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74화 (74/200)

# 74

27장 - 선택하는 상담사 (2)

[직면 선택지]는 분명 좋은 기술이다.

그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직면이라는 것은 언제나 시기가 어렵다.

방향성이야 내담자를 마주하고 잠깐만 얘기를 나눠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지만, 말할 타이밍이 문제인 것이다.

과연 내담자가 정서적으로 준비되었을까.

직면의 진술이 오히려 역효과를 부르지는 않을까.

그런 문제들을 어디까지 고려할 수 있는지가, 보통 사람과 상담사를 가르는 기준점이 된다.

[직면 선택지]는 그런 면에서 최고의 기술이었다.

NBSC의 상담사에게는 만나는 모든 인간이 내담자다.

갓난아이가 아닌 바에야 누구나가 심리적인 문제를 품고 있을 테니.

그러나 [직면 선택지]가 아무에게나 발동되진 않았다.

강력한 라포가 형성되어 있고 그 내적인 문제에 대해 내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한효준이, 첫 번째 대상이 되었다.

기술의 발동이 곧 그린라이트.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하리라.

이제 충분한 조건이 형성되어 당장 직면을 시도해도 문제가 없음을, 발동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100exp의 값은 한다고 볼 수 있었다.

양자택일의 선택지도 별다른 문제는 못 된다.

애초에 에픽퀘스트부터가 제2의 루트를 위한 페이크였다.

이 선택지 역시 새로운 길을 위한 예시일 터.

내가 제3의 선택지를 찾아 보다 나은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면, 예시 메시지는 사라질 게 분명했다.

결정적으로 그 선택지의 수치화된 반응 예측이 걸작이었다.

그것을 꼭 사용하지 않더라도, 예측은 유의미하다.

가장 좋은 제3의 선택지를 유추하게 해줄 테니.

이를테면 R은, 아마도 라포(rapport)의 약자일 터.

직면 진술로 어느 정도 거리감이 발생할지 짐작케 해준다.

S는 당연히 스트레스(stress)의 약자일 것이고, 그 반응을 통해서 내담자가 어떤 어휘에 민감한지 알아챌 수 있다.

P는……

확실치 않지만, 아마 참여도(participation)가 아닐까 싶다.

직면 과정에서 입을 닫아버리는 내담자란 흔한 사례니까.

P를 낮추는 어휘는 피해야 할 터였다.

그렇게 다양한 장점을 가진 기술이었다.

무엇 하나 두려워할 것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려워졌다.

NBSC는 대체 내게 뭘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타이틀부터가 No Back이다.

결코 멈춰서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는 뉘앙스.

[직면 선택지]가 그 기조의 실체화였다.

내가 내담자에게 직면을 시도하지 않는 이상, 결코 사라지지 않을 테니.

물론 메시지는 한효준을 만난 뒤에야 드러났다.

그와 헤어지고 나면 없어질 것이다.

지금까지 겪은 NBSC라면, 분명 그런 메커니즘이리라.

살 부대끼며 사는 사이도 아닌 바에야 큰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 메시지의 점화(priming) 효과다.

직면을 유도하는 메시지 앞에서, 나는 한효준을 볼 수 없다.

그 환경이 사고를 규제해버리고 말 터였다.

물리적으로 형체를 구분할 수는 있다.

NBSC의 글귀는 반쯤은 투명하니.

그렇지만 정신적으로는 얘기가 다르다.

한효준과 마주할 때마다 메시지가 시야를 가린다면, 어떻게 그를 평소처럼 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선택지는 두 가지로 좁혀지고 만다.

어떤 방식으로든 직면을 시도하거나, 아니면 그를 떠나거나.

지금까지처럼 문제를 알면서도 회피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오직 그를 내담자로 마주하고 직면을 시도한 이후에만, 나는 다시금 한효준과 인간 대 인간으로 설 수 있을 터였다.

그 지점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NBSC가 단순한 시스템일 리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나를 치료적 도구로 사용해, Silver Challenge의 완성을 빌미로, 내 주위 모든 인간의 응어리를 풀어주려 하는 무언가.

지금까지는 그 강요가 불편하지 않았다.

NBSC는 언제나 옳았으니까.

종종 페이크로 현혹시킬 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모르는 고차원적 수준에서 바른 행동으로 이끌었다.

“끝없는 도전을 응원합니다”라는 멘트 그대로였다.

그렇지만 한효준은……

그는 다른데.

내가 직면의 방법을 몰라서 안 하고 있던 것이 아닌데.

그에게만은 상담사가 아닌 제자이고 싶었다.

슈퍼바이저가 아니라며 잡아떼는 그를, 나는 하나뿐인 슈퍼바이저로 여기고 있었다.

그 자유의사가 이제는 박탈되고 만 것이다.

“형님, 오셨…… 어…… 누구세요?”

“어흠. 자네가 디렉터인 진대수겠구만. 반갑네. 한효준이야.”

“헉! 효, 효준좌……!”

“큼. 한 선생님이라 부르게.”

원룸에 들어서 진대수와 마주한 직후, 메시지는 사라졌다.

제3자가 있는 자리에서 시도할 상담은 아니라는 거겠지.

한효준과 단둘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직면 선택지]로 인해 고충을 겪을 일은 없을 듯했다.

그게 그나마 다행인 점이었다.

한효준이 내 생방송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려 하고 있기에.

“그렇게 빤히 볼 것 없어. 박 선생과 할 이야기가 좀 있는데, 어째 기다리다보니 생방송 시간이 급하게 된 것 같아서, 오늘은 좀 견학을 하려는 거야. 평소처럼 하면 돼.”

“아, 예…… 근데…… 우와……. 실물로 뵙게 되니까 저도 완전 신나고 좋긴 한데요, 저기, 교수님? 저희가 방이 좁아가지고, 어디에 계셔야 되나. 어, 저랑 이쪽에 앉으실래요?”

“그래, 그러지. 이쪽 의자가 자네 자리지?”

“앗, 예, 그렇긴 한데, 여기 앉으십쇼. 편한 데 앉으셔야죠. 이 의자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저희 형님이 저 편하게 앉으라고 특별히 구입해주신 컴포트 체어임다.”

“됐어. 그런 거면 일하는 사람이 앉아야지. 구경하는 사람이야 이 간이의자로 충분해.”

한효준은 대수의 옆자리에 앉았다.

게스트들을 앉히는 접이식 의자.

나름대로 등받이 정도는 있는 물건이지만, 오래 앉아있기에는 딱딱하고 불편할 터였다.

지금 내 마음처럼.

메시지는 사라졌지만, 그 내용은 여전하다.

각인된 것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로부터 얻게 된 새로운 정보까지도.

「1. 그러나,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R-1 S+5 P+9)」

「2. 당신의 부친조차 선한 인간입니다. (R-2 S+9 P-9)」

1번 선택지의 경우, 가장 소극적인 직면이다.

일견 강경한 태도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는 일종의 하소연으로 전달될 테니.

그렇기에 라포가 1 하락하는 데에 그치고, 스트레스가 5 증가하지만, 참여도가 9 증가한다는 예측치가 나왔을 터였다.

그에 비해 2번 선택지는, 가장 적극적인 직면.

한효준의 밑바닥에 가라앉은 PTSD를 공격하는 방향이다.

스트레스가 9 증가하고 참여도가 9 하락해, 아마도 콧방귀를 뀌며 더 이상의 대화를 회피할 듯했다.

라포가 단 2만 하락한다는 점이 신기할 정도의 강공이었다.

그러니, 제3의 선택지를 찾아내기 위한 양극단의 예시.

그것이 [직면 선택지]의 진짜 효용이리라.

그렇기에 양쪽 모두 별로지만, 굳이 택하자면 물론 전자다.

이후의 대화를 잘 이끌어간다면, 한효준의 응어리를 해소해 장기적으로 진짜 인간관계를 장려하는 데 성공할 듯했다.

그의 문제는 몹시 끔찍하며 매우 단순하다.

외부에선 존경받는 외교관이며 사적으로는 하나뿐인 부친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기억들을 반복해 안겨줬다.

거기서 비롯된 것은 인간불신.

핏줄의 전달자가 최종보스처럼 군림했던 그의 삶에선, 그 자신조차 신뢰할 수 없는 잠재적 괴수일 터였다.

그렇기에 그는 가면을 쓴다.

스스로를 지키고 긍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인간 한효준이 아닌 심리학자 효준 한으로 행동하는 것만이, 그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임계점이었다.

내가 가면의 예외가 된 것 역시 쉬운 논리다.

그의 잠재의식이 설득될 정도의 증거를 보여줬으니까.

씬보이라는 내담자와 나눈 대화들이 그 마음속의 어떤 부분을 움직여, 박대민이라면 믿어도 된다는 확신을 심었으리라.

조명기와 김지연도 언젠가 그런 면을 보여줬을 것이고.

그렇지만 그 셋이 전부였다.

결코 짧지만은 않은 3주의 인연 동안, 한효준은 우리 셋 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자기 진심의 편린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를 세상 가장 존경하는 대학원생들에게도, 십 수 년을 함께 일해온 교수들에게도, 그는 오직 상담사였다.

그런 삶을 어떻게 행복하다 할 수 있으랴.

혈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정조차 이루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니, 한효준에게 직면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방향은 친부를 인정하는 것.

결과적으로는 2번 선택지의 인지를 획득하게 해야 한다.

한효준의 부친이 정말 선인인 까닭은 아니다.

그를 악마로 규정하는 한, 그 아들까지 부정되는 까닭.

용서는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한효준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최종보스이자 떠올리기도 싫은 악연을 사람으로 인정해야만 할 터였다.

그날 방송 중에 마침 관련된 사연이 올라왔다.

‘마침’이라고 할 만한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

최소한 이틀에 한 번 꼴로 올라오는 내용이었으니.

그만큼이나 보편적인, 말하자면 인류 공통의 고민이었다.

“6하1칙님의 사연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육하님. 다행히도 요새 교우관계에는 큰 문제가 없으신지, 가정 쪽의 고민을 보내주셨어요. 그런데 그 내용이……. 안녕하세요, 꼰마님. 또 사연을 쓰게 됐어요. 아빠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절 진짜 사람으로 안 보고 자기 아바타 취급해요. 예전엔 그래도 선은 지켰는데, 어제는 제 여친한테 욕까지 했어요. 그딴 년 만나지 말래요. 진짜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평생 뭐 하나 해준 것도 없으면서, 자기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고 저만 개새끼래요. 죽여버리고 싶어요. 진짜 악마야……라고 해주셨습니다.”

부자간의 갈등이란, 모녀갈등만큼이나 빈번하다.

단순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사춘기의 반동이 아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마주볼 수 없을 때의 자연스러운 현상.

가족이 대체할 수 없는 가치인 한국에서는, 특히나 극복하기 어려운 심리 문제로 비화된다.

그럴 때 흔히 악마화(demonization)가 발생한다.

2011년 사회심리학자 Giner-Sorolla 등은, 악마화를 “외부 그룹을 악으로 규정하여 폭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는 특수한 도덕적 명령”으로 규정했다.

특정 대상이나 집단의 존재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일.

그들을 결코 교화되지 않을 악인이라 믿어버린다.

사악하고 사회에 걸맞지 않은 존재이니, 모조리 죽이거나 주류사회에서 격리시켜야 맞다고 확신하는, 이분법이다.

부자갈등은 극히 소소한 사례일 뿐이다.

마녀사냥, 제노포비아, 호모포비아, 매카시즘, 악플과 그에 대한 반동, 래디컬페미니즘과 그에 대한 반동 등……

상대방을 수용하려는 시도가 배제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 악의의 발달과정은, 의외로 다분히 인간적이다.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방어기제.

자신이나 혹은 사랑하는 대상의 피해를 인지했을 때, 거기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지켜내고자 역공을 취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따지자면 개중 옳은 쪽과 옳지 않은 쪽이 존재하긴 할 것이다.

그렇지만 옳지 않은 쪽에서도 의견을 굽히지는 않는다.

객관화는 배제되고 오직 배척만이 발생한다.

정신적 억압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편이기에.

인지적 구두쇠인 우리는, 미움이라는 흡족한 해결책에서 손을 뗄 수 없다.

그렇기에 악마화는 최강의 방어기제가 된다.

하지만 나는……

상담사인 박대민은, 그럴 수 없다.

가장 끔찍한 범죄를 획책하는 인물조차 수용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내 미움이 또 다른 미움을 낳을 테니까.

악플러들을 증오하던 나를 떠올려본다.

김서현의 모친을 부정했던 나를 떠올려본다.

누구도 그때의 나를 비난할 수 없으리라.

논리적인 우위는 내게 있었고, 결과도 긍정적이었으니, 사회적으로 알려진다 한들 다수가 박수갈채를 보낼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상담사의 길이 아니다.

오아시스는커녕, 사막화를 일으키는 척박한 모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됐다.

이름 모를 김 이병을 위해서라도.

김 이병이 폭력과 따돌림 속에서 자살을 선택하자, 이후 모두가 그를 동정했다.

그가 죽인 것이 김 이병이기에.

만약 그가 총기를 난사해 가해자와 조력자를 막론하고 살해했다면, 그 동기에 대해서는 다수가 공감했겠지만, 그럼에도 그를 동정하는 이는 없었으리라.

살인이라는 행위가 김 이병을 악마로 만드는 까닭이다.

사실은 다르지 않은데.

자살 이전에 살인을 고려하는 사례는 흔하고 흔하다.

결과적으로 죽인 대상만이 달라질 뿐, 자살 역시 참혹성으로 따지자면 살인에 못지않다.

그들의 살인을 막은 것이 압도적인 도덕성일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 단지 용기의 부족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누구도 악마화할 수 없다.

김 이병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놈들조차 받아들여야 한다.

김 이병이 자신이 아닌 타인을 죽였더라도, 인정해야 한다.

범죄를 심판하는 것은 법률.

상담사는 그저 마음을 담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말할 것이다.

보복성 범죄는 흔한 것이 아니라고.

오히려 인과관계 없는 무분별한 폭력이 넘쳐나고, 거기서 쾌락을 얻는 인성파탄자가 많은 세상이라고.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등 대중적으로 알려진 반사회성 인격장애의 일종을 거론하며 그 악마성을 지탄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증오에는 논리가 빠져 있다.

틱장애 환자의 욕을 듣고 모욕당했다며 분개할 것은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두엽의 차이로 인해 인간 보편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을 악마로 규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필요한 것은 빠른 진단과 차이에 적합한 교육이지, 그들을 악마화해 미워하는 일이 아니다.

미움은 쉽고 빠른 해결책.

그렇기에 몸에 해롭다.

이 문제에 옳고 그름은 중요치 않다.

그들의 사고가 논리를 넘어서 증오로 발전하는 순간이, 이 세상에 ‘정의로운 나치’가 탄생하는 대관식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간이의자 위에서, 한효준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끔찍한 과거를 떠올리고 있을까.

그게 아니면, 내 애정 넘치는 대응을 기대하고 있을까.

“쉽게…… 속단할 수 없는 문제긴 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육하님의 부친은 악마가 아닙니다. 그건 확실해요. 제가 지금까지 본 육하님이 악마가 아니었으니까. 인간을 낳는 악마는 없잖아요?”

“그게 무슨- 크흠.”

「?」

「방금누구??」

「데스좌 목소리가 아닌데스?」

“……평소 채팅창에 계셨던 한 분이, 지금 여기 계십니다.”

「오늘초대석아닌데??」

「ㅋㅋ누구에여」

“효준한님이십니다. 제자의 방송국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셔서, 특별히 찐데스의 옆자리에 모셨습니다. 인사 부탁드려요.”

“어흠. 반가워요. 나 한효준입니다.”

「아닠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ㅋㅋ효준좌ㅋㅋㅋㅋㅋㅋㅋㅋ」

한효준 케이스에 있어서도, 내 생각은 같다.

저렇듯 선량한 인간을 낳을 수 있는 악마는 없다.

마찬가지로, 악마를 낳는 인간 역시 없다.

나는 언제까지고 그 진리만을 되뇔 뿐이다.

증오에 사로잡힌 악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

“육하님께서 바란 답변은 악마 같은 부친을 변화시키는 방법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에 제가 그런 답변을 드렸죠. 이러저러한 식으로 대응하면 상대의 변화를 촉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지만 이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는 동안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쪽에서도 맞대응을 할 테니까요. 아냐, 네가 잘못된 거야! 그렇게 나오는 게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그게 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당연한 일입니다. 자기 정당성을 부정당한 채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가해자와 피해자는 종이 한 장 차이.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이후 가해자로 변모하는 일은 흔하다.

악플 역시, 피해자들 중 일부는 악마들을 처단하겠다는 명분을 획득해 새로운 악플을 자행한다.

이전의 가해자를 미워하려면, 그들까지 미워해야 마땅하다.

그러니 나는 말할 수밖에 없다.

누구도 악마는 아니라고.

악마는, 스스로를 천사라 믿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한 직후였다.

다시 한번 메시지가 나타났다.

「1. 지금껏 키워주신 아빠잖아요. (R-1 S+2 P+9)」

「2. 악마는 육하님 당신입니다. (R-8 S+9 P-3)」

……직면의 적기라는 건가.

이번에도 양쪽 모두 마뜩찮은 선택지였다.

그렇지만, 내게는 제3의 선택지가 있다.

「 [정문의 일침]을 사용합니다 > 6하1칙

주제 ‘아빠’에 대응하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사람답게’ 」

“육하님. 안타까움을 무릅쓰고 여쭤보고 싶습니다. 악마라고 판단하신 부친을, 언제 한번 사람답게 대해주신 적이 있는지에 대해서요. 닭과 달걀의 쟁점이 있을 수 있겠죠. 그가 먼저 악행을 일삼았기에 미워했을 뿐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은 예민한 동물입니다. 누군가를 악마로 규정했을 때 그 악행은 반드시 가속화됩니다. 육하님 본인의 미움이 부친을 악화시켰을 가능성도 분명 있습니다. 압니다. 단순히 애정으로만 교화할 수 없는 문제도 세상에는 많지요.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증오로 극복되는 문제는 단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내 마음만 잠시 편해질 뿐이에요. 악마라고 불리는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그가 진짜 악마라서가 아니라,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상처 입힐 테니까요.”

이 직면은 옳았을까.

[내담자 평가]를 통해 6하1칙의 라포가 충분히 형성됐음은 확인했지만, 늘 그랬듯 불안감이 가슴을 채웠다.

거기에 답을 준 것은, [직면 선택지]였다.

「3. 사람답게 대해줘요. (R+1 S= P+3)」

……과연, 양자택일은 페이크였구나.

오류 없는 수치가 내 접근이 적절했음을 확인해줬다.

그리고, 6하1칙이 조심스레 마음을 고백했다.

「6하1칙 : 전그냥 무서워서 피한건데..」

「6하1칙 : 말해봐도 하나도안먹히니까 그런건데요..」

「6하1칙 : 그런것도 상처가돼요..?」

“……물론입니다. 상처가 돼요. 아버지잖아요. 자기 아들이 자신을 미워한다는 걸 느끼지 못할 리 없어요. 나이만 많을 뿐이지, 사실 육하님과 다를 바 없는 인간입니다. 자기가 못난 아빠라는 자각을 거부하고자 역으로 가부장적 강압에 고착됐을 수 있습니다. 그게 정당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다만, 그대로는 절대 안 변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부친이 싫다면, 진심으로 사랑해야 해요. 그래야 변합니다. 사람을 정말로 바꾸는 건, 호구처럼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6하1칙님 별사탕 100개. 아 진짜. 하나도 모르겠는데 일단 고마워용. 생각좀 해볼게요. 암튼 꼰마님은 이상해.]

6하1칙은 이번 상담에 크게 만족하지는 않은 듯했다.

하지만 입술을 삐죽이면서나마 생각할 것이다.

내가 다르게 행동했다면, 아빠는 악마가 안 됐을까……

그 생각만으로 그는 이미 한 걸음 나아간 셈이다.

이후의 모든 것은 그 부친에게 달려 있다.

아들이 그렇게나 노력했음에도 스스로를 바꿔내지 못한다면, 그에게 필요한 건 상담사가 아닌 경찰이리라.

그리고 경찰조차도 건드릴 수 없었던 한 악마가 있다.

간이의자 위 한효준을 바라본다.

얼굴이 잔뜩 붉어진, 사랑하고 연민하는 나의 스승.

이제 더는 직면을 피할 수 없을 듯했다.

6하1칙의 상담을 통해, 내 신념을 충분히 알아봤을 테니.

이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마침내, 스승과 마주서야 할 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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