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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더하기 회귀는 먼치킨-35화 (34/200)

35화

“빨리도 오셨네. 아드님이 좀 당했다고 제대로 빡친 모양이야.”

느긋한 네마냐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성문 밖에 늘어선 병력이 제법 되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도 모를 막강한 공성 무기를 지면에 고정하느라 난리였다.

“이런 병력을 그동안 들키지도 않고 모은 게 용하다, 용해.”

미하일이 대단하다며 연신 감탄을 하자, 아일라는 살짝 약이 올랐는지 미하일을 꼬집었다.

“그걸 왜 네가 감탄하고 앉았냐.”

“아얏.”

미하일이 꼬집힌 입가를 만지며 엄살을 피웠지만 주변에선 다들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때, 하라드도 거침없이 네마냐와 미하일의 틈새로 밀고 들어왔다. 성첩을 짚고 넘겨다 본 저편에 구름과 같은 인파가 질서정연했다.

“와……! 제국이나 고블린 정예 군단도 아닌데 이렇게 대단한 군세는 처음 봤어.”

“그러니까, 적군에게 그렇게 감탄을 해 봐야……. 아이고, 말을 하면 뭐 하나, 내 입만 아프지.”

“하하.”

천진난만한 소년 둘을 연신 말리느라 아일라가 고생이었다.

‘나름대로 긴장을 해소하는 거겠지.’

이따금 일행이 있는 곳으로 화살이 날아왔지만 결계는 멀쩡했다. 원래는 인간의 마나로 만드는 게 정석이지만, 네마냐는 광물이 가진 마나를 끌어내 결계를 만들었다.

‘내구성이 떨어지는 임시방편이지만, 놈들을 일단 막으면서 기다려 보자.’

맥없이 튕겨 나가는 화살을 바라보며 네마냐는 한껏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화살도 통과가 안 된다니?”

갑옷의 어깨끈을 손보던 가스파리얀 3세(현재 무직)는 난데없는 소리에 화부터 터졌다. 그럴 만도 했다. 부하 기사 한 놈이 갑자기 들어 본 적도 없는 재능이 밝혀지곤, 왕을 배경으로 삼아 자신을 내쫓은 것이다. 애꿎은 전령만 화풀이 대상이었다.

“이상하게도…… 화살이 결계를 통과하지 못합니다, 나으리.”

가스파리얀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들고 있던 갑옷을 하급 장교에게 집어 던졌다. 그리곤 칼집을 들고 달려들어 냅다 후려치기 시작했다. 화가 난 부분은 다른 부분이었다.

“뭐, 나으리? 내가 지금 연이어 뒤통수를 맞았다고 네까짓 것이 날 무시해?”

“악! 아니, 백…… 으윽, 백작님. 그런 뜻…… 으아악!”

―퍽퍽!

주변에서 조마조마하던 병사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미 인간의 가면도 벗어던지고 고블린 침략을 돕겠다며 나선 판 아니던가.

“또 시작이네, 저 양반.”

“여기가 사람 잡는 도살장이네, 아주.”

경계 근무는 반쯤 버려 둔 채로 모닥불에서 한기를 피하는 병사들도 그런 건 잘 알았다.

“우리 동네를 지키려고 나온 거지, 권력 다툼에 끼어들 이유가 있나? 정말 짜증 난다니까. 마음에 안 들면 분풀이나 하고.”

수염이 가득한 사내 하나가 장작을 던져 넣었다. 가벼운 손놀림에도 불길은 흔들림 없이 장작을 감싸 안았다. 타닥거리며 나무 쪼개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냄새나는 녹색 괴물들하고 대체 뭘 함께한다는 거람. 저놈들은 지금도 농촌 털어가는 놈들이잖아.”

병사들은 더럽다는 듯 각자 침을 뱉었다.

“에라, 세상 돌아가는 꼴 참 좋다니까. 탈영이나 해 버릴까.”

“아서라, 아서. 고블린 쪽에 실력 좋은 마도사들도 많던데 꼬치구이가 되기 싫으면 그만둬.”

흰 수염이 성성한 고참병이 옆자리 젊은 병사를 혼내듯 말했다. 분풀이는 끝났는지, 중앙의 천막에서 들리는 욕설과 거친 주먹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각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분이 정말 안 풀리면 자신들도 대상이 될 수 있었으니까.

“에휴…… 정말 내 인생도 지랄 났네. 어디 확 전생이나 회귀 같은 건 못 하나?”

“네까짓 게 회귀해 봤자 농사나 짓겠지!”

“젠장, 반박을 못 하는 게 더 억울하네.”

“푸하핫!”

병사 하나가 자지러지며 웃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웃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낌새에 머쓱해진 병사는 뒤돌아보고 나서야 무슨 일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병사……. 한 가지, 있는데. 물어볼 것.”

잔뜩 어눌하고 뒤죽박죽인 말, 그러나 잔뜩 낮게 깔린 음산한 목소리. 일반적인 고블린들보다야 훨씬 잘한다지만, 보통의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는 발음과 문장이었다.

“예……예, 말…… 음, 말씀하십시오.”

표정조차 읽기 힘든 거대한 그것은 산만 한 덩치를 들썩였다. 코에서 나오는 후끈한 바람이 여름 백사장에서 부는 것만큼 무거웠다.

“너희…… 영주. 계신가. 어디에.”

“아! 저, 저쪽에 계십니다. 안내해 드립니까?”

마음에도 없는 소리다. 역시나 알아챈 듯, 그리엘크(Grielk)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낮게 그르렁댔다. 일종의 비웃음이다. 고블린의 습관을 모르는 인간들이야, 그저 무서워할 뿐이겠지만.

“됐다……. 인간들은 들러리. 쉬어라. 편하게.”

쩔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온갖 마나 장신구를 갖춘 마도사는 천천히 천막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은땀이 난 병사들은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가늠도 못 하겠다니까. 분명히…… 우리가 지켜야 할 곳은 저기가 맞을 텐데.”

병사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람에 흔들리는 불빛이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성채의 유명한 이름은 자루아나. 바가반드 영지의 으뜸가는 요새였다.

―쿠당탕!

“헉, 헉……. 저 새끼 치워.”

가스파리얀이 잡고 있던 병사의 멱살을 내팽개치며 말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듯, 무표정한 호위병 몇몇이 의식을 잃은 전령을 들쳐 메고 나갔다.

“어째서 일이 이 지경이 되었지.”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헝클어진 머리가 다시 벅벅 긁어대는 손에 흔들렸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엔 모든 일이 잘 흘러갈 것이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감시를 피하기도 쉬웠고 걸리지도 않았는데. 완벽한 계획이 어째서!”

어쩌다 고블린을 이용해 고원의 왕이 된다는 웅대한 야망에, 이런 걸림돌이 생겼단 말인가.

“그 자식 때문이다. 이게 모두, 아들 녀석도 폐인이 되고, 내가 너무 허투루 넘어갔어, 으으…….”

술병을 들이키며 웅얼거리는 소리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었다. 대단치 않은 금속 관련 마나 기술. 가뜩이나 부족한 군자금이나 채울 수 있으면 그만이라 귀찮은 녀석에게 대충 빚을 지웠다. 그런데, 그런데…….

“그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지. 소식이 새지 않도록 모두 없애 버리면 위장할 수 있을 거야.”

손톱을 물고 물어뜯는 소리가 어두운 적막을 타고 천막 안에 울렸다.

“영주……. 적을 칠 생각. 다 되었나. 크르르.”

“……그리엘크로군. 마침 잘 왔어.”

어느새 와 있었는지 기척도 느끼지 못했건만 피폐해진 영주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자신에게 맞서는 아랫것에 대한 분노가 합리와 판단마저 불태우는 중이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자루아나를 통째로 파괴하고 태워 버렸으면 하는데. 그대의 요술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가능은 하다. 크흐. 하지만 통과가. 철제 무기가 안 된다는데. 영주는 아는가. 이유를.”

자신도 역시 그 보고를 받곤 황당해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전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미 우리가 얘기했던 그 녀석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 녀석이 무슨 조화인지…….”

그리엘크가 손을 들어 가스파리얀의 말을 막았다.

‘시건방진. 그래 봐야 네놈들은 내가 다루는 말에 불과하거늘. 오냐, 잠깐 이용해 주지. 그다음엔 내가 멋들어지게 인간 세계를 구하는 제물이 되겠지만.’

차가운 웃음이 잇몸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리엘크도 나란히 냉소를 지었다. 눈앞에 있는 음험한 영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충분히 알 고 있었다.

“바가반드…… 쿠르. 좋은 땅이다. 고블린 군단. 지금껏 죽였다. 많은 이를. 인간 저항을 분쇄면. 여기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역시 자루아나에서 우리 연합을 눈치챈 놈들을 모두 죽여야만 하네.”

유일하게 두 존재의 의견이 일치하는 지점.

“우리 실력. 모르진 않겠지. 크르르.”

“물론 모르는 건 아니지만. 저쪽에 있는 네마냐란 녀석은 마법이 교묘해서 어렵겠던데.”

어느새 네마냐란 이름이 경계의 대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영주와 척후대로부터 보고를 받은 그리엘크도 대강 알고 있었다.

“크흐흐. 걱정 마라. 지켜보고 있어. 피기 전에 꺾는 법. 보여 주지. 마나를 자유롭게 쓴다니. 제법 맛있겠어. 크릅.”

그리엘크. 우레이미야 군단에서도 손에 꼽히는 마도사가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혀로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강한 자를 먹어 흡수한다는 신앙의 증거.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를 가까스로 억누른 가스파리얀의 속도 좋지만은 않았다.

‘더러운 고블린새끼들. 역겹기 짝이 없군. 힘이 없었다면 언제든 내팽개쳤을 거다.’

서로 다른 종족이 오직 네마냐 타도를 위해 힘을 합쳤다. 새 백작은 자신의 열렬한 팬이 종족을 초월해서 생기고 있단 걸 알고 있을까.

* * *

아침 해가 뜰 시간. 네마냐는 민병대에 일찍 밥을 먹게 한 뒤 성벽 근무를 시작하게 했다.

“이제부턴 이 깃발을 우리 깃발로 쓰도록.”

가스파리얀이 쫓겨난 것이 그리 좋았는지, 일부 주민들은 급하게 만든 깃발을 네마냐에게 전달했다. 바가반드 백작 네마냐. 식탁보와 남은 천으로 만든 알록달록한 그 깃발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주민이 뜻이 담긴 것 같아서 세련된 깃발보다도 훨씬 맘에 들어.”

하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는 옳은 길을 걷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영주 자리에 미련이 있는 건 아니었어. 어찌 됐든 더 빨리 힘이 필요해졌으니, 이제는 반드시 얻을 자리가 됐지만.”

“아직도 자기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찜찜해? 평소엔 안 그러더니 의외로 신경을 많이 쓰네.”

볼 것도 없이 하라드였다. 다들 충분히 쉬고 결계 유지에 힘써 달라고 부탁했는데 굳이 찾아온 것이다.

“뭐야, 또 너냐? 아침 먹고 누워 있지 왜 왔어.”

“아, 너무하네. 마법 학회 사상 최연소 궁정 마법사라고. 나 같은 주요 전력이 빠져서야 안 되지, 암.”

녀석은 감히 겁도 없이 성첩에 걸터앉았다. 불과 수십 걸음 바깥에선 날카로운 무기가 이쪽을 겨냥하고 있었다. 결계를 잘 아는 전문가가 아니었으면 그런 여유를 부릴 턱도 없었겠지.

“왜, 고블린과 싸우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갑자기 영주 자리를 둘러싼 권력 싸움이 되니까 찜찜해?”

“……꽤 정곡을 찌르네. 뭐, 다들 눈치는 챘겠지만.”

날아온 투창이 결계에 반응하며 무력하게 튕겨나갔다. 짐승의 비명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걸 지켜보며 네마냐는 답변을 계속했다.

“며칠 전에 모닥불을 앞에 두고 얘기했던 것처럼. 나한테 목적이 하나 있다면, 임박한 파멸로부터 우리들의 고향을 지키는 것뿐이야.”

“알지. 우리도 그 대의가 옳다고 판단해서 곁에 남은 거잖아.”

하라드의 답변에 피식 웃은 네마냐는 다시 심각한 이야기로 돌아갔다.

“가스파리얀을 몰아내는 건 큰 문제가 아니야. 이 앞의 고블린 원정군을 물리치는 것도 위험하긴 하지만, 그것마저도 중요한 건 아니지. 중요한 건…….”

닥쳐올 미래에 잠시 목이 메는지, 네마냐는 잠시 입맛을 다셨다.

“단순한 권력 싸움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대전쟁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는 거지.”

“역시, 다 살피면서 계획을 만들고 있었구나.”

녀석이 성첩을 내려오더니 엉덩이를 털었다. 그러면서, 어린 녀석답지 않게 제법 쓸 만한 조언을 내뱉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뒤돌아볼 필요 없어. 후회는 언제나 따라오는 거니까. 지나가면 그뿐이야.”

“그간 들은 말 중에선 그나마 쓸 만한 조언이시군. 그것도 마법사가 배우는 지식이냐?”

하라드는 반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걸 말이라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어 가면서 해. 나도 결계를 마저 확인하러 가 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대마법사님.”

장난스럽게 손을 이마에 붙여 경례했다. 녀석도 쿡쿡대며 비슷한 흉내를 내곤 자리를 떴다. 사방이 조용해지고, 다시 전운은 무르익었다.

‘아마도 다음번 충돌에는 적진에 있다는 무서운 고블린 마도사도 나타나겠지.’

자신만만하게 늙은 가스파리얀이 내세운 것이 바로 대단한 마도사의 존재였다. 대놓고 자랑할 정도라면 그간 보았던 고블린 마도사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녀석들 마도사가 어떤 존재인지 실력을 볼 기회가 되겠어.”

스트레칭 차원으로 몇 차례 팔을 돌려주고 허리를 쭉 폈다. 적군도 이제 아침을 넉넉히 먹고 나설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슬슬, 시간이 됐군.”

네마냐는 사전 교섭으로 잠깐의 시간 벌이를 했다. 최대한 느긋하게 나서 주면 이쪽이야말로 좋았다. 이쪽에서 준비한 작전을 위해서라도 여유는 꼭 필요하다.

“자, 그럼 이제 영감님과 괴물 놈들의 엉덩이나 걷어차 줄까!”

한쪽 손을 크게 쳐들며 기술 목록을 불러왔다. 저절로 배에 힘이 모이며 마나가 용솟음쳤다.

[사자후]

[1단계 병사들의 모든 신체 능력이 +1만큼 증가합니다. 공격 시 피해 1% 가산, 방어 시 피해 1% 감산합니다. 지속 시간 1시간. 재충전 2시간 필요.]

‘보정치는 보잘것없지만, 능력 전체 +1은 엄청난 기술인데. 잘만 쓰면, 그때까지 큰 피해 없이 버틸 수 있겠어.’

배에 모은 힘을 목청으로 개방하며, 네마냐는 몸이 으스러지는 충격을 견뎠다. 강력한 사자후의 강화 효과를 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마나를 담는 그릇인 네마냐 신체의 용량 자체는 아직 크지 않았으니까.

“모두 전투 준비! 무기를 들고 제자리로-!”

방어하는 입장이었지만, 큰 그림이 완성된 전투. 고블린의 실책을 끌어낼 「자루아나로의 유인」 작전을 알리는 신호였다.

- 36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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