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33장 - 상담사의 철로 (3)
「진주희♥ : 여보! 이거 되게 의외다?」
「진주희♥ : 이상하게 쓸까봐 걱정했는데 별일이야」
「진주희♥ : https://donga.com/3/all/13/1929603/1」
동기들과 교수식당에서 식사를 마칠 무렵에, 아내가 인터넷기사의 링크를 보내왔다.
「 ‘별사탕’ 수익 전액 기부…… 상담사 꼰마의 도전
사회부 심중훈 기자 / 입력 2020-5-9 12:51
‘대민재단’ 5억 규모로 출범
연 수십억 상당 목적사업…… 수조 원대 재단과 비견
사각지대 고아들의 교육과 사회진출에 기여하기로
인터넷방송인이자 서울대학교 상담심리 대학원 인턴 과정을 밟고 있는 ‘상담사 꼰마’ 박대민(사진)이, 본인의 이름을 딴 ‘대민재단’에 4억 3천여 만 원의 현금을 출연했음을 밝혔다.
이에 동료 방송인 이호정, 정보람 등이 4천여 만 원을, 서울대학교 한효준 석좌교수 등의 이사진이 3천여 만 원을 추가로 출연했다. 5억의 공익재단 기준선을 맞추기 위함이다.
박대민은 20여 년 동안 ‘프리월드’에 근속한 IT기업 부장 출신으로, 지난 4월 은퇴 이후 약 1개월간 인터넷방송 플랫폼 ‘프리TV’에서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오늘 오전 10시 서울대 문화관에서 거행된 대민재단의 창립 행사에서, 그는 ‘프리TV’ 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향후의 모든 수익 역시 전액 출연할 것을 약속했다. 4월 중 수익금액이 1억 3천만 원에 달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박대민 개인의 기부액이 연간 15억에 달하게 되는 셈이다.
기업인이 아닌 개인의 공익재단 설립은 한국에서는 드문 일이다. 해외에서도 사회 환원을 위해 재산 중 일부를 출연해서 가족재단을 꾸리는 일은 있지만, 경제활동을 하며 벌어들이는 대부분의 수익을 기부하기로 확약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영세 재단은 현상유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기본재산의 운용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으로는 유지비와 직원 급여를 충당하기에도 벅차, 추가 후원이 없을 경우 해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대민재단은 그와 달랐다. 박대민은 개인의 출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크루(같은 목적을 갖고 협력해서 방송을 진행하는 인터넷방송인)에게도 단계적으로 재단 후원을 확약 받았다고 밝혔다. 계획대로라면 2021년에는 목적사업 예산이 연 20억을 초과하게 된다.
그에 더해 대민재단의 직원은 전원 보육원 출신 사회초년생들로 구성될 예정으로, 재단의 유지 자체가 목적사업의 취지에 부합한다.
이사진과 감사진 역시 무보수로 재단 운영에 힘을 보탤 것이라 밝혀, 실질적인 운용자금은 수조 원 규모의 기업 재단과도 맞먹을 것으로 보인다.
창립식 단상에 오른 박대민은 “출연금 중 단 한 푼도 제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없다. 제 방송의 시청자들이 만든 자산이다. 그 따뜻함이 크루의 기둥”이라고 밝혔다. 인터넷방송의 시스템상, 수익금 전부가 시청자들의 직접 후원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그의 방송인 ‘꼰마의 고민상담소’는 실제로 4월 한 달 동안 가장 많은 후원 수익을 올린 방송국 중 하나다. 매일 4만여 명의 시청자가 그의 방송을 찾아 일평균 500만원의 후원을 통해서 박대민의 자선사업을 지원한다. 그렇기에 그는 후원금 전부가 풀뿌리 기부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모든 짐을 떠안는 것은 박대민 개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출연금이 소득의 30%를 초과할 경우, 현행 세법상 세제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까닭이다.
이미 전 재산에 가까운 4억 3천을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박대민은 올해 최소 1억 이상의 종합소득세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대해 그는 인터넷 영상 플랫폼 유튜브나 TV 방송 활동으로 얻은 수익으로 납세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문화관 건물을 나서면, 본부 건물 뒤쪽으로 신축 도서관이 보인다. 2014년 관정이종환재단이 600억 원을 쾌척해 재건축한 관정도서관이다.
삼영화학 명예회장 이종환은, 2000년 6월 재단을 창립한 이후 20년간 지속적으로 재산을 출연해 1조 원대의 아시아 최대 규모 장학재단으로 키워냈다. 여기에 이종환의 재산 97%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웅대한 건축물에서 이종환과 박대민의 의지가 함께 느껴지는 이유다.
“이런 나를 향해 사람들이 ‘바보’라고 하는 소리도 들리던데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그래, 나는 큰 바보다.”
“울타리를 걷어내고 싶습니다. 저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사람을 맡길 뿐입니다.”
아흔여섯의 이종환은 곧 100세를 앞두고 있다. 입버릇처럼 ‘나는 큰 바보다’를 읊조리는 노인의 뜻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졸업자로서 뒤늦게 상담심리 대학원 인턴 과정을 밟고 있는 상담사 박대민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개인도 기업도 기부에 인색해진 시대에, 그들의 신념이 어디까지 울려퍼질 수 있을지 기대된다. 」
날 선 질문들로 창립식장의 분위기를 망칠 뻔했던 인물이 쓴 기사.
아내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이상해 보일 법했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심중훈이 공격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아마 그 본인이 보육원 출신일 거야.」
「진주희♥ : 뭐?」
「진주희♥ : 정말이야?」
「음.. 본인이 아니라 지인일 수도 있겠지. 아내라거나. 말하는 내내 짙은 비애가 느껴졌어. 부정적인 말을 먼저 입에 담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하는 듯한. 그래서 알았어. 분명 가장 긍정적인 기사를 써줄 거란 걸.」
「진주희♥ : ..별일이다 참」
「진주희♥ : 난 뭐 저런 작자가 있나 했는데.」
그러니, 사람은 참 복잡한 존재다.
보이는 대로만 받아들이면 필연코 오해가 발생한다.
110의 ‘진단’이 고마운 부분이다.
함부로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게 해줬으니.
“뭐야 뭐야, 누구랑 그렇게 열심히 톡을 해? 바람 피우냐?”
장난기 가득한 정호성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옆에서 흘끗 본 신경미가 퍽 부러워했다.
“하트까지 넣었네. 하여튼 대민이는 참, 스윗하다니까.”
“뭘. 어차피 나 혼자 보는 화면인데.”
“아내는 뭐라고 저장했는데?”
“……글쎄. 물어본 적이 없었네.”
“가족끼리 그 정도는 물어봐도 되지 않아? 아, 설마 주희 씨도 모르는 거야? 자기 이름 옆에 하트 붙여놓은 거?”
“음…… 그럴걸.”
“이런 건 또 에스프레소네? 넌 참, 변함없다.”
그런 부분이 내 약점일 수도 있겠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지나치게 무관심했기에, 아내와 딸에게 외로움을 안겨줬고, 회사에서는 잘려나갔다.
앞으로는 조금씩 달라져야 되겠지.
그런 생각 중에, 신경미가 따뜻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생각난다. 을지로에서 백골단에 쫓길 때.”
“아! 그때 그거? 너 그때 대민이 덕분에 목숨 건졌던?”
음원 스트리밍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호남의 맞장구.
동기들 사이에도 96년의 사건이 알려져 있는 모양이었다.
민망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화제를 돌리고 싶었지만, 이미 정호성까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상태였다.
“뭔데? 나 그거 모르는데?”
“그랬겠지. 호성이 넌 그때 군대 가 있었잖아.”
“아, 그때야?”
“그래. 누나가 예전에 ‘권’이었잖니. 그때가 아마 서총련에서 등록금 인상 반대랑 대선자금 공개 요구하면서 평화시위 할 때였는데, 이상하게 진압이 강경했지. 거기에 맞서서 몇몇이 정권타도 같은 말을 외치기도 했고. 나중에 보니까 운동권 이미지 실추시킬 의도로 일부러 프락치를 심었던 것 같은데…… 그게 결국은 연세대 사태로 이어졌던 거야. 어쨌든 봄까지만 해도 아무 대비가 안 돼 있었으니까, 그냥 맞고, 쫓기고, 그랬어. 서울역으로 도망쳤어야 됐는데 어쩌다 보니까 골목으로 들어가고 말았고, 자칫하면 죽겠다 했었지.”
근처에 앉은 한효준 등 교수들이 흘끗 쳐다본다.
80년대 학번인 그들에게도 90년대 학생운동은 흥미로울 터.
운동권의 긍정적 이미지가 극적으로 추락하게 된 전환점인 까닭이었다.
신경미가 하고자 한 이야기는 그쪽이 아니었지만.
“그때 갑자기 나타난 대민이가 나랑 친구를 구해줬던 거야. 얼마나 황당했는지 알아? ‘권’은커녕 학내 집회에도 관심 없던 애가, 곤봉 든 백골단 여러 명을 밀쳐내고 우리 손 붙잡고 뛰는 게? 그렇게 간신히 명동 쪽으로 빠졌는데, 구해줘서 고맙다고 하니까 그러더라. 운동도 좋은데 내 거 챙겨가면서 하라고. 사회를 바꾸고 싶으면 사회 지도층에 올라서서 위에서부터 바꾸라고. 고마워하던 친구가 성을 냈지 뭐야. 그런 식으로 될 일이 아니라고. 대민이가 그때 코웃음을 쳤어. 자신 없는 거냐고. 쉬운 길도 못 가면서 무슨 운동권이냐고.”
지금 생각하면 참 낯 뜨거운 일화였다.
위에 올라가서 바꾸라는 말은, 사실상 변절을 조장하는 것.
터무니없이 치기 어린 충고였다.
민중의 의지를 대변하는 실천 없이 사회지도층에 서고자 한다면, 자연히 소수의 권력들과 야합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선의는 변질될 수밖에 없다.
운이 좋아 정직하게 꼭대기에 올랐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인지라, 그때는 어떤 선인이라도 가진 것을 지키고자 발버둥치는 스크루지가 되고 만다.
그렇기에 ‘학생운동’인 것이겠지.
대학교야말로 정의감으로 현실적인 거리낌을 극복할 수 있는 마지막 사회이기에.
가정을 꾸리고 사회적 지위를 갖춘 뒤에는 늦다.
그때부터는 대중보다 내 가족, 내 미래가 더욱 중요해지니.
안팎을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보수 언론이 만든 프레임에 갇힌 채 외부에서 학생운동을 욕하는 시각은, 일방적으로 운동권을 찬양하는 시각만큼이나 어린 생각.
나는 전자였고, 신경미의 친구는 후자였다.
좁힐 수 없는 간극 속에서 자연히 고마움도 달아났으리라.
그렇게 예상했었는데, 현실은 달랐던 모양이었다.
“대민아, 그 친구 이름 기억해?”
“이름까진 잘…….”
“주영주야. 특이해서 잘 외워지는 이름인데도 잊어버렸니?”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주영주라고 하면, 보수당에서 개혁 노선을 이끌며 415 총선에서 3선에 성공한 스타급 의원.
젊은 시절부터 다방면에서 활약했기에 대단히 유명하다.
그런 그녀가, 내가 구한 인물이라는 얘기였다.
“그때 너랑 티격태격 한 다음에 노선을 바꿨어. 우리끼린 변절이라고 비난도 했는데…… 정말 국회에 들어가더니, 그렇게 아등바등하기 시작한 거야. 나하고는 3년 전쯤에 다시 연락이 닿았어. 이제는 증명이 되지 않았겠냐고 물어보더라. 그게 이유였던 거야. 자기 구해준 너한테 증명하겠다고, 내키지도 않는 보수당에 억지로 파고들어서, 그렇게 위에서 바꾸려고 했다더라. 원래는 오늘 창립식도 오려고 했었는데.”
인기 3선의원이 찾아왔다면 창립식은 북새통이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총선 이후 새 임기 시작 전까지 마무리할 일이 많아 시간을 내지 못했던 모양.
“와우. 진짜냐? 대민이 니가 구한 게 주영주였다고?”
“생명의 은인이잖아? 3선 의원한테 구명지은 베푼 거잖아?”
“음. 그냥, 우연히 얽힌 사이일 뿐이야.”
“하하. 얘가 이런다니까. 라떼인지 에스프레소인지. 아무튼 그래서…… 영주가 너 연락처 물어보더라. 알려줘도 괜찮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분 많은 야당이라곤 해도 최대 의석을 다투는 정당이다.
그곳의 3선 의원과 연락을 주고받아 나쁠 것은 없었다.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그런 생각으로 허락한 연락처.
바쁜 시간 내서 식사까지 함께해준 교수들과 인사를 나눈 뒤쯤에는, 빠르게도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주영주 : 반가워요, 대민 씨. 전에는 이 사람 무슨 대단한 일을 하겠나 했었는데, 흥미진진하네요? 선거자금 환급받으면 1억 정도 기부할게요. 실무진 연락처 보내주세요.」
그걸 대학원 지인들과 식사하고 돌아온 아내에게 보여줬다.
눈을 가늘게 뜨며 흘겨보는 반응이 돌아왔다.
“당신…… 국회의원이랑도 아는 사이야?”
“대학 때 잠깐.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후아. 혼란스럽다. 내 남편을 내가 잘 몰랐나봐.”
“음…… 그게…… 자. 이것도 몰랐지?”
화제를 전환하고자, 아내의 연락처 이름을 보여줬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픽 웃더라.
“그게 자랑이야? 내 거 봐.”
‘내사랑대민씨♥♥♥’라고 저장된 내 전화번호를 보면서, 뭐라고 더 말을 꺼낼 수 없게 됐다.
*
그날 판교에는 생각보다도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열애설이 뜬 배우 김소란이 VR상담의 내담자로 알려진 까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박대민 씨! YTN 임인중입니다! 성명문 보셨습니까?”
“예? 무슨 성명문 말씀이십니까?”
“주영주 의원이 지지성명을 발표하셨는데요!”
“아…… 제가 확인을 못 했네요. 죄송합니다.”
“한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주 의원과는 소통이 있으셨나요?”
“저는 상담사입니다. 지금 내담자가 기다리고 계셔서요.”
“아, 저, 김소란 씨의 열애설에 대해 한말씀 해주시죠!”
앞뒤 분간을 못하고 떠벌리는 질문들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대기실로 가서 교수들을 만났다.
이용덕이 복잡한 시선으로 빤히 쳐다보더라.
“이거야 원. 판이 커졌는데요?”
“그렇게 됐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래야 되겠지만…… 지금 그 문제로 여기 대표도 이사회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재단 출연금을 논의한다던데.”
“그쪽은 얘기가 돼 있었습니다. 조만간 1억쯤 낼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판이 커졌잖아요. 지금이야말로 기업 이미지를 쇄신할 적기라고 판단했는지, 10억 얘기가 나오던데.”
……주영주의 1억에 이어, 프리월드의 10억.
영세한 신생 자선재단에 나올 만한 후원액이 아니었다.
그야 진갑수 본인이 10억도 내주겠다고 호언하긴 했었지만, 불가능한 일이라서 허언증 도졌냐며 콧방귀를 뀌었었는데.
3선의원이 지지하는 재단에 주요 후원자로 참여하는 일이라면, 다른 임원들로서도 돈을 아낄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주영주의 성명문과 프리월드의 이사회라는 급격한 변화.
그런 일들에서 신경을 끄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상담사.
사막풍이 지형을 어떻게 바꿔놓든, 그저 내담자의 오아시스를 향한 철로 위를 달려가야 마땅할 터였다.
그렇게 김소란과 마주하게 됐던 것이다.
유명 야구선수와 열애설이 뜨며 급격히 유명해진 여배우.
그녀는 수줍은 얼굴로 내게 고개를 꾸벅여 보였다.
“안녕하세요. 김소란이에요.”
“예, 반갑습니다. 상담사 꼰마입니다.”
실시간 시청자의 수가 전에 없이 빠르게 치솟는다.
5일 동안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가 기자회견을 대신해 VR상담에 출연한 김소란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다시 한번 이슈의 중심에 선 내 영향도 있으리라.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가만히 김소란을 바라봤다.
예상했던 대로 불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긴장하고 계신 것 같네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여기는 고민상담소니까, 토크나 하지요. 요즘 고민이 있으신가요?”
“아…… 하핫. 제가 열애설이 났는데, 아시죠?”
“예, 얘기 들었습니다.”
“그거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 너무 관심이 커서…… 감사하기도 한데, 부담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래요.”
대중의 관심이라는 게 늘 그렇다.
모두가 갈구하지만, 누구나 힘겨워한다.
강철의 심장으로도 과도한 화제성을 견디기가 어렵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아무래도 공감일 것이다.
“공감대 토크를 좀 해볼까요? 실은 저도 비슷한 상태입니다. 뜬금없이 커다란 관심을 받게 됐어요. 혹시 아십니까?”
“아, 네! 여기 직원들이…… 국회의원 성명문? 맞죠?”
“예. 제가 진행하는 자선사업을 좋게 봐주신 국회의원이 있는데, 그 문제로 예상보다 훨씬 큰 관심을 받게 됐습니다.”
“맞아요. 기자들도 엄청 많던데…… 힘드시겠어요.”
“아. 공감대는 여기까지네요. 전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네? 아, 어…… 좋은 일이니까요?”
“아뇨.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일이니까요.”
혹시라도 나중에 주영주가 본다면 불쾌해하려나.
그렇지만 그 친구는 내담자가 아니다.
내가 담아야 할 마음은, 지금 내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다.
“그야 고마운 일이기는 하지요. 그 의원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대민재단을 알게 됐으니까요. 불편한 일이기도 합니다. 제 기부에 아무 관심도 없는 정치부 기자들까지 몰려들었으니. 그렇지만, 양쪽 모두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어떤 언론도 관심 갖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세상 모두가 비난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저는 해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 부를 누리면서는 도저히 행복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그 행복을, 언론이나 대중의 왈가왈부가 침해해서야 되나요. 개무시할 생각입니다. 저는 그저 앞으로만 갑니다. 폭주기관차처럼 말이지요.”
“아, 하핫. 성규 씨…… 제 남친도 좀 그래요. 우리가 사랑하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어차피 들킨 거 당당하게 손잡고 다니자고 그래요. 여배우 입장은 생각도 안 하고, 진짜.”
“이런. 죄송합니다. 딱 그 얘기를 하려고 빌드업을 했는데, 실수였네요. 욕하셔도 좋습니다. 아저씨가 좀 꼰대라서요.”
“히히…… 나쁜 꼰대!”
“아이쿠. 영혼이 아프네요. 상처받았어요.”
사실은 의사도 상담사도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
누가 아깝네 누가 꼬리쳤네부터 시작해서, 대중의 몰이해와 과도한 관심은 때로 인신공격의 수준으로까지 비화한다.
그 고통을 CBT(인지행동치료)인들 경감할 수 있으랴.
그저 생방송을 잊고 친구끼리 하듯 이야기하는 경험으로써, 마음의 독을 아주 조금이나마 줄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만, 한 가지쯤은 해주고 싶었다.
세상의 울타리를 향해 달려가는 상담사로서.
“잠깐 이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성규 씨를 참 많이 좋아하시는 것 같네요. 몹쓸 녀석.”
“어? 어, 왜요?”
“한국사회의 여배우로서 가장 괴로울 수밖에 없는 열애설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다 떠넘기고 있지 않습니까? 아주 몹쓸 녀석이죠. 네티즌 여러분? 보고 계신다면 참전해주세요. ‘오성규 나쁜 녀석’으로 인터넷을 도배하는 겁니다.”
“으, 으아! 그러면 안 돼요! 오늘도 경기 있는데.”
“그래요? 그럼 우리 ‘김소란 나쁜 녀석’으로 도배할까요?”
“아, 왜 그래요, 나빠…….”
“해본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선플 좀 남깁시다. 쓰는 것만이 아니라 굳이 찾아가서 선플에 좋아요도 눌러줍시다. 그래서 호기심에 기사 클릭해본 이 청춘남녀가 저주 섞인 말들을 보지 못하게 해줍시다. 어려운 일 아니잖아요? 안 그래도 비혼주의자가 많아진 이 시대에, 자발적으로 예쁜 연애를 하겠다잖아요. 거기에 응원을 해줘야 되지 않겠어요? 나 같은 꼰대도 아는 일입니다. 부디 우리가 응원해줍시다.”
“앗, 이런 얘기 해주셔도 돼요? 괜히, 악플 받으실까봐…….”
“말씀드렸다시피 괜찮습니다. 폭주기관차라서.”
사실은 상담이라고 말할 수 없는 행위.
우회를 모르는 열차에 올라, 대중과 직접 마주섰다.
기자회견 대신 상담 가서 무슨 소리 하나 호기심에 들어와본 악플러들이, 이 이야기에 잠깐이라도 움찔하길 바라면서.
그렇기에 폭주기관차다.
누군가는 혀를 차며 악플을 달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것으로 김소란의 고통을 줄여줄 수 있다면……
나는 이미 오아시스 역에 당도한 셈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명기와 교대할 무렵이었다.
오랜만에 NBSC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맙소사! 에픽퀘스트를 달성하셨네요! 축하드려요!’
……에픽퀘스트라면, 아직 한효준 퀘스트일 텐데.
오늘 그와는 창립식 관련해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다.
대체 무슨 수로 퀘스트가 달성됐는지 이해할 수 없어, 황급히 한효준에게 뭘 하고 있냐는 메시지를 보냈다.
대답은 의외로 금방 돌아왔다.
「한효준 교수님 : 지금 부산이야. 왜 그러나?」
「..부산이요? 갑자기 왜.. 학회 일정 없으셨잖습니까?」
「한효준 교수님 : 연습 삼아 와봤어. 불만 있나?」
「한효준 교수님 : 이코노미는 처음인데 불편하더군.」
「한효준 교수님 : 트립크루에선 퍼스트클래스를 주겠지?」
청하지도 않은 일을…… 혼자 하고 있었나.
참, 그야말로 스승이었다.
나로서는 도무지 범접할 수가 없는.
그렇게 세 번째 에픽퀘스트마저 달성되었다.
비가 내려 사막풍이 잦아들고, 목적지가 눈에 들어온다.
철로는 바다 같은 오아시스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