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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17화 (17/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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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잡은 손을 해일이 지그시 잡아 오기에 괜스레 긴장된 재하도 좀 더 강하게 붙잡았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재하.”

“넵, 각오했어요.”

해일이 먼저 움직여 벽 안으로 쑥 들어가자 재윤 역시 그의 어깨를 붙잡은 채 벽을 통과했다. 두 사람을 보며 정말 지나갈 수 있는 벽임을 확신한 재하는 손만 남은 해일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해일의 손이 벽 안으로 완전히 사라지기 전 재하 역시 빠르게 걸음을 옮겼으나 그대로 벽에 부딪쳐 넘어졌다.

“윽!”

벽에서 튕겨 홀로 바닥에 나뒹군 재하는 어리둥절했다.

두 사람은 벽을 통과해 사라지고 재하만 덩그러니 남았다.

“어…… 증거가 아니라 이것도 마술?”

당황한 재하가 중얼거렸지만, 이에 반응해 주는 이는 없었다. 먼지 묻은 바지를 털며 일어나 두 사람이 통과한 벽을 두드려 보니 말랑거리기는커녕 손이 아플 만큼 단단했다.

혹시 다른 벽이었나 싶어 콩콩 두드리고 다니는데 지나온 벽에서 뜨거운 열기와 함께 해일과 재윤이 굴러 나왔다. 말 그대로 굴러 나온 두 사람은 스턴트라도 하듯 두어 바퀴 구르고는 곧바로 일어서 주변을 살폈다.

“형!”

“재하, 괜찮습니까?”

몸에서 열기를 뿜어내는 해일과 빈손으로 들어갔던 재윤이 검을 든 모습에 재하는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어. 나 여기 있는데.”

재하의 기척이 옆에서 들리자 두 사람의 시선이 빠르게 옮겨 왔다.

재하와 눈이 마주친 재윤은 검을 뒤로 던져 버리고 급히 다가가 제 형제를 살폈다.

“괜찮아, 형?”

“어. 근데 저 벽 딱딱하더라?”

얼떨떨하게 말하는 재하의 머리와 등이 먼지투성이였다. 안도한 얼굴로 먼지를 털어 주는 재윤의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미안해, 형. 이 던전은 미각성자가 못 들어가는 던전이었나 봐.”

“아직 연구원에게 공개되지 않은 곳이라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재하.”

재윤과 해일의 사과에 재하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미각성자가 못 들어가는데 재윤인 어떻게 들어갔어요?”

“어?”

“……그렇군요. 분명 미각성자였을 텐데.”

재하의 질문에 재윤과 해일 역시 뒤늦게 상황을 알아챈 듯 당황했다. 이전 던전에서만 해도 재윤에게선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은 해일이 보기에도 재윤에게서 에스퍼 특유의 마나 흐름이 느껴졌다. 재윤이 침묵하는 사이 해일 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서재윤 씨. 이미 알고 있겠지만, 회사에 각성자를 위한 시스템이 존재해. 하루만 시간을 내 주면 확실한 결과로 보여 주지.”

“아뇨, 형이랑 집으로 돌아갈게요.”

방금까지만 해도 사이좋게 해일의 어깨를 붙잡고 벽을 통과했던 재윤이 그를 밀어냈다. 재하를 옆으로 숨기며 계단으로 향하는 재윤의 달라진 태도에 가장 당황한 건 해일이었다.

“서재윤 씨,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그렇다면 말을 해 줘. 오해가 있다면 설명할 기회를 주었으면 하는데.”

“아뇨, 여기선 더 볼일이 없으니 돌아가는 것뿐이에요.”

아니긴 뭐가 아닌가 싶을 만큼 재윤에게서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재하는 자신을 챙기며 앞만 보고 걷는 재윤과 그 곁을 안절부절못하며 쫓는 해일의 그림이 영 이상했다.

재하가 손을 들어 재윤의 귀를 죽 잡아당기자 저항 없이 고개를 기울이며 따라왔다. 예전 같았으면 아프다고 난리를 쳤을 재윤이 재하의 행동에 맞춰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맞췄다.

“형?”

“길마 형한테 제대로 설명해. 갑자기 왜 삐져서 그러는지.”

“저는 괜찮습니다. 신경 써 줘서 고맙습니다, 재하.”

재하가 해일의 입장을 헤아려 주자 재윤의 달라진 태도에 당황했던 그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재윤 역시 다소 감정적으로 굴었다는 걸 인정하는지 한풀 꺾인 태도를 보였다.

“별로. 삐진 거 아닌데.”

“아니긴. 너 길마 형 믿는 거 아니었어? 그래서 던전이니 마수니 하는 거 보여 준다고 같이 움직인 거고.”

“믿긴 믿지.”

이건 또 의외였다.

은연중에 믿음을 드러내는 것과 직접 입으로 말하는 건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다.

잠시나마 경계심을 드러냈던 재윤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결 나아진 분위기에 해일 역시 묻기보다 지켜보았다. 이내 감정을 추스른 재윤이 해일을 마주 보곤 고개를 까딱 숙여 왔다.

“당신한테 불만 있는 건 아니에요.”

“당신이라니. 형을 그렇게 부르면 안 되지. 길마 형, 제 동생도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재하의 참견에 해일은 냉큼 수긍했다.

“물론입니다. 이왕이면 재하도 길마보다는 형이라고만…….”

“저 봐. 길마 형도 괜찮다고 하시잖아. 내가 반년 넘게 봐 와서 보장하는데 우리 길마 형 진짜 좋은 사람이야. 무조건 경계하고 막 그러면 섭섭해. 불만 있으면 말로 해야지.”

일단 우리 길마니까 편든다. 이런 생각이 보이는 재하의 호의에 해일은 호칭에 대한 미약한 불만을 감췄다. 정작 문제는 ‘우리 길마 형’이라는 호칭에 재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는 거였다.

해일은 재윤과 재하의 관계성에 대해 짧은 시간이지만 파악하는 중이었다.

재윤이 재하를 아끼는 건 그와의 대화에서부터 짐작했다. 재윤은 형제였던 재하의 일에 과도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감정적이었다. 그렇게나 소중히 여기는 재하를 자신과 만나게 했다. 재윤이 보인 신뢰는 미래의 해일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재하 쪽에서 해일에게 작은 호감을 보이자마자 재윤은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건 꼭 기억해야 하는 거지.’

해일은 그 감정을 놓치게 된다면 실수할 수 있음을 알아챘다. 해일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했다.

“서재윤 씨가 저를 부르는 호칭은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길마 형도 그래요. 극존칭 쓰니까 거리감 느껴지잖아요. 저랑 나이 차이도 있는데 편하게 말하세요.”

서로의 나이는 모르나 해일의 외형에서 느껴지는 연륜만 보고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해일은 이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재하를 편하게 대할 때 재윤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할 수 없어서였다.

지금도 재하가 자신의 편을 들어 주자 재윤의 얼굴에 불만스러운 감정이 드러났다. 재하가 자신의 편을 들어 주는 걸 멈추게 하고자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 했다.

“차차 노력해 보겠습니다, 재하.”

“재하야~라고 편하게 불러 주세요. 너무 거리감 느껴져서 섭섭하다고요.”

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친근하게 구는 재하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에 오기 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마술을 보여 준 해일은 게임 아이템까지 선물하겠다며 친근감을 보였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익숙한 대화가 오가니 자연스레 해일을 향한 호의가 드러났다. 그렇게 오게 된 곳이 던전이라 해도 재윤도 있었고, 길마인 해일까지 있기에 뭔가 재미난 걸 볼 수 있나 했더니 정작 자신 혼자 벽 밖에 남겨졌다. 따돌림은 아니었지만, 내심 섭섭함을 느끼던 차였다.

재하의 불퉁한 말투에 삐지기 직전임을 알아챈 재윤은 미약한 불만을 지우고 형을 달랬다.

“형, 저 사람…… 권해일, 저 형이 워낙 예의 바른 사람이라서 그래. 한참 어린 나한테도 서재윤 씨라고 부르는 거 보면 알잖아.”

“그래도 너한테만 반말하잖아. 나도 어린데.”

재하의 발언에 미묘한 침묵이 이어졌다. 스물세 살 대학생의 입에서 어리다는 말이 나오니 그보다 어린 재윤은 물론 꽤 나이 차이가 나는 해일 역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침묵에 머쓱해진 재하가 눈을 데굴 굴리는 걸 본 해일은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해서 재윤의 경계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다행히 해일이 망설이는 사이 재윤이 재하를 달랬다.

“형, 저 사람은. 아니, 해일 형은 앞으로 자주 만날 사람이니까 차차 편해지면 되잖아. 매일 게임에서도 만난다며. 이미 충분히 친한데 말투 하나 때문에 삐지고 그럴 거야?”

“누가 삐졌대. 어이없어.”

형과 동생이 바뀐 것처럼 어르고 달래는 모습을 해일은 유심히 지켜보았다.

미래를 알고 있는 재윤은 재하를 무척이나 걱정하고 아꼈다. 그에 비해 재하는 무방비할 정도로 모든 상황을 곧잘 받아들이면서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재윤이 미래를 안다 해도 천진할 정도로 상황을 좋게만 받아들이는 재하에게 미래에 벌어질 불행을 알리는 건 쉽지 않았으리라.

지금만 해도 그랬다. 해일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각성자 테스트 후 지원을 받자는 말에 태도가 바뀐 재윤에게는 이유가 있을 터. 재윤의 변화와 재하를 숨기려는 몸짓에서 해일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지뢰를 밟기 직전 해일이 할 수 있는 건 발을 빼는 것이었다.

“서재윤 씨를 불편하게 했다면 사과하지. 각성자 지원 시스템이 도움 될 거로 생각해 언급한 것뿐, 억지로 권할 생각은 없으니.”

해일의 사과에 재윤 역시 한풀 꺾인 기세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니에요. 제가 예민했던 거니까.”

신경질적으로 몇 번 더 머리를 쓸어 넘기던 재윤이 재하와 해일을 번갈아 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하나만 묻죠. 지금 검진 센터에 다른 에스퍼가 있나요?”

“아니. 그곳은 검사를 위한 장소로, 각성한 에스퍼는 다른 센터에 머물지. 한동안 각성 검사 스케줄도 잡히지 않았고.”

“그렇다면 받을게요.”

“억지로 받을 필요는 없지만, 해 둔다면 도움이 되겠지.”

“그렇겠죠. 정식으로 던전을 이용할 수도 있게 될 거고. 장비도 우선 지원 받을 수 있을 테니.”

재윤에게 따로 언급한 적 없어도 그는 회사의 지원 내역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형과 당신…… 해일 형이 만나게 된 이상 더는 숨길 수 없을 테니까요.”

정확히 무얼 숨기려 했는지 재윤은 말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재하가 있다는 것으로 충분히 답이 되었기에 해일은 더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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