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27장 - 선택하는 상담사 (3)
“씬보이라는 유저가, 오늘도 보고 있더군.”
운전석에 오른 뒤, 한효준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벨트를 매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을 채우고 있는 건, 두 줄의 메시지.
한숨을 내뱉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예. 본 것 같습니다.”
“뭐라고 썼는지도 기억하나?”
“예……. 이거 맞음, 저도 아빠가 괴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나처럼 약하고 생각 많은 사람이었어요, 아닐 수도 있긴 한데 그래도 좀 더 다가가보면 좋을 것 같아요…….”
“허. 토씨 하나까지 기억하는구만. 뇌에 블랙박스라도 달려 있나? 수천 명 댓글을 다 기억하는 게야?”
“댓글이 아니라 채팅입니다.”
“사소한 건 좀 넘어가.”
“예. 물론 전부 다는 기억 못 하고, 제게 있어서도 인상적인 채팅이었기에 외워진 겁니다. 고맙고 민망한 이야기였지요.”
“흥. 민망한 건 아는군. SCT도 MMPI도, 그 우스운 MBTI조차 하지 않은 채로 수행한 직면이 인정받아선 안 되지.”
맞는 말씀이다.
수천 명을 상대하는 인방 환경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가정 문제에 있어서 직면이란 정말 조심해야 할 일.
자칫 씻을 수 없는 단절을 만들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주의하겠다는 사람이! 그건 뭔가? 육하일칙 그 유저한테 한 말들은 다 뭐야? 뭘 어쩌자고 그런 기대를 심어줘!”
“……우선, 그 닉네임은 ‘육하원칙’의 변형입니다.”
“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나!”
호통을 치는 한효준은, 참 보기 좋은 데가 있다.
다른 이들에게는 절대로 그러지 않는 사람이니까.
내가 그의 신뢰를 받는 제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단면이라서, 오히려 행복해지곤 했다.
그렇기에 조명기처럼 자꾸 놀리게 되고 만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이제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교수님. 일전에 제가 멘토에 대해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뭐? 아, 그랬지. 그게 왜?”
“그때 하셨던 말씀 역시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봐, 박 군. 자네의 그 물컹물컹한 세계관을 내게까지 강요하지 말아. 내가 하고 싶은 건 그저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까지야. 그 안으로 끌려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네.”
“뭘 또 그렇게 토씨 하나까지…….”
“중요한 말씀이었으니까요. 교수님께서는 제 세계관 속으로 들어올 마음이 없으셨겠지만, 저는 아닙니다. 그렇기에 교수님의 내면이 담긴 말씀 하나하나를 머리에 새겼습니다.”
“이런, 못된. 날 내담자로 대했다 이 말인가?”
“그 반대입니다. 교수님을 내담자로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그랬거든요. 멘토 따위 없었거든요. 교수님이 처음이었습니다. 존경할 만한 어른. 장난스레 토를 달아도 단절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위대한 멘토. 그런 분을 감히 내담자로 본다는 게…… 저 역시 너무 싫었습니다.”
우리는 꽤 닮은 점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하면 한효준은 또 아무나 닮았다고 말한다며 황당해하겠지만, 이번에도 진심이다.
그와 나는 본질적으로 닮은 인간.
성장환경의 차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의견의 갈등을 겪을 일이 거의 없었으리라.
“그 뒤로 오래 생각했습니다. 왜 그렇게 학을 떼며 말씀하셨을까. 멘토라는 것이 자존심을 상하게 만드는 어휘였을까. 그게 아니면 멘토로 여겼던 어떤 교수에게서 크게 배신을 당하셨을까.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생각해봐도 미진했습니다. 교수님께선 이미 제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심지어 유년기를 지옥으로 만들었던 춘부장(春府丈)에 대해서도요.”
“……그랬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멘토만큼은 예외였습니다. 아마 김지연 선생에게도 말씀하신 적 없으시겠죠. 진짜 역린일 테니까요.”
“그걸, 뭐, 자네가 짐작하기라도 했다는 건가?”
“아마도요. 제가, 마음의 지도를 들고 있거든요.”
“이 자가 정말……! 날 놀리는 겐가!”
놀리는 게 아니라, 나는 정말 NBSC의 기술을 들고 있다.
한 사람에게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독심술을.
막연하게만 추측하고 있던 슬픔이지만……
이제는 확인해야 할 때였다.
「 [정문의 일침]을 사용합니다 > 한효준
주제 ‘멘토’에 대응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아버지’ 」
……도저히 알아보지 못할 수 없는 기작이었다.
부모에 대한 양가감정이란, 너무도 흔한 케이스.
심지어 아동학대 사례에서조차 빈번하게 발견된다.
오히려 자신을 비하하고 가해자를 긍정하는 케이스까지도.
내가 잘못한 거야.
엄마아빠는 잘못하지 않았어.
내가 잘하면 다시 예전처럼 좋은 엄마아빠가 돼줄 거야……
말도 안 되는 그 사고가 심리학에선 자연스럽다.
가장 완벽해야 마땅할 양육자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일은, 아이에게 있어서 세계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일이니.
한효준 역시 그랬을 것이다.
세상의 존경을 받는 부친이니까, 자기만 잘못하지 않는다면 나쁜 아빠로 변신하지 않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그게 더없이 슬픈 지점이었다.
내가 씬보이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라서.
그것이, 한효준이 격동될 수밖에 없을 이야기라서.
‘열일곱이면 아빠와 동등한 한 사람의 개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 대 사람으로 바라봐주는 건 어떨까요. 씬보이님이 만약, 아빠가 좋은 사람일 수 있다고 믿으며, 아빠를 끌어안고 옛날처럼 멋있는 아빠로 돌아오라고 말한다면, 그때는 세상 모든 슬픔에서 벗어나서 예전 그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럴 거라 믿어요. 그럴 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한효준을 만나기 사흘 전쯤.
부친이 술에 취해 욕만 한다며 사연을 보낸 씬보이에게, 나는 그렇게 말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부주의하고 한심한 상담.
그렇지만, 한효준에겐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
미움은 최강의 방어기제다.
그 대상이 가족이라 할지라도.
그렇지만, 그 막강한 방패조차도 뒷면을 가지고 있다.
믿고, 사랑하고,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는 그림자를.
인간은 누구나 그렇다.
미워하기보다는 사랑하고 싶어한다.
그것이 자꾸만 좌절되고 무너져, 방패를 들고 칼을 세울 뿐.
우리 모두는 마음 깊은 곳에서 화합을 갈구하고 있다.
그 마음이 보상받을 수 있다면……
마음껏 착해져도 되는 세상이라면, 더없이 행복하리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또다시 절규한다.
한효준 역시 그랬을 터였다.
“교수님께선, 춘부장을 믿고 따르셨던 겁니다.”
“……허. 그 무슨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그 무슨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교수님께서 하고 계셨을 겁니다. 절대로 이뤄지지 않을 꿈을 꾸셨을 겁니다.”
“이봐. 이봐, 박 군. 자네 지금 말이 앞뒤가 다르잖나? 육하일칙 그 유저에게 한 말은 그게 아니었잖아? 믿는 마음이 있으면 바꿀 수 있을 거라면서? 그런데 이제는 또 이뤄지지 않을 꿈이라 하는군. 대체 뭐가 이렇게 왔다 갔다 하나?”
“왔다 갔다가 아닙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양가감정은 믿음이 아닙니다. 양면성을 가진 감정이 어떻게 진정성을 보일 수 있겠습니까? 그게 어떻게 상대의 변화를 일으키겠습니까? 개를 두려워하면서 애견훈련사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와 같이, 가망 없는 꿈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선 두려워하며 사랑을 갈구하셨을 겁니다. 그 애증은 보상받을 수 없습니다. 그 결론을 춘부장께서 몸소 보여주신 게 아닙니까?”
두 줄의 메시지가 한 줄로 압축되기 시작한다.
초점을 고쳐, 거기서 눈을 떼었다.
나는 한효준을 바라봐야 한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그를 내담자로 바라보기로 결심했으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직 그만을 내 안에 담아야 한다.
“믿고 싶고 존경하고 싶었던 이가 마지막까지 뒤통수를 때렸을 때, 그때의 좌절감을 저는 상상하지 못하겠습니다. 누군가를 그토록 믿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가볍게 의지했던 선배라면 존재하지만, 그 마음이 깊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교수님께서 스스로를 얼마만큼 저주하고 부정하셨을지를요. 다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한효준은, 박대민이 존경하는 위인입니다.”
내가 존경하는 위인이, 흔들리는 눈으로 핸들을 노려본다.
저러고 있다.
당당하게 콧방귀를 뀌며 당연한 소리라 해주면 좋으련만.
110의 ‘진단’과 100의 ‘화술’이 그를 직면시킬 비책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무장해제된 채 그저 저렇게 있는 것이다.
“교수님. 스스로를 부정하며 부단한 노력으로 만들어낸 그 가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제게는 그 표면을 보여주신 적도 없잖습니까? 그렇기에, 한효준이란 인간의 본질을 지켜봤습니다. 그 위를 덮은 일그러진 자기존중감이 아니라, 그 아래에 도도히 흐르는 인간애를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수님께서 그 모든 껍데기를 벗을 수 있으리라 믿게 됐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슈퍼바이저셨으니까요. 멘토셨으니까요. 당신을 감히 내담자로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제 그게 얼마나 어린 생각이었는지 잘 알겠습니다. 어린 시절의 한효준이 딱 이랬을 테니까요.”
“무슨…… 헛소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다.
이 말까지 꺼내고 나면, 한효준과 나의 관계는 역전된다.
나는 하나뿐인 멘토를 잃고 말 것이다.
위대하고 빌어먹을 NBSC의 강요로 인해서.
“믿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존경하는 사람이니까. 누군가의 개입 없이도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라 믿었을 테니까. 그렇게 인내하고 고통받으며 기다린 세월 동안,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일그러졌을 겁니다. 그러니 저는 이번에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멍청한 사람아. 왜 그렇게…… 왜 그렇게 멍청했습니까. 왜…… 그토록 위대한 직관을 갖고 있으면서도,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이었다면 바꿀 수 있었을 텐데. 앳킨슨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을 봐야 함을 아는 당신이라면, 멘토가 일그러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답답하게 상담사만 기다렸던 겁니까. 가족은, 그럴 필요가 없는 관계인 것을요…….”
피해자의 자성을 부르는 직면은 조심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나는 나의 스승을 믿는다.
이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더욱 강해질 거라고.
내 행동엔 서운하겠지만, 무한정의 자기비하 대신 좀 더 논리적인 자기인식이 생겨,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되리라고.
한효준의 시선은 여전히 핸들을 향해 있다.
그렇지만 핸들을 보고 있지는 못할 터였다.
두 눈을 가득 메운 눈물이, [직면 선택지]보다 더 진한 장막이 되어, 그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까닭에.
“……그렇게, 보였나.”
“예. 보고 싶지 않았지만요. 썩을 마음의 지도가…… 보여주더군요.”
“이런, 못난…… 흐흐. 하하하…… 으하하하하!”
눈물과 웃음이 함께 흐른다.
한효준은 미친 듯이 핸들을 두드리며 웃었다.
“내가, 내가 아주…… 호랑이를 키웠어!”
“74년 호랑이띠 맞습니다.”
“……뭐? 아, 그래. 응? 하하, 이런 우스운 자가…….”
한효준의 눈물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그는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생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그 인간은…… 아버지는, 아주 영민한 사람이었어.”
“머리 쪽은 친탁이겠군요.”
“쓸데없는 토 달지 마. 그랬고, 또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 외교관으로서 어떤 꿈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굉장히 힘든 세상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 독재정권 치하의 외교관이란 게 그럴 거 아니겠나. 세상이 나서서 타락을 요구하지. 그런 외부와의 갈등 속에서 양심을 좀먹게 되는 일화들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유명한 영화 정도는 봤을 것 아닌가.”
“제 경우엔 히어로무비 외에는 잘…….”
“이런, 못난 자 같으니. 꼬마들이나 보는 영화만 보니 뇌가 그토록 순박해진 모양이지. 아무튼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어. 인간이 인간답게 기능할 수 없는 사회의 억압이라는 것이. 그것이 아버지의 안쪽을 어떤 식으로 갉아먹었는지까지는, 구태여 궁리할 것은 없겠지. 그게 전부도 아닐 거야. 지금 생각하면 PTSD의 가능성도 농후했어.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일단은 강점기에 태어난 사람이기도 하고, 무슨 용빼는 재주로 학도병 징집을 피할 수 있는 집안도 아니었으니.”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나보다 열 살 많은 한효준이 64년생.
그 부친이 30년대생이라고 하면, 트라우마가 없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터였다.
“대중없이 발작적이었어. 그 트리거를 아직까지도 모르겠단 말이야. 전쟁 중에 날 닮은 학도병의 수류탄이라도 맞았을까? 평소엔…… 술이 좀 된 뒤에도 보통은 사랑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봤단 말이야. 그러다가 정말 아무 예고도 없이 주먹을 휘둘렀어. 그게 참…… 나는, 모르겠더군. 아프고 두려웠는데, 그런데 그게…… 안타까웠어. 분명히 일시적이었으니 말이야. 그러다가 또 멀쩡해졌던 게지. 멍이 든 날 끌어안고 연신 미안하다고…… 애비가 취해서 그런 거라고…… 우라질.”
욕을 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단둘이 있을 때조차 ‘못된 자’가 가장 심한 말이었으니.
그가 참지 못하고 내뱉은 ‘우라질’의 정서를……
나는 차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그런 케이스라면, 누구라도…… 가장 경륜이 있는 상담사라 해도 치유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아까 드린 부주의한 말씀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합니다.”
“흥. 쓸데없는 토 달지 말랬잖나. 내가 누구냔 말이야. 나 한효준이야. 정말로 하려고 들었으면, 고쳐놓을 수 있었어. 내가 제대로 마주보기만 했더라도 그런 일은 없었을 거야.”
“그런 일이라면……?”
“약을 했어. 술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왔던 모양이지.”
약이라면, 마약.
외교관이었으니 구하기가 어렵지도 않았으리라.
그 끝을 짐작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었다.
“금세 의존이 심해졌겠군요. PTSD와 학대 등, 부정하고 싶은 모든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줬을 테니까요.”
“정답이야. 이제는 뭐, 산송장이지.”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뭔가. 자네 말이 맞아. 내가 너무 늦었어. 유일하게 그를 바꿀 수 있는 입장이었는데…… 그때는 그저 참고 참을 뿐이었지. 그게 옳다고 믿었어. 멍청했지. 어머니마저 못 견디고 떠나가서 둘만 남게 됐을 때도…… 그 사람을 사람으로 볼 생각은 하지 못했어. 그렇게 되면, 우리 관계가 끝장날 것 같아서. 우스운 꼴이지. 이제는 내가 그 양반이 준 PTSD로 인해 날 저주하게 됐으니. 이게 정말 무서운 일이란 말이야. 치료되지 않은 개인은 결국 대를 이어 악을 만들고 말아. 자네 말대로야. 악마를 만드는 건 그 자신이 아니야. 그러니, 우리가 쉴 수가 없는 게지. 지금 놓친 한 내담자가 또 몇의 괴물을 만들어낼지 알 수 없으니.”
참 대단한 사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라질’ 같은 저열한 욕설을 수천수만 번 반복해도 모자랄 경험담에서, 스스로를 다잡는 자성의 결론을 내놓고 있으니.
역시 한효준이다.
내가 존경할 수 있는 한 사람.
내가 놓쳐서는 안 됐을 스승.
그렇지만 이제 그 관계는 끝나고 말았다.
마음의 밑바닥까지 긁어내는 직면을 통해서.
그는 이제 내게 스승으로 기능할 수 없다.
내 쪽은 여전히 그것을 원하지만, 자존심 강한 한효준이 관계의 재정립을 받아들이지 못할 테니까.
“……교수님. 그간, 정말 감사했습니다.”
“시끄러워. 자네가 무술 배우고 하산하는 황비홍이야? 어딜 돼먹지 못하게 감사했느니 어쩌니 말하는 게야?”
전혀 의외의 대답.
그 앞에서 잠깐 멍해지고 말았다.
“뭔가? 약점 하나 잡으니 스승이 우스워 보이나? 헛생각하지 마. 자넨 아직도 멀었어. 직면의 시점부터 방식까지, 지적할 것이 태산의 나무만큼이나 널려 있다는 거야. 그럴진대 무슨 자신감으로 그따위 표정을 짓는 건가? 참 어이가 없어서. 뭐 하나 달라진 것이 없어. 자넨 내가 처음 본 모습 그대로야. 어렸던 한효준과 별다를 것이 없는 못난이지. 내일은 학교에 나와. 미팅이니 방송이니 하면서 이틀이나 쉬었잖나? 특별교습이야. 해가 뜰 무렵에는 교수실 청소를 마쳐놓도록 해. 워낙 깔끔해서 건드릴 곳은 많지 않겠지만 말이야.”
그곳이 깔끔하다면, 돼지우리도 깔끔할 텐데.
그렇지만……
고마운 말이었다.
눈물을 참기 힘들 정도로.
“뭐야, 또 우나? 무슨…… 눈에 수도꼭지를 달았나. 허. 밤늦게 무슨 청승인가. 못난 자 같으니. 내려. 난 가봐야 해.”
자기가 엉엉 운 것은 기억도 못 하는 태도였다.
그 사실에 감사하며, 떠나는 차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내가 멘토를 잃지 않게 해준, 내 자존심 넘치는 스승에게.
그 뒤에야 시야 밖으로 밀려난 메시지에 시선을 줬다.
「3. 정말로 사랑하셨어야 했습니다. (R+9 S-9 P+9)」
최선의 선택지였다.
나에게도, NBSC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