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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8화 (18/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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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검은 세단을 타고 이동한 곳은 병원이 아닌 대성 그룹 산하의 고급 리조트였다.

정확히는 그 리조트 인근의 신축 건물로, 바깥에서 보기엔 번잡해 보였다. 그러나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직원 외에 손님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재하와 달리 재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뭐야, 검사받는다더니 병원이 아니고 호텔을 왔네?”

“형, 여기 검진 센터 맞아. 아직은 에스퍼의 존재가 비공식이라 위장한 거야.”

“아, 에스퍼. 어어, 그래.”

재윤의 대답에 재하는 짜게 식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로비의 화려한 내부 장식에 재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와, 처음부터 여기 데려왔으면 뭐라고 했어도 다 믿었겠다.”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에스퍼’라는 재윤의 말을 믿지 않고 흐린 눈 뜨던 재하였다. 보지 않으면 믿지 못하면서도 이럴 땐 또 단순한 재하의 모습에 해일은 옅게 웃으며 안으로 이끌었다.

세 사람이 들어서자 직원들이 깍듯이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편히 모시겠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여기 서재윤 씨는 긴급 검사를 받게 되었으니 최우선으로 준비해 주세요.”

“예, 바로 검사실로 모시겠습니다.”

제복 입은 직원의 인사에 어색하게 맞인사 하는 재하와 달리 해일과 재윤은 익숙하게 안내받아 앞으로 나아갔다. 해일은 그렇다 쳐도 재윤마저 불편해하지 않자 소외된 기분에 재하의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기민하게 이를 알아챈 해일이 걸음을 늦춰 재하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서재윤 씨에게 필요한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재하는 편의를 즐기면 됩니다.”

믿음직스러운 웃음을 짓는 해일의 말은 무게와 깊이가 있어 절로 신뢰가 생겨났다. 그의 말대로 재윤이 무슨 검사를 받든 자신은 시간을 때우며 놀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그래도 동생 혼자 두는 건 좀 그런데…….”

재하의 작은 중얼거림을 앞서 걷던 재윤이 놓치지 않고 돌아봤다.

“형, 이거 검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재하의 질문에 재윤은 귓속말로 작게 속삭였다.

“이미 해 본 거니까.”

던전이네 마물이네 하는 이야기는 벽을 통과하는 걸 본 후로 어느 정도 믿기로 마음먹었으나, 회귀만큼은 여전히 믿기 힘들었다. 게다가 해일과 함께 던전에 들어갈 정도인 재윤이 회귀 사실은 숨기려는 듯 작게 말하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미 길마 형도 다 아는 거 아니었나? 아니면 이건 비밀인가? 아니면 역시 회귀는 농담?’

상황이 모호해 재하는 일단 입을 꾹 다물었다.

“대성은 마음에 안 들지만, 시설 하나는 최고니까. 형이라도 재밌게 놀아.”

“뭐 하고 놀라고?”

“뭐든. 대신 꼭 저 사람 곁에 붙어 있어.”

“길마 형?”

“응. 권해일……. 해일 형과 함께 있으면 안전해.”

지금까지 재윤이 재하의 주변 사람에게 보이던 모습과 달리 대놓고 믿음을 보였다. 재하에게는 가볍게 즐기라 말하던 재윤이 해일을 볼 때는 또 달랐다.

“형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마세요.”

재윤은 목소리 톤부터가 달라졌다. 묵직하고 단호해 절로 집중하게 했다.

“절대 혼자 두지 마세요. 누구도 형에게 닿지 않게 당신이 지켜요.”

“그러지.”

재윤은 과할 정도로 해일에게 재하를 부탁했다. 절대 눈을 떼지 말라거나 한눈팔지 말라며 몇 번이나 경고했다.

해일은 재윤의 경고가 진심임을 알았다. 혹여나 있을지 모를 다른 에스퍼가 재하와 접촉한다면 그 뒤의 일은 장담할 수 없었다. 인내가 일상인 해일조차 탐내게 만든 재하의 능력은 특별했다. 각성 전인데도 이 정도이니 미래가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런 재하를 다른 에스퍼에게 닿게 한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불 보듯 뻔했다.

재윤이 이 점을 걱정해 재하를 보호하며 센터에 오지 않으려 했던 것임을 해일은 확신했다.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지.”

“좋네요. 믿을게요.”

그제야 안심한 재윤이 사람들과 함께 안으로 향하기 전 재하에게 다가왔다.

“형, 이번만큼은 꼭 내 말 들어줘.”

“어, 그래.”

“갔다 올게. 하루만 기다려 줘, 형.”

“그, 그래. 후딱 갔다가 와.”

애틋하다 못해 절절한 재윤의 포옹에 재하의 손이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야야, 좀. 쪽팔리게.”

안 그래도 재윤과 해일이 진지하게 자신의 안위를 주고받는 것에 오글거리다 못해 민망해 죽을 것 같던 차였다.

아쉽다는 듯 느리게 재하를 놓고 직원들과 안으로 들어가는 재윤의 시선이 끝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무슨 검사를 하는지 몰라도 재하마저 살짝 불안해지려 했다.

“이게 다 농담은 아니겠지.”

해일과 재윤이 자신 하나를 속이고자 짜고 치는 건 아니리라. 잠시나마 의심해 보지만, 호텔까지 빌려 속일 만큼은 아닐 거다.

“혹시 배고프지 않습니까?”

“음. 아직은 괜찮아요.”

재윤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야 해일은 재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술은 좋아합니까? 여기 라운지 야경이 제법 볼만합니다.”

“그런 데를 가도 돼요? 재윤이가 사람들 만나지 말라고 했는데.”

“직원 외엔 아무도 없습니다. 그들도 불편하면 전부 물리겠습니다.”

“아, 아뇨. 그건 아니고요. 어…… 저 여기 호텔이니까 방에서 쉬어도 되죠?”

“물론입니다.”

아무래도 재윤을 정체 모를 검사실에 보내 놓고 혼자 리조트를 즐길 마음은 들지 않았다.

방으로 향하는 내내 해일은 수영장이나 헬스장 등 이용할 만한 시설을 알려 주었으나 재하는 생각에 잠겨 있는지 반응이 없었다.

“이곳에서 머무시면 됩니다.”

“네, 감사해요.”

해일이 안내해 준 방은 난생처음 와 보는 스위트룸으로, 넓고 쾌적했으나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들뜨지 않았다. 재하의 우울함을 알아챈 해일이 가까운 소파로 이끌어 앉히자 순순히 따라왔다.

“재하, 신경 쓰이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 주세요.”

게임에서 둘이 사냥할 때면 자주 듣던 진중한 해일의 목소리가 익숙해 재하는 자연스레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게요. 전 동생이 하는 말을 반쯤 농담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군요.”

“아니면 진짜로 어디 사이비 종교에 빠졌거나. 애가 좀 무뚝뚝해도 착하고 순진한 구석이 있어요.”

착하고 순진한 건 재하처럼 보였지만, ‘우리 애는 착해요.’ 같은 콩깍지 발언에도 해일은 긍정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쵸?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종교는 아닌 거 같고. 그렇다고 농담 하나 때문에 호텔 스위트룸을 빌리는 미친 짓을 길마 형이랑 같이 할 것 같진 않아서요. 무엇보다 둘이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도 너무 궁금하고요.”

해일은 재하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벽은 진짜 어떻게 통과한 거예요? 손에서 불 나오던 거 마술인 줄 알았는데. 다시 벽에서 나올 때 막 몸에서 열기가 엄청나게 났었잖아요. 동생은 웬 검을 들고 굴러 나오질 않나. 이거 위험한 거예요? 지금이라도 재윤이한테 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우울하게 가라앉았던 재하의 목소리가 점점 빨라지더니 흥분을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그런 재하의 손을 해일이 자연스럽게 붙잡아 다시 소파에 앉혔다.

“괜찮습니다, 재하. 제가 아는 건 뭐든 답해 드릴 테니 천천히 말해도 됩니다.”

해일의 믿음직스러운 미소와 단단한 손에 붙잡힌 재하는 저절로 그의 말에 집중했다.

“지금 재하가 가장 궁금한 걸 말해 보시겠습니까?”

“재윤이가 걱정돼요.”

아까까지는 현실감이 없어 어리바리 떨다 여기까지 와 버렸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자신만 걱정하던 재윤의 모습이 눈에 밟혀 들뜨던 감정이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우울해진 이유가 동생을 향한 걱정 때문이었다.

해일은 붙잡은 손에서부터 넘어오는 청량한 기운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을 삼키며 재하의 불안을 해소해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재하, 이미 말했듯 이곳은 리조트로 위장한 센터입니다. 그 증거로 저길 보세요.”

해일의 시선이 가는 방향을 재하가 올려다보자 대놓고 CCTV가 설치돼 있었다.

“……호텔에 저런 거 달려 있어도 돼요?”

“여긴 호텔이 아니니까요. 여기뿐 아니라 침실과 욕실에도 있습니다. 아, 물론 욕실은 일단 녹화는 되지만, 비상시가 아니면 열람하지 않고 폐기됩니다.”

“저기, 저 지금 좀 소름 끼치는데요.”

“센터 안 어디에든 있습니다. 다만 접속 권한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여기까지 말한 해일이 테이블 아래에서 패드 하나를 꺼내 들었다. 몇 가지 절차를 거친 후 재하에게 내민 화면에 침대 위에 누운 재윤의 모습이 비쳤다.

“어? 이거 실시간인가요?”

“네, 여기 보이는 전극으로 일반인과 다른 파장이 있는지 확인하는 중입니다. 짧게는 10분 만에도 끝나지만, 상황에 따라 한 시간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잠들기도 하고요.”

“길마 형도 한 거예요?”

“물론입니다. 아무래도 연구 샘플이 필요하다 보니 저는 분기별로 와서 협조하고 있어 익숙합니다.”

“아프거나 한 건 아닌 거죠?”

“전혀요. 정기 검진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해일이 술술 대답하는 데다 침대에 누운 재윤이 느긋해 보여 재하의 굳어 있던 얼굴이 드디어 풀렸다.

“뭐야. 이런 걸 하러 가면서 왜 그렇게 비장하게 굴고 난리냐고.”

재윤의 비장함은 재하를 두고 가야 하는 데서 온 거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재하는 입으로 투덜거리면서도 동생을 신경 쓰고 걱정했다.

형제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돈독한 우애는 보기 좋았지만, 해일은 에스퍼에게 유일한 존재일지 모를 재하와 가장 가까운 존재가 다른 에스퍼라는 게 불안했다.

형제는 어쩔 수 없어도 두 번째는 돼야 했다. 현재 재하가 해일에게 가진 호감은 게임에서의 관계 때문이었다.

“재하, 게임할까요? 이번에 힐러 아이템을 좀 구하려고 하는데, 드리겠습니다.”

“예? 갑자기요?”

해일은 스스로 말해 놓고도 민망해져 순식간에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호의를 얻고자 대뜸 내지른 말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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