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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빨로 지존 헌터-52화 (52/146)

# 52

회귀빨로 지존 헌터

- 3권 4화

태욱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절?"

"응, 조절."

부끄럽다는 듯이 두 볼을 붉히는 모습에 태욱은 기겁했다.

'아니, 뭐라는 거야.'

벌써 입 밖으로 튀어 나갔어야 하는 단어가 엄청난 평정심으로 인해 마음속 내부에서만 울렸다.

양손이 부들거리며 그의 안면에 쏜살같이 날아가고 싶다는 욕구를 억지로 참아 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사실은 예쁜 여자랑 이야기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간 거야."

태욱은 금강철인의 이야기를 듣고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성과 이야기를 하는 것을 참지 못해 숲속으로 들어가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금강철인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참을성이 부족하다.

결국은 사건을 터뜨린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항상 길거리를 다니며 미녀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치근대기 일쑤였다.

한 번은, 여자를 계속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기도 했다.

'이렇게 가다간 안 되겠어.'

결국 마음의 결정을 내린 그는 깊은 산속으로 발길을 옮겼다.

참을 수 없다면 유혹을 모두 없애 버리는 것이다.

여성이 있어서 조절이 되지 않으면 간단하게 여성이 없는 곳으로 가면 된다.

혹시나 보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올 수 있기에 자신의 걸음으로 3일을 꼬박 걸어 들어가야 하는 깊은 산속을 수련지로 잡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공을 모두 완벽하게 익혀 낼 수 있다면, 이따금씩 올라오는 욕구를 참아 낼 수 있다는 전인의 말을 건네 들었다.

"대성하기 전에는 여성 앞에서 조절을 하기 힘들 것이야."

처음 무공을 익히기 전에 그가 들었던 말이었다.

여성 앞에서 조절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가 약간의 착각을 한 것이다.

마음속에 차오르는 음심을 참을 수 없다는 뜻으로 오해한 것이다.

금강철인이 익히는 무공으로 단순히 수다가 늘어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굳음 마음을 가지고 여성 보기를 돌같이 한다면 음심이 피어나는 것을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던 금강철인은 그렇게 무너졌다.

그는 여성만 보면 저절로 입에 모터가 달린 듯 아무런 말이나 남발하는 자신의 상태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고, 자신의 충동적인 욕구를 억제 할 수 있도록 3일이라는 거리를 두고 수련지를 선정한 것이었다.

회귀 전 미래에서 그는 모든 수련을 마치고 나왔기 때문에 과묵한 모습만 봐 왔던 태욱으로서는 지금의 모습이 더욱 적응이 안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말이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금강철인이 태욱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바로 영리 때문이었다.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한 금강철인이 그에게 살며시 다가와 영리와의 친밀도를 쌓는 방향을 질문한 것이다.

"그건 나도 모르지, 그녀가 날 따라다니는 정확한 이유를 모르니까."

태욱은 자신의 첫 모습에 반해 버린 영리의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딱 맞는 조언을 해 주기 어려웠다.

마음으로 금강철인의 심정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는 방법 말고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저, 그리고 또 있는데."

"그건 나중에, 일단 오늘은 휴식을 취하자고."

태욱은 고개를 돌리고 모포를 어깨 위로 당겨 올리며 더 이상의 대화의 의사를 거절했다.

태욱이 그렇게 고개를 돌리면서도 금강철인의 입은 쉴 줄 모르는 채로 계속해서 달싹이고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간밤 꽤나 일교차가 심했는지, 덮고 있던 모포에 이슬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가운데 피워 놓은 모닥불은 이미 그 생명의 불씨를 다했다.

"으으으, 추워."

절로 춥다는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말을 하는데, 입으로는 흰 입김이 살짝 생겨났다.

"해 뜨면 괜찮아질 겁니다."

잠자리 정리가 모두 끝난 은비는 곁에 있는 영리의 짐정리를 도와주면서 태욱의 한탄에 대답했다.

"그래, 뭐 오늘만 고생하면 될 것 같으니까."

마을에서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몬스터 소굴에서 야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곳으로 야영 장소를 삼았다.

이제는 몬스터 토벌 이후에 마을에 찾아갈 것이니, 밖에서 노숙은 오늘로서 마지막이었다.

"벌써부터 따뜻한 목욕탕에 몸을 담그고 싶은데."

"맞아 맞아. 이번에 우리 여자들끼리 한 번 들어갈까?"

뒤에서 와락 영리를 껴안으며 그녀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는 지원이었다.

"꺄악! 언니, 그만, 그만."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소리를 지르는 그녀의 모습에 금강철인은 두 볼이 불그스름해졌다.

"뭘 상상하는 거야, 이 변태 아저씨."

금강철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은비가 둘 사이를 막아서며 팔짱을 낀 채로 그를 노려봤다.

"무, 무슨 상상을 했다고 나한테 그래? 어?"

"과연? 어떤 상상을 하셨기에, 말까지 더듬으면서 화를 내실까?"

"무슨, 내, 내가 언제 말을 더듬었다고!"

금강철인은 압박을 하는 은비의 무게감에 절로 놀라 뒷걸음질 쳤다.

은비는 영리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지는 금강의 모습을 보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안 되겠어."

은비에게 있어서 영리는 순수한 백색의 도화지와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 치근덕거리는 금강의 모습이 꽤나 불손한 것처럼 보였다.

항상 닳고 닳은 작업용 말을 던지는 모습은 순수하기는커녕, 어떻게든 영리를 구워삶아 보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은비는 자신이 직접 나서서 그와의 관계를 차단시키는 것만이 순수한 영리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만 출발하자고, 우리끼리 언쟁할 필요는 없지."

태욱은 모두 준비가 끝난 이후, 발걸음을 독촉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때우다간, 다시 밤에 야영을 해야 할지도 몰라."

태욱의 독촉에 다들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이 사냥에 나서는 대상은 하피였다.

인간의 몸통을 가지고 있고 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날개를 지니고 있는 하프 휴먼.

이종족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엘프나, 드워프랑은 차이를 가진다.

그들을 보고 사람들은 이렇게 불렀다.

몬스터.

대화가 통하거나 서로의 이익 관계에 의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생산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생물체에게 붙이는 대명사였다.

오크, 트롤, 오우거, 리자드맨 등과 같이 인간과 거래를 할 수 있지 않은 종족을 이야기한다.

하피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주요 공격 수단으로는 날카로운 발톱과 더불어 미칠 듯한 고성의 울음소리였다.

그 소리를 처음 듣는 이들은 귀를 틀어막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울음소리.

여성의 비명과 비슷한 느낌을 주면서 귓속을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진동이 절로 귀를 감싸게 만들었다.

청각을 막아 버리고 쏜살과도 같은 낚아챔이 통상적인 그들의 공격 패턴이었다.

보통의 인간들은 여러 가지 감각을 이용해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한다.

다섯 가지 감각을 적절하게 이용해 전투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하피는 일순간에 청각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몬스터다.

육체적인 힘은 부족하지만 경험이 전혀 없는 초보 헌터들을 상대로 엄청난 능력을 보일 수 있다.

"다들 준비한 것, 이제 착용하자고."

동료들은 주섬주섬 귀마개를 하나씩 꺼내 들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전투를 하며 종종 귀마개를 사용했다.

모든 것은 하피와의 전투를 대비한 훈련과 다름없었다.

처음부터 귀마개를 착용하면 가장 크게 나타나는 것이 동료들과의 단절감이었다.

아무리 오랜 전투를 통해 서로에게 숙련돼 있을지라도, 약간은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전투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야, 여기, 지금, 당장'과 같은 타이밍을 맞추는 소리부터 시작한다.

예민한 사람일수록 청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는 상상을 초월한다.

등 뒤에서 빠르게 무기가 날아오고 있을 때도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통해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은비는 이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육체파인 그녀는 자신이 보고 느끼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해지만, 청각의 단절이 주는 엄청난 정보력의 한계에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청각에 약했나?"

은비는 스스로의 모습에 엄청 당황했다.

자신의 아래라고 생각했던 은비와 지원보다 더욱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엄청나게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그중에서 가장 효과가 높은 사람은 바로 금강철인이었다.

과거에 무공 수련을 하면서 눈을 가리고 했던 훈련과 비슷하다고 이야기했다.

시각을 제외하면서 나타나는 다른 감각이 성장한 경험이 그에게는 익숙한 작용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눈을 가리고 하는 것보다 더욱 쉬운 것 같은데? 하하하하."

오만방자한 웃음을 내뱉는 그의 행동에 은비는 더욱 화가 났다.

저런 녀석도 하는 것인데, 자기 혼자 적응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아니, 난 할 수 있어. 괜찮아."

몇 번의 연습 끝에, 이제는 그럭저럭 움직일 수 있었다.

"어차피, 방어는 내 담당이니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어."

은비의 곁으로 와 마음을 보듬어 주듯이 말하는 금강철인의 행동은 그다지 은비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도 너만큼은 이겨 낼 수 있다고. 어디 한 번 두고 보자고!"

결국 은비는 금강철인에 대한 생각이 도화선이 돼 더욱 강하게 훈련을 하는 계기가 됐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훈련을 통해 은비는 결국 자신의 약점을 극복했다.

이제는 청각에 의지하는 부분이 줄어들고 다른 정보로 복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났다.

"뭔가 전투를 하면서 편해진 것 같은데?"

은비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분명 신체적 능력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전투를 하면서 보다 편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이제 적은 정보로도 많은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청각이라는 감각에서 얻을 수밖에 없던 정보들을 다른 감각으로 충분히 얻어 낼 수 있으니, 신체적 과부하가 줄어드는 것이다.

오랜 시간 전투를 하면서 쌓이는 피로도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하피를 상대하기 위해 훈련한 것이 또 다른 시너지 효과로 돌아왔다.

이렇게 각자 나름대로 하피와의 전투준비를 끝낸 그들은 당당한 걸음으로 그들의 에어리어에 들어갔다.

"왠지 스산한 기운이 흘러나오는데?"

"그러니까."

"언니, 저는 갑자기 추워진 것 같아요."

지원과 은비는 주위를 살폈고, 영리는 양팔을 감싸 쥐며 잔뜩 웅크렸다.

"진짜 온도가 떨어졌을 거야."

확신을 가지고 내뱉는 태욱의 음성에 다들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

"그럼, 이야기라도 해 줬으면 좋았잖아."

투덜대며 이야기하는 동료들을 위해 태욱은 가방에서 간단하게 추위를 막아 낼 수 있는 것을 꺼냈다.

"일단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몸을 움직이니까 덥고, 그렇다고 막상 오지 않은 추위를 준비하라고 하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태욱은 겸연쩍은 듯 사람들에게 나눠 줬다.

그러던 와중에 손을 살며시 내뻗는 이가 있었다.

금강철인.

어떤 공격도 적은 피해로 막아 낼 수 있는 그가 손을 뻗은 것은 단순한 소속감 때문이 아니었다.

"나도 추워."

그가 내뱉는 말에 다들 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추워?"

"천하의 금강철인이 춥다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되묻는 지원과 은비였다.

두 사람의 질문은 오들오들 떨고 있는 금강철인의 몸 상태가 말해 주고 있었다.

마치 어미 새의 품을 떠난 아기 새가 처음 정통으로 맞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과 흡사했다.

"푸훗."

"하하하하하하."

금강철인의 모습을 보고 은비는 큰 웃음을 터뜨렸다.

예기치 못한 큰 웃음이 전달하는 엄청난 효과는 그들을 금세 긴장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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