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킬러 바이러스 (3)
“치료제 투여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일본에서 보내주는 영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 다른 국가에서 나와 같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골든 연합 멤버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김석환 박사의 오더에 방역복을 두툼하게 입은 연구원들이 수술대 위에 올려져 있는 환자에게 약을 투여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몸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약 2시간 정도가 흘렀을 때, 김석환 박사가 말했다.
“효과가 있습니다. 병이 빠르게 호전되고 있어요. 이번 백신 실험은 성공인 것 같습니다.”
다행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조마조마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백신이 완성되었으니, 이제 킬러 바이러스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졌다.
“바, 박사님!”
“환자가 발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 것도 잠시.
백신을 투여받은 환자가 발작 증세를 보이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환자는 괴성을 지르면서 발버둥을 치다 결국 모든 것이 끊어진 것처럼 축 늘어졌다.
“화, 환자가… 사망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오늘에서야 실감한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치료제가 결국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거품을 물고 사망한 환자를 망연자실하게 쳐다보고 있던 김석환 박사는 카메라 앞에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하지만 난 그런 말 따위를 듣자고 아까운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이걸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니요.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 입으로 죄송하다는 말을 들으려고 제가 당신에게 그 많은 돈을 투자했을 것 같나요?”
“대, 대통령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방법을 마련하세요. 만약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당신은 영원히 거기서 못 나올 줄 알아. 그리고 당신 가족들도 전부 그곳으로 보내 버릴 테니, 꼭 만들어와. 알겠어?!”
난 책상을 뒤엎으며 통화를 끝마쳤다.
“괜… 찮아, 워커?”
김석환 박사와는 통화가 끊겼지만, 아직 멤버들과는 연락이 끊기지 않았다.
난 마음을 추스른 다음 사과의 말부터 건넸다.
“미안합니다. 제가 보이지 말아야 할 모습을 보였군요.”
그 말을 다니엘 로페즈가 재치 있게 받아냈다.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인간적인 대통령님의 모습을 보니, 그래도 대통령님이 인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은 외계인이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상상까지 했다니까요? 하하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김석환 박사가 제 할 일을 끝마치지 못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치료제를 만들 테니…….”
“워커.”
그때 로이가 내 말을 자르며 말했다.
“킬러 바이러스 살포에 대한 건 무기한 연장해 놓자.”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저도 로이와 같은 의견입니다. 애초에 바이러스를 만들어 전염병을 살포하겠다는 기획 자체가 상당한 시간을 요구하는 일이었어요. 바이러스는 새로운 바이러스를 탄생시키지 않습니까? 지금도 그와 같은 경우고요. 우린 아직 자연의 힘을 완전히 감당할 힘이 없습니다.”
“그래. 다니엘 말대로 자연의 힘은 과학으로 넘어설 수 없는 무언가야. 그리고 올마이티 무기를 사용하는 것도 심사숙고해 보자. 만약 올마이티 원을 이용해서 지진을 일으켰다가 이번처럼 우리 예상에 벗어나는 일이 일어나면 어떡해?”
바이러스에 그치지 않고 이번에는 올마이티 원까지 건들고 있다.
자연의 힘을 무기로 삼는다는 발상이 아예 막혀 버린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만들어낸 바이러스가 이 정도로 변해 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서 올마이티 원도 동일선상에 놓고 보는 것이다.
바이러스도 저렇게 되는데, 지진을 일으켰다가 다른 나라에까지 피해가 간다면?
그랬다가 우리가 머무는 땅에도 대지진이 일어나 모두 개죽음을 당한다면?
그런 참극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자연을 이용하겠다는 건 아주 좋은 아이디어예요. 하지만 그 위대한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우린 준비를 해야 합니다. 기술적인 발전도 필수고요. 일본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쩔 수 없지만, 두 번이나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야 되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자연을 나의 것으로 만들겠다는 건 아직 이른 것일까. 우리 인류의 발전은 거기까지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
“대통령님. 저도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웬만하면 입을 열지 않는 김아름까지 조언을 꺼냈다.
“이번 일은 재고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준비 기간을 가지는 게 어떻겠습니까? 10년 후에, 혹은 20년 후에 인류 감축을 진행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크게 달라질 건 없으니까요.”
단순히 인류를 감축하고자 바이러스를 퍼뜨리려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우리 계획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우린 세계 정부를 만들어내 모든 국가를 하나로 만들고자 하는 겁니다. 킬러 바이러스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고요. 그것도 아주 확실한 수단이라는 걸 모르지 않으실 겁니다.”
“대통령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킬러 바이러스는 우리의 목적 달성을 위한 방법이었죠. 말 그대로 방법이었다는 겁니다. 세계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방법을 찾을 거라는 거죠. 하지만 킬러 바이러스는 아닙니다.”
모든 멤버들이 킬러 바이러스는 안 된다고 부정하는 중이다.
하기야.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결과만 보면 킬러 바이러스는 우리 모두를 죽이는 독약이 될 것이다. 결국 남은 건 내 선택뿐이다.
“킬러 바이러스 프로젝트를…….”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골든 연합의 리더다.
이기적으로 결정할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
“무기한 중단하겠습니다.”
결국 나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
바이러스를 통해 인구 감축을 시작하고 동시에 세계 정부를 수립하다는 계획을 전면 중단시켰다.
* * *
“박사님. 너무 많이 드시는 거 아닙니까?”
김석환 박사는 스스로의 신세를 한탄하며 술만 연거푸 들이켜고 있었다.
“됐어. 자네들도 그만 퇴근해. 다 끝났어.”
“박사님. 괜찮으세요?”
“어서 다들 퇴근하라니까! 그리고 괜히 밖에 돌아다니다 바이러스 걸리지 말고. 알겠어?!”
김석환 박사의 호통에 연구원들은 하는 수 없이 그를 혼자 놔두고 밖을 나섰다.
그는 저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괜한 곳까지 끌고 와서 위험에 노출시켰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들도 수십억이 넘는 돈을 받고 온 것이니, 목숨을 걸고 올 만한 모험이긴 했다.
“아직까지 정부에서는 어떠한 발표도 하지 않는 상태이며, 지금 일본은 무정부 그 자체입니다. 모든 곳에서 폭동이 일어나고 있고,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퍼지는 중입니다. 현재 추산된 사망자 숫자만 1,000만 명이 넘으며…….”
김석환 박사는 TV도 꺼버렸다.
무려 1천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 때문에 죄책감이 든다고?
전혀.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고,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발톱 때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그를 무겁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만든 바이러스를 정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이었다.
김석환 박사는 자신의 광기 어린 생각을 현실로 만들어줄 투자자를 만났고, 그 광기를 아낌없이 표출했다. 그런데 그 광기를 스스로가 통제하지 못하는 광기는 진정한 광기라고 할 수가 없다.
과학자 김석환으로서 크나큰 실패를 겪은 것이다.
그는 하염없이 술잔을 들이켜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았다.
처음 바이러스를 발명했을 때만 하더라도 완벽했다. 완벽이라는 말밖에는 표현할 단어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것으로 실험체들이 죽는 걸 바라보며 김석환은 큰 기쁨을 느꼈다. 이 바이러스가 온 세계에 퍼지는 걸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나고 치료제가 모두 쓸모가 없게 되자 김석환 박사는 좌절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자살을 하는 게 나으려나 싶을 정도로.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것일까.
모든 계산은 완벽했고, 변이 바이러스가 나올 수 있다는 변수를 감안해서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마치 전혀 다른 바이러스 같은…….
“잠깐만.”
김석환 박사의 머리에 종이 크게 울렸다.
“다른 바이러스?”
만약 처음에 만든 바이러스는 올바르게 작동하는 거였는데, 지금 살포되고 있는 바이러스는 사실 전혀 다른 것이라면? 킬러 바이러스가 아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킬러 바이러스를 변환시켜 새로 퍼뜨린 것이라면?
순간 모든 것이 딱딱 들어맞기 시작했다.
김석환 박사는 술잔을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연구소로 달려갔다.
만약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이건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다.
* * *
전염병 사태로 인해 골든 연합에서의 내 지지도가 추락했다.
킬러 바이러스로 일본이란 나라를 골로 날려 버렸고, 거기다가 그 바이러스가 언제 다른 나라까지 퍼질지 모른다는 공포가 연합 내부에서 생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건 마치 뭐랄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공포를 증폭시키는 것처럼 보인달까.
물론, 이번 바이러스 프로젝트는 명백한 내 실수다.
자연의 힘을 우습게 보고 덤벼든 내 잘못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야 철저히 통제하면 되는 것이고, 다른 나라에 피해가 없도록 조치를 취하면 된다. 연합 내부가 크게 흔들릴 정도는 아니라는 것. 그런데도 지금 수많은 멤버들이 나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다는 소식이 자꾸만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고작 그런 일로 발목이 잡히는 건가?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방법을 찾았습니다, 대통령님!!”
킬러 바이러스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렸을 때, 김석환 박사가 새로운 희망을 던져주었다.
“방법이라니? 킬러 바이러스를 치료할 방법이요?”
“예, 그리고 이건 킬러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가 개발한 바이러스이지 않나요?”
“그건 맞습니다만, 누군가가 일본에 살포할 때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변종해서 퍼뜨렸어요. 바꿔치기를 당했다는 겁니다. 아니면 우리가 모르게 바이러스를 살포한 것일 수도 있고요.”
난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깐만요.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러는데, 그 말씀은 우리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겁니까?”
“그렇다고 봐야죠. 이제까지 치료제가 먹히지 않은 건 이 바이러스는 킬러 바이러스와 70%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린 그동안 킬러 바이러스를 베이스로 치료제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실패한 거고요. 하지만 이게 전혀 다른 바이러스라는 시각으로 접근하니, 답이 나왔습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겉모습만 킬러 바이러스와 똑같고 사실은 전혀 다른 바이러스였다고?
“이건 바이러스가 처음 개발될 때부터 의도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겉모습을 똑같이 하고 그 속을 완전 다르게 만들 수 없어요. 아무래도 우리 연구원 안에 배신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기술을 밖으로 빼낸 거예요. 분명합니다.”
김석환 박사는 연구원들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들은 김석환 박사와 함께 바이러스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던가? 마음만 먹는다면 기술을 충분히 빼낼 수 있을 터.
“일단 알겠습니다, 박사님. 연구원들에 대한 조사는 따로 해주십시오. 저도 사람을 파견해 알아보겠습니다.”
“예, 대통령님. 그리고 치료제 연구는 범인이 잡힐 때까지 중단하겠습니다. 그래야 상대도 모를 게 아닙니까?”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김석환 박사와의 통화를 끊었다.
이것 봐라?
배신자가 있다고?
그렇다면 골든 연합에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는 내 리더십에 관한 의문도 해결이 된다.
이건 골든 연합 멤버 중 하나가 꾸미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게 누구이든, 철저히 응징을 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