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32화 (132/142)

132

미래의 주도준이 어떻게 현재에 존재할 수 있는 건가. 자신처럼 회귀했다기엔 혼란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의심 가는 정황이 있기는 했으나 그간 형을 향한 소유욕을 드러내지 않았다. 참을성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던 주도준이 형의 곁에서 순한 양처럼 굴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도준을 향한 의문과 혼란에 이어 눌러두었던 분노가 고개를 들었다.

“주도준. 너 언제부터…….”

상대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 탓에 마나가 들들 끓었다. 재윤의 정제되지 않은 분노에 주변의 사물들이 진동하는 걸 본 도준은 다정한 이웃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일단 재하 동생, 너랑 대화할까 하는데.”

잘그락거리며 재윤의 앞으로 던져진 건 조금 전까지 도준이 차고 있던 구속구였다. 구속구를 알아본 재윤이 주저 없이 걷어차자 도준은 아쉽다는 듯 방어 막을 세웠다. 방어 막 안의 잡동사니는 재윤이 흘리는 마나에 영향을 받지 않아 흔들림이 멎었다.

“굳이 또 힘자랑할 필요가 있을까? 예전에도 항상 만신창이가 돼서야 돌아갔잖아.”

도준이 재윤의 이능을 차단하는 건 너무도 쉬웠다. 재윤 역시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매번 참을 수 없는 분노로 그를 찾아가 엉망진창이 되고는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달랐다. 주도준은 형을 손에 쥐고 있지 않았다. 도준이 잘못되더라도 형에겐 아무 문제가 없다. 그거면 충분했다.

날아가려던 이성을 붙잡은 재윤은 현재에 집중했다. 도준의 빈틈을 찾고자 그답지 않은 학살 현장에 관해 물었다.

“저 사람들은 왜 죽인 거지? 이미 다 제압해서 방해조차 되지 않았을 텐데.”

“어차피 다 죽게 될 거였잖아.”

형만 찾으면 빌런의 아지트 따위 무너트릴 계획이었기에 도준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빌런 따위를 보호할 리 없었다. 잔뜩 굳은 재윤의 얼굴을 보며 도준은 피식 웃었다.

“뭘 걱정하는 거야? 어차피 재하는 모를 텐데.”

“형을 끌어들이지 마.”

도준의 입에서 형이 언급되는 것조차 끔찍했다. 그간 형을 지키기 위해 억눌러 왔던 도준에 대한 증오가 정당한 대상을 만나 한순간에 풀려 버렸다. 이성적으로 굴려 해도 도준의 말 한마디에 분노는 쉽게 끓어올랐다.

감정에 영향을 받은 재윤의 마나가 다시금 날뛰기 시작했다. 견고한 방어 막에 금이 가는 걸 빤히 쳐다보던 도준은 그 위에 새로운 막을 덧씌우며 핏물 위를 지나 재윤에게 다가섰다.

“실은, 재하 동생을 처리할까 고민하던 중이었어.”

친구를 대하듯 가벼운 도준의 말에 재윤은 이를 갈았다. 도준은 그런 재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 다가섰다.

“날 증오하는 기억을 가진 상대가 재하 옆에 있으니 신경 쓰여서…… 없애 버릴까 했지.”

형을 손에 넣기 위해 거슬리는 자신을 처리하려 했다는 도준의 고백이었다.

방어 막을 부술 수 없다면 섬 자체를 부숴 버리겠다는 기세로 재윤이 마나를 풀었다.

심상치 않은 흔들림에 도준은 재윤에게로 연달아 방어 막을 사용했다. 한 겹의 방어 막은 순식간에 깨어져 두 겹, 세 겹 몇 번이고 막을 덧씌웠다.

골든 터틀의 무게를 이겨 낼 만큼 겹칠수록 단단해지는 방어 막이 재윤의 힘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평상시였다면 아무리 힘을 써 봤자 방어 막을 넘어올 수 없었다.

그렇다 해서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도준이 마나를 쏟아부어 구속구를 풀어 낸 것처럼, 재윤도 마나를 바닥까지 긁어 사용한다면 방어 막을 파괴할 수 있었다. 대신 지나친 마나 사용으로 인해 폭주하게 되겠지만, 그때는 반드시 주도준을 붙잡을 것이다.

“해봐. 이대로 폭주해서 네놈을 없애는 것도 좋겠지.”

S급인 도준이 자신을 처리할 마음을 먹은 이상 불안해하며 날을 기다리느니 함께 죽는 편이 나았다. 재윤의 극단적인 사고 흐름에 도준은 웃는 얼굴로 더욱 가까이 다가섰다.

“재하 동생,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 예전엔 안 이랬잖아. 독이 올라 있긴 했어도 지키는 일에 더 맹목적이었던 거 같은데.”

“수작 부리지 마. 죽여 버릴 거야.”

그간 어떻게 참아 냈나 싶을 만큼 도준을 향한 분노는 조금의 인내도 허용치 않았다.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해. 재하 동생이 이러는 걸 재하가 알면 얼마나 속상하겠어.”

“형을 네 개짓거리에 끌어들이지 마.”

재윤에게서 퍼져 나오는 마나 파동이 몇 겹의 방어 막을 흔들 만큼 거칠게 두드렸다. 이 장소 어딘가에 있을 재하가 폭주에 휘말릴 거란 계산조차 하지 못할 만큼 재윤은 흥분하고 있었다. 천운으로 회귀한 후, 다시는 마주칠 리 없었던, 재하를 나락에 빠트린 미래의 도준을 눈앞에 두자 도저히 인내할 수 없었다.

재윤의 손끝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걸 발견한 도준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충동적일지 몰라도 도준을 향한 증오로 인해 목숨까지 내던지려는 재윤의 행동은 진심이었다.

방어 막은 웬만한 폭발이나 무게도 견뎌 내지만, 폭주할 때 발생하는 마나의 폭발에는 취약했다. 폭주 에스퍼 신고에 수호자인 도준이 나섰다가 크게 다칠 뻔한 이후 폭주에는 방어 막도 버거운 걸 알게 되었다. 아마도 같은 성질의 것이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었다.

“재하 동생이 오해하는 거 같아서 알려 주는 건데, 이번엔 재하를 지켜볼까 하거든. 물론 친구로 곁에 있을 거야.”

“개새끼라 그런지 거짓말도 술술 나오지.”

“그건 정말 오핸데. 내가 재하 동생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

회귀 전, 재윤이 재하를 찾기 위해 도준의 휴식을 방해했을 때도 그는 거짓으로 둘러대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관점에서 조언하고 놀리거나 비꼬기는 했지만.

매번 안 될 걸 알면서 달려드는 재윤을 도준은 나름 귀엽게 여기기도 했다. 방어 막을 이겨 내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힌 채 절망에 몸부림칠 때면 애쓰는 벌레를 보는 것 같아 기특하기도 했지만 귀찮아서 짓눌러 치워 버리고 싶기도 했다.

“널 처리할까 고민한 것까지 알린 마당에 뭐 하러 속이겠어.”

자신에게 별다른 위해도 끼치지 못하는 재윤에게 딱히 꾸미거나 숨길 이유가 없었다.

남의 눈치 볼 일 없이 S급 에스퍼로 살아온 주도준이었다. 최근에야 재하를 온전히 손에 넣고자 얌전한 척 내숭을 떨고 있지만, 그 역시 본래의 모습이기도 했다.

원래의 목적은 재윤을 협박해 잘 구슬리는 거였지만, 예전보다 더한 증오심을 보이며 끝까지 가려는 그의 모습에 한발 양보했다.

“재하 동생, 나랑 화해하지 않을래? 휴전도 좋고.”

“개소리.”

“다시 생각해 보니까 네가 죽어 버리면 지금의 재하를 볼 수 없을 거 같거든.”

“그딴 걱정은 하지도 마. 너도 형을 볼 수 없게 만들 거니까.”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재윤이 더 독해졌다. 방어 막만 없으면 목을 조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선 도준의 웃음이 더욱 부드러워졌다.

“널 없애려고 한 거 사과할게. 그러니 진정 좀 해.”

새로 산 신발을 실수로 밟았어도 이것보다는 더 진심을 담지 않을까 싶을 만큼 가벼운 사과였다.

애초에 도준이 아무리 진심을 담았어도 받아 주지 않았을 재윤의 눈빛은 사납기만 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도준이 아쉬워했다.

“재하 앞에서는 평소처럼 지냈으면 하는 건데, 그게 힘들어?”

“형을 그렇게 만들고도 뻔뻔하게 붙어 있겠다는데, 내가 그걸 두고 볼 거 같아?”

“두고 보지 않으면. 어쩔 건데?”

툭. 툭.

도준이 방어 막을 건드릴 때마다 새로운 막이 덧씌워졌다.

“재하는 내게 빚을 졌어. 이미 죄책감이 심어졌다고. 네가 날 해쳐 봤자 영원히 날 기억하며 괴로워하겠지.”

재윤이 스스로를 포기하면서까지 쏟아 낸 마나 탓에 빠르게 깨어지는 방어 막을 도준은 몇 번이고 새로이 쌓아 갔다.

“네가 폭주하더라도 난 방어 막을 최대한 사용할 거야. 마나 양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니까. 다치긴 하겠지만, 결국 난 살아남겠지.”

그 말을 증명하듯 점점 빨라지는 파괴 속도에도 도준은 쉽게 방어 막을 쌓아 갔다.

“그럼 난 네 형에게 말할 거야. 괜찮아, 재하야. 네 동생 때문에 내가 망가지긴 했지만 네가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시발 새끼가…….”

재하를 내주지 않는 도준을 향해 매번 느꼈던 절망을 재하가 없는 자리에서 또다시 겪게 된 재윤은 미칠 것 같은 분노에 이성이 날아갔다.

“그럼 재하는 동생을 잃은 슬픔에 빠져서도 이번 일의 죄책감으로 내 손에 떨어질 거야. 예전처럼.”

파삭.

아직 남아 있던 방어 막이 새까맣게 그을린 손에 손쉽게 깨어졌다. 까맣게 타들어 가는 재윤의 손이 도준의 목을 잡았으나 손에 잡힌 건 두꺼운 방어 막이었다. 이렇게 되리란 걸 예상한 도준이 제 몸에 두른 방어 막은 얇지만 겹겹이 쌓여 재윤이 붙잡을 수는 있어도 타격을 입힐 수는 없었다.

그걸 본 재윤은 끝장을 볼 기세로 마나를 쏟아 넣었다. 물건을 움직이고 파괴할 때보다 몇 배나 강한 집중력으로 도준을 보호하는 막을 깨트리려 했다. 실제로 제법 큰 소리를 내며 균열이 생기자 도준은 늦기 전에 빠르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잃었던 방식을 다시 쓰고 싶지 않아. 꼼수는 좀 썼지만, 친구인 재하도 좋다는 걸 깨달았거든.”

“넌 구제 불능이야. 여기서 죽어.”

도준은 예전의 습관 탓에 지나치게 재윤을 자극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고작 하루였지만, 구속된 에스퍼를 흉내 내느라 스트레스가 쌓였었던 모양이었다.

재윤에게 잡힌 목의 방어 막이 빠르게 부서져 나가는 걸 계속해서 방어하며 틈을 만들기 위해 설득을 이어 갔다.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냐. 당장은 재하부터 찾아야 하잖아.”

“권해일이 형을 찾아내서 보호할 거야. 넌 여기서 나랑 사라져.”

진심으로 목숨을 건 재윤의 단호함에 도준은 조금 불안해졌다. 마나를 한계까지 사용한 부작용으로 그을음이 팔을 타고 올라가는 속도가 빨라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대로 재윤의 폭주에 휘말리면 안전을 장담하기 힘들 것 같았다.

“네가 폭주를 하더라도 날 완전히 없앨 수 있다는 보장도 없잖아. 개죽음이야, 재하 동생.”

“그딴 식으로 날 부르지 마.”

도준의 입에서 형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도, 친근한 척하는 호칭으로 저를 부르는 것도 듣기 싫었다. 도준의 말이 어디까지 진심인지 잴 필요도 없었다. 형을 지옥 끝까지 밀어 넣었던 이가 돌아왔다면 한시도 곁에 둘 수 없었다.

주도준이 가진 능력 탓에 어떤 에스퍼도 그를 해칠 수 없었다. 가장 확률이 높은 방법은 기습이었으나 그마저도 마나에 민감한 미래의 주도준이라면 먼저 알아채고 방어 막을 사용할 터였다. 당장 쓸 수 있는 방법은 폭주에 휘말리게 하는 것이었기에 형을 지킬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바닥에 고여 있던 핏물조차 떠오를 정도로 재윤의 마나가 사방으로 튀었다.

폭주의 시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