔 버리면."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서는 잡은 두 손에 힘을 풀지 않고 있는 어머니였다.
'어머니, 어머니의 손은 이렇게 따뜻한 건가요?'
찬성은 계속 놓지 않고 있는 어머니의 따뜻함이 싫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 애정을 어느 곳에서 또 받아 볼 수 있겠는가?
애인?
사랑하는 연인?
아마 그 사람에게도 이러한 따스함은 느끼기가 무척이나 어려울 것이었다.
"어머니."
"그래, 찬성아."
찬성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흑흑. 그. 그래."
결국 찬성의 말에 흐느끼며 잡은 두 손을 놔주는 어머니였다.
방송에서 계속 연병장 가운데 집합하라고 말을 외치고 있는 동안 찬성은 자신의 모습을 정갈하게 가꿨다.
그러고는 제자리에서 큰 절을 한 번 올렸다.
'어머니. 감사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사랑을 또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끝내 찬성이 뛰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볼 수 없었던 어머니는 고개를 그대로 돌려 버렸다.
"잠시 후 입소식이 거행됩니다. 오늘 입소를 하는 생도분들은 모두 연병장에 집합해 주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방송이 울려 퍼지는 와중에 찬성은 무리 한가운데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