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회귀빨로 지존 헌터
- 3권 6화
처음 한두 마리의 움직임은 가까스로 피해 가며 움직였지만, 점점 쌓여 가는 많은 공격들은 막아 내기 쉽지 않았다.
인간들 몰래 뒤를 쫓고 있었으니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는커녕 멀리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돼야 해!'
목표물이 돼 버린 페일의 분노는 자신이 뒤를 쫒던 인간들을 향해 옮겨 갈 것 같았다.
그들만 없었으면 이곳에 오지 않았고 이렇게 하피에게 쫒기는 일은 더욱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계속되는 공세에 결국 페일은 인간들이 숨어든 동굴을 향해 뛰었다.
어깨 죽지 위로 여기저기 찢어진 상처들이 보였다.
하피의 공격을 무리하게 피하다 옷도 잔뜩 더러워졌다.
이제는 인간들에게 들키는 것보다 자신의 생명이 더 소중했다.
"사사, 사 살려 줘!"
두터운 목소리로 내는 도움 요청이 동굴에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그는 외치고 있었다.
상처 가득한 채로 울먹이듯 외치는 그의 음성에 한 줄기 희망과 같은 실루엣이 보였다.
동굴 안쪽으로 사라졌던 인간들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살려! 드워프 살려!"
그의 외침에 대응하듯 번쩍하고 무언가가 쏘아져 나왔다.
하늘을 수놓던 하피들이 번개에 맞아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툭.
투투투툭.
마치 하피 시체가 비가 돼 바닥으로 떨어지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맛이 어떠냐? 이 하피 녀석들아."
상당히 거친 말투와 더불어 자랑스럽게 어깨를 들썩이는 여성은 그에게 마치 천사의 모습과 다름없었다.
자신의 등 뒤를 쫒으며 심지어 죽음의 문턱까지 끌고 내려갈 듯한 악마들을 단번에 많은 양을 처치하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 줬다.
"오 마이 지저스."
그는 자신이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천사 정도가 아니었다.
그녀라면 여신과 다름없었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후광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하게 그녀의 주위로 상당히 강력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 *
"준비되면 이야기해 줘."
구석에서 바삐 자신의 무기를 꺼내 조립하는 지원에게 태욱이 말했다.
이곳에서 대량으로 살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1개의 객체를 놓고 공격하는 것만 보자면 가장 큰 힘을 내는 것은 바로 은비였다.
그녀는 일대일로 상대함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한 공격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은비가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로 지원의 공격은 강력했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연발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지."
강한 범위 공격을 지닌 지원을 자신의 경쟁자라고 생각하는지 은비는 그녀의 단점을 꼬집어 이야기했다.
"괜찮아. 한 발이면 충분할 것 같으니까."
태욱이 동굴 안으로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광범위 공격 준비였다.
자신을 뒤쫓아오던 드워프.
분명 그 녀석도 하피의 공격을 받을 것이 틀림없었다.
제대로 뒤를 밟는다면, 처음부터 하피의 공격 대상이 아닐 것이다.
공격을 받은 다른 녀석들을 쫓기 위해 부지런하게 움직였다면, 필시 공격 대상을 잃은 하피들의 분풀이 대상이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발이면 충분하지.'
태욱은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러던 와중에 저 멀리 새까맣게 무언가가 하늘을 수놓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노리던 하피들이었다.
추격을 하며 쌓인 분노를 표출하지 못한 하피들은 물 만난 고기가 된 듯 마구잡이로 분노를 쏟아 내고 있었다.
처음 드워프를 발견한 하피는 장난감을 발견한 것과 같이 움직였을 것이다.
드워프가 움직이는 대로 자신이 일정한 목표 지점으로 몰아넣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의 공격은 전혀 다를 것이다.
잔뜩 약이 올라 있는 하피들의 공격이 쏟아지기 직전이었다.
여유 넘치던 지금까지의 공격과는 차원이 다른 치명적인 공격이 이어질 것이다.
"사사, 사 살려 줘!"
그의 표정과 말투에는 다급함이 실려 있었다.
지금 자신이 뒤를 쫓고 있었다는 것은 전혀 머릿속에 없는 듯 보였다.
오직, 지금 당장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보였다.
"지원, 아직도 준비 안 된 거야?"
"이제, 끝났어. 사격 준비 완료."
태욱의 물음에 지원은 거대한 대포를 어깨 위에 걸쳤다.
앞뒤가 모두 뚫려 있는 해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응? 그게 무기야?"
지금까지 지원이 보여 줬던 무기와는 뭔가 달랐다.
커다란 기관총, 자동소총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만약 총기에 조금만 관심이 있었다면 그녀가 어깨 위에 걸치고 있는 무기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흔하게는 바주카포라고 불리는 무반동 총.
앞뒤 모두에 구멍이 뚫려 있어 가운데 있다면 반동을 느끼지 못한다고 명명한 무기였다.
하지만 가운데만 피해가 없을 뿐, 앞뒤로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 준다.
"락 온(Lock-on), 파이어(Fire)!"
그녀의 음성과 함께, 포신에서 엄청난 열기를 뽑아내며 무언가가 쏟아져 나갔다.
파직.
파지지직.
마치, 변압소의 전류를 한 번에 쏟아 내는 것 같았다.
푸른 전기가 하피들의 사이를 연결하며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꺄흑."
단발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공중에서 바닥으로 추락하는 하피들이 생겨났다.
물론 이 무기를 처음부터 사용한다면 이렇게 하피들에게 쫓길 일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 무기가 만들어진 것은 바로 얼마 되지 않았다.
안전한 곳인 동굴에 들어와서 즉석으로 개발해 낸 지원의 스페셜 무반동 총이었다.
아무런 대처 없이 하피들의 공격에 분노하던 지원이 순식간에 만들어 낸 무기였다.
"여기에 배터리 팩을 사용할 생각이 없었는데."
그녀가 몸에 지니고 있던 모든 배터리 팩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단발의 무기로 사용한다면 500발을 사용할 수 있는 화력을 단번에 모두 쏘아 낸 것이다.
"이 새끼들아, 맛 좀 봐라."
지금까지 방어에만 급급해 공격을 쏟아 내지 못했던 울분을 모두 토해 내는 것 같았다.
지원의 공격에 하늘에 구멍이 생겨 버렸다.
지금까지는 하피들이 하늘을 점령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보면 검은 구름이 머리 위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 검은 구름 한가운데가 뻥 하고 구멍이 뚫려 버린 것이었다.
지원의 공격과 동시에, 태욱과 금강철인이 뛰쳐나갔다.
"일보천리!"
"일보천리!"
태욱은 금강철인과 같은 스킬을 사용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금강철인이었다.
드워프의 곁으로 가기 위해 자신은 자연스럽게 스킬을 사용했다.
오랜 시간 수련을 해 온 터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스킬을 안다고 해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바로 눈앞에서 태욱이 사용할 때까지, 그 생각을 바꿀 리가 없었다.
'뭐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태욱의 모습에 금강철인이 당황했다.
자신보다 더욱 유려하게 사용하는 것 같았다.
한 발자국 멀리 도착해 드워프의 품으로 파고드는 태욱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자신은 고작 그의 옆으로 이동할 뿐이었다.
장소만 이동할 뿐, 다음 동작에 관해서는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처음 두 사람을 보는 사람이라면 태욱이 숙련자고 자신은 그저 흉내 내기를 하는 사람처럼 느껴질 것이다.
'저렇게까지 활용이 가능한가?'
금강철인은 태욱의 모습에 속으로 감탄할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대단했다니.'
태욱을 엄청나게 우러러보고 있는 금강철인이었지만, 사실 태욱의 모든 행동은 회귀 전 금강철인에 관한 정보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금강철인은 태욱의 모습에 감탄하고 또 감탄할 뿐이었다.
드워프의 곁으로 재빠르게 이동했다.
"괜찮아요?"
태욱의 물음에, 드워프는 고개만 끄덕일 뿐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
"일단 저 동굴 안쪽으로."
하피들이 일시적으로 공격을 멈췄기 때문에 그 틈을 타고 드워프를 구해 올 수 있었다.
* * *
"아니,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에요? 여기까지 무슨 일로?"
동굴 안으로 들어와 약간의 치료를 마친 이후, 태욱이 드워프에게 물었다.
"저 사실은......."
드워프 페일은 어떤 대답을 해야 될지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대로 이야기해? 아니야, 인간들은 간악해서 내가 한 말을 이용할 거야.'
인간에 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페일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줬더라도 이 인간들이 원하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나, 나도 숲에서......."
"숲에서? 숲에서 뭘 하셨나요?"
"그, 그래 길을 잃었소."
누가 봐도 뻔히 거짓말하는 모습이었지만, 태욱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요? 참 다행이네요 우리를 만나서."
악의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미소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걱정 어린 눈빛이 그를 향해 있었다.
'진짜 이 인간들이 어떤 것을 원하기에?'
호의로 보이는 행동들은 계속해서 페일에게 오해가 쌓여 가고 있었다.
"맞소, 당신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저기 있는 하피들에게."
태욱 일행에게 오지 않았다면 저기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하피들의 분풀이 대상이 됐을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는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런데,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서라는 게, 저 하피들을 처치하기 위해서요?"
페일은 이곳에 인간들이 왜 찾아왔는지 궁금했다.
이곳은 과거 드워프들이 사용하던 광산이었다.
어느 순간, 하피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이곳은 폐광됐다.
많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굳이 이곳에서 광물을 캘 이유가 전혀 없었다.
거의 광산에 매몰돼 있는 광물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 당시 촌장을 맡은 드워프가 이곳 광산을 폐광이라고 지칭하며 이곳을 막아 버렸다.
아쉬울 것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곳을 인간들이 찾아왔다.
의도적으로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을 지닌 것인지 페일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아니오, 저희는 이 광산에 있는 어떤 분들을 만나러 왔습니다."
"어떤 분?"
궁금함을 참지 못한 페일이 되물었다.
적극적인 페일의 질문에 오히려 당황하는 것은 태욱이었다.
"차차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상처 회복부터."
궁금증에 이것저것 페일이 물었지만, 사실 그의 피부는 여기저기 심한 생채기가 나 있었다.
붉은 선혈이 감아 놓은 붕대를 뚫고 올라올 정도였다.
"드워프들은 이 정도 상처는 하룻밤 맥주와 함께라면 금방 회복됩니다."
가슴을 탕탕 치며 이야기하는 페일의 말에 태욱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페일은 이곳에서 태욱과 대화를 하면서 자신이 가진 생각이 잘못된 것인지, 이들이 능숙하게 속이고 있는 것인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분명 인간들은 간악하고 사악하다고 들었는데.'
곁에서 생활을 하며 지켜본 결과 그들은 무엇 하나 사악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대가로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고, 가지고 있는 것을 흔쾌히 나눠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