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5장 - 상담사의 사람들 (1)
「 성명 : 박대민 / 성별 : 남 / 연령 : 47
직업 : 상담사 Lv.4 (10/10)
관계 : 82 / 진단 : 50 / 화술 : 70 / 외모 : 65
성장 : 0
기술 : [인자한 웃음] [차분한 음성] [아련한 눈빛]
[정문의 일침]
‘경청은 상담사를 성장시켜요’ (19255/100000)
‘더욱 많은 내담자를 만나봐요’ (5403/6000)
‘내담자를 행복하게 해주세요’ (100/110) 」
밤하늘을 배경으로 떠 있는 상태창을 보며 생각했다.
저걸 일반 상담으로 채우려 했다면,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아마 한 달 안에는 힘들었을 것이다.
난 전생에 이순신 장군님이었던 게 분명한 것 같다.
밤 9시 20분쯤 생방송을 시작한 송은진은, 술먹방에 돌입하기 전에 정보람 야방 영상을 틀어놓고 내 얘길 했다고 한다.
힘들었던 시기에 가장 큰 도움을 주신 좋은 어른이라고.
오늘 11시에 게스트로 불러놨으니 상담 필요하신 분들은 생각해놨다가 그때 얘기하시라고.
고마운 노릇이다.
나 같은 호구를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해준 그 아이 덕분에, 팬들이 쉽게도 나를 상담자로 인식하게 됐다.
그렇게 단숨에 벌어들인 6exp에 더해.
방금 전 아내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데 성공하며, 나는 마침내 레벨업이 가능한 exp를 확보했다.
고민이 되는 부분은 이것이다.
장기적인 플랜인 ‘특성’은 그렇다 치고, 10exp로 살 수 있는 ‘기술’이 여럿 있었다.
어쩌면 레벨업 이상으로 유용할지도 모르는 초능력들.
자연히 자꾸만 그쪽으로 시선이 갔다.
더군다나 능력의 향상은 비선형일 가능성이 높다.
책 한 권 정독한 걸로 1이 향상된 ‘진단’과 달리, 5천 이상의 내담자를 상대하고도 ‘관계’나 ‘화술’은 향상되지 않았다.
수치가 높을수록 향상에 더 많은 학습이 요구되는 거겠지.
가능한 레벨업을 늦추는 쪽이 장기적으로 유리할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레벨업을 고려하고 있다.
[정문의 일침]을 통해서 기술의 유용성은 충분히 느꼈다.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기술이 제한적이고 보조적인 역할에 불과하다는 사실 역시 깨달을 수 있었다.
[정문의 일침]은 1인당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
또한 거기서 나온 키워드는 본질 아닌 겉핥기에 불과했다.
다른 기술들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섣부른 일반화일지도 모른다.
기술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상담을 성공시키는 게 성장의 지름길인 건 확실하다.
예정대로 ‘진단’은 책을 통해 높이는 게 나을 터였다.
하지만, 기술을 하나 더해본들 나는 분명 반쪽짜리.
이대로는 잘못된 상담으로 어린 친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책을 통해 계속해서 기본기를 닦아나갈 예정이지만, 직관적인 수준에서 핵심을 짚어내는 힘이 절실했다.
날 믿고 찾아줄 내담자들을 위해 본질이 필요했다.
한참 고민한 끝에 마침내 결정했다.
마음속으로 레벨업을 강하게 떠올리자, exp가 사라졌다.
그리고 10의 ‘성장’이 ‘진단’에 옮아갔다.
그때부터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주변 사람들의 이미지가 산산이 해체되고 재조립돼, 훨씬 더 명확한 캐릭터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떠올리면 이내 내가 갖고 있던 착각들이 깨진다.
평생 경험해본 적 없는 유레카였다.
무수한 얼굴들을 그린 끝에, 나는 가족들을 떠올렸다.
예상외로 아내와 딸에 대한 판단은 그대로였다.
그래도 내가 가까운 사람들만큼은 잘 알고 있었던 걸까……?
그래봤자 60의 ‘진단’이긴 하지만.
반면에, 처가 쪽으로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대학원까지 나온 딸을 임신시켜 주부로 만든 날 몹시 미워하리라고 생각했던 장인 장모.
두 사람에 대한 평가가 급격하게 변해나갔다.
나는 그들에 대해 무엇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내 동생에 대해서도.
*
“뭐……? 당신, 진심이야?”
아내는 묘한 퍼즐을 본 사람처럼 되물었다.
처가에 인사하러 가겠다는 말이 그렇게 의외였던 걸까.
“지수 학교 데려다주고, 같이 좀 가자. 선물 사게.”
“……갑자기 왜 이래? 그냥 둬. 괜히 욕먹을 일 있어?”
“욕하시면 먹어야지.”
“아, 됐어. 놔둬. 나중에 잘되면 가. 괜히 지금 가봤자…… 방송 얘기 안 좋아하실 거야.”
“그래도 남들 통해서 들으시는 것보단 나을 거야.”
“됐다니까? 당신이 유느님만큼 유명해지지 않는 이상 절대 모르실 건데 뭐. 세상사에 관심 없는 분들이야.”
아내의 말이 정답이다.
명문대 교수셨던 장인이나 평생 내조하셨던 장모나, 인터넷 세상에는 별 관심이 없는 60대.
공중파 방송까지 진출하지 않는 한 내 이직을 알지 못하실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거기까지 갈 생각이다.
아직 길은 묘연하지만.
스타메이커 진대수와 함께라면, 그리고 NBSC와 함께라면, 유느님만큼은 아니더라도 꽤나 유명해질 자신이 있다.
이 인터페이스는 너무도 명확한 선순환 구조니까.
반복퀘스트의 목표치는 현재까지 일정한 수준이다.
즉, 레벨업으로 능력을 올리면 퀘스트의 달성이 쉬워진다.
그로써 또 exp를 벌 수 있고, 또 레벨업을 할 수 있다.
그 끝에 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담사가 될 터였다.
당장 어제의 두 합방으로 약 7000명이 날 알게 됐다.
아직 적은 숫자고, 타 커뮤니티까지 전파된 건 아니지만.
이 기세라면 조만간 수십만 명을 만날 수 있으리라.
그 전에 가족들에게는 이야기를 해둬야지.
‘이거 자네 사위 아냐?’하는 말로 내 새 직장을 알게 해드리는 건, 지나치게 무례한 일일 것이다.
점잖은 장인 내외에겐 특히나.
“그냥 같이 가줘. 오랜만에 뵙고 싶어서 그래.”
“아 그러셔? 오랜만이긴 하지. 거의…… 8년 만인가?”
“그래. 빈소에 오셨었지.”
“……응. 당신 퇴직했다는 이야기까진 했어. 그 뒤로는 별 말 안 했고. 아마 별로 반가워하시진 않을 거야.”
“그러실 수도 있지.”
“책임감 없는 놈이라면서 화내실 수도 있어.”
“그러실 만도 하지.”
“아, 진짜. 난 몰라? 분명히 말했어? 나한테 뭐라고 하면 안 돼. 나도 그분들 고집은 못 말려. 알잖아, 그 성격.”
안다.
순수하게 사랑하는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 애쓰던, 허영심 가득한 내외.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과 후배의 소개로 아내를 만난 건, 그녀가 막 서울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진학했을 무렵.
그때 장모의 나이가 지금의 나와 비슷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딸을 키우고 있다.
60의 ‘진단’은 그런 관점에서 내게 말했다.
박대민 너라면 어땠을 것 같냐고.
네 딸이 너 같은 일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며 데려왔을 때, 과연 웃으며 맞아줄 수 있을 것 같냐고.
그런 의미에서다.
첫방 리허설 해보자며 원룸 찾아오겠다는 진대수를 말리고, 나는 장인 장모의 평안한 노후를 방해해보려 한다.
약간의 선물과 함께.
“요즘은 현금을 선호한다고들 하던데, 두 분은 다르시겠지?”
“아, 당연하지. 돈 봉투 건네면 정색하고 욕하실 거야.”
“흠. 한우는 안 좋아하실 것 같고. 홍삼 같은 건 어때?”
“정관장에 제자가 있어서 넘치게 받고 계셔.”
선물을 고르는 건 어려운 일이다.
특히 왕래가 없던 손윗사람을 찾아뵙는 일이라면.
그래서 인터넷에도 젊은 신랑들이 ‘처월드’ 선물 질의하는 글이 많았다.
덕분에 이런저런 후보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장인어른이 와인 좋아하셨지. 좋은 걸로 하나 사자.”
“음…… 좋아하실 것 같긴 한데, 가격대가…….”
“오랜만에 뵙는 거잖아. 모아뒀다 선물하는 셈 치지 뭐.”
백화점에서 100만 원짜리 고급 이태리 와인을 구입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한남동 저택을 찾았다.
처가는 선대 때부터 부유했던 집안이다.
개천의 이무기인 내가 감히 비벼볼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 혼전임신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결혼은 불가능했으리라.
아내의 언니오빠들은 대학 교수, 검사, 피아니스트 등으로 활약 중이다.
증권맨으로 자수성가한 처남만이 특이케이스.
그 처남이 문 앞에서 우릴 맞아줬다.
콧대 높은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날 응원해줬던 녀석이다.
“매형! 아, 진짜. 급하게 반차 내고 오느라 별 소리 다 들었잖아요. 무슨 바람이 분 거예요? 갑자기 여긴 왜요?”
“말했잖아. 오랜만에 인사 좀 드리려고.”
“에이…… 이상해 진짜. 누나, 그거 뭐예요? 와인? 어? 와, 이걸 사오셨어? 아버지 좋아하시겠네. 신경 좀 쓰셨네요?”
하지만 그걸로도 좀 부족했던 것 같다.
일단 딸 내외인 만큼 거실까지 들여보내주시긴 했지만, 선물 보시고도 시큰둥한 표정일 뿐 반기는 기색이 없었다.
“흠…… 자네, 올해 몇이지?”
“마흔일곱입니다, 장인어른.”
“그래, 그렇겠네. 지수가 열넷이니까. 어디서 혼자 좋은 걸 먹고 다녔는지 얼굴은 지금도 반반하구만. 하. 그래봤자 중늙은이지. 참 어정쩡한 나이 아닌가? 뭘 새로 시작해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노후생활에 만족할 수도 없고. 그만둘 거면 진즉에 그만뒀어야지. 어리석기는.”
맞는 말이다.
진작 그만두는 게 나았을지도.
그랬어도 NBSC를 얻게 됐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날 찾아온 거 보면 속이 빤해. 어디 자리 하나 없을까 물어보려는 게지? 자네, 참 낯짝도 두꺼워. 이깟 와인 하나 사들고 오면 내가 반겨줄 거라 생각한 건가?”
“아니에요, 아빠. 제발.”
“여보, 손님 불편하시겠어요.”
대놓고 추궁하는 장인. 손님이라며 선을 긋는 장모.
이렇게까지 불청객 취급을 받을 거라고는……
알고 있었다.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아닙니다, 장인어른. 새 일자리는 이미 구했습니다.”
“어디서 허세야, 비루먹은 녀석이.”
“정말입니다. 오늘은…… 청탁을 드리려는 게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왔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을 둔 아비로서요.”
장인이 눈살을 좁히고.
장모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나는, 어떤 기술도 사용하지 않고 진심을 말했다.
“어렸을 때는 잘 몰랐습니다. 세상이 바뀌어서 개인주의에 부합하게 되었으니, 딸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길 응원해주는 거야말로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두 분을 속으로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고얀 놈!”
“그렇지만 장인어른이 옳았습니다. 저는 주희한테 좋은 남편이 못 됐습니다. 능력도 없는 주제에 일만 파던 저는, 아내를 늘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저 같은 놈은, 저라도 사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너무 늦게 깨달았지요.”
장인의 늙은 얼굴을 바라본다.
60대 후반.
65의 ‘외모’로 젊은이처럼 변한 나와는 격이 다른 노인.
그렇지만 내 나이도 마흔일곱이다.
스무 살 정도 차이 나는 이 노인을, 60의 ‘진단’을 갖게 된 지금, 얼추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 사람이 내게 얼마나 많은 것을 베풀어줬는지.
“고맙습니다, 장인어른. 고맙습니다, 장모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딸을 허락해주시고, 저 때문에 힘들어하는 주희를 보면서도 호통 한번을 치지 않으셨지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 이제는 압니다. 저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두 분을 존경하게 됐습니다.”
“……아부하는 겐가?”
“묻지 않으셔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 같은 어린 녀석이야, 얼굴만 봐도 속이 들여다보이실 텐데요.”
장인에게 ‘진단’ 능력치가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80은 될 것이다.
명예교수직을 받을 정도로 오랫동안 강단에 섰으니.
내 진심을 몰라보고 하는 말일 리 없었다.
그건 그저 관성.
13년 동안 미움과 서운함의 대상이었던 나를 단번에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다.
지금의 나는, 그 마음까지 알아볼 수 있다.
“새 직업은 미디어 쪽입니다. 부족한 재능이나마 어린 친구들의 고민을 해소해주는 방송인이 되려고 합니다. 이미 수천 명 앞에서 상담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할 생각입니다.”
“……방송은 무슨 방송이야? 얌전히 펜대나 굴리던 녀석이.”
정확하게는 펜이 아닌 키보드와 마우스지만.
어쨌든 이 정도면 무난하게 설명한 셈이겠지.
“좋은 남편, 멋진 아비가 되겠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조만간 TV에서 저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허. 뉴스에나 안 나오면 다행이지.”
“시간 뺏어드려서 죄송합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여보, 당신은 좀 쉬다 와. 오늘 지수 밥은 내가 차려줄 테니까.”
“……으, 응.”
깊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 저택을 나서는 길.
처남이 황급히 따라나와서 엄지를 세워 보였다.
“와, 와. 매형, 이런 모습도 있으셨네요? 멋지셨습니다. 놀랐어요. 저 꼰대 얼굴을 빤히 보면서 당당하게…… 우와.”
“어흠. 꼰대 그런 말 쓰지 마.”
“예? 아, 예. 요즘 애들 사이에선 좀 나쁜 뜻이라죠?”
“예전에도 나쁜 뜻이었잖아. 부모님을 그렇게 부르면 쓰나.”
“하하핫. 전 매형 그런 게 좋아요. 아무 때나 그렇게 막 진지하신 거. 근데 매형. 방송 그 얘기는 뭐예요? 어떤 일을 하시려는 건데요? 저 방송국 쪽으로도 지인 좀 있어요.”
당당한 척은 혼자 다 했지만, 역시 아직은 좀 껄끄럽다.
무엇보다 그 닉네임 때문에.
꼰대라는 말 쓰지 말라고 하는 내가 꼰대마스터라니……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나중에 해도 될 것 같아서, 어깨만 몇 차례 두드려주고 대문을 나섰다.
이제부터는 저쪽 가족끼리 대화할 일이다.
아내가 내 인방 이야기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됐건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닌 것.
나는…… 내 가족을 만나야 할 시간이다.
*
“중민아.”
“……형? 형 맞어? 닮은 사람인가 했네.”
예술인마을에서 그림을 그리는 열 살 터울 동생, 박중민.
친형제지만 이쪽 역시 8년 만이다.
부모님을 안장한 봉안묘 이후로 처음이니.
“안 바쁘면 묘소 좀 가자.”
“왜 이래? 무슨 일 있어? 갑자기 나타나서는.”
“차에서 얘기할게. 같이 가주라…… 부탁이다.”
동생에게 ‘부탁’이란 말을 쓴 건 생전 처음이었다.
70의 ‘화술’ 덕분인지, 60의 ‘진단’ 덕분인지, 그 말이 수월하게도 나와줬다.
박중민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 뒤를 따라왔다.
차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퇴사했으며, 방송 쪽 일을 준비 중이고, 그동안 연락하지 못해 미안했으며, 사실은 많이 보고 싶었다는 얘기들.
중민이는 별다른 대꾸 없이 경청해줬다.
고맙게도.
작은 갈등이었다.
뭘 하든 성과를 냈던 나와 달리, 예술가를 꿈꾸던 동생은 이래저래 말썽꾸러기여서, 부모님의 아픈 손가락이 됐다.
말 잘 듣는 장남보다는 속 썩이는 둘째에게만 온통 사랑을 베푸셨던 거다.
거기에 이미 약간의 불만을 품고 있던 차.
전 재산을 중민이에게 상속한다는 유언이 도화선이 됐다.
그 재산이란 게 사실상 다 내가 만들어드린 것들이었으니.
그렇지만, 그게 그분들의 허물이 될 수는 없었다.
“미안하다. 내가 속이 좁았어. 너무 당연한 일이었는데.”
“……아니 뭐…… 나도 미안하지. 사실은 안 받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자꾸…… 형이 뭐라고 하니까, 성질나서.”
“이해해. 나라도 나 같은 형은 싫었을 거다.”
“그건 아닌데……. 형, 멋있지. 과외 한 번 받은 적 없이 서울대 떡하니 붙어버리고, 졸업하자마자 스카웃 돼서 벤처기업 하고. 하하.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얘기 하니까 웃기다. 엄마아빠 생전에는 진지한 얘길 해본 기억이 없네.”
웃기고 슬픈, 웃픈 이야기들을 하며 파주의 묘소로 갔다.
그곳에서 부모님께 이야기했다.
마음속으로만.
늘 자랑스런 아들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서울대 합격하고 야근러가 돼서 용돈 보내드리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는데.
한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동생 챙기고, 그랬어야 했는데.
“중민아.”
“어.”
“고민 같은 거 있으면, 나한테 상담해라.”
“고민? 뭐야 갑자기. 그런 거 없어. 그리고…… 하하. 이상하잖아. 형이 무슨 상담사라도 되나?”
“상담사야.”
“응?”
상담사가 될 것이다.
아직은 미진하지만, 점점 더 좋은 상담사가 되리라.
그래서 내 사람들을 지켜주는……
아니, 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