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모든 일정이 끝나자 밤이 깊어졌다.
“거리는 한산하군요.”
“경기도 불황이고 하니, 다들 돌아다닐 생각을 못 한답니다.”
“대충 봐도 그래 보이네요.”
거리는 한산하고 날씨도 찬데, 굴뚝에선 연기조차 나오지 않았다. 거지들도 수확이 없는지 동냥이 끝나지 않는 눈치였다.
“내년 봄에는 날씨가 얼른 풀려야 할 텐데. 올해는 이 모양이라 농사는 또 망쳤습니다.”
“성 바깥은 괜찮아 보이던데, 그 정도였나요?”
시종은 말도 말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물가는 오르는데 시중에 돈이 돌지 않아서 다들 아우성입니다. 언제 반란이 터질까 싶을 정도예요. 10년 전 계승 전쟁 이후로 이렇게 걱정되는 건 처음이죠.”
“흠.”
궁에서 내준 마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거리의 황량한 광경은 화려한 궁궐과 달리 절망적이었다. 아이들은 넝마나 다름없는 옷을 걸친 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갈 길이 멀군.”
쓸쓸한 도시에서 눈을 거두며 내일 할 일을 다시 정리했다.
‘내일 오후쯤에 연락이 오면 그때 움직이자. 남는 시간엔 아일라한테 마정석에 관한 지식을 배워 둘까.’
이윽고 숙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애써 잠을 청해 봤지만 혼자서 이불 하나를 덮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아일라와 미하일은 아직 거리의 술집에서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숨을 쉬며 일어나 이부자리 위에 앉았다.
“빨리 자는 건 그른 것 같고, 상태나 점검하고 잘까.”
품속에 넣은 손에 딸려 나온 것은 이틀 전, 바누라트가 줬던 수정이었다. 그때 얼결에 잘못 만졌다가 흡수해 버린 아티팩트. 손 위에 올려놓고 있으려니 다시금 일렁이는 느낌이 전해졌다. 이젠 일반인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호환석이 되어 있었다.
“비호환도 이렇게 호환으로 만들 수 있다니. 시설만 구축하면 이익은 장난 아니겠지?”
이 세계의 인간은 이미 메모라이즈된 아티팩트로도 마법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주문자의 마나 체질과 용량 따라 마법의 위력이 달라졌다.
“그러니 선천적으로 마나 친화력이 큰 사람일수록 압도적인 마법사로 이름을 날렸지.”
네마냐의 마나는 어떤 불명의 이유로 광물의 마나와 직결되어 있었기에, 별도의 전환 과정도 없이 금속계 광물이나 마정석 원석으로도 마법을 쓸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렇게 한번 만지고 나면 그 마정석은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 쓸 수 있었다.
“대기 중의 마나뿐만 아니라 광물에 포함된 마나까지 쓸 수 있다면 정말대단한 건데.”
언제든 눈을 감으면 볼 수 있는 푸른 창 한 귀퉁이엔 ‘광물 마나 친화력 : 39,028,304,895’라는 식의 막대한 숫자가 쓰여 있었다. 시스템 오류 발생 때나 볼 법한 숫자였다.
“그럼 한 가지 실험을 더 해 보자.”
방안에 잡동사니 용으로 놓여 있던 항아리를 가져다 두고 그 앞에 앉았다.
[퓌르(Fur)]
원소 마법 중 불의 속성에 해당하는 가장 기초적인 주문의 시동어를 외웠다. 불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아니, 그냥 단순한 불의 영상이 아니라 뭔가 좀 더 강렬하고 타오르는 그런 느낌…….
“으음…….”
체내 마나가 끓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변환이 끝난 것일까.
“교재에선 이렇게 한다고 했는데. 다시 한번 해 볼까.”
마법 대신 과학이 자리를 차지한 곳에서 인격이 형성했던 서준의 영혼. 처음엔 아예 추상적인 이야기인 것 같아 짜증이 났지만, 나중엔 몸살 기운마저 마나 때문이라 생각할 정도로 변했다.
“후, 됐다.”
붉은 공 형태의 화염이 작게 피어났다. ‘퓌르’라는 주문은 이렇게 만들어진 불의 마나를 허공에 위치시켜 잠시 타오르게 하는 주문이었다. 불꽃은 허공에서 일렁이다가 이내 픽 하며 꺼져 버렸다.
“아, 젠장. 원소 소환이 제대로 안 되네. 피곤해서 그런가.”
퓌르 자체는 너무 고대에 만들어진 주문이라 그런지 정교하지 못했다. 약간만 부주의해도 마나가 쉽게 흐트러졌다. 그 점을 고려해 더 집중력을 끌어모으며 불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떠올렸다.
[퓌르]
“제발.”
피식하며 김새는 소리와 함께 몇 번이고 흰 연기가 모락거렸다. 다시 한번!
[퓌르]
다섯 번을 연거푸 꺼트린 다음에야 불길이 타올랐다. 길어야 10초 정도밖에 지속이 되진 않겠지만.
“흡!”
집중을 흐트러트리면 안 된다. 불길이 오르자마자 아까 그 마정석 수정을 던졌다. 수정은 불꽃의 마나에 반응을 보이며 위로 올라갔다. 따뜻해 보이는 노란 불꽃이 수정을 둘러쌌다. 낡은 문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서 수정은 붉게 물들었다.
“됐다!”
노란 불꽃의 색으로 뒤덮인 돌을 손으로 집어 들었다. 허공에 떠 있던 돌멩이는 자석에라도 마주친 듯 손가락에 끌려왔다.
[스캔]
뜨겁고 온기를 주는 힘이 느껴졌다. 물의 속성을 가졌던 마정석을 불의 속성을 가지도록 바꾼 것이다.
“……앗 뜨거워!”
계속 들고 있으니 불에 둘러싸여 남아 있던 열기가 그대로 손바닥을 달궜다. 조금 기다렸다가 잡았어야 했는데 마음이 급했다. 아직 마나를 움직이는 데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아, 뜨거워라……. 앞으론 집게라도 가져다가 봐야겠다. 멀쩡한 손을 구워 먹을 뻔.”
하지만 지금 초미의 관심사는 역시나 아티팩트였다. 불로 지져도 맑고 푸른빛이 투명한 수정. 그러나, 그 속에 흐르는 기운은 전과 달리 화염의 기운으로 느껴졌다.
솨아아!
귓전을 울리는 바람 소리와 함께, 뜨거운 기운이 맞닿은 손가락을 타고 다시 한번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약간의 불 속성 마나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조금 더 세게 가열할 수 있다면, 충분한 양을 모으겠는데?’
만약 이런 방식으로 마나를 계속 채워 넣을 수 있다면 충전도 된다는 걸까? 네마냐는 이미 광석을 통한 마나 전환이 가능했다. 즉, 이런 광석들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이론적으론 무한한 마나 사용도 가능한 것이다.
“훗. 결국 내가 마나 변압기다, 이거군. 마나 도란스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생체 도란스?”
식어 버린 수정을 만지자, 마치 유리라도 만지는 것처럼 예리한 기운이 느껴졌다. 구슬 아티팩트는 손수건으로 덮은 채 머리맡에 두었다. 열광이 가시고 나자 다시 피곤이 찾아왔다. 연신 목과 어깨의 관절을 만졌다.
“아, 생각이 많아져서 잠이 오려나.”
그때 아래 층계로 거친 발걸음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는 질질 끌리는 소리였고, 다른 하나는 거친 숨소리로 보니 대충 누군지 알 법했다.
“지금 오는 건가. 괜히 말 섞었다간 귀찮겠지. 일단 자는 척을…….”
탁상에 놓여 있던 호롱불을 급히 끄고 침대 위에 그대로 누웠다. 이불을 머리맡까지 끌어올리는 순간,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조용히 넘어가라. 제발.’
새벽의 찬 공기가 빠르게 피부로 전해졌다. 진한 알코올 냄새가 나는 건 덤이었다. 주정뱅이와 얽히면 힘들어진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아유, 인마는 주량도 모르면서 왜 이리 나댄 거야. 이 나이 먹고 내 팔자도 참. 야야, 다 왔어. 자리엔 네가 직접 누워, 좀.”
“으아……? 형씨는 누구? 아일라 씨는 어디 가고 웬 아저씨가…….”
어둠 속에서 둔중한 소리가 들려왔고, 진동이 벽면을 타고 전해졌다. 진심으로 걱정이 될 만큼 커다란 바위 부수는 소리였다.
‘저러다 내일 못 일어나는 거 아냐? 뭐 하나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의문의 그림자는 떠메고 있던 희생양을 침대까지 끌고 와 내던졌다. 한바탕 출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 정도의 무게가 느껴졌다.
“하……. 네마냐는 이미 있었네. 우리 때문에 깨지는 않았겠지? 굉장히 늦게 끝난 모양이던데, 헤헤.”
‘그게 걱정되면 좀 조용히 다녀야지. 옆방 사람들도 깨겠는데. 둘 다 취해 가지곤.’
자세가 불편해서 뒤척이자, 아일라가 이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알코올 냄새에 속이 울렁거렸다.
‘너무 오랜만에 알코올 냄새를…… 죽겠다.’
“응, 자고 있네. 착하군.”
머리를 두어 번인가 쓰다듬는 주사를 부린 뒤 아일라는 좌충우돌하며 퇴장했다. 문이 닫히며 내는 소리와 함께 방안은 어둠 속에 잠들었다. 옆자리 꽐라 녀석의 코 고는 소리와 함께.
‘정말…… 둘 다 술 마시면 다른 방을 쓰게 해야겠군. 주사가 최악이야, 쯧.’
오지 않는 잠과 씨름하며, 모처럼의 행복한 꿈에서 깨어나지 않길 흐려져 가는 정신 속에서 바랐다.
* * *
“원소 마법이 잘 안 된다니?”
이야기 주제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퀘스트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눈을 감자 「정보 수집」이라는 하얀 제목이 보였다.
‘이번엔 정보 수집 퀘스트인가.’
요즘은 간간이 대화로 정보를 수집하기만 해도 기술 능력치를 일부 제공하고 있었다. 받는 대로 화술이나, 금속을 다룰 때 필요한 기초 능력에 쏟아부어서 티가 잘 안 날 뿐.
‘아직 기술을 제대로 쓴 적은 없어도 곧 쓸 기회가 오겠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한 얼굴의 아일라가 의자에 앉았다. 아침밥 때 이야기를 들어 보니 술 항아리를 다섯 동인가를 비웠다던데,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물론 양조 기술이 형편없어서 술 도수가 세지 않긴 하지.’
그래도 불순물은 많아서 숙취가 굉장히 심한 편이었다. 원래 상사에게 대접하느라 말술이었던 서준은 이곳에 와서는 숙취 때문에 학을 뗀 상황일 정도였다.
‘대체 간이 얼마나 튼튼한 거야. 술 잘 마시는 게 난쟁이족 특성이기라도 한 건지.’
잡생각을 지우며 아일라의 질문을 받았다.
“아, 네. 어제 돌아와선 길드에서 받은 아티팩트의 속성을 바꿔 보려고 했어요.”
“응.”
아일라는 이쪽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퓌르]를 걸었거든요? 근데 한 세 번인가 네 번을 걸어도 잘 작동이 안 되던데요.”
“아, 난 또 뭐라고. 하루아침에 갑자기 마나 고자라도 되었다는 줄 알았지.”
“고자……요? 하하”
가끔 지금처럼, 아일라가 이상한 말을 하기도 했다.
“고자가 마나를 축적하기엔 좋다더라. 어떤 놈들이 그랬다던데. 마법이 그리 쉬울 것이면 누구나 다 자르겠나 싶지만.”
“그러게요, 하하. 정신수양의 수단이 아닌 절단만으로는 폐인밖에 안 될 텐데.”
“으, 속도 안 좋은데 무슨 이야기들 하는 거야, 두 사람.”
연방 꿀물을 들이켜는 미하일은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도 아마 모르는 것 같다. 그대로 무시한 채 아일라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 뻘짓거리 때문에 난리였어. 몇 년 전엔 수련을 핑계로 자른다면 제적하고 추방한다는 결정이 나왔지. 그러자 몇백 명이 단체로 거세하고 반발…… 어머, 이놈의 방정맞은 주둥이가. 아무튼 거세게 반발도 했었지.”
‘거세하고 반발했으면 진정성은 인정받았겠어. 말하고 보니 왠지 무서운데.’
“거세 이야기는 그 정도로 하죠. 아침에 소시지를 먹으면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소시지의 질긴 껍질을 질겅질겅 씹는 미하일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어깨를 한 차례 들썩거린 아일라도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그래,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원소 마법이 잘 안된다는 부분이죠. 사실상 처음 부분이에요.”
“대단한 문제는 아니야, 간단한 문제지. 너 조합장 만났을 때 기억하지?”
“네. 그때 만진 게 이 수정이잖아요?”
그 말에 네마냐가 수정을 꺼냈다. 아일라는 수정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말했다.
“그래, 이게 문제였어. 보통 다른 사람들한텐 거의 없을 문제인데, 네가 좀 특이체질이니?”
“체내 마나 사이에 균형이 깨진 걸까요?”
양상추에 저가형 올리브유를 끼얹어 쓱쓱 비빈 아일라가 잠시 말을 멈췄다. 기름이 번들번들한 숟가락은 내려 두고 먼 하늘을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뭐랄까…… 비슷한 이야기지. 네 마나는 아직 1 클라시카 단계인데, 물 속성 마나가 유입되고 바로 2 클라시카가 된 거지?”
“네. 거기서 시험해 보니 고리 2개가 만들어지던데요?”
아일라가 이제 확실하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럼 그것 때문이야! 네 체내에 순환하는 마나 중 절반이 물 속성으로 변한 거니까. 그만큼 상극에 있는 불 속성 마나는 변환하기 어려워질 테고. 간단한 얘기지.”
“아, 그래서…….”
아일라의 말을 듣고, 네마냐는 샐러드를 비비고 빵에 끼워 건네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것 같았다. 아일라는 말없이 엄지를 척 세우곤, 보란 듯이 옆자리에 앉은 미하일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야, 보고 좀 배워라, 밀. 이런 게 윗사람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란 거야. 너처럼 마시지도 못하는 술만 진탕 마시는 게 아니라.”
“마시지도 못한다는 사람한테 계속 강권한 게 누구시더라? 거기다가, 어제 계속 나 때렸죠?”
“오늘도 좀 두드려 줘? 한번 뱉어내고 오면 시원할 거다.”
아일라가 몇 번 두드려 주겠다며 굳은살이 박인 주먹을 움켜쥐자 미하일이 손사래를 쳤다.
“누구 죽일 일 있어요? 윽…… 안 되겠다. 나 좀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미하일은 재빠르게 화장실로 도망쳤다. 아일라는 그 모습을 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남 보기 부끄럽군. 앞으론 따로 다니든가 해야지, 참.’
작게 고개를 저은 뒤, 새로 주문한 포도주 차를 한 잔 들었다. 아까 뜬 퀘스트 창을 자세히 읽을 좋은 기회였다.
‘……마나 조절법을 찾아내 터득하면 추가 능력치를 준다고? 갑자기 후하게 주기 시작하네. 무슨 일이지.’
이러면 꼭 다음에 큰일이 생긴다는 소리 같은데. 그래도 기회란 건 그저 좋은 것. 정신을 맑게 하는 쌉싸름한 끝 맛을 혀 너머로 넘기며 잔을 내려놓았다.
“음, 아일라.”
“얘기해.”
“그럼, 마나 균형은 어떻게 잡는 게 좋을까요? 이론만으론 부족해서.”
“문제도 그렇지만, 답도 단순해. 네가 부족한 만큼 다른 속성 마나를 만들면 되지. 넌 마나 속성을 가리지 않고 다 흡수하니까.”
답은 참 단순했다. 하지만 명확한 것과 달리 해결 방법은 찾기 어려웠다.
“그런 마법이 지금까진 없었으니까요. 보통 마법서에서는 속성 마나를 무속성으로 바꾸어 흡수하는 방법을 알려 주잖아요? 그런데…….”
속성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강제로 써야 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법은 고질적으로 ‘전환 효율’이 극도로 떨어진다. 속성 마나의 힘이 100이라면 그걸 무속성으로 전환했을 때 고작 15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단 15%. 아일라가 무릎을 쳤다.
“맞아, 그렇지. 무속성을 거치면 괜히 거의 9할은 못 쓰는 셈이 되니까. 그러면 속성 마나를 흡수하는 게 좋겠지. 네가 가장 잘 맞는 광물계 마나로?”
다양한 원소 샘플로 시험해 본 결과, 오직 금속이나 광물 계열에서만 마나를 끌어낼 수 있었다. 아일라가 말하는 건 그 방법이었다. 네마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간단하지. 각각의 속성을 가진 마정석이나 결정석을 구해서 흡수하면 돼. 무식해도 효과는 직방이라고.”
“아…… 지금 당장은 힘들겠네요, 하하.”
얼버무리며 이야기를 마쳤다. 소득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고민거리는 새로 생겼다. 고순도, 고함량의 아티팩트를 어떻게 수집할 것인가의 문제. 마정석은 이 지역에선 아예 구하기도 힘들다.
“마탑이 싹쓸이하는 중이지. 이런 건 나도 정말 도움이 안 되는군. 어쩔 수 없이 한동안은 물 마법사로 지내 줘야겠다.”
‘광산을 파헤치기 전까진 되도록 물 마법 위주로 써야 하나. 그래도 능력 보정치는 쓸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혹시 모르니 새로 받은 능력 수치들은 남겨 두기로 하고 눈을 떴다. 아일라가 위로하듯 한마디를 건넸다.
“걱정하진 마. 마나를 못 쓰는 건 아니니까. 당장 불 마법 쓰는 게 아니라면 괜찮아.”
“네. 그래도 해결 방법은 알게 됐으니까요.”
그렇지만 마뜩잖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면, 궁정 마법사도 있던데 무슨 조언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궁정 마법사가 있었구나.”
궁정 마법사라는 존재는 알곤 있었지만, 보통 그들이 배출된 마탑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바난드에 충성하는 마법사라면 믿을 수 있지 않을까? 한번 알아봐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설마 마탑에 정보가 새어나가 추적당하는 건 아니겠지. 정보 유출을 고려하더라도 접촉해 볼까, 흠.’
“바난드의 궁정 마법사는 문제 되는 마탑 출신이 아니야. 너무 의심하진 않아도 될 거야. 내가 보장하지.”
먼저 기사 학교를 다녀 봤다는 미하일이 그 궁정 마법사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다며 괜찮을 거라 장담했다. 그렇다면 걱정을 조금 덜어도 될 것이다.
“좋아요. 마침 오늘 제 교육 과정 이야기 결론이 난대요. 조합장한테 오늘 만나기 전에 미리 그 얘기도 해 둘게요.”
“오, 괜찮네. 꼭 확인해 봐.”
“아일라 씨는 오늘 안 갈 거예요?”
세상 다 산듯한 표정으로 고개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리고 저 표정, 아! 저 묘한 걸 설명할 수 있으면 세기의 문호로 떠오를 것을! 마치 결혼 30주년을 코앞에 둔 주부의 회한이 묻어나는 저 표정.
‘야, 저게 어떻게 스물일곱 젊은이 얼굴에서 나오는 표정이지. 저건 인생 3회차인 나도 못 하겠는데.’
“나는 귀찮은 거 딱 질색이야. 밀이랑 같이 다녀오든지.”
“알았어요. 뭔가 다른 공지사항 있으면 나중에 알려 드릴게요. 다 끝나면 성문 앞에서 만날까요?”
“좋지. 해장술 좀 들다가 만나러 갈게.”
“거, 술은 적당히 하고요.”
“알았어, 알았어.”
투덜대는 소리를 뒤로한 채, 남아 있는 찻잔을 비우고 샌드위치를 집었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바누라트와의 약속 시각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난드 일정의 마지막 일과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 22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