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92화 (192/200)

# 192

69장 - 가정과 감정 (1)

NBSC를 직역하자면, 후진 없는 노후 도전.

나는 한동안 그것이 계약자인 나를 위한 타이틀이라고 생각해왔다.

살면서 계속 후진만 해왔던 내게, 신이나 그와 비슷한 존재가 이제 좀 앞으로 가봐라 하며 건네준 능력이리라고.

그렇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손바울과 유하늘과 신지원을 상담하며 느꼈다.

이 신비로운 힘이 단지 개인을 위한 것일 리 없다고.

후진을 그만두고 싶은 것은 나뿐만이 아닐 터였다.

그렇기에 확신했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을 외면해온 신이, 후회하고 있음을.

그가 나를 통해서 하계를 바꾸려 하고 있음을.

그런 관점에서 이가을은 조금 이상한 타깃이었다.

늘 사람을 구하는 길을 종용해온 NBSC가, 죽여보라니.

아무리 제2의 루트가 있다 해도 지나치게 직설적이었다.

대체 사람을 죽여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악화시키는 역행일 텐데.

그렇지만……

죽어야만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인간을 증오하기에 사이비 종교를 확장하려 드는 이가을은, 존재 자체로 세상을 뒤흔들 악이었다.

멍청한 이가 신념을 가지면 위험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멍청하다기보다 오히려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존재가, 증오 속에서 인류의 파국을 꿈꾼다면.

자기 이득을 위해 착취하는 것을 넘어 보이는 모든 인간의 타락을 기원한다면.

그 존재가 끼칠 악영향은 얼마나 거대할 것인가.

상상 속에서 확인한 영원교의 회원은, 거의 50만.

그럼에도 탈출 후기조차 검색되지 않을 정도로 견실하다.

그 많은 신도들이 청소년기부터 동생을 세뇌해온 이가을의 코칭을 받아 가스라이팅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

아시아만이 아니라 세계만방에 사이비 교리를 전파하려고.

가스라이팅이란 마음의 구멍을 파고드는 바이러스.

정신적인 관점에서는 코로나만큼 위험하다.

교묘하게 세뇌당한 사람은 그 즉시 자유의지를 박탈당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착취를 즐기는 노예로 변해간다.

그러니 상담사와는 정반대의 포지션.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는 내게, 영원교는 적 중의 적이었다.

NBSC 역시 그 점을 고려했으리라.

그래서 이가을을 에픽퀘스트의 타깃으로 삼았을 것이다.

도저히 교화될 수 없을 것 같다면 죽여 없애라고.

그녀 하나를 제거함으로써, 이후 고통받게 될 수천수만의 인간을 구원하라고.

나 역시 그렇게 할 생각이다.

저 이가을은 죽여야만 한다.

물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정신적인 방법으로.

그런 의미에서였다.

나는 아내와 딸의 손을 잡고 한남동으로 가는 중이다.

“……진짜 웬일이야? 아빠가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그런데 왜 갑자기 친정 가 있으라고 한 거야?”

“갑자기가 아니야. 내가 조만간 또 찾아뵙겠다고 했었잖아? TV를 통해 좋은 남편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나면.”

“아 진짜? 아빠 그런 말 했어? 할아버지 식겁했겠네! 아빠 인제 진짜로 완전 톱스타잖아? 할아버지 튱격!”

“하하. 아무튼 그래서 오랜만에 찾아뵙는 김에, 딸이랑 손녀 좀 오래 보시게 해드리려는 거야. 그간 내가 바쁘게 만든 탓에 당신이랑 지수도 자주 못 보시고, 얼마나 외로우셨겠어.”

“……정말 그런 이유야?”

“그럼. 그런 이유지.”

사실은, 이가을과의 계약조건이었다.

대결의 주체인 나나 그녀가 내담자와 자꾸 말을 섞게 되면 불공정한 간섭이 생길 수 있다는 논리.

자신도 쌍둥이 동생의 집에 찾아가지 않을 테니, 내게도 아내를 친정에 보내두라는 얘기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밤마다 무서운 언니를 마주봐야 한다면, 나와 한참 상담을 해본들 이겨울의 회복은 요원할 테니까.

내 아내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겠지.

그렇지만 그 이야기야말로 이가을의 패착이었다.

진주희의 감정은 내가 이룬 것이 아니다.

내가 스승인 한효준만큼이나 존경하는 그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이 고풍스런 가정에서 자란 사람.

비록 내게는 오랫동안 그 대문이 닫혀 있었으나……

나는 오히려 그렇기에 장인과 장모를 존경한다.

“매형! 금방 오셨네요?”

“그래. 오늘도 오전부터 일정이 많아서.”

“에이, 좀 쉬엄쉬엄 하세요. 푹 주무셔야지. 우리 매형 어깨에 5천만 국민의 정신건강이 달려 있는 판 아닙니까?”

“괜한 소리는. 들어가자, 문 좀 열어줘.”

“하하. 애즈 유 위시!”

처남의 호들갑스러운 추켜세움은 최근의 뉴스 때문이다.

내 새벽상담소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지 두 달.

썩 길지는 않지만, 그 기간에 자살자의 수가 예년 대비 30%가량 감소했다는 보도는 화제가 안 될 수 없었다.

인명사고 0건을 유지하고 있는 육군의 변화와 어우러져 마치 기적처럼도 여겨졌을 듯했다.

그것 역시 이가을을 자극한 이슈 중 하나겠지.

사이비 종교는 인간의 약점에 기생한다.

그 구멍을 메우는 데에 삶을 쏟는 나라면, 국내에 총본산을 둔 영원교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처럼도 보였으리라.

그러니 언제고 부딪칠 수밖에 없는 적이었다.

내가 그녀의 구원을 원했듯, 그녀 역시 내가 타락하길 간절히 바랐을 테니.

그런 생각을 하며 저택의 대문을 통과했다.

정원의 주차장 앞쪽에 장인이 뒷짐을 지고 서 있더라.

그 표정은 아주 진중하고 곧다.

그리고 목소리는, 고송처럼 느긋했다.

“자네, 왔나.”

“예, 장인어른.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죄송은. 어흠. 주희랑 지수는, 먼저 들어가 있어라.”

“아빠……?”

“괜찮으니 얼른 들어가 있어.”

“네……. 가자, 지수야.”

“할아버지, 이따 봐용!”

“아버지, 저는요?”

“너도 응당 들어가 있어야지. 어른들 얘기다.”

“하핫. 예압, 파덜.”

처남마저 현관 안쪽으로 사라진 뒤.

장인의 시선은 서서히 정원의 연못으로 향했다.

나를 무시한다기보다는, 마주보는 것이 쑥스러운 듯했다.

“거…… 자네, 올해 몇이지?”

“마흔일곱입니다, 장인어른. 지난번에도 그리 물으셨지요.”

“……말버릇 같은 거야. 신경 쓰지 말게.”

“일종의 권위주의입니까?”

“어흠. 그렇다기보다는, 알고 싶어설세. 내 앞에서 나와 마주하는 이가, 과연 내 이야기를 얼마만큼 이해해줄지를.”

“연령과 삶의 이해도는 서로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래. 그것도 알고 있네. 그래서…… 자네에겐 미안한 마음뿐이야. 대붕의 뜻을 내가 감히 재단하려 했으니. 요새는 퍽 한가해서 내 많은 댓글을 읽었네. 자네가 그간 쌓아온 미담들…… 박대민 부장 덕에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이들이 참 많더구만. 꼭 상담을 시작한 이후가 아니라도 그랬어. 자네는 비록 내 딸아이에게 썩 좋지 못한 지아비였지만…… 그렇다고 내가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인물이었네. 그것을 이제야 알았어. 이 나이를 먹고서야. 부끄러운 일이지. 그러니…… 오해하지 않으리라 믿네만, 나를 잘 봐달라는 변명은 아닐세. 진주희의 아빠로서 하는 사과야. 그간…… 미안했네.”

고개를 숙이는 장인을 보는 것은, 분명 특별한 경험.

그렇지만 조금도 즐겁지 않은 경험이다.

이러면 꼰대처럼 인사를 막을 수밖에.

“아니요, 방향이 잘못되었습니다. 제 이야기는 이런 뜻이었습니다. 제가 서른도 넘어 장인어른을 뵈었었지요? 그런 나이였지만, 그때까지도 삶이란 게 무엇인지 쥐뿔도 몰랐습니다.”

“거 무슨…… 겸손한 소리를.”

겸손한 소리가 아니다.

겸손이라면 장인에게 훨씬 더 어울리는 어휘.

피임에도 실패해 대학원생 아내를 임신하게 만들었던 젊은 박대민은, 사실 세상에 절망해 하루하루 지쳐가고 있었다.

“저는, 그랬습니다. 그 시절까지 늘 이기적인 책임감으로 살아왔습니다.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고자 리더를 자처했고, 가난한 고향집의 동생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고, 더는 시체를 보지 않으려고 많은 이들에게 호구처럼 굴었습니다. 그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무작정 베풀기만 하느라 제 마음이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느끼지도 못한 채로, 저는 고슴도치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가끔 그런 말을 듣곤 한다.

어쩌다 한 번 화내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꾹꾹 눌러담았다가 크게 폭발하니 조심해야 한다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관점이 거꾸로 된 이야기였다.

그들이 참는 이유는 언제고 터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상대를 위함이다.

오직 선한 마음으로 창칼까지 맞아주다가, 그 통증이 임계점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유리가 깨어지고 마는 기작이다.

그러니 폭발은 필연적이지 않다.

따뜻한 마음으로 잘해줄 때 함부로 호구 취급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분노하는 순간은 생기지 않을 터였다.

그렇지만 세상은 늘 그들에게 실망만을 안겨준다……

이가을이 바로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쌍둥이 동생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던 아이.

가족의 웃는 얼굴을 보고자 뭐든지 할 수 있는 소녀였다.

싸이코패스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양친은 그녀를 벗겨 마귀에게 건넸다.

구하고자 했던 동생은 고마워하지 않았다.

양친에게 들은 대로 맛있는 케이크를 먹고 왔다고 믿고서는, 가을이는 욕심쟁이라며 잔뜩 화를 냈다.

정말 화내고 싶은 사람은 웃고 있는데.

시뻘건 지옥불에 찢겨 피가 줄줄 새는 상처를 티도 내지 못한 채, 그저 참고 또 참으며 웃었던 것인데.

그녀를 제외한 가족들은 그저 화목하기만 했다.

그날, 이가을의 세상은 변했다.

그녀는 더는 가족을 위하는 소녀가 아니게 되었다.

가족을 증오하고, 인류를 경멸하며, 세상을 저주하는……

영원교를 집어삼킬 고슴도치가 그때 잉태되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녀처럼 세상을 저주하고 있었다.

병사의 자살을 덮고 책임을 회피하는 장교들을 참고, 세상이 곪아가고 있는데도 돈에만 미쳐 사는 임원들을 참다가, 사소한 일에 화를 내며 주먹을 휘두르곤 했다.

그러나…… 나는 고슴도치가 되지 않았다.

이후로도 15년을 더 사람 좋은 호구로 버텨냈다.

그 모든 일이, 진주희를 만난 까닭이었다.

“장인어른. 주희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신이 나서 회사의 새 프로젝트를 떠들었습니다. 들어줄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지요. 너무 예쁜 사람이라서 저 같은 풋내기에겐 관심이 없으리라 믿었거든요. 애초에 참 재미도 없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개인의 UCC를 라이브로 송출하는 인터넷 방송 채널…… 당시에는 누가 들어도 헛소리였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주희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게 되면 정말 좋겠네요. 같은 방송을 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멀리 있는데도 같이 있는 것 같을 거야. 혼자 있는 날에도 외롭지 않겠어요……. 음. 제가 말하니 좀 어색하군요.”

“……허허. 우리가 워낙 대가족이었으니, 혼자 기숙사에 간 그 아이가 자주 외로움을 타곤 했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게 아니라, 자기와 함께 드라마를 보지 못하게 된 부모님이 외로워하실까 염려했던 거였어요. 그게 참 인상 깊었습니다. 보통 그 나이에는 가족 내에서 자기의 영향에 대해 잘 모르기 마련이잖습니까?”

“그야, 그럴 수 있는 노릇이지.”

“그런데 주희는…… 장인어른의 따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당신들께 얼마나 소중한 딸인지를. 그리고 자기에게 부모님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그렇기에 제가 세상에서 제가 두려워하는 두 사람 중 하나인 거지요.”

“하나는 주희고, 다른 하나는?”

“지수입니다. 요즘은 주희보다 더 무서워요.”

“허헛! 거, 너스레는. 자네 좋아하는 게 티가 나더구만, 뭘.”

가벼운 너스레는 거기까지.

이제는 진지한 이야기를 할 차례였다.

장인과는, 언제고 꼭 풀어야 했던 마음을.

“장인어른. 저는 어려서부터…… 늘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언제나 제 마음을 숨기고 남들의 눈에 맞춰 살고자 했지요. 그래서 더 충격이었습니다. 너 같은 놈과 결혼하면 내 딸이 행복할 리 없다는 그 말씀이요.”

“그 부분은, 내가 다시금 사죄함세. 미안하네.”

“아뇨, 그런 뜻이 아닙니다. 물론 저야 오랫동안 그것이 집안의 형편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 생각했지요. 개천에서 난 용 이라며 무시하는 허영의 내외라고요.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가 이상했습니다. 이 저택 한 채를 제외하면 전 재산을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위해 쓰고 계셨던 분께서, 지금까지도 고려대 최후의 양심이라고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분께서, 정말로 그런 물질적인 가치를 논하셨던 걸까?”

“그야…… 허허. 이제는 알지 않나?”

“그럼요. 저는 그때 처음으로 저를 직시했어야 마땅했습니다. 남들의 시선에 맞춰 대처했을 뿐, 결코 스스로의 뜻으로 주변을 행복하게 해준 적이 없었던 저를요. 그렇게 호구처럼 살다간 끝내 상처받고 말 것이며, 그런 저로 인해 가족도 불행해지고 말 거라는 사실을요. 그때는 제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 오랫동안 멍청한 삶을 살게 되었지만…… 상담사가 되며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제가 정말 위험했다는 사실을요.”

“……그랬나. 그런 변화가 있었구만.”

“장인어른께서 참 사람을 잘 보셨던 거지요. 원래대로였다면, 저는 끝내 변하지 못했을 겁니다. 최악이었어요.”

“뭘 또 그렇게까지…… 이미 인격자가 되지 않았는가.”

“하하. 거기엔 분명 장인어른의 오산이 있었지요.”

오산이란 말에 눈을 둥글게 뜬다.

불쾌해하기보다는, 정말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것이…… 뭔가? 내가 어떤 부분을 오해했지?”

“당신의 따님입니다, 장인어른. 장인어른께서는 제가 아니라 친딸을 잘못 보고 계셨습니다. 제 부족함마저도 넘침으로 채워줄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인데, 그것을 모르셨어요.”

“……허허! 내가, 그랬는가? 그 부분을 잘못 봤던 거였어……. 이거야 원, 오산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부분이로구만.”

후련하게 웃는 장인어른의 얼굴을 바라본다.

눈과 입매가 아내와 쏙 닮은 노인.

오랫동안 아내의 이상형이었다는 남자.

강단에서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크게 존경받으며, 아이들이 바른 감정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었던 스승.

나는 이 사람의 딸을 통해 달라졌다.

너무도 고집스럽고 둔한 사람이라서 15년씩이나 걸리고 말았지만, 진주희는 분명 박대민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녀로 인해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내기가 불공정한 것이다.

이가을은 뛰어난 상담사인 나를 아내로부터 떨어뜨림으로써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진주희야말로 나의 상담사.

고슴도치의 가시는 그녀에게 닿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일주일을 거저 벌게 된 셈이지.

NBSC조차 죽임밖에는 답이 없다고 한 이가을 본인을 상담하기에는, 썩 길지 않은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동생 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겨울을 세뇌한 주체는 이가을.

나는 [환상의 수용]을 통해 언니 쪽을 수용했다.

지금이라면, 기억이 가물가물해졌을 이가을보다도 훨씬 더 상세하게 마인드컨트롤의 과정을 기억하는 셈이다.

그런 내게 디프로그래밍이 어려운 일일까

그 질문에, 한효준은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답했다.

[그렇다면 난관이 없는 셈이지. 세뇌의 해제가 까다로운 이유는, 이미 심적으로 방어체계가 완성된 내담자가 인지를 왜곡하고 경험을 부풀려 설명하는 점이야. 속지 않는다면 어렵지 않네. 허나 갑자기 디프로그래밍은 왜? 자네 설마……?]

“설마라면요?”

[자네, 설마, 사이비 종교와 전쟁을 벌일 셈인가!]

“……그럴 리가 있습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엇. 그런가? 난 또…… 요새 웹툰을 보다보니…….]

“아, 닥터 프로스트으 말씀이십니까?”

[발음 정확히 하게. 프로스틀이 아니라 프로스트야.]

살짝 r 발음을 넣어봤더니 대번에 지적하신다.

내 스승은 이토록 사람다운 사람.

그러면서도 세상 가장 위대한 상담사다.

미리 접한 내담자의 마인드컨트롤 상황을 제시해 그의 학식까지 배워낸다면, 내 상담은 결단코 실패하지 않는다.

[아무튼…… 설명해보게나. 대체 어떤 내담자야?]

“간추리자면 이렇습니다. 한 교단에 성녀라 불리는 아이가 있는데, 일란성 쌍둥이 중 언니입니다. 동생을 직접 세뇌해서 자기 대역으로 활용하고 있지요. 11년에 걸친 마인드컨트롤인지라 결코 풀리지 않으리라 자신하는 듯합니다. 다행히도 마음의 지도를 통해 그 과정을 역산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서로의 가장 소중한 것을 걸고 대결하게 됐습니다.”

[소중한…… 뭘 걸었다는 겐가?]

“저야 제 상담 활동이지요. 그리고 그쪽은, 행복입니다.”

[뭐?]

“행복이요.”

[……행복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이 못난 자야! 전쟁이 아니긴 뭐가 아닌가! 성녀라는 여자를 디프로그래밍 해버리면, 그게 바로 교단과의 전면전 아닌가!]

역시 현명하신 분.

그 한마디에서 이후의 플랜을 모두 읽어내신다.

하지만 그는 중요한 포인트를 모르고 있었다.

“전쟁이 아니라 대장전입니다. 그 아이가 교단의 제사장까지 움켜쥐고 있는 상태거든요. 적장의 목을 베는 순간, 전쟁은 끝납니다. 그러니 그것이 제 첫 살인이 되겠네요.”

[……정신적인 의미의 살해로군. 그렇다면, 살인이 아닌걸.]

“예. 살인이 아니지요. 저는 교단을 죽일 겁니다.”

[살신…… 이거야 원. 내가 니체와 통화 중인 것인가…….]

프리드리히 니체의 “신은 죽었다”와는 무관한 문제지만.

퍽 당황했던 스승은, 오래지 않아 전화를 끊었다.

내게 도움이 될 만한 모든 연구와 사례를 정리하기 위해서.

이러니 질 수 없는 전쟁일 수밖에.

나는 이가을의 영적인 목숨을 끊을 것이다.

내가 몹시 사랑하는, 인간 이가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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