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어로 메이커-57화 (57/240)

“삼촌, 괜찮아요?”

“음? 아아……”

물어오는 동식이에게 간신히 답을 해 주었다.

아직 머리가 어지러웠다. 조금 전. 눈 한 번 깜빡하기 전만 해도 나는 쿤의 모습으로 있었다. 세이혼에게 성기사의 세례를 내리고 피곤함에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다시 본래의 세계로 돌아왔다.

게이트와의 접촉은 전혀 없이.

서율이가 있는 쪽을 보며 생각해 봤다.

이유가 무엇일까? 원인은 너무나 분명하다. 검은 돌. 세이혼이 건네 준 돌이 게이트에서 나오는 어떤 힘에 반응하여 나를 그쪽 세계로 옮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대체 왜?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어? 뭔가 이상한데요?”

“응?”

“저기, 연구진 쪽이요. 조금 소란스럽지 않아요?”

동식이의 말에 생각을 끊고 시선을 돌려 봤다.

확실히 평소와 다르게 연구진 쪽 사람들이 부산스러운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서율이를 관측하던 장비를 둘러싸고 몇 사람이 모여서 무언가를 거칠게 토론하고 있었다. 먼 거리라 희미했지만 상승 된 청력이 이를 잡아내 주었다.

“……갑자기 증폭 될 이유가 없어요! 무언가 반응이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보기에는 신호가 너무 빨리 사라졌어요. 단순 오작동일 확률이 높습니다.”

“오작동으로 이 정도의 전자기파가 관측된다는 말인가요?”

“하지만 당장 다른 기기에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관측 중 한 순간 전자기파가 폭증한 부분이 나타났다는 것 같다.

짐작 가는 부분은 당연히 있다. 내가 검은 돌을 만지는 순간. 하얀 빛이 새어나와 나를 집어삼켰다. 이것은 서율이가 게이트를 통하는 것과 같은 원리. 다만, 증폭이라고 표현 할 정도로 신호의 세기가 강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할 거 같다.

만약 내가 게이트를 이동하는 방식이 일반 개척자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방식이라고 한다면 에너지가 높은 수준으로 관측됐다는 것도 이해 할 수 있다. 서율이 근처에서 잔여 에너지가 내 쪽으로 몰려들었던 것도 비슷한 경우.

그렇다면 검은 돌은 일종의 에너지 저장장치라 볼 수 있다. 단순하게 반응으로 나를 날려버릴 거였으면 일전에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어야 하니까. 그 당시에는 단지 빛을 흡수하였고, 이번에는 나를 이동시켰다는 점에서 일정 수준의 에너지 이상이 채워졌을 때 반응이 일어났다고 가정 할 수 있다.

배터리. 아주 심플하게 생각해 보자면 그렇다.

나를 이동시키는 근본이 게이트가 아닌 하얀 빛이라면, 검은 돌은 그것을 모아주는 배터리와 같다. 에너지를 농축해서 나를 이동시키고, 그 힘이 다했을 때 쿤이 쓰러지는. 게이트의 경우는 지속적인 에너지 공급이 되니, 공물을 통한 접촉이 있을 때만 다시 본래의 세계로 온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현상을 단순화 시켜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몇 군데 있다.

일단은 돌의 정체. 대체 무엇이기에 하얀 빛을 흡수해서 나를 이동시킬 수 있는가. 세이혼은 유산처럼 지켜온 물건이라 하였는데, 단순히 예뻐서 보관했을 리는 없다.

두 번째는 경험치.

쿤에게서 깨어나고 난 뒤, 몸의 이상에 적응하며 만일을 대비해서 바쁘게 포인트를 비축했다. 그러다 몇 가지 승급이 개방되었고, 필요한 것에 포인트를 사용했다. 힘과 체력. 그리고 상처 회복을 위한 특기까지.

하지만 단 한 번도 경험치 상승은 겪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쿤은 어째서 문양과 접촉하는 순간에 경험치를 획득했는가.

쿤의 쪽과 내 쪽. 어느 쪽 상황을 살펴도 지금까지 와의 경우와는 맞지 않는다. 즉, 세 번째 경험치 획득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내 목소리에 반응을 했었지.”

“네?”

“아무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점일지도 모른다.

쿤과 접촉해 있던 순간. 나는 이례적으로 내 의식의 일부가 깨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을 움직이기까지 했다. 그 결과는 쿤이 내 목소리를 따라 한 것으로 증명이 되었다. 그 스스로는 완벽하게 인지하지 못한 것 같지만, 분명 듣고 따라했다.

단지, 스텟을 공유하고 공물을 통한 대화만이 가능했던 쿤과 나 사이의 관계가 변화한 것이다. 그의 몸을 내가 더 가깝게 느끼는 것처럼, 내 의지가 그에게 닿고 있다.

“아, 소향 누님이 부르네요.”

“……내려가자.”

무언가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

서율이가 게이트의 접속이 끝나고 난 뒤 긴 브리핑이 이어졌다.

일차적으로 군이 검열을 한 내용이었다. 드론의 정찰 영상과, 확보한 부지의 확인. 보조팀이 굳이 알 필요는 없는 내용이지만, 개척자와 대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어차피 가장 중요한 것들은 빠져 있는 내용.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며 다들 눈에 담아 두었다.

게이트 너머에서 날리는 드론은 사실 효과가 미미하다. 충전 효율도 그렇지만 일정 지역을 벗어나면 고장으로 추락하기가 일쑤였다. 그나마 효과가 가장 좋은 게, 바닥을 굴러가는 군용 로봇. 드론에 비해서는 고장이 적어 탐지 범위를 나름대로 확보 할 수 있었다.

“저거 혹시 발자국 아닌가요?”

오늘 확인한 발자국 역시 이 장비에서 찍힌 것이다.

“확인해보니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말인즉슨, 미국 개척자들이 겪은 것을 우리가 경험 할 수도 있다는 얘기죠. 그러니 여러분들도 확실히 알아 두셔야 합니다. 더 이상의 애들 장난은 없습니다. 이건 전시와 같습니다. 적이 나오면 맞서 싸울 수 있는 자세를 길러야만 합니다. 이해했습니까?”

브리핑을 한 육군 대위의 목소리다.

각 잡힌 얼굴과 절도 넘치는 행동. 굳이 이런 사람을 뽑아서 브리핑 시킨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주도권 싸움. 민간으로 넘어간 권한에는 군이 힘을 행사하기 어렵다. 하지만 상황이 전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분위기를 그쪽으로 몰아가기 위해서 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겁주지 말고, 대처 방안부터 차근차근 말 해 보시죠.”

“겁주는 게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죠. 영상을 확인하셨으면 알겠지만, 게이트 너머의 존재는 결코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다치지 않으니 괜찮겠지. 이런 안일한 마음으로 상대하다가는 어떤 일을 초래 할 지 장담 할 수 없습니다.”

“그게 겁주는 거 같은데요? 개척자들도 다룰 수 있는 자동화 장비는 언제 넘어가는 겁니까?”

소향이 첫마디를 내가 끝마디를 맡았다.

상황을 낙관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조건 압박 넣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대위가 인상을 조금 구기고는 말을 이었다.

“자동화, 자동화. 그렇게 알아서 척척 되는 게 있을 거 같습니까? 모두 다 훈련하고 적응해서 다뤄야 하는 장비들 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척자들도 군사훈련을 받는 거 아닙니까? 제가 묻는 건 게이트 주변에 설치할 방어선입니다.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게이트를 그냥 둘 생각인 건 아니겠죠?”

“흠. 그건 물론 추진 중에 있습니다.”

“설마, 예산이나 관할구역 따위의 이야기로 길어지는 건 아니겠죠?”

“……곧 결정이 날 겁니다!”

화내는 꼴이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어쩐지 우리까지 모아놓고 쫀다 싶었다. 안쪽에서 게이트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첨단 장비가 들어가 이를 막아줘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게 구하기 쉽겠는가? 아무리 큰 사업이라고 해도 이래저래 거치는 손과 입이 많을 것이다.

세월아 네월아 하다가 몇 달 뒤에 한 군데 털리고 나서야 그제야 급급해서 설치를 해 두겠지.

“차라리 전기 펜스를 설치하고, 발전기 온 오프 방식이나 가르치세요. 그편이 빠르겠네요.”

“……고려하고 있습니다.”

“퍽이나 그러겠네요. 그럼 할 말은 다 끝났습니까?”

“크흠. 군사훈련이 있으니, 서율 양은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궁하니 빠지는 꼴 보소.

뒤따라가 몇 마디 거들고 싶었지만, 이번 훈련에는 동식이와 남규가 따라가기로 했다. 마땅히 한 일이 없는 내가 따라간다 말 했지만, 소향은 여전히 그 날의 발작이 걸리는 모양이다. 이상 없음을 확신하기 전까지는 최대한 활동을 줄여 달라고 부탁 해 왔다.

나 좋다고 부탁하는데 거절하기는 힘들다.

오늘은 다른 팀원들에게 맡기고 조금 이르게 빠져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지금은 따로 알아 볼 게 있으니까.

#

“아빠~! 어서 오세요!”

집에 들어가니, 미소가 미소로 반겨 주었다.

좋은 울림이다. 미소가 미소로. 비슷한 얼굴을 해 준 뒤, 오는 길에 사 둔 빵을 건넸다. 같이 살면서 알게 된 건데, 미소는 롤 케이크를 매우 좋아했다. 덕분에 주변 빵집은 전부 꿰차게 됐다. 맛있다며 방긋방긋 웃어 주는 얼굴이 내 사는 낙이니까.

“어서 오세요.”

“헤헤. 또 만났네요. 안녕하세요!”

미소는 혼자가 아니었다.

제 나이대의 햇살 같은 미소를 띠고 있는 두 여대생이 같이 있었다. 일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는 이들이다. 침착하게 고개 숙인 쪽이 소유. 활발하게 웃는 쪽이 세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그 친구 분들이군요. 반가워요.”

“에이, 또 그러신다. 말 편하게 하세요.”

“그렇게 해 주세요. 계속 존대를 들으니 부담스러워요.”

“흠. 그럼 편하게 할게. 됐지?”

외투를 벗어서 옷걸이에 걸며 답을 했다.

두 소녀는 나란히 좋다고 답을 해 주었다. 이렇게 보니 마치 루루와 라라를 보는 것 같았다. 물론, 외모야 그 둘이 훨씬 나았지만.

“그보다 어쩐 일이야.”

“그냥 뭐. 그 동안은 집으로 친구를 초대 한 적도 없고 해서, 한 번 불러 봤어요. 얘기 안 해서 놀랐어요?”

“괜찮다. 그보다 다들 그렇게 있지 말고 들어가자고. 집이 좀 휑해서 뭐, 볼만한 게 있을까 모르겠네.”

결혼이나 이혼. 가정사에 대한 것들은 친구들에게도 쉬이 말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동안은 초대하지 못한 게 아니라 초대 할 수 없었던 것. 이제나마 이렇게 친구를 불렀다는 건 집이 편해졌다는 의미겠지. 잘 했다는 의미로 미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와, 그런데 그때 볼 때보다 더 젊어 보이세요.”

“그러게. 혹시 배우나 뭐 그런 쪽에서 일 하세요?”

“하하. 젊게 보이려고 노력할 뿐이야. 배우는 무슨. 명함도 못 내민다고.”

듣기 나쁜 말은 아니다.

가볍게 웃으며 거실로 향했다. 손님도 왔으니 뭐라도 내와야겠지. 셋을 소파에 앉혀 두고 주방으로 따로 움직였다. 미소를 챙기느라 쟁여 둔 식재료들이 제법 있었다. 일단은 간단히 먹을 다과와 음료수를 준비했다.

바나나와 오렌지.

껍질을 벗겨서 먹기 좋게 썬 뒤에, 전날 먹었던 샐러드를 같이 내왔다. 드레싱 소스는 역시 상큼한 게 좋겠지. 키위향이 진한 소스를 뿌린 뒤 끝 맛이 텁텁하지 않게 상큼한 주스를 곁들였다.

“와~! 평소에도 이렇게 해 주세요?”

“미소, 너. 밖에서 그렇게 입맛 까다로운 척을 하더니 집에서 길들여진 거구나!”

“에헴. 우리 아빠 솜씨가 이 정도라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좋다.

기대하라고 한껏 말을 한 뒤, 팔을 걷고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특별한 날에 먹으려고 사 둔 ++급 한우가 있었다. 이걸 꺼낼까 말까. 쿤에 대한 고민마저 잠시 잊은 채 깊이 생각에 빠졌다.

“……어?”

그러던 어느 한 순간.

미소와 어깨를 치며 깔깔거리는 세주의 머리 위로 희미한 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맺혀있는 빛이 천천히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게이트의 그 빛과 같다.

보는 순간 알았다. 하지만 왜? 아니, 어째서 지금? 세주와는 지금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일전에도 만났고 대화까지 나누었다. 그때와 지금 사이에 달라진 게 따로 있다는 말일까?

웅……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품 안이 잘게 떨렸다.

핸드폰? 아니다.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세주 머리에서 반응하는 하얀 빛은 품속에 넣어 둔 검은 돌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아빠, 오늘 저녁에 뭐 먹을 거예요?”

“한우.”

“와! 정말요!?”

깜짝 놀라 되묻는 미소에게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한우. 그래, 한우를 내 놓아야겠지. 그래야 친구들이 오랫동안 남아 있을 테고. 나도 이 빛이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소고기 파티다.

※작가의 말

예약연재입니다!

감기가 걸린건지, 탈이 난건지 머리가 하루종일 아프네요.

수정 할 부분이 없어야 할 텐데...

* 잠깐 나왔던 미소의 두 친구 재 등장.

* 소고기는 참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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