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대격돌 (4)
다르빌 근교에서 연합군 내부의 질서가 완전히 뒤집히는 격변이 발생하고 있을 때쯤. 나코르잔에선 오크족의 민회 대표들과 인간 연합의 사절단이 식사를 나누고 있었다.
“크흠, 요리의 입맛은 맞으시는지 모르겠군요. 나름 먼 동방의 요리를 접목해서 먹을 만하게 만든다고는 했는데.”
“상당히 이국적으로 잘 만들어진 요리군요. 맛있습니다.”
바흐람은 언제나 그렇듯이 입으로만 웃는 웃음으로 마음에 있는지 없는지 모를 소릴 주워 삼았다. 바쿠란은 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속으론 피식 웃고 있었다.
‘치아 구조가 남다르니 완전 고기를 덜 익혀서 먹는데 이건 바흐람 녀석에게도 힘들겠지.’
고기를 겉만 아주 살짝 구워낸 고기가 대접되었는데, 선명한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 바쿠란은 평소에 속 깊이까지 푹 익혀 먹는 습관이 있어 입맛이 없었지만 내색할 수는 없다.
“하하……. 오크족 입맛이 입맛이다 보니 인간분들께는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좀 그렇다면 엘프 분들께 드린 것으로 드리겠습니다.”
“어…….”
옆자리에 앉은 아빌리스의 접시 위에는 보통 즐겨 먹는다는 허브 종류의 이파리와 당근 비슷한 주황색의 뿌리채소가 곱게 다듬어져 올라 있었다. 소스나 양념도 없이.
‘으…….’
바쿠란은 풀보다는 질겨도 레어한 고기를 먹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나마 불만이 있었던 마지막 사람마저 식사에 적응하니 식사 시간은 평화롭게 흘러갔다.
“그래서…….”
대충 입을 닦으며 주위의 식사가 끝났다는 걸 확인한 그나루르그의 느릿한 말과 함께 본 용건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바가반드와 바난드의 영주께서 보내신 전언을 보건대 원하시는 건 하나인 것 같군요.”
“가능하겠습니까?”
“글쎄요……. 어쩌면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우리로서도 위험부담이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니.”
의장은 말을 에둘러 표현하며 다시 바흐람을 떠보려 했다. 하지만 바흐람은 완벽한 무표정으로 재차 그나루르그의 의중을 물어 왔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만큼 오크니움인들의 나라를 다시 한번 동포들에게 확장할 기회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네마냐 경께서 알려 주신 비밀에 저희들도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하니 육백 년 전의 그 저주받은 종자들이 고블린들에게 힘이 되고 있었다니.”
“동포들이 더 이상 악한 힘에 휘둘리지 않도록 도울 의무도 있습니다. 때마침 몇 달 전부터 고블린 군대의 망명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바흐람이 작정하고 터뜨린 진술에 그나루르그는 눈을 꿈뻑이고 몇 초 멍하니 있었다. 그리곤 뒤늦게 너털웃음을 지었다.
“역시, 정보대의 수장다우시군요. 그들에 대해선 나름 비밀을 유지하려 했습니다만.”
“그러나 이제는 비밀을 풀어 진정한 끝을 볼 때가 아니겠습니까. 언제까지 겁쟁이란 오명을 쓰며 고립되어야겠습니까.”
“으음…….”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기꺼이 경청하겠습니다.”
이 자리엔 오크시움 나라의 최고 결정권자인 입법의원 4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나루르그 외 세 명의 오크 귀족은 잠시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내가 말씀을 좀 드리지요.”
이내 둘째 서열쯤 되어 보이는 이가 일어났다. 그나바둑(Gnabadug)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입법의원은 곧바로 앞서 바흐람의 이야기로 빠져들었다.
“그나루르그 의장이 조심스럽게 이야긴 했지만 우리 입법위원회 의원 4인은 모두 한결같이 이날만을 기다려 왔소. 동포를 오염으로부터 배제하고 흐트러진 질서를 되찾는 그 날을.”
“그렇다면 망설일 것이 없지 않습니까.”
“흐흐, 바흐람 경. 우리가 비록 소도시의 방어에 온 신경을 쓴다고 해도 정세에 어둡지는 않소. 내가 보기에 우리가 설사 군을 내어 고블린의 본거지를 치고, 뿌리가 된 인간들을 토벌한다면 필요한 게 있소.”
“무엇입니까. 얼마든 말씀하십시오.”
“그대들의 승리요. 일시적인 전투의 승리가 아닌 전쟁의 승리.”
잠시 만찬장에는 적막이 흘렀다. 그나바둑은 다시 숨을 고르고 말문을 열었다.
“왜냐하면 저들은 이미 자칭 여명의 자손으로 거듭나 있기 때문이지. 그 운명론이 거짓된 것임이 백일하에 드러나지 않는 한, 그들은 목숨을 걸고 달려들 것이오.”
“그렇다면 필요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이 정도면 충분히 짐작했을 만하오만……. 우리 군이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우레이미야 본대에 피해를 강요하고, 시간을 벌 수 있겠소?”
오크족이 오랫동안 장비를 정비하고 생전 쓸 생각이 없던 인간 마법사들까지 부랴부랴 고용하고 나선 건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였으리라. 비록 오크 군대가 정예 병력이라고 해도 독자적으로 우레이미야의 군대에 맞서 승리하긴커녕 고향을 지킬 도리도 없었다.
“음, 그 문제에 대해선…….”
바흐람은 뻔히 대답할 수 있을 테지만 굳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한편에 앉아 있던 아빌리스와 바쿠란을 향해 돌렸다. 아빌리스가 바쿠란에게 물어왔다.
“사촌, 내가 오크들에게 대답을 할까?”
“아니야. 아직 저 종족에 익숙하지 않잖아, 사촌 전하께선. 내가 대신하지. 나중에 쓸 만한 검자루나 하나 값으로 달라고.”
“살뜰하게도 뜯어간다니까.”
바쿠란은 실소를 흘리곤 손을 들어 보였다.
“제가 대신 말씀드리죠.”
“오, 타위비크 둘째 공자께서. 지금으로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상업, 군사상의 동맹자이시니 말씀을 청해 듣기에도 적절하겠지.”
두 번째로 만나는 그나루르그가 적이 익숙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개했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답례한 바쿠란은 먼저 과감한 역질문으로 입법위원회의 이목을 끌었다.
“오체시의 오크족 여러분은 우리가 적을 저지하고 붙잡는 것만으로 충분하겠습니까? 그 정도만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
질문을 내놓았던 그나바둑이 뜬금없어 보이는 말에 곧바로 태클을 걸어왔다. 하지만 바쿠란은 이미 대비를 마친 상태였다.
“네마냐 경을 필두로 우리 연합군은 이미 적에 대한 완승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적의 주력을 섬멸하고 무사히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겁니다.”
“뭣, 그런 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저건 단순한 의지의 표명이 아닌지.”
“흠…….”
오크 대표단은 물론 수행단으로 따라온 기타 영지의 가신들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아니, 대공자님. 자신감을 드러내는 건 좋다고 하지만 어떻게 고블린을 일거에 섬멸하겠다는 말씀을…….”
“지금은 작전 회의 때처럼 정확한 이야기만을 하셔야 합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진짜 내가 농담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네?”
바쿠란은 살짝 기분이 언짢아진 듯 몸속의 마나를 변형시켜 오러로 바꾸기 시작했다. 비록 형 바쿠헨처럼 오러 검사는 아니지만, 훌륭한 마법사라면 마나를 오러로 바꾸는 일 자체는 얼마든 해낼 수 있었다.
“윽…….”
“지, 진심이셨군요.”
“적당히 해, 사촌. 우리는 어쨌든 동맹과 협의를 나누러 온 거니까.”
아빌리스가 마나의 흐름을 온화하게 회복시키는 주문을 요정어로 외웠다. 심호흡과 함께 바쿠란의 몸에서 일렁이던 불꽃 기운은 금세 가라앉았다.
“흐……. 역시 들어온 대로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루시는군요. 그런 것에 일절 의미를 두지 않는 우리들로선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런 거로 화내 봐야 무소용이란 말을 애써 에둘러 전해 주는 그나바둑이었다. 제대로 한 방 맞은 셈이 된 바쿠란은 실소와 함께 모아 둔 마나를 흘려보냈다.
“이래저래 말은 많겠습니다만, 적어도 우리가 우레이미야 군단을 섬멸하겠다는 건 허풍도 과장도 아닙니다.”
“……!”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사람들을 적잖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나 마찬가지였다. 바쿠란은 그 놀라움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대체 어떻게 일이 그렇게 된 것입니까. 불리한 전쟁 아니었습니까? 우레이미야가 야전에서 겨우 저지되는가 했다지만 이번에 더 많은 병력에 공성 무기까지 충실히 갖추었으니.”
“바로 그게 놈들도 여유가 없어졌다는 소립니다. 비록 피해가 크지 않았다곤 해도 더는 야전만으로 연합군을 궤멸시키겠단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까요.”
겉으로만 본다면 상황은 매우, 그것도 저번보다 훨씬 어려워진 것처럼 보였다. 오체시움의 군대가 모든 준비를 마쳤음에도 나코르잔의 성벽 뒤에 꽁꽁 숨어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진상을 깊이 살펴본다면 상황이 전혀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다르빌을 중심으로 보시면 더욱 그렇죠.”
이어지는 바쿠란의 설명은 사실 네마냐가 그동안 틈틈이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완성되어 온 이야기 타래였다.
다르빌(Darbil).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그곳에 있었다. 이 거대도시이자 요충지를 점령하지 못하면 군단은 결코 하야스단을 점령할 수 없었다. 주요 보급로가 될 주도로가 다르빌의 방어선을 따라 이라크시스 강 남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국, 총독부, 바난드의 주요 거주민과 중심지도 대부분 이 이라크시스 강 남쪽 땅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 목덜미와 같은 다르빌의 숨통을 끊지 못하면, 하야스단 땅을 점령하긴 불가능한 것이다.
“해서, 우레이미야는 자신들의 우위를 더 확실한 인상으로 보여 주고, 사람들의 사기를 꺾기 위해 북쪽 길을 택해 돌파한 것입니다.”
“그래……. 어차피 북쪽 지역은 조그만 마을과 진흙투성이에 홍수도 빈번한 지역이니까.”
루프랑에서 온 가신 하나의 혼잣말이 바쿠란의 이야기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북쪽에 도로가 있긴 하지만 수만의 병력이 몇 주 이상 소요할 보급품, 식자재를 나를 수준이 못 됩니다. 홍수도 염려할 만한 건이죠.”
“거기까지만.”
아빌리스가 바쿠란의 소매를 슬쩍 건드리며 가볍게 말을 던졌다. 바쿠란 역시 짚이는 바가 있었기 때문에 거기까지만 하고 말을 그쳤다.
“자, 어떻습니까? 적이 이대로 다르빌의 방어선을 무시하고 그대로 진격했다는 건 이렇듯 상당한 무리수라는 걸 볼 수 있죠.”
“그래, 이제야 공자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던 것인지 알겠군.”
“그렇다면 역시 가장 중요한 의문은 남습니다.”
그나바둑은 그나루르그 의장에게 눈짓을 보내 발언권을 받으며 동시에 다시 질문을 꺼냈다.
“이렇게 고블린이 무리수를 내면서까지 승부를 내고 굴복시키기 위해 나왔는데, 귀 연합에서도 결정적인 수를 준비하고 있진 않습니까?”
“올 것이 왔군.”
상대방에게 들리지 않도록 나직한 목소리로 바쿠란이 혼잣말을 흘렸다. 이곳에 도착하기 직전, 네마냐와 마지막으로 나눈 통신에서 암호책을 뒤져가며 맞춰 낸 작전이 이 망설이는 오크족에게 던져지는 최후, 최대의 미끼가 될 것이다.
“물론입니다. 그 정도의 준비도 없이 오크족 군대의 위험천만한 작전을 부탁할 만큼, 이 바쿠란은 염치없는 사람이 아니죠.”
“그것참 신뢰가 되는 말씀이오, 그려.”
그나루르그는 식탁을 두 번 두드려 식기를 내가게 한 뒤 재빨리 양피지를 펼치고 깃펜을 붙잡았다. 바로 지금 바쿠란을 통해 60초 뒤에 공개될 인간 연합의 최대 반격 작전을 접하게 될 터였다.
“칼주안. 생각보다도 깊은 곳으로 적이 들어오게끔 이끌고, 가장 우세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린 고블린 군단을 섬멸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 해묵은 전쟁은 그 원인까지 일거에 박멸하게 될 겁니다.”
바쿠란은 손을 뻗어 오크 입법의원 네 명을 가리키며 마무리했다. 이 순간 그는 단순히 타위비크 대공의 둘째 아들이나 계승 후보자가 아닌, 네마냐 백작과 그 세력 전체를 대표하여 최후의 승리를 선언한 것이었다.
“바로 여러분들이 잃어버린 여러분의 형제, 고블린과 오그르를 다시금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과 함께 말입니다. 바로 그 공헌을 통해 우리 세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을 수 있을 겁니다.”
마나와 그림자 마나의 둘로 갈라진 세계. 그러나 이제 그 이분법의 세계는 보다 온전한 하나의 세계로 통합되어야 했다. 그리고 네마냐나 그 누가 의도했건 아니건, 이미 세계는 그런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 * *
그 시각.
파르티즈 공격군을 끊임없이 보내다 잠시 이라크시스의 영지로 돌아온 펜자르크가 검은색의 사냥꾼 옷차림으로 사슴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뜻하지 않은 급한 연락이 온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동지, 족장이? 얼른 이리 주렴.”
시동 하나가 가져온 픽스 가죽으로 된 편지는 무척이나 거칠고 터럭 정리가 제대로 안 되어 있었다. 보통 때 같았다면 이 정도로 얼기설기 저급품을 쓰진 않았을 터였다.
“어지간히도 급한 모양이군.”
펜자르크는 고삐를 살짝 안장 위에 걸쳐 둔 채 편지를 활짝 펼쳤다. 암호 대신으로 고블린 문자로 쓰여진 편지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고, 또한 충격적인 것이었다.
“무슨 내용입니까, 주군.”
근위대장 겸 기사단장 오시야칸이 어느새 말을 몰아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때가 된 것 같다.”
“때라고 하시면…… 설마 여명의 군단이 이곳까지 온다는 것입니까?”
“비슷하긴 하군. 정확하겐 우리가 칼주안 관문으로 가야 한다는 게 차이점이겠지만 말이지.”
“칼주안……. 파브라드가 정예 병력으로 지키는 그곳이로군요. 드디어 대전투의 서막이 오르는 겁니까.”
펜자르크는 약간 귀찮은 듯이 머릴 긁으며 두루마리 서찰을 말아 버리곤 시동에게 주었다. 오시야칸은 어리둥절한 하인에게 손짓을 하며 물러가도 된다고 신호를 주었다.
“글쎄……. 파르티즈에서 어떻게든 결말을 내든지 해야 했는데. 아니면 애초에 손을 대지 말던가. 이래저래 망신살만 뻗치고 정작 칼주안 쪽으론 손도 못 써 봤군.”
“말 그대로 덫이었습니다. 적어도 지금이라도 털어낼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하오나 그럼 점령지에 관해선…….”
“지키기는 어렵겠지. 그렇다고 무턱대고 바크탕 놈에게 그대로 줄 순 없겠지. 최대한 버텨 보고, 안 되겠거든 모조리 파괴하고 후퇴하게 해. 남은 거주민이 있거들랑 모조리 잡아다 우리 영지로 끌어가고.”
아무렇지 않게 잔혹한 이야기를 하는 펜자르크나 거기에 눈썹 하나 꿈틀거리지 않는 오시야칸까지. 이들은 권력이란 목적을 위해선 기꺼이 자신들마저 내던질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권력 투쟁의 최종장 혹은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곳은 동맹, 우레이미야가 향하는 ‘칼주안 관문’일 것임은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이제부턴 휘하의 영주놈들도 헛소리하지 못하게 잘 단속하거라. 헛소리하는 놈은 없던?”
“아…… 안 그래도 마침 카르시 영주한테서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점령지에서 발을 빼서 바누라트 섭정과 맞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바누라트 섭정이 이끄는 소수의 병력은 파르티즈로 향한 펜자르크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세 번째 양동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남쪽의 수로를 따라 왕국군 정예부대는 카르시 영지 인근의 고을들을 연이어 점령하고 있었다.
“보나 마나 역부족이니 도와달란 소리겠지, 흥.”
“그러지 말고 도와주는 척이라도 하는 건 어떻습니까. 카르시 영주 정도면 그래도 세력이 꽤 되지 않습니까.”
오시야칸의 타협적인 제안에 다시 코웃음을 치며 펜자르크는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헛소리다. 무시하고 네가 대충 그럴듯하게 에둘러 거절해라. 다시는 파르티즈의 덫과 같은 함정에 알고도 빠져 주지는 않을 테니까.”
“우레이미야 군단과 합류한다면 확실히 더는 알면서도 덫에 걸려들 이유가 없긴 할 겁니다.”
“그래야지. 이제야말로 정체된 썩은 물들을 남김없이 밀어내지.”
오시야칸의 말에 열심히 동의하는 고갯짓. 펜자르크는 오랜만에 되찾은 권력 투쟁의 열성을 이글거리는 눈에 담아내며 그렇게 다짐 아닌 다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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