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33장 - 상담사의 철로 (2)
2020년 5월 9일, 토요일.
아내와 나란히 정장을 차려입고 서울대 문화관으로 향했다.
나와 내 가족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날이다.
마침내 꼰마재단이 공식적으로 출범하여, 그 이사장으로 아내가 취임하는 시점이기에.
아내는 그 상황에 설레면서도 긴장한 눈치였다.
조수석에서 잠시도 멈추지 않고 염려들을 늘어놨다.
“여보. 문화관 진짜 괜찮은 거야? 거기 1000석 넘지 않아?”
“1800석이라던데…… 아마 괜찮을 거야.”
“정말로? 어제 방송에서 공지하긴 했지만, 외부인들이 찾아오기엔 좀 멀잖아. 썰렁하면 어떡해. 비공개로 더 작게 할걸.”
“기자들 올 수도 있으니 크게 하자고 했었잖아?”
“그랬지만…… 너무 텅 비어 있으면 오히려……”
“하하. 어느 정도는 찰 거야. 준비위원회 친구들이 주변 친구들한테도 많이 홍보했다고 하니까.”
“축하공연 얘기도 했대? 호정 씨랑 보람 씨 온다고?”
“안 했지. 콘서트장이 돼버리면 곤란하잖아.”
“아…… 했어야 됐는데. 그렇게라도 채워야 되는데.”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 아내에게도 양면성이 있다.
집안에서는 강한 확신을 갖고 가족을 이끄는 내조의 여왕.
그렇지만 바깥으로 나오면 아무래도 소심해진다.
오랫동안 엄마로만 살아왔던 관성 때문일 터였다.
“걱정하지 마. 내 시청자들 중에서도 정말 자선재단 만드는지 확인하려고 찾아와줄 사람들 많고, 심리학과 친구들은 거의 다 시간 내주기로 했어. 사회대 학생들도 호기심에 많이들 보러 올 거야. 그 정도면 나쁜 모양새가 되지는 않아.”
“음, 음, 그런가?”
“그래. 그리고 교수님들도 꽤 오실 거고.”
“으, 응. 나도 대학원 때 지인들한테 연락하긴 했는데.”
“그래.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취임사에 집중해.”
“응…….”
결과적으로는 걱정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9시 반에, 73동 대강당은 이미 절반 이상이 들어차 있었다.
2열 뒤쪽으로는 주로 젊은 학생들이, 그리고 1열에는 나이 지긋한 신사숙녀가 한가득.
그 한가운데에 한효준과 이용덕과 조명기가 있었다.
“아…… 한 교수님. 여기, 제 아내입니다. 여보. 이쪽이 한효준 교수님. 그리고 이용덕 교수님, 조명기 교수님.”
“안녕하세요, 진주희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내는 언제 긴장하고 있었냐는 듯이 밝게 웃었다.
그런 그녀에게 세 교수가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요. 나 한효준입니다.”
“예, 말씀 많이 들었어요.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용덕이에요.”
“반갑습니다. TV에서 자주 뵀는데, 영광이네요.”
“저는 처음 보시죠? 반가워요, 제수씨. 조명기예요.”
“아녜요. VR 상담 몇 번이고 돌려보면서 낯이 익은걸요?”
이후로는 한효준이 우릴 이끌고 1열을 돌았다.
그의 소개로 좋은 일에 동참하게 된 4인의 이사진과, 사회복지학과의 교수로 재직 중인 2인의 감사.
그리고 세 교수의 지인인 수십 명의 독지가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분이, 고려대 명예교수이신 이영학 박사님이에요. 조명기 선생의 얼굴을 봐서 와주시게 됐지요.”
“반갑습니다. 이사장 진주희예요.”
“박대민이라고 합니다. 모시게 돼서 영광입니다.”
“허허. 영광은, 내가 영광이지요. 명기한테, 좋은 일을 아주 많이 하시는 분이라고 들었어요. 믿을 만한 후배라고요. 퇴직금까지 전부 투입하셔서 공익재단 인가를 받으셨다던데.”
새로운 화제에 아내가 살짝 새초롬해졌다.
비영리 공익재단의 인가에는 5억의 기본재산 출연이 필수.
프리TV 후원금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사이즈여서, 하는 수 없이 퇴직금과 만기 적금을 상당량 끌어 써야 했다.
이미 합의한 일이긴 하지만, 아내로선 싱숭생숭할 터였다.
“그렇습니다. 이후 투입할 자금을 미리 납부한 셈이지요.”
“참…… 대단한 포부입니다. 그 인터넷 방송이라는 게 수익이 좋다고는 해도, 심적으로 고민이 됐을 텐데 말이에요. 나도 여유가 생기는 대로 동참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필요한 곳에 후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1열을 도는 동안, 뒤쪽에서 플래시가 자주 터졌다.
주로 학생들의 핸드폰 카메라 세례.
전문장비를 갖춘 기자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쪽을 훑어보는 내게 한효준이 투덜댔다.
“참으로 게으른 인간들이야. 개인이 연간 6억 수준의 자선사업을 벌이겠다고 하는데, 열 시가 다 되도록 오질 않으니.”
“열 시 전에는 오겠지요. 교수님 얼굴을 봐서라도.”
“뭐야? 안 오면 내 탓이라는 겐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하.”
“에잉…… 못된 자 같으니. 가서 팀장들이나 만나봐. 인턴 팀장이라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열심히들 준비하더구만.”
아내가 함께 무대 뒤로 들어가자, 세 학생이 주먹을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기들 나름의 출정식인 듯했다.
“드디어 오늘이 왔다.”
“잘하자!”
“박 쌤한테 우리 능력을 보여드릴…… 어라?”
“아, 선생님!”
“언니!”
“야, 언니가 뭐야. 이사장님이지.”
“후후. 다들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괜찮습니다! 저, 이사장님. PPT 살짝 수정한 부분이 있는데, 이거 지금 보여드릴게요. 내용은 동일한데 디자인을……”
사회복지학과 오현서, 교육학과 심주연, 경영대 장일환.
한효준이 추천해준 세 명의 17학번 졸업반이, 준비위원회에 이어 인턴 직원으로서 재단의 팀장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지나치게 어린 나이를 염려할 이유는 없었다.
이사장인 아내가 일선에서 진두지휘를 할 것이고, 그 외의 직원들은 전부 스무 살 사회초년생으로 뽑을 테니.
사실 문제는 그 신입사원들 쪽인데……
청일점인 장일환이 내 곁으로 다가와 그 문제를 언급했다.
“저기, 박 쌤. 신규 채용 조건이 고졸 고아라는 건, 진짜 괜찮겠습니까? 아무래도 학력수준이나 PC활용에서 좀…….”
“그 부분의 교육까지 포함해서 세 분이 팀장인 거예요.”
“그래도, 지금 책정된 급여면 4년제도 충분한데요? 요즘 같은 취업난이면 석사급이라도 솔깃할 거고요. 고아들만 써서 운영한다는 건 솔직히…… 너무 이상론 아닐까요?”
“그렇지요. 같은 돈으로 고학력 직원들을 뽑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상에 취해서 아무렇게나 채용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4년제 대학이나 대학원까지 마친 청년들이, 과연 사회의 사각에 몰린 사람들의 현실을 잘 아는 인재들이라 할 수 있을까요?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압니다. 밑바닥을 겪어본 사람들이야말로 그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 그렇게 들으면 그렇기도 한데…… 근데 역으로 내가 제일 힘드니까 남들은 별 거 아니다, 그러진 않을까요?”
“그럴까요? 고작 500만원의 독립지원금과 함께 사회에 내동댕이쳐져, 이후 암담한 미래만을 그리고 있을 친구들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좋은 일을 하며 대졸자의 급여를 받을 기회를 얻었어요. 그 상황을 그들이 갑질을 하는 데 쓸까요?”
“음…… 그런가…….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 뭐 결론이야 쌤이 내시는 거지만요. 저는 그럼 무대 체크하러 갈게요.”
장일환은 여전히 의문으로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맡겨진 일에는 열과 성을 다하는 편.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 의문 없이 복종하는 타입이라면, 팀장이라는 관리직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
사실은 그 의문을 나 역시도 아직 품고 있다.
정말 괜찮을까.
목적사업 외에도 재단 자체가 사회환원의 역할을 수행하길 바랐기에, 신규채용을 고아들에 국한하겠다고 결정했지만……
직업을 가진다고 모든 문제가 싹 가실 리는 없는데.
이수아처럼 마음이 너그러운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다.
개중에는 사회에 대한 분노를 머금은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건강한 인간관계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도 많을 터였다.
오직 고아들로만 구성되는 직장.
그것이 과연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
통제실에서 그 문제를 고민할 무렵, 마침내 10시가 됐다.
장일환이 마이크를 잡고 단상 위에 올랐다.
“안녕하십니까, 내빈 여러분. 약속된 시각이 되어 창립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모두 착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사이에 새로이 들어온 면면들이 있었다.
한효준 등의 언질을 받고 취재 나온 기자들도 몇 보였지만, 그보다는 반가운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20년의 세월을 격하고 나타난 내 동기들이었다.
「정호성 : 대민이 어딨지? 앞줄에 있어?」
「이호남 : 아니 앞에 없는 듯?」
「신경미 : 오늘 축사 한댔으니까, 대기실에 있지 않을까?」
「정호성 : 아 그렇겠구나 ㅎㅎ」
「정호성 : 이따 대민이 나오면 영상 찍을게~」
토요일이라서 쉬고 싶었을 법도 한데.
날씨 좋은 5월이니 가족들과 나들이 가기에도 좋았으리라.
그럼에도 세 동기가 시간을 내서 재단 창립식을 찾아줬다.
참 고맙고 민망한 일이었다.
“……이와 같이 대민재단은 민법 32조에 의거해 자선사업을 목적으로 한 비영리재단으로서 출범했습니다. 이후 독지가이자 방송인이신 박대민 선생, 이호정 씨, 정보람 씨의 기부금 출연을 통해 5억의 기본재산을 갖췄고, 향후 자선 분야에서 목적사업을 진행해나갈 공익재단으로 인가되었습니다. 앞으로 여러 명망 높으신 이사진의 지휘 아래서 대한민국이 정의롭고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이바지할 것입니다.”
재단의 공식 명칭은 내 본명을 땄다.
대민(大民)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적절했던 까닭.
팬들 사이에서는 계속 ‘꼰마재단’으로 불리겠지만, 이후 기사나 방송 등에서 나는 ‘대민재단 설립자’로 일컬어질 것이다.
그 대민재단의 향후 활동계획이 오현서와 심주연의 발제를 통해서 천여 명의 청중에게 전달되었다.
고아들의 독립을 지원하기 위해 지자체와 협력하는 방안.
고아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서울대와 협력하는 방안.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수행하는 것이, 정규직으로 채용된 고졸 고아들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기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사정을 잘 모르고 온 이들이 많았던 모양.
그들을 위해서, 다음 차례에는 내가 무대에 올랐다.
“그러면 이제, 대민재단의 설립자를 모시고 질의응답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박대민 선생을 박수로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대민입니다. 와주신 분들 가운데에서는 주로 ‘꼰마’라는 이름으로 알고 계신 분들도 많겠지요?”
내 팬들 위주로 작은 웃음이 번진다.
양쪽을 다 아는 세 교수와 세 동기는, 그저 흐뭇한 표정.
기자들의 얼굴에도 호기심이 퍼져나가고 있다.
카메라 플래시가 종종 조명보다도 밝게 빛났다.
마침내 꼰마 열차가 철로 위에 올라서는 순간이다.
그 감격을 감추며, 가장 편안한 미소로 청중을 마주했다.
“그렇습니다. 어젯밤 다시 한번 포털의 실시간검색어에 오른 상담사 꼰마가, 저의 또 다른 자아입니다. 이번엔 MBC <웃기고 앉아있네> 출연을 통해서 얻은 유명세지요. 멋쩍은 일입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드는 것뿐인 중년에게, 너무나 많은 시민들께서 호응해주고 계시니 말입니다. 저는 참 복을 타고난 사람입니다. 20년간 IT기업에서 일하며 네티즌 여러분의 광고 시청과 후원을 통해서 월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 스스로가 직접 여러분의 지갑에서 소중한 돈을 빼앗고 있습니다. 이러니 별 수 있나요. 조금이라도 세상에 행복을 나누고자 일할 수밖에요.”
키득거리는 청중을 향해 질의응답의 시작을 알렸다.
첫 질문은 좌측에 자리한 대학신문 학생기자로부터 나왔다.
“안녕하세요! 저, 대학신문 김경록입니다. 우선은 사회 환원을 위해서 큰 결심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이런 말씀 드리는 게 부끄럽지만, 정말 존경합니다. 개인적으로 제 멘토십니다. 하하. 그래서 드리고 싶은 질문은……”
듣는 내가 낯부끄러워질 정도로 원색적인 찬양.
그게 그저 젊은 대학생이기에 나온 태도는 아니었다.
지역 신문이나 진보 계열의 인터넷언론에서도, 우선은 금칠부터 해주려고 했다.
그것이 그들 나름의 매너인 듯했다.
그러지 않은 이는 딱 한 명이었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동아일보 기자.
5대 일간지 중 유일하게 창립식을 찾아준 인물이었다.
“동아일보 심중훈입니다.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방금 전 들은 바에 따르면 이 재단이라는 것이 결국 박대민 씨 개인의 출연금에 거의 90% 이상을 기대고 있는 셈인데, 이런 상태로 과연 장기적인 운용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지금 일종의 연예인들처럼 활동을 하고 계신데, 그게 정기적인 수익을 가져다주는 연금은 결코 아니죠. 사고나 이미지의 추락 등으로 순식간에 자금줄이 틀어막힐 수 있어요. 그런 부분에 대비하고 계신지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예, 감사합니다. 심 기자님. 우선 첫 질문에 먼저 답해드려도 될까요?”
“그러시죠.”
“잘 알고 있습니다. 말씀해주신 바로 그 부분이, 많은 연예인들이 따로 재단을 설립하기보다는 건실히 운영되는 자선단체에 반복적으로 후원을 하시는 이유라는 점을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방송인으로서 저 역시 안심해선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때에 대비해 크루를 꾸리고 있습니다. 대민재단은 저 혼자만의 재단이 아닙니다. 이미 두 명의 크루가 합류했고, 이후 열 명이 더 합류하게 됩니다. 그때는 그들의 출연금이 월 1억을 초과할 겁니다.”
“그건, 궤변이네요. 크루의 기둥이 뽑히고 나면 그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출연금을 낼 리 없지 않습니까?”
시니컬한 어조에, 의외로 진지한 성찰이 담긴다.
인터넷방송의 역학에 대해 나름대로 조사해본 눈치였다.
그 마음에 감사하며 살짝 웃어 보였다.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 기자님. 하지만 역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그 질문이야말로 궤변이 아닐까요? 대민재단의 기둥은 박대민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도 햇살이 비추이길 바라는 모든 따뜻한 마음들이 이 재단의 근간입니다. 제게서 나오는 출연금이 90%라고 하셨지요? 오해입니다. 그 돈 중 단 한 푼도 제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없습니다. 들어오는 모든 후원금을 재단에 출연할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아낌없이 사재를 턴 제 방송의 시청자들이 만든 자산입니다. 제가 한 일은 그 마음들을 한 곳에 모은 것뿐입니다. 이미 모인 그분들의 마음은, 제가 설혹 사고로 죽는다 해도 흩어지지 않습니다. 그 따뜻함이 제 크루의 기둥이기에, 누구 하나 흩어지지 않을 겁니다. 대답이 되었을까요?”
눈을 가늘게 뜬 심중훈이 콧방귀를 뀐다.
먼 거리지만, 그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후의 질문에도 염세(厭世)의 관점이 담겨 있었다.
“다음 질문 하겠습니다. 그 두 팀장이라는 분들이 목적사업의 내용에 대해서도 길게 설명을 해주셨는데, 거기에 대해 여쭙죠. 정리하자면 고아들을 고용해서 고아들을 돕겠다, 뭐 이런 얘기지 않습니까? 그게 정말 될 일이라고 보십니까? 대학생 팀장 세 명에 고졸 고아들만 신규 채용해서, 수억에 달하는 예산을 운용한다. 그게 정말 문제없이 돌아가겠습니까? 횡령해가시오 하고 곳간 내어주는 꼴 아니에요?”
“이봐요!”
“말을 뭐 그런 식으로 합니까?”
주변에서 대학원생 정도로 보이는 청년들이 발끈한다.
좋은 취지의 재단에 지속적으로 날을 세우는 태도가, 포근한 심정으로 듣고 있던 이들에게 상처를 준 것.
그러나 그와 무관하게 심중훈의 질문에는 뼈가 있었다.
“왜들 이러시는지 모르겠네. 근거가 필요합니까? 당장 소년원 재소자 통계만 봐도 양부모가 다 있는 경우는 70%쯤밖에 안 돼요. 25%가 편부모 슬하고, 2%가 고아죠. 보세요. 편부모 가정은 고작 전국 150만 가구예요. 비혈연 집단가구 생활 인원은 6만 명에 불과하고요. 그런 애들이 격이 다른 비율로 소년원을 채우고 있어요. 이게 그냥 믿고 사랑으로 감싸준다고 해소될 일은 아니잖습니까? 좋은 일도 정도껏이지, 생선을 고양이한테 맡기면 어떡하냐는 얘깁니다, 제 말은.”
당장 막아설 것 같던 대학원생들이 누그러진다.
아무래도 수치로 나오는 통계에는 약해지는 게 사람인 탓.
나 역시 그랬다.
내 이상이 좋은 일을 망치는 과욕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장일환이나 심중훈처럼 오래 고민해왔다.
그렇지만 그들의 질문을 듣고 오히려 확신하게 됐다.
이것은 이상론이 아니다.
그저, 사람이 사람인 이유.
“심 기자님. 혹시 왈라비를 알고 계십니까?”
“왈라비……? 그 캥거루 말입니까?”
“예. 캥거루과의 작은 동물이지요. 호주에서 그 왈라비들이 집단으로 울타리에 머리를 박아, 결과적으로 수백 마리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들어본 것 같네요. 지역 개발로 서식지 주위에 울타리를 세웠더니, 그걸 들이받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박식하시네요. 저는 최근에 진화심리학 서적에서 읽게 된 이야기입니다. 왈라비들과 대화를 나눌 수는 없는 일이니, 정확히 그것이 어떤 이유일지는 알 수 없겠지요.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자유의 제약이라는 것이 생명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일인지를요. 스스로 죽음에 달려들게도 만들 정도로 무서운…… 억압이란 것을 말입니다.”
심중훈은 얼굴을 굳힌 채 대꾸하지 않았다.
그 표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내가 하려는 말을 짐작하고 있음을.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수한 미디어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주로 스포트라이트 속의 화려한 스타들이 등장하지요. 예능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소시민들에겐 재벌이라는 말을 들을 법한 멋진 생활상들에 주목하곤 합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답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무수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걸 보며 살아갑니다. 나 역시 그렇게 되고 싶다는 바람과 함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본능의 목소리와 함께. 그러나 바람을 이룰 수 있는 건 극소수지요.”
“그야…… 그렇죠.”
“고아들은 그 안에 못 듭니다. 독립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많아야 500만원의 현금을 받고 나면, 현실이 남습니다. 남들 다 가는 대학에 갈 수도 없고, 취업을 위해 이력서에 적어 넣을 비상연락망 한 줄이 없는 현실이요. 그뿐입니까? 사회의 시선은 오래 전 전란고아들이 많던 시절로부터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방금 심 기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고아라고 하면 우선 범죄자 취급을 하는 편견이 넘쳐납니다. 그것이 울타리입니다. 왈라비가 파멸을 향해 돌진하게 만드는, 고아들이 분노와 체념 속에서 범죄의 길을 걷게 만드는. 울타리를 걷어내고 싶습니다. 저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사람을 맡길 뿐입니다. 답이 되었을까요?”
철로를 막아섰던 기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됐습니다. 잘 되길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의응답을 마친 뒤의 식순은 취임사였다.
무대에 오른 아내는, 더없이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방금 하던 얘기에 이어서, 소소하게 고백할 게 있어요.”
자기소개도 하기 전에 나온 말에 청중들이 의아해한다.
이후 이어진 말에는, 나 역시 얼이 빠지고 말았다.
“저희 남편은 꽤 돌머리예요. 벽돌로 쌓은 울타리조차 부술 수 있을 만큼요. 전 남편을 믿습니다. 여러분께서도 그래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 남편의 20년이 담긴 퇴직금이에요. 그게 허투루 쓰이는 일을 제가 용납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반갑습니다. 대민재단 이사장, 진주희입니다.”
역무원의 손길이 녹색 불을 만든다.
그 푸르른 여왕을 빤히 바라보다 확신했다.
열차가, 사막의 어둠을 헤치기 시작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