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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동생의 감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3화 (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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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피아노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아 평소에도 거슬리지 않았다.

“어디 가?”

빠르게 밖으로 향하는 재윤을 재하가 쫓았다. 문을 닫기 전 돌아본 재윤이 재하에게 경고했다.

“형, 무슨 소리가 나든 집 안에서 나오지 마.”

“야, 너 지금 표정 겁나게 살벌하거든?”

농담처럼 가볍게 재윤을 말리려던 재하는 빠르게 닫힌 문에 벙쪘다. 이런 상황에 가만있을 재하가 아니었다.

“서재윤! 더불어 사는 세상이란 말도 몰라? 어?”

화를 내며 문밖으로 나온 재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재윤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구식 복도형 아파트이다 보니 몇 초 만에 엘리베이터나 비상계단까지 주파하기엔 거리가 꽤 됐다. 문 뒤에 있나 살피는 재하의 귀에 큰 소음이 들려왔다.

쿠당탕.

“뭐, 뭔데?”

황당해하던 재하는 위층에서 들려온 소음에 화들짝 놀라 내달렸다.

“설마 벌써 올라갔다고?”

비상계단을 두 개씩 올라 뛰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층을 올라가 복도를 내달리는 동안 계속해서 소음이 들려왔다. 그것도 동생, 서재윤의 목소리만이 시끄럽게 들려와 재하는 이를 악물고 문을 두드렸다.

“야, 이 미친놈아. 너 당장 나와. 빨리!”

“문 열려 있어. 들어와서 네 동생 좀 말려 봐라.”

안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재하의 오랜 친구, 주도준이었다.

재윤의 갑작스러운 침입에 화가 날 만도 한데 도준의 목소리는 평소와 비슷하게 온화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어설픈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 이곳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 동기로 이어진 절친의 집이었다.

문을 연 재하는 제집과 같은 구조이지만, 훨씬 더 포근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 한가운데에 시커멓게 커다란 동생과 동생 못지않게 큰 갈색 머리의 친구 도준이 웃는 얼굴로 대치 중이었다. 정확하게는 일방적으로 재윤의 손에 멱살을 잡힌 도준이 실실 웃고 있었다.

“악! 너 미쳤어? 걔 멱살을 왜 잡아?!”

당황한 재하가 재윤에게 달려들며 소리치는데도 도준은 평온하게 말을 걸어왔다.

“재하야, 네 동생이랑 눈인사만 했던 거 같은데 오늘따라 되게 친근하게 군다?”

“미안. 내가 나중에 설명할게. 지금은 동생 새끼만 회수해 가도 되겠냐?”

재하는 최대한 미안한 얼굴로 도준에게 사과하며 재윤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돌덩이 같은 팔뚝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도준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하아, 그 손 놔라. 일 키우기 싫으면.”

“안 돼, 형. 내가 돌아온 이상 모두 바로잡아야 해.”

재윤은 재하의 만류에도 붙잡은 멱살을 놓지 않았다. 재하는 최대한 화를 꾹꾹 누르며 이성적으로 굴기 위해 애썼다.

“아니, 대체 뭘 바로잡겠다는 건데?”

“이 새끼를 형한테서 떼어 놓을 거야.”

“내 친구를 니가 왜 떼어 놔? 그리고, 손 놓으라고. 도준이 너도 맨날 실실 웃지만 말고 이럴 땐 화내도 돼. 여차하면 패도 되고.”

재윤을 말리다 힘에 부친 재하는 실실 웃고만 있는 도준에게 도움을 청했다. 정작 도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이해심 가득한 웃음만 보였다.

“네 동생이 이유가 있어서 이러는 거겠지. 대화하면 풀리지 않을까?”

본인이 회귀했고 버리지 말라 매달리는 동생과의 대화를 친구 앞에서 하라니.

이건 무슨 수치 플레이인가.

뇌가 청순해질 것 같은 기분에 고민하는 사이 재윤에게서 서글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형은…… 이 새끼가 나보다 좋아?”

신이시여. 그냥 제가 기억 상실에 걸리게 해 주세요.

재하가 신을 찾는 동안에도 도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멱살을 잡은 재윤을 보는 시선이 더 부드럽게 변했다.

“너, 형을 좋아하는구나?”

“당연하지. 그러니까 넌 빠져.”

“악! 뭔 개소리야! 도준아, 미안한데 얘가 좀 술이 안 깬 거 같으니까 다 잊어 주라.”

재하와 눈이 마주친 도준의 인자한 시선은 무언가를 응원하는 듯했다.

평소에도 온화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이라 싸울 일 없는 친구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 자애로웠다.

“동생이랑 사이가 좋은가 보네.”

“좋기는. 원수가 따로 없지.”

그러고 보니 유독 형제자매에게 호의적이던 도준이었다. 재윤의 이상 행동을 바람직하게 해석한 도준의 호의구나 싶어 재하는 이 일을 조용히 덮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이해심 많은 친구 덕에 정줄 놓은 동생을 회수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형, 이 새끼랑 왜 눈빛 교환을 해?”

되지도 않을 말을 해 대는 동생만 아니었다면.

튀어나오려는 주먹과 욕을 꾹꾹 눌러 담은 재하는 애써 재윤의 팔을 잡아당겼다.

“교환은 무슨. 미친 동생 둔 죄로 눈으로 사과한 거거든?”

“그러지 마, 형. 사과는 형이 이 새끼한테 받아야지.”

단호한 재윤의 태도에 여전히 멱살 잡힌 도준이 고개를 기울여 재하를 바라봤다.

“음, 재하야. 혹시 내가 두 사람에게 실수한 게 있다면 말해 줄래?”

“없어, 없다고. 얘가 어제부터 술이 덜 깼는지 좀 이상해.”

설마 이 상황에 재윤이 피아노 소음이 어쩌고 하면 입을 틀어막고자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얀마, 진짜 당장 그 손 안 놓으면 용돈 끊는다.”

“형이야말로 이 새끼 끊어 내.”

정말이지 동생이 왜 자신의 교우 관계를 가지고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재하는 도준에게 도움을 받으려 눈짓을 해 봤지만, 정작 이쪽은 또 머리가 꽃밭인지 태연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있었다.

“우리 몇 번 봐서 얼굴은 익숙한데. 동생은 내 이름 몰라? 난 주도준이야. 도준 형이라고 불러.”

“하. 뻔뻔한 건 여전하네.”

친화력을 보이는 도준과 달리 아웃사이더의 길을 걷기로 작정한 재윤의 비꼬는 반응에 재하는 사정없이 등짝을 후려쳤다.

“좀! 그 입 좀! 다물라고! 다 늙어서 중2병 왔냐고! 아오, 손 아파!”

사람이 아닌 나무를 내려치는 타격감에 재하의 손이 저릿저릿했다.

동상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재윤과 손이 아파 부들거리는 재하를 번갈아 본 도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이 화가 많이 났나 봐. 나름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왔는데. 이렇게까지 화를 낸다면 내가 잘못한 게 맞겠지.”

“아니, 넌 법 없이도 살 놈이잖냐. 이건 전적으로 다 동생 놈 탓이야.”

“미안해, 재하야. 나중에라도 제대로 기억해 내면 그때 다시 사과할게.”

“아오, 너까지 왜 진지 빨고 난린데? 진짜 닭살 돋아 미치겠네.”

중2병과 친절맨이 만나니 일 수습이 안 됐다. 이 상황을 평범남 서재하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통나무 같은 등짝을 패느라 발갛게 부은 손을 털며 물러나던 재하는 이어진 도준의 말에 재윤의 분위기가 바뀌는 걸 느꼈다.

“너한테도 사과할게, 재하 동생.”

“……씹새끼가.”

잘못도 안 한 도준이 사과하자 도리어 재윤의 기세가 심각하리만치 사나워졌다. 낮게 읊조린 욕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위험했다. 멱살이 잡힌 채 웃음을 잃지 않던 도준의 표정이 굳을 만큼.

물러섰던 재하가 본능적으로 재윤에게 달려들었다.

“미친놈아!”

재윤의 등에 매달려 목과 머리를 끌어안은 채 몸을 뒤로 젖혀 도준에게서 떨어지게 만들려 했다.

도준 역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느슨해진 멱살을 풀고 뒤로 물러섰다.

다행히 재윤은 물러서는 도준을 쫓지 않았다. 대신 온몸으로 자신을 끌어안은 재하의 팔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탭을 하는 건가 싶어 재하는 더욱 팔에 힘을 주어 재윤을 꽉 끌어안았다.

“안 놔. 절대 안 놓을 거니까 항복해도 소용없어.”

“이번엔 날 선택해 줬구나, 형.”

누구 하나 죽일 것처럼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던 재윤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변해 물기가 가득했다. 재하는 소름이 끼쳐 발작적으로 팔을 풀어낼 뻔한 걸 간신히 참아 냈다.

맞은편에 선 도준의 황당함과 곤란함 중간쯤의 표정을 보니 어제부터 오늘까지 수시로 봤던 애틋한 얼굴을 하고 있을 터.

나중에 이 흑역사를 어떻게 하려고 재윤은 남의 집에서 이러고 있는 걸까. 재하는 형이기에 도망치는 대신 일을 수습하는 것만 생각했다.

“후우……. 얀마, 이대로 물러서서 밖으로 나가자.”

“그럴게. 형이 원하면 난 어디든 갈 수 있어.”

방금까지 그렇게 나가자고 말해도 안 듣더니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 사근사근하게 굴었다. 소름이 와다다 돋아 오르는 감각에 혼자 튀고 싶은 걸 꾹 참아 낸 재하는 최선을 다해 긍정했다.

“그래, 가자. 이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가자고.”

“응? 이대로 간다고? 재하 동생, 이름도 안 말해 주고?”

도준에게서 ‘재하 동생’이라는 말이 나옴과 동시에 재윤의 걸음이 멈췄다. 대체 그 단어 어디가 재윤을 자극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재하는 재윤의 입을 열심히 막으며 도준을 돌아봤다.

“야, 내가 몇 번이나 재윤이라고 불렀잖냐. 재윤이. 서재윤. 내 동생이라고.”

“그거야 재하 네가 부른 거고.”

“뭐냐, 주도준. 너 자꾸 눈치 없게 굴 거야?”

“에이, 동생이랑 이번 기회에 정식으로 통성명하려던 것뿐인데.”

평온한 도준의 목소리엔 친근감까지 담겨 있었지만, 지금 분위기에선 역효과였다. 아니나 다를까, 재하를 등에 매달고도 거침없이 걸어 나가던 재윤이 몸을 틀어 뒤를 돌아봤다.

“저 새끼가 자꾸 형한테 꼬리 치는데.”

도준이 꼬리를 치는 거라면 재하가 아닌 재윤에게 치는 상황이었다. 눈이 휙 돌아간 재윤은 무조건 재하에게만 집중해 말이 통하지를 않았다.

“안 되겠어. 당장 손을 봐야…….”

“야! 쫌! 집에 가! 제발 가자!”

재하는 재윤의 목을 조를 기세로 꽉 끌어안았다. 재윤을 옭아매듯 매달린 팔다리에 힘을 주며 철저하게 달라붙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보이던 흉흉한 기운을 싹 지운 재윤이 태연하게 뒤돌아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말을 잘 들었다고?’

살벌하던 재윤의 기세만 보면 쉽게 재하의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하나 재윤은 재하의 반복되는 요구에 그를 매단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따라 나오는 도준을 재하가 사납게 노려봐 주었지만 그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었다. 생각해 보니 갑자기 쳐들어온 남의 집 동생을 태연하게 대해 주고 화조차 내지 않은 도준이었다.

재하가 미안한 표정으로 ‘나중에’라고 입 모양을 만들자 도준이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갔다. 그제야 한시름 놓은 재하가 턱 아래 깔린 재윤의 머리를 턱으로 쿡쿡 찔렀다. 상당히 아플 텐데도 재윤은 미동조차 없이 앞만 보고 걸었다.

“어휴, 너 진짜 급발진하지 마라. 도준이가 성격이 좋아서 넘어가 준 거지, 불법 침입 한 거라고, 너.”

“형은 저 새끼한테 너무 물러.”

“무르긴 뭐가 물러? 친구끼리 매일 치고받고 싸우랴? 우리가 초딩이냐?”

“저 새끼랑 형을 ‘우리’로 엮지 마.”

이제 단어 하나까지 걸고넘어지는 재윤에 재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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