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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31화 (13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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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악연의 재회

간신히 다시 눈을 뜬 재윤이 혹 단서가 될 만한 게 있나 싶어 옷가지를 살피는 동안 지호가 상황을 설명했다.

“강광이 알려 주는 방향과 반지가 가리키는 방향이 달라서 둘 다 표시하면서 이동했어. 교차점이 생긴 뒤에 다녀와 봤는데, 강광이 알려 준 곳은 바다뿐이라 물에 빠질 뻔했고, 반지가 알려 준 곳은 무인도였어. 그곳에 반지랑 그 옷이 얕게 묻혀 있더라.”

지호가 펼쳐 준 지도를 보면 두 곳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재윤은 심호흡하며 감정을 다스린 후 희망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일부러 교란하려고 숨겨 둔 걸 거야. 형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이런 걸 감출 필요도 없었겠지.”

최악으로 치달으려던 생각을 간신히 이성적으로 갈무리한 재윤의 침착함에 지호가 박수를 쳤다.

“좋았어. 그럼 빨리 선장님께 여기로 가 달라고 하자.”

“혹시 너무 가까이 갔다가 공격당할 수 있으니 근처에 있는 무인도로 가 달라고 하죠.”

숨는 데 익숙한 강광의 제안이 흥분해 마구 달려가려던 에스퍼들을 진정시켰다.

“그게 좋겠네요. 고마워요, 강광 씨.”

“그냥 강광이라 불러 주세요. 그리고 이따 사인도 한 장 부탁드려요.”

강광의 농담 같은 요청에 무거워지려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조금 가벼워졌으나 보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모두 긴장으로 침묵했다.

명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중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섬네일 각을 잡아 보려던 강광의 핸드폰 안에 희한한 광경이 들어왔다.

“혹시 다들 저거 보이세요?”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조정해 둔 핸드폰 화면 안에서는 허공에서 갑자기 생겨난 연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재윤 역시 핸드폰을 통해 확인한 후 가려던 위치임을 확신했다. 곧바로 지호에게 다가가 어깨를 붙잡은 재윤이 이제는 눈으로도 보이는 연기를 향해 턱짓했다.

“연기가 나오는 위치로 이동할 수 있겠어?”

“물에 빠져도 괜찮으면.”

허공으로 이동해야 했기에 지호가 그렇게 답하기는 했어도 다들 이번은 정답일 거라 믿는 눈치였다. 해일 역시 지호의 반대편 어깨를 붙잡았다. 강광이 저를 두고 갈 거라는 걸 눈치채고 쪼그려 있던 자세 그대로 다가와 지호의 발목을 슬그머니 잡았다.

지호는 굳이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외부인을 밀어내지 않고 공간 이동을 시도했다. 인원이 여럿이라 평소보다 조금 더 마나가 빠져나갔지만, 허공이라 여겼던 곳에 발을 디디고 서자 감탄이 절로 나오려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미 안에서 문제가 생긴 것 같네요.”

“협회와 현재 위치 공유하겠습니다.”

어차피 받아야 할 도움이었기에 빠를수록 좋았다.

재윤은 반지를 다시 손에 낀 후 지호에게 남은 반지를 건넸다.

“권해일 에스퍼와 같이 다니다가 형을 만나면 나한테 와. 안에서 이동이 안 되면 형을 데리고 탈출해. 그리고 권해일 에스퍼는 중요하다 싶은 설비에 불을 놓으세요. 어차피 형만 빼내면 다 부숴 버릴 거니까.”

재하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나치게 과격한 방식일지도 모르나 적은 인원으로 다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혼란을 유도하는 게 도움이 됐다.

“그럼 전 숨어 있을게요.”

재빨리 빠지려는 강광의 목덜미를 잡아 든 재윤은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깨어진 틈으로 새어 나오는 연기가 지독했지만, 재윤은 망설이지 않았다.

연기를 지나 내부에 들어선 재윤은 에스퍼들이 물을 불러와 불을 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콜록콜록, 권해일도 못 찾았는데 불이나 끄고 있어도 되는 거냐?”

“D급이 A급 찾으러 가서 뭐 하려고. 물 좀 팍팍 뿌려 봐.”

“그러는 넌 C급씩이나 되면서 불 하나 잠재웠다고 마나가 후달리잖냐. 그래 가지고 얻다 써먹냐?”

“그거야 가이드랑 한판 때리고 오면 해결될 건데 뭐가 문제야.”

매캐한 연기에 숨 쉬기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갈구며 투덜거리던 빌런의 대화 중 재윤의 귀를 붙드는 단어가 있었다.

“거기 키 큰 놈, 멀뚱히 서 있지 말고…… 켁!”

재윤의 손짓 하나에 잿더미가 된 소파가 C급 빌런의 몸 위로 떨어져 내렸다.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시커멓게 탄 소파에 짓눌린 빌런은 그제야 재윤을 알아보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연달아 들려오는 쿵 쿵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화면을 통해 볼 때는 사람 하나 해칠 줄 모르는 앳된 새내기로만 보였던 재윤이 냉기가 흐르는 얼굴을 하고 눈에 보이는 빌런들을 죄다 물건으로 찍어 눌러 제압하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아 더욱 두렵게 느껴졌다. 몇몇은 이능을 사용해 벗어나려 했지만, 여러 번 쌓이는 무게들로 인해 결국 꼼짝도 할 수 없게 됐다.

제일 먼저 소파에 찍혀 쓰러진 남자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은 채 일을 벌인 재윤이 다가오자 저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려 왔다. 재윤은 서두르는 기색 없이 남자의 앞까지 다가와 단 한 마디를 꺼냈다.

“가이드.”

그 목소리가 어찌나 무겁고 진지한지 남자는 뭐라도 답을 내놓고 싶어졌다.

“어디 있지?”

“가이드 룸에 있어요.”

“가이드 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 소파만 좀 치워 주세요. 수, 숨 쉬기가 힘들어서.”

재윤의 손끝이 가볍게 움직이자 소파가 순식간에 들렸다. 이능을 사용하는 데 딜레이도 없이 빠르고 정확했다. 허둥지둥 일어나던 남자는 발목이 접질렸는지 절뚝이다 재윤의 서늘한 시선에 발에 힘을 주고 앞서 걸어 나갔다.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면 해일과 따로 움직이지 말 걸 그랬나 싶으면서도 일이 너무 쉽게 풀리자 불안함을 떨치기 힘들었다. 함께 들어온 강광을 찾아 힐끗 돌아보자 알아서 숨었는지 문틈으로 핸드폰만 빼꼼히 나와 있었다. 안전한 곳은 알아서 잘 찾아가니 문제없겠다 싶어 형을 찾는 데 집중했다.

남자를 쫓아 걷는 동안 마주친 빌런들은 죄다 벽을 뜯어 멍석말이하듯 제압해 버렸다. 종종 염력으로 제압이 안 되는 이능을 가진 자와 마주쳤지만, 그때마다 무게를 더하거나 해서 기절시켜 버렸다.

“일부러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거라면…….”

“아니에요. 아까 보셨다시피 불이 나서 다들 몰려오는 것뿐이에요.”

“서둘러.”

“다리가 아파서 그래요. 소파로 막 찍어 누르니까 별수 있나요.”

재윤이 자비 없이 제압하는 것 같아도 지금까지 크게 다치거나 피를 본 일은 없었다. 처음에는 겁을 먹었던 남자에게도 여유가 생겼다. 여유가 생기니 수작을 부리려 머리를 굴리는 걸 알아챈 재윤은 남자의 눈앞으로 쇠 파이프를 띄워 보여 주곤 납작하게 눌러 버렸다.

“흐익!”

“쓸모없는 다리라면 하나만 있어도 되겠지.”

“다, 다 왔습니다. 여기 복도로 들어가면 가이드 룸이에요.”

그제야 순순히 위치를 알려 준 남자를 다른 빌런들처럼 벽을 뜯어내 결박했다. 밧줄이나 수갑 따위는 쉽게 풀어 냈을 테지만, 벽을 뜯어내 온몸을 감싸 버리니 특별한 이능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꼼짝할 수 없었다.

가이드 룸 앞에 선 재윤은 긴장을 억누르며 곧바로 문을 열었다. 침대뿐인 방 안을 빠르게 훑은 재윤은 가이드 제복을 입은 이들을 보고 멈칫했다. 이곳에 있는 가이드는 세 명뿐이었다. 재하와 함께 납치된 가이드의 숫자보다도 적었다.

햇빛을 못 봐 창백해진 얼굴들이 재윤을 알아보고 붉게 달아올랐다.

“저, 정말 구하러 오셨군요.”

“살았다. 우린 이제 산 거야.”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가이드들의 행동에 재윤은 손을 들어 저지했다. 가이드들이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멈춰 서자 재윤이 빠르게 말을 꺼냈다.

“현재 내부가 혼란스럽습니다. 다칠 수 있으니 이곳에서 벗어나지 마세요.”

“구, 구하러 오신 게 아닌가요?”

간절한 가이드의 모습에 재윤은 흔들렸지만, 그들을 버리는 건 아니었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협회에서 지원이 올 겁니다. 그 전까지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저흴 버리는 건가요?”

다른 가이드에 비해 덤덤한 목소리가 떠나려는 재윤을 붙잡았다. 이들 중 가장 멀쩡해 보이는 가이드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에 재윤은 조금 망설였지만, 이내 반쪽짜리 진실을 알렸다.

“납치된 가이드의 숫자는 최소 다섯 이상입니다. 여기 계신 세 분도 물론 반드시 구해 낼 겁니다. 하지만 협회가 오기 전까지는 가이드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재윤은 스스로 말하면서도 변명이고 포장일 뿐이라는 걸 잘 알았다. 형을 찾기 위해 빌런의 아지트를 찾아 헤매면서도 납치된 가이드의 안위는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았다. 오로지 형 한 사람에게만 집중된 걱정으로 모든 걸 뒷전에 두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진심을 담아 전했다.

“꼭 다시 돌아올 겁니다.”

다행히 재윤의 진심이 전해진 건지 서글픈 눈을 한 가이드의 고개가 작게 끄덕여졌다. 밖으로 나와 문을 닫기 전, 다시금 마주친 가이드의 젖은 눈망울에 재윤은 그제야 그가 누구인지 떠올랐다.

회귀 전, 권해일의 전담 가이드. 오랜 시간 험하게 다뤄져 시들어 가던 D급 가이드였다.

이번에는 다른 삶을 살게 되리라 여겼던 인물이 이곳에서 또다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을 알게 되자 동정심이 일었다. 형을 찾고 나서 반드시 이들도 구해 내겠다 다짐하며 조금 전 남자를 묶어 둔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금방 도착한 재윤의 코가 매캐한 연기 냄새와 섞인 비릿한 피 냄새를 맡았다.

불안함에 달려가 보았지만, 길을 안내해 주었던 남자는 이미 유명을 달리한 후였다. 다만 그 형태가 의아했다. 마치 커다란 공에 짓이겨진 것처럼 보였다.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해치는 현장은 재윤에게 익숙했다. 현재에는 있어선 안 될 기시감이 재윤을 불안하게 했다.

처음 들어왔던 장소로 되돌아가는 내내 재윤이 잡아 둔 이들은 전부 같은 방식으로 숨이 끊어져 있었다. 둥글게 파인 바닥과 벽을 보며 재윤은 단 한 사람을 떠올렸다.

“이런 방식은…… 아직 쓰지 않을 때인데.”

방어 능력을 공격용으로 사용할 때 나타나는 흔적은 의심할 것 없이 주도준의 행적이었다. 다만 아직 일렀다. 사람을 해치는 데 주저함이 사라지고 능력을 사용하는 데 능숙해진 후에야 쓸 수 있는 방식이었다.

“늦었잖아.”

강광의 이능을 사용하고자 다시 돌아온 장소는 피로 흥건하게 물들어 있었다. 재윤이 공간에 들어서자 투명한 막 위로 흐르던 피가 방어 막이 사라짐과 동시에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기다리기 지루해서 결국 내가 나서 버렸어.”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띤 도준의 얼굴에서 미래의 주도준이 보였다. 착각이라 여기기엔 이능을 사용하는 방식 역시 똑 닮아 있었다.

“그런 표정 오랜만에 보네, 재하 동생.”

“개새끼가…….”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주도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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