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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172화 (172/200)

172화 재정비 (2)

―스륵.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서고의 책상 위. 바바스는 호롱불을 올려 둔 채 미리 챙겨 온 찻잔에 찻물을 우려냈다.

“흠……. 역시나 이것도 아니군.”

“피로하실 수 있으니 틈틈이 드시면서 하십시오. 여기 구운 비스킷도 있습니다.”

“고마워요.”

하지만 고맙다는 말과 달리 영주는 비스킷 말고 찻잔을 조금 들이켜고 말았다. 한 손에는 여전히 먼지가 가득 내려앉은 뻣뻣한 책이 들려 있었다. 이름조차 명멸하여 ‘고대사’라는 세 글자만이 간신히 읽힐 뿐이었다.

“휴. 아직도 멀었네. 이 책에도 없는 것 같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자초한 거지 뭐.”

그렇게 살피던 책을 고이 접어 네마냐는 옆 책상 위에 이미 쌓여 있는 스무 권 정도의 책에 마저 얹었다.

“고블린의 역사나 기원에 대한 글 자체도 거의 없습니다. 그걸로 연구를 해 봐야 봐줄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그러게. 오니아스 선생이 하는 김에 마저 기록해 줬으면 좋았으련만.”

“대관절 무엇을 찾고 계시는 겁니까? 저도 도와드릴 수 있다면 도와드릴 텐데.”

“음, 그러니까…….”

네마냐의 이야기는 참 간단했다. 하지만, 아주 어려운 이야기였다. 고블린 종족 자체에 대한 연구조차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물며 그런 고블린에게 일찌감치 항복하거나 포섭되었을 인간 종족의 존재라니?

“그런 거라면 신관회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 연락할 때까지 기다려 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나까지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지. 다행히 영지에 일이 있어서 돌아온 참이니까 여유시간을 내서 찾아보는 것뿐이야.”

“그렇군요. 하지만 역시나 신비로우면서도 이상한 일입니다. 대체 어느 인간들이 고블린과 그렇게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할까요. 하물며 그 검은 마탑의 마법사들조차 사이가 고블린들과는 매우 사이가 나쁘다고 하던데.”

“어쩌면 그들의 존재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고블린들이 항상 떠들어대는 계시라는 것의 정체를 알 수도 있겠지.”

거기까지 이야기한 뒤 네마냐는 다시 다음 책을 집어 들고 살피기 시작했다.

[태초에 마나의 혼돈한 맥이 흐른 것으로 학자들은 분석한다.]

“또 태초 마나설이로군. 하도 내용이 똑같아서 이제 이 구절만큼은 저절로 외우겠어.”

안구건조증으로 말라가는 눈동자에 하품으로 눈물을 빚어내 적신 네마냐는 다시 책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변절자, 배신자……. 고블린과 타협하건 모종의 계약을 맺은 부족…….”

아주 작게 혼잣말을 중얼대던 바바스는 어디론가 생각이 미쳤는지 어둠 속의 다른 서재 공간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마냐는 그다지 바바스에 관심을 두지 않고 계속 책을 읽어 내려갔다.

‘급할 것까진 없지. 틈틈이 영지 업무를 처리하면서 조금이라도 힌트가 될 만한 것들을 찾으면 다행일 테니까.’

찻잔을 성급하게 한 모금 더 들이켜면서, 네마냐는 훨씬 중요한 일정이 될 영지 체제 재정비에 좀 더 생각을 기울이고 있었다.

―후룩.

얼마나 시간이 더 지났을까. 따뜻했던 찻물도 마지막으로 들이켜 버렸고, 두루마리로 된 책 삼십여 권이 쌓여 있었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인가.”

창밖을 보니 슬슬 하늘의 해가 서쪽을 향해 기울었는지 제법 노란빛을 띠고 있었다. 네마냐는 슬슬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날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바바스는 다른 일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음, 그럼…….”

“영주님, 영주님!”

어둠 속에서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 살짝 섬뜩했지만 이내 네마냐는 그게 자신을 부르는 바바스의 목소리인 걸 알아차렸다.

“바바스? 무슨 일이야?”

“찾았습니다! 발견했습니다!”

“뭐? 뭘? 뭘 발견했다는 거야?”

어둠을 뚫고 헐레벌떡 달려온 바바스는 온통 행색이 엉망진창이었다. 먼지는 뒤집어쓰고 어디 바닥에라도 굴렀는지 행색이 엉망이었다. 하지만 한 손엔 아주 오래되어 반은 삭아 버린 두루마리를 집어 든 그의 표정만큼은 밝았다.

“말씀하신 그 인간 변절자 부족 말입니다! 어째서 최근 십수 년간은 아예 그런 이들이 없었는지 알았습니다.”

“그래? 그 자료에서 확인한 거야?”

“이것 좀 보십시오.”

다 삭아 버린 연구서, 아니면 사서일지도 모를 그 책을 바바스가 활짝 펼쳐 보였다. 그와 함께 퀴퀴한 먼지가 코를 찌르는 냄새와 함께 피어올랐다.

“콜록, 콜록!”

“앗, 죄송합니다. 이런……. 환기하고 올 테니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바바스는 낡은 책을 내려두곤 창가를 돌아다니며 문을 열기 시작했다. 연이어 코가 간지러워 기침을 뱉은 네마냐는 회복할 틈도 없이 문서를 들여다보았다.

“설마 기대하지도 않은 힌트가 이곳에서…….”

그리고 네마냐는 빠르게 고대에 쓰인 하야스단어 기록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지명, 인명의 연속이었지만 이내 그것이 600년 전 검은 던전으로 일어난 대전쟁 시기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헤라폴레이온 대제의 즉위 7년. 검은 던전 전쟁이 끝나갈 무렵. 검은 마법을 신봉하며 끝까지 제국의 방침에 저항하던 일단의 파문 마법사들과 그 지지 백성들이 알메니아(Almenia)를 점령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알메니아. 제국에서 하야스단을 이르는 말이다. 곧 하야스단에서 검은 마나, 검은 던전을 지지하다 파문당한 마법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왜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

헤라폴레이온 황제. 그 이름을 지닌 사람이 몇 사람 있다지만, 검은 던전과의 전쟁을 열어젖혔던 사람은 오직 한 명이었다. 그 이름을 가졌던 첫 번째 황제.

“다시 600년 전으로 돌아가는군. 어째서지? 모든 증거를 찾을 때마다 하필이면 그 케케묵은 검은 던전 사건이 발목을 잡다니.”

하필 정도가 아니다. 당장 지금은 켈리도니온에서 요양 중인 키메라만 해도 딱 600년 전 그 전쟁의 말엽에 이유 없이 전대 키메라가 죽었다고 했었다.

“만약 전대 키메라가 죽은 사건과 이번 반란이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그 생각을 하는 찰나에 네마냐의 머리를 어떤 생각이 스쳤다.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키메라를 노리고 달려들었던 우레이미야의 모습.

“만약 이 반란을 일으킨 자들이 오늘날 고블린을 도왔다는 신원미상자들의 조상이라면……. 그간 우레이미야가 보였던 행동의 원인을 짚을 수 있겠군.”

네마냐는 그렇게, 삭아 버린 문서를 어루만지며 빠르게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재조합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 아주 단편적인 근거만이 남아 있는 과거의 기억은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네마냐의 기억을 무한대의 영역으로까지 넓혀가기 시작했다.

“영주님?”

“아.”

어느새 바바스가 환기를 마치고 돌아왔다. 네마냐는 퍼뜩 현실로 돌아오더니 서류를 가리키며 바바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서류의 내용을 현대어로 깨끗하게 옮겨 적어서 내게 보내 줘. 그리고 몇 부 더 필사도 해 주고. 회의할 때 꼭 참고해야겠어.”

“알겠습니다.”

모처럼 할 일이 생겼다며 기뻐하는 바바스를 뒤로하고 네마냐는 서고를 나섰다. 여전히 머리를 한 대 강하게 얻어맞은 듯한 신선한 충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정말…… 고블린의 뒤에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진정한 적이 있었단 건가? 대체 적은 누구고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 건지. 페넬로파는 그럼 대체 뭘 어디까지 알고 갔다는 거고.”

어두운 비밀을 한 꺼풀씩 벗기고 접근할 때마다 고통스러운 감각이 그대로 전해졌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머리를 감쌌다. 마치 도전하지 말라는 강력한 암시가 지배하는 결계에 부딪치기라도 한 듯했다.

[경고]

[방금 당신이 탐구한 곳은 접근이 허용되지 않은 공간입니다. 이 세계의 질서를 새로이 빚어낸 사람들의 정신은 이런 위험한 지식에 아직 인간이 접근할 시간이 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시도하면 능력치에 일정한 제한이 부여되고, 그럼에도 위반이 이어지면 존재가 소멸할 수 있습니다.]

“……이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시스템, UI, 아니 뭐라 불러도 좋다. 이 망할 놈의 것이 그동안 도움은 주지 못해도 태클을 건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태클을 걸다니, 그것도 단순히 생각만 하는 것만으로?

“뭔가 있군.”

도서관의 문을 열고 나온 네마냐의 말끝에 입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2월 초가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겨울 추위가 물러가긴커녕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있었다. 위장도 겸해 네마냐는 로브의 모자를 아주 단단히 뒤집어썼다.

“추위도 부쩍 더 강해진 것 같군. 뭔가 돌이키려고 해도 조만간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강추위에 몸을 부르르 떤 네마냐였다. 아무래도 얼른 관청으로 달려가 화톳불을 쐬어야 할 모양이었다. 본성 바가반드로 돌아가려는 마음은 아예 접어 버렸다. 미하일이 준비해 놓았다는 서기관과는 내일 만나도 크게 늦지는 않을 터였다.

“검은 마법의 백성들이라. 부디 그들의 존재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입증되었으면 좋겠는데. 지금 이상으로 사건이 복잡해지는 건 딱 질색이라.”

그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네마냐 자신도 전혀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무언가 있다는 것의 정체를 알아낸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리란 막연한 확신을 품을 뿐이었다.

* * *

“내가 이야기한 대로 우선 받아적고 그다음에 이야기해 보자고.”

“준비되었습니다, 영주님.”

미하일이 특별히 알선해서 보내 준다던 서기관은 하메네라라고 하는 3급 서기관이었다. 독자적으로 맡은 창고 관리 업무가 완벽해서 회계부처의 말단인 3급으로 두 단계를 뛰어올랐다고 했다.

‘능력 하나만은 절대적이라 이 소리군.’

그리고 미하일의 그런 소개가 틀린 말이 아닌지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곧 네마냐의 지시를 그대로 받아 쓰면서도 즉석에서 이해할 수만 있다면 미하일은 사람을 판단하는 데 성공한 셈이 될 것이다.

“우리 영지는 최대한 빨리 토지 경작 중심의 경제 체제를 벗어나야 한다. 토지 중심의 세수와 재정 체계는 굉장히 효율적이다. 곧 토지의 생산은 매년 일정하고 그에 맞추어 안정적인 살림을 꾸리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우선 말을 하고 본 뒤 네마냐는 슬쩍 하메네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영주를 거의 마나 그 자체의 현신이라고 본다는 하메네라지만 일할 때만큼은 프로의식이 빛나는 집중력을 선보였다.

‘오, 꽤 하는데. 우선 속기 작성에 있어선 기본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인재군.’

가장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바로 네마냐가 생각하기에도 결코 쉽지 않은 내용이 될 조세 시스템의 개혁. 잠시 찬물을 들이켜 목을 축이고 영주는 다시 속사포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의 하야스단은 한랭화 기후의 영향을 받고 있다. 거기에 고블린의 침공이 겹쳐 정상적인 농경의 영위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영지는 생존을 위해 농경에 대한 집착을 과감하게 버리고 광공업, 제조업, 상업으로의 다변화를 추구했다. 앞으로 오랫동안 이 작은 영지의 부유함과 생명력은 이런 다변화 산업에서 나올 것이다.”

잠시 숨을 고르며 네마냐는 여전히 하메네라의 깃펜 끝이 흔들리는 걸 잠시 지켜보았다. 아직 본론은 다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영주인 나는 이미 영지의 산업과 먹거리, 경제의 근본이 바뀐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토지의 부산물과 세금만으로 영지를 운영하는 시기는 이제 끝날 것이다. 우린 철저하게 관세와 계약세를 도입해서 새 시대에 걸맞은 재정 제도를 도입할 것이다.”

네마냐의 말이 다 끝나고 나서 꽤 오랫동안 하메네라의 펜은 내용을 받아 적었다. 엄청나게 긴 내용은 아니라고 해도 기억력만은 확실히 대단한 수준이었다. 그 모습을 방해하지 않도록 지켜보기만 하던 네마냐는 마침내 필사가 거의 끝나가는 걸 보곤 면접을 시작했다.

“자넨 어떻게 생각하지, 우리 영지의 새로 잡은 방향에 대해서?”

“제 의견을 말씀이십니까?”

“그럼. 영지 재무관께서 내게 당신을 강력 추천하셨거든. 그래서 당신을 부른 거기도 하고. 회계와 세금 업무 전반에 대해 생각이 깊다니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

“저, 정말이십니까? 저와 함께 세제 개혁을…….”

네마냐는 천천히 그러나 활짝 미소를 지으며 이 젊은 서기관의 열정에 기름을 부었다.

“그럼. 영주인 내가 약속하는 건데 무엇이 걸림돌이 될까. 우리가 체질이 바뀌고 있는 영지에 맞춰 세금 제도와 모든 생활상을 바꿀 결정을 내리게 될 거야. 그렇게 하여…… 이 바가반드는 훨씬 사람 살 만한 곳이 되겠지.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 해.”

“저는…….”

“도와주지 않겠어? 자.”

하메네라에게 네마냐는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는 산양의 머리가 뿔이 생생하도록 그려진 작은 배지가 놓여 있었다. 새로운 바가반드의 영주가 믿을 수 있는, 영주의 친구라는 증거로 내린다는 ‘바가반드 배지’. 하메네라는 드디어, 자신에게 한 발짝만 더 내디디면 도약할 공간이 제공되었음을 깨달았다.

“바가반드 주민의 영광을 위하여!”

“그래. 영지의 번영을 위해.”

하메네라가 두 손으로 영주의 손을 번쩍 붙들며 축사를 외쳤다. 네마냐가 흐뭇한 미소로 새로운 SCV, 아니 동료를 들이는 순간이었다.

- 17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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