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회귀빨로 지존 헌터
- 1권 1화
chapter 1
한없이 까맣기만 하던 눈앞이 서서히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귓가를 타격하는 고성의 소리.
뒤죽박죽 뒤섞인 소리를 구분해 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었다.
"꺄악! 살려 줘!"
"크아앙!"
"헬퍼들은 언제 온다는 거야?"
"크롸롸."
사람들의 목소리와 몬스터들의 울음소리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흐릿하기만 했던 시야 정보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바닥에 듬성듬성 널브러져 있는 시체.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혈향(血香).
가장 강력한 충격을 주는 것은 바로 산 채로 웨어울프에게 씹어 먹히고 있는 사람과의 강력한 눈맞춤이었다.
"사, 살려......."
낮게 읊조리던 사람은 이내 그 힘을 잃고 추욱 늘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힘이 없던 짐꾼들은 몬스터들에게 무자비하게 사냥을 당하는 입장이었고, 헌터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위를 경계해! 서로 등을 맞댄다."
헌터가 되자마자 가장 먼저 익히는 생존 전술.
언제라도 숨 쉬듯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몬스터들에게 포위가 되는 가장 큰 불상사에서 오랫동안 버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자신은 앞에 있는 몬스터를 신경 쓰며, 등 뒤는 동료들에게 맡긴다.
분명 좋은 방법이기는 했으나, 서로가 서로를 강력하게 믿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이 맡은 방향의 몬스터가 뛰어들지 못하도록 막아 내는 것이 기본인데, 한 헌터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채 뛰어나갔다.
"으아아악!"
분명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헌터이거나, 일선에서 전투를 벌여 본 적 없는 비 전투 요원일 터.
상황이 급하다 보니 등 떠밀려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의 심장은 그다지 강력하지 못한 것 같았다.
몬스터의 공격에 화들짝 놀라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도망친 탓에, 순식간에 진형이 무너졌다.
헌터들이 전투를 벌이는 모습에 집중을 하고 있던 정신을 단번에 깨뜨리는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
바로 몬스터의 울음소리였다.
"크와앙!"
다른 곳에 관심을 두고 있는 동안, 마치 등을 내준 것 같은 모습을 보인 것이다.
마침 먹잇감을 찾아 돌아다니던 한 마리의 웨어울프가 때마침 그 모습을 보고는 신나게 달려든 것이다.
금방이라도 머리통은 그의 아가리에 씹혀 들어갈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몬스터의 공격에 맞춰 상체를 아래로 숙여 냈다.
'느려?'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느리게 움직이는 자신의 모습에 당황했다.
'어?'
분명 자신의 계산상으로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신체의 이질감을 느끼지만, 이곳저곳을 체크할 시간이 없었다.
촤라라라락.
공중에 떠올랐던 웨어울프가 바닥에 미끄러지듯 밀려난 이후, 다시 재도약을 하기 위해 뛰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태욱은 주변을 살폈다.
돌.
흙무덤.
시체.
방패.
주위에 많은 물건들이 있었지만, 그 사이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날이 잔뜩 선 장창.
번쩍이는 창촉이 마치 자신을 선택해 달라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 주인은 창 옆에 누워 있는 끔찍한 시체일 터
평소에 관리를 잘해 놓은 것인지 날이 상당히 잘 벼려져 있었다.
손아귀를 몇 번 쥐었다 펴 보고는 이내 창끝을 웨어울프를 향해 뻗었다.
"크아아앙!"
강력한 울음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도약했던 웨어울프는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는 당당히 서 있는 태욱을 향해 날아들었다.
태욱은 일체의 망설임 없이 장창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향해 찔러 넣었다.
상당이 기다란 사정거리.
날아오는 웨어울프.
그리고 강한 가죽이 덧대어지지 않은 입 안.
3박자가 합을 이뤄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푸욱.
강한 삽입음과 더불어 웨어울프의 머리통 뒤로 번쩍이는 창촉이 붉은 피를 흘리며 위풍당당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였다.
[창술 숙련 기술 생성.]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연속으로 알려 오는 시스템 알람 소리에 태욱은 갸우뚱 고개를 움직였다.
'레벨이 올랐다고? 벌써 오르지 않은 지 몇 개월...... 아니...... 잠깐!'
태욱은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폈다.
몬스터들이 득실대는 곳.
시체가 산을 이룰 듯이 마구잡이로 바닥에 널브러진 이곳.
분명 너무나도 익숙한, 아니 잊을 수 없는 곳이었다.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을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각자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런 다급한 상황에 주변을 살필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도박이 성공한 것인가?"
아주 작고 낮게 내뱉었기 때문에 아무도 들을 수 없었지만, 태욱은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지금으로부터 약 50여 년 전.
2018년 정확하게 날짜를 지정할 순 없지만 사람들은 그날을 기점으로 변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에 차원문이라는 것이 생겨났고, 그 안에서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호기심에 다가섰던 이들의 죽음과 더불어 생성되었던 존재.
바로 '헌터'인 것이다.
그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그젝션 시스템."
헌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물으면 모두들 하나같이 똑같은 대답을 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그젝션 시스템'인 것이다.
헌터가 되기 위해서는 딱 하나의 일만 하면 된다.
자신의 손으로 몬스터를 죽이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몬스터를 죽인다면 이그젝션 시스템에 의해 누구나 다 헌터가 되는 것이다.
헌터가 되면 그들은 일정한 창을 가질 수 있다.
마치 게임 내 시스템처럼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으며, 사냥을 통해 레벨업을 할 수 있었다.
직업은 랜덤으로 정해지며, 한 번 정해진 직업은 바꿀 수 없었다.
전방에서 사냥에 나서는 전투원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비 전투 요원들도 나타난다.
물론 남들과는 다른 아주 강력한 직업을 타고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고 쓸모없는 직업을 가지고 헌터로 각성되는 경우도 있다.
태욱의 직업은 바로 '흉내쟁이'였다.
[흉내쟁이]
한 번이라도 두 눈으로 확인한 직업의 기술을 흉내 낼 수 있다.
단, 그 최대 효과는 50%에 한정된다.
정상적인 다른 직업에 비해 최대 50%의 효과밖에 내지 못하지만, 헌터가 되고서도 사냥에 나서지 못하는 많은 각성자들에 비해서는 좋았다.
적어도 사냥을 나서지 못하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태욱은 스스로를 사냥에 나설 때 힐러라고 이야기하며 같이 사냥에 나섰었다.
헌터들이 많아질수록 회복을 도울 수 있는 힐러들의 역할은 더욱 방대해져 갔다.
어느 때는 힐러가 없어서 사냥을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에, 약간의 회복 능력만 보여 줘도 능히 사냥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위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냥에 나서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처음으로 각성을 할 때 '이그젝션 시스템'에게 들은 말 덕분이었다.
[이그젝션 시스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그젝션 시스템은 방어 시스템입니다.]
[현재 182,739개의 차원이 모두 이그젝션 시스템에 통합되어 있으며, 이 수치는 지속적으로 변화됩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차원이 생성되고 파괴됩니다. 파괴된 차원의 조각들이 여러 다른 차원에 흩뿌려지게 됩니다. 당신은 이그젝션 시스템에 의해 선정되었습니다. 당신의 차원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지켜 내시기 바랍니다.]
설명을 들은 헌터들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곧이어 눈앞에 펼쳐지는 영상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는 지구.
그리고 점점 잠식을 해 나가는 차원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이었다.
끝내 지구를 지켜 내지 못하고 붉게 잠식되어 가는 영상을 끝까지 지켜본 헌터들은 끝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까지 시스템이 열심히 헌터들에게 미래의 상황을 주입하였지만, 헌터들은 제 배를 불리는 데에만 능력을 사용했다.
물론 태욱 역시 마찬가지였다.
능력을 높이고, 더 강한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자신의 배를 불린 이들 앞에 나타난 강력한 몬스터.
'마왕'이라는 존재다.
그의 손이 닿는 곳은 순식간에 소멸되었다.
남아 있는 것이 없을 정도로 처참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마왕이 등장을 하자, 그제야 자신들의 처지를 깨달은 헌터들은 재빨리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나 늦어 버린 것이었다.
이미 마왕은 미쳐 날뛰고 있었고, 그를 제재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고레벨의 유능한 헌터들은 모두 마왕의 손에 사라졌다.
"이 빌어먹을 자식!"
헌터들은 강하게 내뱉는 욕설에도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분노했다.
"이 세상에 있는 생명체들은 나 베리엘에게 목숨을 바쳐라!"
아주 오만 방자한 목소리였지만 아무도 그것을 막아 낼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다.
닥쳐오는 죽음을 한없이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죽음의 기운이 다가오는 찰나 태욱은 자신의 스킬 창에 있는 하나의 스킬을 매만졌다.
[완벽한 흉내 내기]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스킬은 아니었다.
어차피 다가오는 죽음을 막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일종의 도박을 하는 셈이었다.
이 시스템을 통째로.
바로 이그젝션 시스템을 흉내 내는 것이다.
'분명 방어 시스템이라고 이야기했었지.......'
태욱의 뇌리 속에 선명하게 담겨 있는 방어 시스템.
스스로를 방어 시스템이라고 밝혔던 이그젝션 시스템이 어떤 결과를 넘겨줄지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손가락을 빨며 구경만 할 생각은 없었다.
"완벽한 흉내 내기."
태욱의 입 밖으로 외친 스킬명과 함께, 밝게 그의 품으로 빛이 모이기 시작했다.
두 눈으로 직접 본 기술에 한해 흉내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조건은 충분했다.
다만 그 결과를 알 수 없어 초조해하고 있던 찰나.
황금색으로 번뜩이던 완벽한 흉내 내기의 스킬이 점점 흐릿하게 변하고 있었다.
죽음의 기운이 눈앞에 다가오는 순간.
태욱은 새로 생성된 스킬을 사용했다.
콰가가가강.
어둠의 기운은 스킬을 사용하고 있던 태욱을 덮쳤고, 순식간에 온 세상은 암흑으로 진하게 물들었다.
태욱이 마지막으로 발현한 스킬.
[시간 회귀]
바로 이그젝션 시스템을 흉내 내며 습득했던 스킬이었다.
"여기로 회귀한 것인가?"
너무나 익숙한, 그리고 잊을 수 없는 곳이었다.
바로 자신이 처음으로 헌터로 각성할 수 있었던 장소였다.
당시의 태욱은 헌터로 각성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 * *
연고가 없는 17살의 소년.
누가 그를 헌터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태욱은 헌터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선택밖에 없었다.
바로 헌터들의 잡일을 도맡아 하는 짐꾼.
운이 좋으면 짐꾼에서 헌터로 각성을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풍문처럼 들렸기 때문에, 그 이야기야말로 태욱의 선택에는 유일한 희망의 끈이나 마찬가지였다.
짐꾼에서 헌터로 각성을 하는 경우는 풍문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일정 기여도'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작용하게 되는 순간 시스템은 짐꾼이 사냥했다고 판정을 내려 주는 것이다.
아무런 능력이 없는 짐꾼이 상당량의 기여를 하기 위해서는 제아무리 오랜 시간을 쏟아부어도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어느 순간 시스템이 공을 인정하고 각성을 하는 경우가 분명하게 있었다.
이미 태욱의 곁에서도 두 명이나 봐 왔기 때문에 짐꾼의 일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쉬지 않고 잡일을 도맡아 온 지 5년.
17살부터 시작해 22살까지 깜깜한 미래를 보며 살아왔던 그에게 단 하나의 희망은 바로 헌터였다.
강하게 쥐어진 그의 손끝에 있는 작은 엽총.
오늘 따라 그 엽총이 번뜩이며 한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여신이 내게 축복을 내리는 것인가?"
밤새 꿈자리도 좋았고, 어깨를 들썩여도 피곤한 것은 없었다.
가뿐한 마음으로 짐꾼의 일정에 맞춰 짐을 메고 출발하는 찰나, 태욱의 이마에는 왠지 모를 살랑 바람이 불었다.
'아, 기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