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184화 (184/200)

# 184

66장 - 가을 우체국 앞에서 (2)

“아 진짜? JM에도 지수가 있어? 아 뭐야. 아이돌 중에 지수 몇 명이야 진짜. 나 유튜버 하면 예명 써야 되겠어.”

박지수라는 이름을 가진 내 딸은, 그렇게 투덜거렸다.

아마도 세 번째가 될 아이돌 지수의 등장이 못마땅한 모양.

그리고 내게는 뒤쪽 이야기가 못마땅했다.

내 딸은 늘 밖으로만 도는 나 때문에 유튜버를 꿈꿨다.

딸이 업계에 데뷔하면 아무리 막장 가장이라 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무의식이 추동을 만들었겠지.

그것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이 부끄럽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딸애가 어떤 꿈을 꾼대도, 늘 웃으며 지켜봐줄 것이다.

매스미디어 관련 업종만 아니라면.

“지수야. 유튜버 말고 다른 건 하고 싶은 거 없어?”

“없어.”

“상담사는 어때? 아빠가 옆에서 많이 알려줄게.”

“……근데, 아빠랑 비교되기 싫어.”

“그럼 군인은 어때? 넌 정말 훌륭한 장교가 될 거야.”

“싫어.”

“그러면, 수의사는 어때? 예쁜 고양이들 많이 볼 텐데.”

“어? 오…… 근데, 공부 많이 해야 되잖아.”

“학위가 필요하긴 하지. 하지만 지수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싫어. 그냥 유튜버 할래.”

“그렇구나…… 아쉽다. 수의사 가운 입은 지수는 정말 인텔리하고 멋있을 것 같았는데. 고양이들한테도 사랑받아서, 사람들도 동물들도 싫어하지 못할 만큼 훌륭할 텐데.”

“잉…… 몰라 몰라. 아빠, 대충 주차해. 빨리 빨리.”

도착한 곳은, 안산에 위치한 유기묘보호소.

딸애가 사자고 사자고 노래를 부르던 고양이를 입양하고자 어렵사리 짬을 냈다.

내 생일날 일찍부터 나갔던 것은 고양이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케이크를 직접 만들기 위해서였지만, 그렇다고 아기고양이에게 푹 빠진 것이 거짓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나마 분양 아닌 입양을 선택한 것이 긴 설득의 성과였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지수도 나름대로 어디서 조사를 해와서는, 입양된 고양이들이 트라우마 때문에 이상행동을 보인 사례 등을 제시했다.

‘화술’이 회복되지 않았다면 설득이 힘들었을 터였다.

고집 피우는 딸의 마음을 잘 알기에, 더더욱.

박지수는 단지 도화지 같은 반려묘를 바랄 뿐이다.

울고 싶지 않은 까닭에.

늘 강한 척하지만 다정다감한 아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관리사로부터 수칙을 드는 데는 5분쯤이 소요됐다.

그 뒤에 지수는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반려묘와의 첫 만남부터 영상기록을 남기려는 듯했다.

“냥이 냥이! 예쁜 냥이 있을까냥?”

“지수야. 예쁘지 않은 냥이는 없어.”

“뭐냥? 아빠 새 프로냥? 나사없 다음에 예냥없?”

“그냥, 진리냥. 고양이도 사람도, 예쁘지 않은 생명체는 없어. 아빠한테는 우리 지수가 세상 제일 예쁘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또 다른 사람이 세상 제일 예쁘겠지. 우리는 그렇게 누구에게나 예쁠 수 있는 존재란다.”

“올. 아빠는 엄마한테 세상 제일 예쁘겠네?”

“……그렇진 않겠지. 속만 썩이는 남편이니까.”

“뭐래. 엄마가 아빠 얼마나 좋아하는- 으아…….”

딸애가 눈살을 찌푸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기대한 풍경이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테니까.

동시다발적인 울음소리와, 퀴퀴한 냄새.

햇살이 스며든 하우스 안에는 20여 개의 철장이 있다.

그것이 3단으로 쌓여 늘어선 집단거주구.

식사나 용변을 위한 공간이야 따로 있고, 각각의 철장이 잘 관리되어 있지만, 그래봐야 깔끔한 닭장과 대동소이했다.

그러니 그곳은 수용소.

인간에게 버려지고 자연에서도 배척된 이들의, 감옥이었다.

“……이게 뭐야. 왜…… 이게 뭔데…….”

“뭐긴. 유기묘 보호소야.”

“이…… 이렇게, 왜 이래? 다 막…… 울잖아. 갇혀 있잖아.”

“늘 갇혀 있는 건 아니야. 봉사자들이 왔을 때는 다 나와서 운동도 하고 놀이도 한대. 그렇지만 평소에도 문을 열어놓는다면, 서로가 서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거야.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약간의 규칙이 필요한 거지. 관리사들이 다 컨트롤하기에는, 자원도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니까.”

“……그게 뭐야. 감옥 같아.”

“감옥이지. 죄수들을 위한 공간이 맞아. 물론 죄를 지은 건 저 아이들이 아니라 무분별한 보호자들이지만…… 사람들에게는 마찬가지야. 버려진 이상, 죄수들인 거야. 누군가가 데려가지 않는다면 결국 안락사 형에 처해지겠지. 지수야. 그게 저 아이들의 종착역이야. 인간이 함부로 가두고 교배해 낳은 뒤 분양한 생명체들은, 주인의 가벼운 변덕 때문에 감옥에 가고 말아. 그래서 부탁했던 거야. 분양받지 말고 입양하자고.”

“아니…… 아, 띠…….”

딸애의 걸음걸음에 고양이들이 울며 발을 내밀었다.

사람에 의해 태어나 사람과 함께 살았던 생명들.

고양이과 동물이 좁은 공간을 좋아하긴 해도, 손길 없이 외로이 지내는 나날들이 외로운 것은 어쩔 수 없었으리라.

지수는 거의 20분 동안 철장 앞을 서성거렸다.

하나하나의 유기묘들과 눈을 맞추고, 눈물을 그렁거리며.

그 뒤에 내게 와서 허벅지에 니킥을 날렸다.

“아빠, 미워. 이러면…… 어떻게 골라.”

“포기할래? 그게 나을 수도 있어. 경험 없는 초보 보호자한테는, 분양이든 입양이든 난관이 없을 수가 없으니까. 언젠가는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치밀지도 몰라.”

“안 그래!”

“그러면 한 아이를 고르렴.”

“……다 데려갈래. 우리 집 넓잖아.”

“그건 고문이 될 거야. 모두가 고통에 시달리게 돼.”

“그럼…… 그럼…… 어떡해. 다 저렇게 예쁜데, 다 저렇게 착한데, 어떻게 하나만 데려가. 다 나만 보고 있는데…….”

이런 아이다.

의식적으로는 몰랐겠지만, 속으로는 예상하고 있었으리라.

외로움에 사무친 고양이들이 그녀를 잠식할 것임을.

그래서 끝까지 분양을 받자고 졸랐을 것이다.

하지만 내 딸은 알아야만 했다.

생명체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행위는, 그 생명으로 인해 비롯될 무수한 가능성마저 수용하는 일임을.

“지수야. 골라야 해. 선택하고, 그 선택을 증명해야 해.”

“씨이…… 아빠 미워. 개미워.”

“그래, 아빠도 사랑한다.”

“아 씨…… 아 씨…….”

10분쯤 더 서성거린 뒤, 딸은 한 고양이를 지목했다.

작고 왜소한 점박이 고양이.

누군가는 오래 살지 못하리라 고개를 저을 선택이었다.

“왜 이 아이를 고른 거야?”

“……제일 아파 보였어.”

“왜 제일 아파 보이는 아이를 골랐어?”

“다른 사람들이 데려가면, 아파하면, 그냥 버릴 수도 있어. 그냥 아파 보여서 안 데려갈 수도 있어. 그러면…… 불쌍해.”

“동정심이야?”

“아냐. 아빠가, 돈 잘 버니까. 아파서 수술하고 그래도…… 아빠는 수술비 내줄 거야. 그니까…… 데려가게 해줘.”

“수술도 하고 예방접종도 다 해도, 아파서 죽을지도 몰라.”

“알아.”

“아빠도 엄마도 지수도, 많이 슬퍼질 거야.”

“알아. 아니까…… 데려가게 해줘.”

이런 아이다.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내 딸.

아내에게 한소리 듣는 운명은 피할 수 없을 듯했다.

“그러면 아빠가 얘기하고 올 때까지 이름을 정해주렴.”

“이름, 정했어.”

“그래? 어떤 이름이야?”

“행복이. 내가…… 행복하게 해줄 거야.”

“……그래. 행복하게 해주자.”

핑크색의 고급 이동장에 들어간 행복이는, 차에 타고 나서도 한참 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고양이를 바라보며 딸은 연신 중얼거렸다.

“행복해지자. 행복해지자. 언니랑 행복해지자.”

동물병원에 들러 행복이가 구조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영양상태가 부실했을 뿐임을 알게 되고, 또 금세 새 집에 적응해 딸애 방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된 이후.

지수는 함박웃음을 짓는 일이 늘었다.

학원을 땡땡이치는 날도 늘었지만, 웃으며 모른 척해줬다.

딸은 개학을 하루 앞둔 날에 서류 한 장을 가져왔다.

“이거, 봐줘. 나 인생플랜.”

“그래. 어디 보자…… 교과서 위주로 공부해서 서울대 수의학과에 가겠다는 내용이구나. 정말 패기만만한걸?”

“할 수 있어.”

“그래. 공부도 행복이 옆에서 하고 싶은 거지?”

“응…….”

“알았어. 아빠가 책임지고 엄마 설득할게.”

“……뭐야? 왜 아무…… 뭐라고 안 해?”

“뭐라고 해야 하나? 사랑한다, 지수야?”

“아, 짜증나. 아, 됐어.”

그렇지만 설득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서툰 방식으로도 한 자 한 자 신중하게 적어간 계획서.

그 앞에서, 아내는 솟구치는 광대를 누르지 못했다.

“얘가…… 후후. 드디어 사람 됐네.”

“어, 마음에 들어?”

“그럼. 당연하지. 지수가…… 머리는 좋은데 도통 노력할 줄을 몰랐던 애가, 자기 손으로 공부 계획을 짰잖아. 감동이야.”

“공부하라고 강요한 적도 없는 당신이?”

“에이.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고 싶어한다는 게 중요하잖아. 그게 그냥 참 좋아. 이렇게까지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는 거, 요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행복해질 거야. 마음이 시키는 일이니까,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면 쟤가 진짜 이름값을 하네? 얘, 행복아! 이리 온. 옳지.”

아내의 품에 안긴 행복이를 보며 생각했다.

행복을 안은 진주희가 내 아내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

9월에 들어서자 더위가 한풀 꺾였다.

딸은 학원을 그만두고 학교와 과외 위주로 1학년 2학기 공부에 임했고, 그 외 여가의 대부분을 행복이와 보냈다.

심야방송을 단축한 나도 가끔 그 고양이와 놀아주곤 했다.

하루가 다르게 살이 붙고 장난기가 늘어가는 행복이는, 이내 내가 알던 어떤 고양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보호자인 한효준만큼이나 인자하던 나비는 아니다.

통칭, 짬이.

내가 복무하던 부대의 ‘짬타이거’였다.

군부대에선 ‘짬’이라고 해서 잔반을 식당 근처에 모아둔다.

이후 퇴비 용도로 수거하기 위함인데, 철저하게 관리감독하는 자원은 아닌 만큼 취사병들의 유용도 흔하다.

심심풀이로 인근의 짐승들에게 던져주곤 하는 것.

그렇게 사람의 짬을 먹고 새끼호랑이만큼 비대해진 고양이들을 짬타이거라 부른다.

없는 부대보다 있는 부대가 많을 정도로 보편적이라고.

부대에 유입되는 루트는 주로 자발적 가축화라고 하지만, 내가 복무한 부대에서는 행보관에 의해 반입된 전술무기였다.

부실한 식량창고의 게릴라군, 쥐 연대를 쫓아내기 위한.

그 전과가 워낙 혁혁해서 종종 경례까지 붙여주곤 했다.

그런 짬이는 한동안 내 가장 친한 말동무였다.

김 이병의 죽음 이후 군인 전부가 온통 시커먼 괴물들로 보였던 내게, 그 짐승만큼은 순백이었으니.

그렇기에 짬 차고부터는 정비 시간마다 짬이를 보러 갔다.

내가 돌봤다고는 농담으로라도 말할 수 없다.

서로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떠들기만 했을 뿐이니.

그렇지만 마음만은 왠지 통하는 느낌이었다.

염세주의자가 될 뻔했던 내가 다시금 인간을 사랑하게 된 것이, 어쩌면 그 아이 덕분일지도 몰랐다.

일종의 AAT(동물매개치료)가 PTSD를 막아준 느낌.

그러다가 더는 쥐 연대의 습격이 없으리라 확신한 행보관이 짬이를 옆 중대에 증여한 것이, 내가 병장이던 99년이었다.

그로부터 21년이 흐른 늦여름.

나는 그 짬의 추억을 향해 이동하는 중이다.

마침내 수천 대의 오큘러스GO가 시범부대에 보급된 것을 기념해, 메인모델로서 출신 부대에 방문하는 홍보 일정.

겸사겸사 <토크꼰서트>까지 생중계하게 됐다.

덩달아 진대수까지 따라붙은 것은, 꼰서트 뒤에 내가 생활했던 생활관에서 소규모 인방까지 송출할 예정인 까닭이고.

무려 세 개의 스케줄이 이기자부대로 모인 셈이었다.

옛날 이기자였다면 불가능했으리라.

나 때까지만 해도 똥군기가 자랑인 곳이었으니.

그렇지만 연예인들도 여럿 거쳐간 지금은, 악습의 온상 같던 부대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라도 마케팅이 필요한 듯했다.

“시운이 적절히 맞아떨어져버린 거지라잉. 딱 형님 부대에 슈퍼스타 아이돌 윤시우가 복무하고 있응께라.”

“……그야 좋은 일이긴 한데, 대수야. 사투리 별로다.”

“아따 형님? 사투리 비하발언잉게라?”

“그게 아니라 네가 너무 못 쓴다고.”

“헉. 으메…… 연습 허벌라게 혔는디, 슬프구마니라…….”

“됐고, 은진이하고는 잘 화해했나보구나?”

“음. 어흠. 그런 질문은 섹시하지 않습니다.”

“3분에 한 번씩 톡 주고받을 정도면, 화해한 셈이겠지.”

“어흠. 커흠.”

끝끝내 대답 없이 창밖만 보더라.

그 무례에 뒷좌석의 제자들이 맹공세를 펼쳤다.

“진드기 형. 선생님이 질문하시면 똑바로 대답하세요.”

“진드기 오빠, 똑바로 대답하세요.”

“야, 왜 지원이 너까지 진드기-”

“잠깐. 꼬맹이, 너한테 저 형이 왜 오빠냐? 너 나한테는 아저씨라고 했었잖아? 기준 더럽게 애매한데?”

“바울이 바보예요? 진짜 아저씨한테 아저씨라고 하면 실례가 되니까 그런 거잖아요?”

“그게 뭔……?”

“흠. 말이 되는군. 선생님께 아저씨 아저씨 부르는 것도?”

“당연하죠. 동안이시니까 편하게 부르는 거죠.”

“어…… 야, 그럼 나는?”

“그걸 몰라서 묻습니까? 형은 얼굴이 별로잖아요.”

“아저씨는 별로니까, 최대한 배려해드린 거죠.”

“커윽…….”

그렇게 별로좌 혼자 울적한 기분이 되어 도착한 부대.

알고 있는 얼굴은 이제 아무도 없지만, 기억 속 풍경이었다.

선진화병영이니 뭐니 해도 강산은 그대로인 법.

내 이전 기수에서는 야산을 깎아서 길을 내는 신화도 썼다지만, 근 20년간은 그런 명령이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에…… 사랑하는 우리 용사들. 여기에…… 에…… 상담사 박대민 선생이, 에…… 97군번, 여러분의 선배입니다. 오늘 이렇게 선진 브이알 사업의 모델로서, 인사하게 됐습니다. 자.”

연병장의 단상에서 20년 후배들을 내려다본다.

흥분과 존경과 호기심 등이 복잡하게 엉킨 시선들.

내가 누군지 모르는 청년은 단 한 명도 없고, 대부분이 입지전적인 벼락스타의 등장에 무척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그러니 미안한 일인 것이다.

즐거움에 즐거움으로 답해줄 수 없는 것이.

“안녕하십니까. 21년 전 이곳을 떠났던 박대민입니다. 기억 속 부대에 이렇게 금의환향하게 되어…… 무척, 슬픕니다.”

거드름 떨던 연대장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진다.

20여 년 전의 연대장도 딱 저런 인상이었지.

사내답고 호탕한 척하지만, 실은 그저 소인배였다.

그를 포함해 어떤 장교도 죽어간 이를 추모하지 않았다.

그 죽음으로 인해 생길 불이익만을 염려했을 뿐.

김 이병의 죽음이 울렸던 것은, 같은 처지의 병사들이었다.

“지금은 생활관 편제가 달라졌다고 들었지만, 그땐 저쪽이 2소대였어요. 그리고 이쪽이 1소대 1생활관. 그리고 저 사이의 길목 안쪽으로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었지요. 지금은 베어버린 모양이지만…… 분명 저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23년 전, 그 나무에서 한 병사가 목을 맸습니다. 2소대 생활관에서 가장 먼…… 그렇기에 1소대 생활관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요. 그는 그렇게 죽는 순간에라도 자기 생활관에서 멀어지려 했습니다. 최초발견자도 1소대에서 나왔습니다. 저였지요.”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리라고는 짐작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의 산증인이 나타날 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선임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기야 했겠지만, 그들에게는 그저 후임들 겁주는 용도의 전설이었을 텐데.

“저는, 여러분. 그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후배 여러분이 단 한 차례의 부조리도 겪지 않고 사회로 돌아가, 요즘 이기자 괜찮더라, 행복하더라,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행보관님보다 더 행복한, 행복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명기가 무척이나 좋아했을 말장난으로 끝맺는다.

덕분에 나는 연대장의 매서운 눈총을 받았고……

장병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성을 들었다.

그렇기에 충분히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다.

이미 낙찰도 끝난 마당에, 대령의 불만 정도야 별무소용.

내담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보무도 당당하게 강당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

식사 후 들른 잔반처리구역에는, 짬타이거가 있었다.

“짬이……? 짬이가, 새끼를 낳았습니까?”

“아! 짬이 아시는구나? 허허. 아주 영웅적인 활약상을 가진 녀석이었다죠? 인근 부대마다 순회하면서 쥐들을 쫓아낸 녀석이라서, 그 뒤로 짬타이거는 꼭 점박이 고양이로 입양하는 게 전통이 됐다고 합니다. 저 녀석은 8년쯤 전에 데려왔죠.”

행보관의 웃음 띤 설명에, 맥이 풀리고 말았다.

“그렇군요. 저 친구는 쥐 잘 쫓습니까?”

“예, 아주 그냥 범처럼 쫓아버립니다. 사료 양껏 먹으면서도, 쫓아가는 그런 게 그냥 재밌는 모양이에요.”

“사료까지 챙겨주시다니, 별일이네요.”

“그냥 뭐, 잔반은 너무 짜기도 하고, 가끔 가시도 섞이고 하잖아요? 우리 희망이, 그렇지? 아프면 병원도 멀잖아.”

희망이라.

유기묘를 아껴주는 사람이 여기도 있었네.

그런 행보관의 옆에서 언덕 아래의 길목을 바라봤다.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 있던 자리.

지금은 뽑혀나가 보이지 않지만, 선선한 산바람 속에 노란 단풍이 흩날리는 것만 같다.

희망찬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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