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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7화 (7/142)

7

급한 건 눈앞의 돼지였다.

테트리스 하듯 냉동실의 빈칸을 꽉 채워도 반 마리 이상 남아 냉장실까지 가득 차 버렸다. 집에서 훈제하는 방법은 무리였다. 일단 구울 수 있는 건 굽고 삶을 수 있는 건 삶기 시작하자 집 안에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한참 요리에 열을 올린 끝에 도저히 둘이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반찬 통이 쌓였다.

“맛있는 건 나눠 먹어야 하는데…….”

이웃과의 교류를 소중히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절친이 바로 윗집이었다. 재윤이 발작하듯 싫어하는 것만 아니라면 좋은 나눔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힐끗 눈치를 보자 의외로 평온했다.

“그 새끼…… 주도준 집에 가져다줄 거면 내가 가져다줄게.”

“진짜? 내가 가서 주고 와도 되는데.”

“형이랑 그 새…… 주도준을 단둘이 만나게 둘 거 같아?”

“그래그래. 가서 싸우지 말고. 딱 고기만 주고 와.”

뭐 때문에 재윤의 심사가 뒤틀렸는지 몰라도 정작 필요한 상황이 되니 외면하지는 않았다. 그거면 됐지 싶어 재하는 지금까지 만든 고기 요리들을 차곡차곡 쌓아 재윤에게 넘겼다. 돼지고기장조림, 찹스테이크, 구이, 수육 등등. 갖은 고기 요리들이 엄마가 챙겨 주는 반찬처럼 차고 넘칠 만큼 담겼다.

“뭘 이렇게 잔뜩 주는데?”

“그러게. 삼겹살 사 오랬더니 누가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오더라고.”

재하의 농담 섞인 핀잔에 재윤의 표정은 불만이 가득했지만, 입을 꾹 다문 채 집을 나섰다.

재윤이 집을 나서고 한동안 귀를 기울였지만, 다행히 별다른 소음 없이 돌아왔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바로 고맙다는 도준의 톡까지 받아 안심한 재하는 족발에 한방 음료를 쏟아 넣으며 마지막 요리에 열을 올렸다.

하루를 꼬박 요리하느라 지쳐 쓰러진 늦은 밤.

“잠이 안 와…….”

블랙 피그. 진짜 남자한테 좋은 게 맞기는 한가 보다.

재하는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책상 앞에 앉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낮에 못 달린 게임이나 하자 싶어 밤새도록 달렸다. 언제나처럼 길마만이 새벽까지 남아 풀 파티가 아닌 1:1로 다닌 덕에 오랜만에 경험치를 독식했다.

오죽하면 길마가 먼저 쉬어야겠다며 게임을 나갔다.

“헐, 뭐야. 해 떴네?”

밤을 꼬박 새운 재하는 여전히 멀쩡한 몸 상태에 의아했다. 하다못해 세수할 때 피부 상태도 반들반들하니 최상이었다.

“이건 남자한테만 좋은 게 아닌 거 같은데?”

감탄하며 밖으로 나오자 어젯밤 만들어 둔 돼지고기 김치찜이 바글바글 끓으며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풍겼다.

“형, 아침 먹고 가.”

씻고 나오니 차려져 있는 밥상이라니.

부모님과 함께 살 때면 모를까, 재윤과 단둘이 살면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대부분은 자신이 마지못해 차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식의 긍정적인 변화라면 재윤이 다소 엉뚱한 사고방식을 가지더라도 환영이었다. 기특한 동생의 행동에 재하는 큼직하게 썰린 고기를 떠내며 칭찬했다.

“야, 블랙 피그란 거 진짜 좋은데? 붕붕 드링크 먹은 것보다 더 좋아.”

“응. 형이나 나 같은 사람한텐 특히 더 그럴 거야. 아무래도 던전에서 나온 건 이능력자한테 잘 맞거든.”

하루가 지나도 여전히 계속되는 컨셉에 재하는 딱히 지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건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로 결심했기에 이럴 때는 무한 긍정으로 갈 생각이었다.

“후아, 진짜 배부르네.”

하룻밤 푹 묵혀 둔 김치찜의 야들야들하고 진한 맛이 입맛 없는 아침부터 과식을 불러왔다.

다시 양치하고 평소처럼 도준과 함께 등교할 생각으로 움직이던 재하는 바로 뒤에 따라붙은 재윤의 존재에 불길함을 느꼈다.

“진짜로 따라오려고?”

“응, 직접 봐야겠어.”

“그럼 아침부터 도준이한테 시비 걸지 말고 얌전히 따라와.”

“오늘은 따로 가. 형이 애도 아니고 친구랑 대학까지 같이 갈 필요 없잖아.”

대학생씩이나 돼서 동생이랑 손잡고 등교하는 건 말이 되나 싶으면서도 오늘 하루 정도는 고집을 들어주기로 했다.

재하가 도준에게 따로 가자고 톡을 보내자 다행히 어젯밤 잠이 하도 안 와서 먼저 출발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걸 어깨너머로 확인한 재윤이 발걸음도 가볍게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오늘 하루 동생 놈 학교 구경시켜 주는 셈 치지, 뭐.’

봉사하는 마음으로 재하는 오늘 하루를 최대한 재윤에게 맞추기로 마음먹었다.

2. 왜 내 교우 관계를 니가 관리해?

재하가 다니는 대학은 위치는 애매해도 공기 하나는 끝내줬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등교하려면 산 아래에서 차량을 이용해 올라와야 했다. 서울 도심에 이런 위치에 있는 대학이 흔할까.

서울 속 시골 같은 분위기지만 시설은 웬만한 명문대 부럽지 않았다. 교수진도 괜찮고, 무엇보다 학식이 등록금을 쏟아붓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극상의 맛을 자랑했다.

재하 역시 재윤에게 학교를 구경시켜 주고 나면 학식의 맛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대학이라고 별거 없어. 입구가 좀 화려하긴 하지만 이게 다 총장의 취향이 괴랄해서 그런 거고.”

입구부터 압도적인 크기와 독특한 장식이 총장의 씀씀이와 괴상한 취향을 나타냈다. 변명하던 재하는 썩어 있는 재윤의 표정을 보고 더욱 민망해졌다.

“야야, 일단 들어가면 멀쩡해. 오히려 다른 대학보다 훨씬 세련됐다니까.”

민망함에 재하는 급히 변명하며 빠르게 입구를 지나쳐 들어갔다. 지금까지 재하의 손을 부득부득 붙잡고 따라왔던 재윤이 손을 놓치고도 멍하니 입구를 보고 서 있었다.

“……여기에 저게 왜 있어?”

“저거라니?”

안으로 들어간 재하의 질문에 재윤이 입구의 장식에서 눈을 떼고 그를 쳐다봤다.

“이능 감별기.”

“이능?”

“각성 전 데이터를 모으는 건데 그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대학교 입구에 이능 감별기를 설치할 거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이런 게 시중에 나와 있어선 안 될 시기였다. 재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한 미래의 일부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심각해진 재윤의 표정에 재하가 다시 입구로 돌아와 팔을 붙잡았다.

“그게 뭔데? 일단 들어가면서 설명해. 다들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커다란 놈이 시커먼 옷을 입고 교문 정중앙에 서 있으니 이목이 집중됐다.

재하가 팔을 잡아당겨도 재윤은 요지부동이었다. 대체 무슨 컨셉질을 시도 때도 없이 하는 건지 답답해진 재하가 포기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재윤은 입구를 피해 옆으로 이동했다. 3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벽을 훌쩍 타고 넘은 재윤이 순식간에 안으로 뛰어내렸다.

“어어?”

뭘 하나 싶어 지켜보다 벽을 타고 넘는 재윤을 목격한 재하가 당황해 안쪽으로 내달렸다. 손을 짚을 곳도 없어 보이는 높은 담을 쉽게도 넘어오는 재윤이 신기하면서도 황당했다.

“야, 왜 멀쩡한 입구를 두고 담을 넘어?”

재하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재윤은 여전히 입구를 노려보며 되물었다.

“형, 대체 무슨 대학을 다녔던 거야?”

“뭐긴, 등급 맞춰서 들어온 거지. 그래도 여기 면접 까다롭기로 유명해.”

여전히 재윤의 표정이 풀리지 않자 재하는 저도 모르게 변명하듯 설명을 이어 갔다.

“나보다 등급 높은 애가 면접에서 떨어졌거든. 내가 면접 볼 때는 분위기가 되게 좋긴 했고.”

“면접 여기서 봤어? 저 입구로 들어왔고?”

“어, 당연하지.”

뻔한 질문을 한 재윤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부모님도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묻지 않았던 것 같은데. 재윤의 과도한 관심에 머쓱해진 재하가 팔을 잡아끌었다.

“학교 구경시켜 줄게. 들어가자.”

재하를 따라 대학을 둘러보는 재윤의 눈이 날카롭다.

처음 따라나설 때만 해도 재하의 주변 인물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으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일반인일 때라면 몰랐겠지만, 재윤은 이곳이 각성을 대비한 공간임을 알아챘다.

말도 안 되게 단단한 벽하며 지나치게 많이 배치된 비상구와 소방 시설. 경비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건장해 경호원처럼 보이던 경비원의 숫자 역시 상당했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대학이란 공간에 재윤의 눈이 쉼 없이 주변을 살폈다. 그런 상황을 모르는 재하는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동방 들러야 하는데 같이 갈 거지?”

“먼저 가. 잠깐만 살펴보고 쫓아갈게.”

“어? 같이 안 간다고?”

대학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재하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것같이 굴던 재윤이었다. 정작 학교에 도착하고부터는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재하가 챙기는데도 가볍게 대꾸해 왔다.

도준이가 있었으면 이런 식으로 부주의하게 굴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자 재하는 퍼뜩 놀라 고개를 털었다.

자신이 떠올린 아쉬움이 당혹스러웠다. 고작 이틀 만에 달라붙는 동생에게 익숙해져 버린 게 민망했다.

“그럼 둘러보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어.”

역시 지켜 주겠다는 둥 떨어지지 않겠다며 매달리던 건 이틀을 넘기지 못한 컨셉 놀이였던 게 아닐까.

무심하고 귀찮아하는 재윤은 재하에게 익숙했다. 조금 섭섭해지려는 걸 애써 털어 낸 재하는 곧장 동아리방으로 향했다.

교내에 배치된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후 넓은 복도를 걷던 재하는 새삼 학교 설비가 좋아 보였다. 다른 대학에 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신축 건물인 경우는 깨끗하긴 해도 이 정도 규모로 크고 쾌적하진 않았다.

대학 따위 관심 없다며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실패한 재윤에게 어쩌면 진학에 대한 꿈을 꾸게 해 주지 않을까 기대감도 들었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건물에 정신이 팔린 재윤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다소 들뜬 기분으로 동방에 도착한 재하는 한껏 텐션을 올렸다.

“내가 왔다!”

게임 동아리 방답게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웬일인지 한산했다.

최신 컴퓨터와 각종 게임기에 푹신한 소파까지 갖춰진 동아리방은 항시 학생들로 북적여 왔다.

“재하 왔니?”

“어? 영우 선배?”

하필 동아리방에는 동생이 경계했던 이영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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