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진없는 상담사-3화 (3/200)

# 3

2장 - 상담사와 인방 (2)

「 성명 : 박대민 / 성별 : 남 / 연령 : 47

직업 : 상담사 Lv.3 (0/10)

관계 : 82 / 진단 : 49 / 화술 : 60 / 외모 : 55

성장 : 10

기술 : [인자한 웃음] [차분한 음성]

튜토리얼 3 ‘상담을 통해 내담자를 변화시켜봐요’ 」

두 번째 레벨업과, 세 번째 튜토리얼.

시립도서관 앞에 서서 글귀들을 가만히 노려본다.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하는 중이었다.

‘공돌이의 사고회로’라고 하는 ‘짤’이 있다.

일반인은 어떤 시행과 결과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고 곧바로 활용하는 반면, 공돌이는 그 인과관계를 알고리즘으로 분석하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는 내용.

공대생들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끈 인터넷 밈이다.

컴공과 출신인 나 역시 그 일반화된 공돌이에 공감했다.

어쩌면 우리 쪽이 일반 공과보다 더 어울릴지도 모르지.

알고리즘이야말로 컴공의 알파이자 오메가니까.

그렇기에, NBSC의 힘을 확인하고부터 분석을 시작했다.

그것이 정확하게 어떻게 작용하는 초능력인지.

박대민이란 객체와 NBSC란 인터페이스 사이에 어떤 런타임 라이브러리가 상호작용하는지 알고 싶었다는 뜻이다.

사실 꼭 컴공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호기심이 들 일이지만.

컴공은, 그 사람들이 다 움직일 때까지도 분석한다.

뭐가 됐든 그냥 질러보지는 못하는 족속이라.

No Back Silver Challenge.

후진 없는 노후 도전……이란 뜻이려나.

그게 실제로 내 인생설계 안으로 진격하고 있다.

마흔 이후로 느껴본 적이 없을 만큼 탱탱한 피부도 그렇고.

얼굴만이 아니라 미세하게 어긋나 있던 몸의 균형까지 회복돼서, 조금쯤 키가 커진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게 단지 느낌이 아니라는 게 핵심이다.

NBSC는 분명하게 내 신체에 간섭하고 있다.

다른 능력치들 역시 그렇겠지.

‘관계’를 올리면 호감을 얻기 쉬워질 거고, ‘진단’을 올리면 상대의 속마음을 파악하는 일이, ‘화술’을 올리면 상대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일이 수월해질 것 같다.

그래서 저 10 포인트를 어디에 쓸지 고민이 되는 건데……

이 포인트에서 질문 하나.

과연 이 기작은 단방향일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나 박대민이 살아온 인생이 49의 ‘진단’으로 수치화됐다.

그렇다면 이제 박대민의 학습은 종료된 것인가?

그게 아니면, 지금도 내 노력이 저 수치에 직접적인 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인가?

논리적으로는 피드백이 가능할 터였다.

내가 성형수술을 받는다면, ‘외모’는 변화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박대민 쪽에서도 스테이터스에 관여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성장’시켜야 할 방향이 조금 달라진다.

물론, 일단은 실험부터.

남의 코드를 분석하려면 로그부터 체크해야 하는 법이다.

그렇기에 도서관을 찾았다.

이제부터 하려는 건 가장 낮은 능력치의 수련.

책을 통해서 ‘진단’을 올릴 수 있는지 확인하는 거다.

그 생각 속에서 심리상담 서적 한 권을 독파했을 무렵.

작은 효과음과 함께, 수치가 바뀌었다.

「 관계 : 82 / 진단 : 50 / 화술 : 60 / 외모 : 55

성장 : 10 」

……된다.

역시 되는구나.

여기서 더 정밀하게 계획을 세우려면, 그 성장 메커니즘이 선형인지 비선형인지 구분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확실한 게 하나 있다.

‘관계’를 올리는 것보다 ‘진단’을 올리는 게 쉽다는 것.

적어도 이쪽은 책을 읽어서 올릴 수 있는 분야인 셈이니.

그리고 그 모든 능력치 중 가장 올리기 어려운 것은……

당연히 ‘외모’.

확실한 방법으로 요즘 뜬다는 실버성형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내 나이에 얼굴에 칼을 댄다는 건 좀.

회복이 더뎌 작은 부작용조차 크게 작용할 거고, 주변의 시선 역시 좋지 않은 방향으로 다가올 터였다.

마침 아내는 내가 보톡스를 맞았다고 믿고 있다.

알아보니까 그 주사는 맞고 나서 며칠이 지나야 제대로 효과가 나타난다더라.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외모에 투자할 적기가 아닌가 싶었다.

이후로는 변한 얼굴을 설명하기가 힘들 테니.

이제 검증은 끝났고, 컴파일의 순간.

나는 10의 ‘성장’에 시선을 줬다.

「 관계 : 82 / 진단 : 50 / 화술 : 60 / 외모 : 65

성장 : 0 」

됐다.

‘외모’에 투자하는 건 딱 여기까지.

이후로는 책을 읽어 ‘진단’을 올리는 한편으로, ‘관계’나 ‘화술’에도 신경을 써서 더 좋은 상담사가 돼보자.

상담사 일을 평생 할 생각은 없지만……

퀘스트를 해결하며 세 개의 능력치를 최상으로 올린다면, 나는 호구 같던 예전의 박대민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읽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할 줄 아는, 정말 멋진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 모든 사고의 알고리즘은 분명 합리적이었다.

컴공인의 자존심을 걸고 철저하게 검증에 임했으니까.

설혹 성장 방식이 선형 구조여서 뭘 먼저 올리는지가 전혀 중요치 않다고 하더라도, 손해 볼 건 없는 선택이었다.

다만 나는……

딱 한 가지 변수를 고려하지 못했다.

65라는 외모 수치와 47이라는 나이 사이의 상관관계를.

내 실버플랜에 버그가 발생하고 말았다.

*

“여, 여보? 당신 도대체……?”

아내는 말을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이해한다.

나 역시 도서관 화장실 거울 보고 한참을 굳어 있었으니.

“뭐, 뭔 짓을 한 거야? 당신 진짜…… 박대민 맞아?”

“음…… 맞아.”

사실, ‘관계’가 82인 시점에서 그 능력치가 퍼센티지가 아닐 거라고는 짐작하고 있었다.

내 친화력은 객관적으로도 최상위에 속했으니까.

아마도 평균치 50에 표준편차 15의(95%가 20~80 범위 안에 들어 있는) 정규분포 모양이리라.

그래서 82가 상위 2%쯤에 들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외모’ 쪽에서는 무심코 좀 다르게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65점의 외모가 아니라, 47세 동갑내기들 사이에서만 65점이 될 거라고.

올려봤자 청년들 사이에 있으면 아저씨로 보일 거라고.

그러니 보톡스 효과라고 웃어넘길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리석었다.

비현실적인 메시지를 마주했을 때부터, 나는 상식의 틀을 벗어나서 더 창의적으로 사고했어야 마땅했다.

적어도 10포인트를 한꺼번에 들이붓지는 말았어야 했다.

“하아…… 화장은 어디서 하셨대? 아주 투명하게 잘도 하셨네. 눈썹도 정리했고, 잡티도 제거하셨나? 또…… 코에도 뭐 넣었어? 설마 앞트임까지 한 건 아니지? 아니, 아니지. 회복기간 알리바이가 없네. 그럼 무슨 시술 받은 거야? 이제 솔직하게 말해. 아, 화 안 낼 테니까 솔직하게 말해!”

지금 화내고 있는 것 같은데.

화를 안 낸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안 받은 시술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으니.

“왜 말이 없는데? 장난해? 우리가 부부인 거 알긴 알아? 나한테 말도 없이 왜 다 마음대로 하는데? 아, 부러워라. 아주 잘생겨지셨네 진짜. 아무도 40대라고 안 보겠어. 왜, 연예인 한다고 하시지? 해도 잘할 것 같은데? 참 미남이시네요!”

아내의 말이 정답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모든 남자들 중 1표준편차 밖…… 상위 15% 안에 드는 외모등급을 갖게 된 것 같다.

47세 아저씨 중에 이 정도 외모를 가진 사람은 드물겠지.

세기의 미남이었던 연예인들이 몇 명 있긴 하겠지만.

아마 이런 메커니즘이 아닐까 싶다.

NBSC의 능력치는, 나이에 따라 평균점이 움직이는, 일종의 절대등급.

‘관계’나 ‘진단’ 쪽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차 평균치가 높아질 것이고, ‘외모’의 경우엔 그 반대가 돼서……

40대 남자의 ‘관계’ 평균이 60 정도, ‘외모’ 평균이 40 정도.

그렇게 가정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거기서 표준편차의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나는 동년배들 평균에서 22점쯤 높은 ‘관계’를 갖고 있다.

그것만 해도 주변에서 꼰대 소리 안 듣고 젊은 애들이랑 친하게 지내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들었다.

그리고 이젠 또래보다 25점쯤 높은 ‘외모’를 갖게 된 거다.

기본적으로 세월은 모든 것을 추하게 만드는 파괴자.

청년기의 아름다움을 40대 후반까지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

피부를 아무리 말끔하게 펴고 각종 시술을 받아도, 노인이라는 사실은 분명히 느껴지고 만다.

그러나 NBSC의 ‘성장’은 현실성과 무관한 기작이었다.

나이의 한계를 뛰어넘어 높은 점수를 획득했을 때.

내 현실은 버그가 되고 말았다.

65의 ‘외모’를 완성하고자 NBSC는 나의 본판을 갈아엎었다.

주름이 줄어들고 혈색이 좋아지는 정도가 아니었다.

머리 골격이 축소되고, 이목구비 균형이 조정되고, 처진 근육이 당겨지고, 코가 높아지고, 눈이 커지는, 미세한 변화들.

콕 집어서 성형의 결과라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분명히 뭔가가 달라졌음이 느껴질 법했다.

얼핏 봐도 멋지다는 말이 나오는 미중년이 돼버렸으니.

딸에게도 그 변화가 느껴졌던 모양.

“아, 좀 시끄럽게 하지 말라니까? 아빠가 또 뭔- 헐?”

“미안하다, 지수야. 이제 안 싸울 테니까, 들어가.”

“아니 아빠 뭐야? 뭔데? 왜 잘생겨졌어?”

딸에게 잘생겼단 말을 들어보는 게 소원이던 때가 있었다.

딱 거기까지였다면 좋았을 텐데.

“와…… 아빠 뭐 하려고 그래? 인방 찍게?”

“……그런 게 아니야.”

“헐이다 진짜. 배우 같아. 사진 좀 찍어도 돼?”

“그러지 마. 들어가 있어. 엄마랑 얘기 좀- 아.”

딸은 말리는 소리도 안 듣고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댔다.

그 뒤에 잘 나왔다며 보여주더라.

필터까지 적용한 건지, 정말 영화배우 같은 분위기였다.

“아빠 뭐 한 거야? 성형했어?”

“정말 아니야. 아빠가…… 운동을 하고, 경락 마사지를 좀 받았어. 그랬더니 무너졌던 몸의 밸런스가 돌아오는 모양이야.”

“진짜야? 엄마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은데?”

“지수 넌 들어가. 엄마 아빠랑 할 얘기 남았어.”

“아 왜? 아빠 잘생겨져서 좋은데. 아빠, 여기 좀 와봐.”

딸애가 적극적으로 팔을 끌어서, 하릴없이 딸려갔다.

아내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그런 건 아니었다.

내 딸이 날 위해서 부부싸움을 말려주는 상황에 순간적으로 너무나 감동했던 탓.

다만, 내 ‘진단’은 역시 50에 불과했다.

“아빠 아빠. 나 직업탐색 수행평가 있다고 했잖아? 그래서 지금 그거 준비하고 있거든? 근데 아빠가 좀 도와주라.”

그게 아마 자유학기제라는 제도 때문이랬나.

중학교 1학년 1학기에 지필고사 없이 스스로 진로탐색 등을 수행하고, 그 과정과 성과를 평가받는다고 했다.

“그래, 도와줄게. 어떤 직업 체험해볼 거야?”

“나 유튜버. 아니, 크리에이터?”

“……그런 것도 체험해도 되는 거니?”

“왜? 애들 많이 하는데?”

확실히 인식이 많이 바뀌긴 바뀐 모양이다.

우리 회사의 ‘프리TV’가 주도하던 시절에는 BJ라고 하면 눈총을 받곤 했는데.

요즘 유튜브 크리에이터라고 해서 선망의 대상이 됐다는 건 들었지만, 설마 중학생들 직업탐색에도 해당이 될 줄이야.

“그래, 알았다. 그러면 아빠가 방송 세팅해줄까? 마침 잘됐네. 아빠가 유튜브 구독자 붙은 아이디가 있어. 예전에 경쟁사 벤치마킹하려고 만들어놓은 건데……”

“아니이, 유튜브에서 안 할 거거든? 거기는 채널 만들면 자꾸 보게 된다고, 그냥 트위치나 프리TV에서 하라고 했어.”

“아…… 그랬구나. 그러면, 뭘 도와줄까?”

“아빠 말 잘하잖아. 같이 방송 해주면 안 돼?”

그것만큼은 정말 예상치 못한 부탁이었다.

근거 역시 의외였고.

“아빠가, 말을 잘하나?”

“잘하지 않아? 엄마한테 맨날 혼나는데도 안 지잖아.”

“그거야 니 엄마가 마음이 착해서 봐주는 거야.”

“아무튼, 아빠 좀 잘생겼으니까 됐어. 아니 이번에 애들끼리 시청자 수로 배틀 뜨기로 했단 말이야. 근데 딴 애들 연습방송 보니까 생각보다 잘하더라구. 그래서 좀 불안해.”

이런. 애들 싸움에 끌어들이려는 목적이었나.

그렇지만…… 이러면 아빠 입장에선 거절할 수가 없다.

앞으로 살면서 몇 번이나 더 받아볼지 모를 부탁이니까.

아이들은 빨리 큰다.

금세 일어서고, 말을 하고, 친구를 사귀고, 방문을 닫는다.

회사에 헌신하는 직장인으로서 딸과는 인간적인 교류조차 더는 기대하지 못하고 살게 된 시점이었다.

그랬는데, 어느새 커버린 박지수가 내가 필요하다고 한다.

사리사욕이 좀 있어 보이지만.

그 목적이 뭐가 됐건, 도와주지 않을 수가 있나.

“알았다. 그러면 트위치 가입은 했어?”

“어…… 프리TV 세팅했는데.”

“거긴, 별로야. 이용자도 저쪽이 더 많아. 내기에서 이기려면 저쪽으로 가야지. 아빠 아이디 있으니까 세팅해줄게. 웹캠도 바꿔줄까? 창고에 있는데. 조명이랑 마이크도 있고.”

“아 진짜? 어, 해줘. 오래 걸려? 우리 동시에 할 건데.”

“10분이면 된다. 잠깐만 기다려.”

후다닥 거실로 나왔을 때, 아내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딸 수행평가 쪽이 보다 중요한 문제라고 판단한 모양.

어색하게 스쳐 지나서 장비들을 들고 돌아왔다.

내가 조명과 웹캠과 마이크를 세팅하는 동안, 딸은 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종종 어색하게 말을 걸어주기도 했다.

“아빠, 진짜 성형 아니야?”

“아니야. 아빠가 맨날 야근하고 운동도 안 하고 그러다가, 이제 좀 몸 챙기고 있잖아? 원래 얼굴이 돌아오는 거지.”

“글쿠나. 하긴, 엄마가 아빠 잘생겼었다고 그러긴 했는데.”

관리 따위 하나도 안 한 마흔일곱이 ‘외모’ 45였으니, 원판도 아주 별로는 아니었던 셈이지만.

딸에게 그렇게 들으니 괜히 머쓱해졌다.

“어흠. 다 됐다. 이것만 누르면 돼. 시간 안 부족하지?”

“어, 아직 남았어. 근데 오늘 뭐 하지?”

“……그건 미리 생각해놓은 거 아니었어?”

“아니, 생각한 건 있는데 별로 같아서. 아빠 뭐 없어?”

그 질문에, 나는 오후 내내 읽은 서적들을 떠올렸다.

“음…… 고민상담은 어떨까? 고민 사연 받으면, 아빠랑 딸이 각각 해결책을 말해주는 거야.”

“사연이래, 완전 구리고요. 그런 거 사람들이 보긴 봐?”

“어, 많이 보지. 예전에 아빠 회사 BJ가 어머니 모시고 나와서 이벤트성으로 했었는데, 의외로 인기가 많았어. 그래서 시리즈로 계속 밀 정도였는데…… 괜찮지 않을까?”

“그래? 아 모르겠다. 시간 다 됐어. 방제 뭘로 해?”

“어…… 40대와, 10대의, 부녀상담소?”

“아 오나전 구리고요. 오키, 고고 한다?”

어색함이 풀리자 조금씩 흘러나오는 신조어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못내 흡족하다.

공부해두길 잘했다는 그 생각과 동시에, 방송이 시작됐다.

그게 내 첫 번째 심리상담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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