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303화 (303/325)
  • 303화. 세계 정부 (1)

    “러시아와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겁니다. 또한 오늘 김태산 대통령님의 말씀과 대한민국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저도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거부해 왔던 베리칩 상용화에 대해 진지하게 재검토하고자 합니다.”

    푸틴이 베리칩 상용화 재검토를 발표하면서 세계 여론이 뜨거웠다.

    솔직히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베리칩이 얼마나 유혹적이겠는가? 베리칩의 기술력과 통제권을 갖는다면 그 나라를 영원히 주무를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푸틴이 나와 줄다리기를 한 것이다. 베리칩 통제권을 두고.

    그 사람은 뼛속까지 독재자의 피를 가지고 있지 않던가.

    당연히 러시아 국민들을 내가 다스리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을 터. 그래서 핵전쟁을 들먹이며 베리칩 상용화를 막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도 베리칩을 쓰지 않으면 언젠가 러시아 혼자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여기까지 찾아와 제안을 한 것이었다.

    “김석환 박사님이십니까?”

    “예, 대통령님.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골든 연합에 적극적인 투자를 받으며 한국에 거대한 연구소까지 차린 김석환 박사.

    이 사람이 골든 연합의 투자를 받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그의 사상이 매우 위험하고 반 윤리적인 실험을 즐겨하기 때문이다.

    “단둘이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군요. 그래서 말인데, 실험 진행 상황을 좀 알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제 개인 연구소로 가실까요?”

    나는 수행원들을 뒤로 두고 류정한 비서만 따르게 해 김석환의 개인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류정한은 그 안의 내용물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입을 벌렸다.

    “아, 비서실장님이 비위가 약하시군요. 미리 말씀이라도 드릴 걸 그랬습니다.”

    김석환 박사는 오히려 낄낄 웃으며 각자 캡슐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전 세계에서 금지하고 있는 인체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두 일본에서 데려온 실험체들입니다. 중국도 몇 사람 있고요. 그 나라들에서는 사람 없어지는 게 왕왕 일어나기도 하니까요. 하하.”

    나는 류정한과 달리 별 감흥이 없었다.

    그저 실험 결과를 알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습니까?”

    “예,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신 인류 최고의 전염병을 만드는 일이라 매일 밤새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쉽진 않더군요. 그나마 강한 전염병을 만들긴 했는데, WHO에서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백신을 만들 법한 병이라 재검토 중에 있습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아직 이렇다 할 결과가 없다는 것이다.

    “박사님.”

    “예, 대통령님.”

    “무려 5,000억 원이 이 연구소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난 쓸데없이 돈을 쓰는 걸 제일 싫어해요. 또한 이제까지 내가 한 투자는 절대 실패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저기…….”

    “그러니까 빠른 시일 내로 만들어 내세요. 내 투자금이 허튼 곳에 쓰였다고 생각하기 싫군요. 그리고 박사님 같은 인재가 이런 일 때문에 목숨을 잃는 것도 이 나라에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닙니까?”

    “…….”

    김석환 박사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빠, 빠른 시일 내에 꼭 만들어내겠습니다.”

    “예, 빨리하셔야 할 겁니다.”

    “예, 대통령님.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김석환 박사가 보여주는 실험체들을 둘러보았다.

    이들 모두 인류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희생된 사람들이다.

    인체 실험을 전 세계에서 금지시키긴 했지만, 인체 실험을 통한 과학적 진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히틀러와 일본이 그렇게 인체 실험에 집착했던 이유는 전부 과학기술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들과 이유가 비슷하다. 이들로 하여금 우리는 이제까지 인류가 닿지 못한 과학기술력을 가지게 될 것이며, 나는 그것을 이 세상을 위해 쓸 것이다.

    “뉴스는 봤습니다. 푸틴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 이유가 뭡니까?”

    연구소에서 나와, 나는 바로 모두를 소집해 화상 회의부터 시작했다.

    다니엘 로페즈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도 갑자기 바뀐 푸틴의 행동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거래를 했습니다. 푸틴은 드미트리를 이용해 우리가 러시아를 넘본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어요. 어디서 정보가 샌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드미트리에게 생각보다 더 많은 감시가 붙어 있는 모양입니다.”

    “이런. 우리가 한 방 먹었네요. 그런데도 푸틴이 베리칩 상용화를 지지하기 시작했다는 건…….”

    “베리칩 기술력. 그리고 러시아 국민들에게 삽입된 베리칩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 이 두 가지를 주기로 했습니다.”

    내 말에 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건 아예 겉만 베리칩이지, 실상은 푸틴에게 러시아를 영원히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예, 그런 셈이죠. 푸틴에게 베리칩까지 주어지면 그는 영원히 러시아의 왕이 될 수 있습니다.”

    “그걸 그냥 넘겨주시려고요?”

    “일단은 넘겨줄 생각입니다.”

    “일단은?”

    “예, 일단은. 사실, 오늘 김석환 박사가 있는 연구소에 다녀왔습니다.”

    김석환 박사라는 말에 그제야 이들도 내 의도를 눈치챈 것 같았다.

    “김석환 박사라면 전염병 연구한다던 그 사람인가?”

    “맞습니다, 로이. 우리에게 5천억 원이란 돈을 투자받고 인체실험까지 해대며 인류 최악의 전염병을 만들고 있습니다.”

    “만약 그게 완성되면 러시아에 가장 먼저 뿌리려고?”

    “가장 먼저 이 전염병을 테스트할 곳은 러시아가 아닙니다.”

    “그럼?”

    “일본입니다. 일본에 먼저 테스트를 해보고 효과가 있으면 러시아 모스크바에 살포할 생각이에요. 푸틴을 비롯해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전부 전염병에 쓰러진다면 볼만할 거 같지 않습니까?”

    전염병 계획은 인구 단축을 위한 방법이었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방법도 있지만, 그건 너무 큰 위험을 동반하고 있어 차라리 안전한 길을 택한 것이다.

    생각해 보라.

    지금 전쟁이 터지면 더 이상 옛날처럼 탱크 수백 대 끌고 가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핵이 사방에서 터져 수십억의 인구가 사라질 것이며,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가 멸종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전쟁이라는 옵션보다는 전염병이라는 쉽고 간편한 옵션을 택한 것이다.

    전염병을 퍼뜨리고 백신은 우리만 갖고 있다면 충분히 전염병을 통제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푸틴과 같은 거물 인사를 죽일 수 있는 간편한 도구가 된다.

    “아직 확실하게 뭔가가 나오진 않았지만, 우리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전염병이 나온다면 곧바로 실행에 옮길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어떤 곳에 인구를 가장 많이 줄여야 할지, 그것을 상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엘리트 사회입니다. 신세계는 가난과 질병이 통제되고 범죄가 근절된 세계입니다. 이를 원활하게 이루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보다 문명화된 사람들을 우리 편에 남기는 게 좋겠지요? 나머지 질병과 범죄를 유발할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부분 처리하고 힘든 노동을 위한 소수만 남겨두면 되는 것이지요.”

    전염병 바이러스가 만들어지면 우리는 이것을 어디다 쓸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어떤 나라에 바이러스를 퍼뜨려 그곳 인구수를 통제할지에 대한 로드맵이 있어야 인구 감축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뭐, 1순위는 아프리카 쪽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아가 극심한 곳이니까요.”

    “중국, 인도, 러시아 등이 인구가 가장 많습니다. 특히 중국과 인도 같은 경우는 심각한 환경파괴가 이어지고 있고요.”

    중국은 산업혁명으로 미세먼지를 비롯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거기다가 인도는 아직 많은 곳에 화장실이 없어서 밖에 아무렇게 변을 보는 등, 굉장히 비위생적이며 질병이 많이 유발되는 나라다. 특히 인도는 카스트제도와 폐쇄된 특권의식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어서 비상식적인 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두 나라는 갈수록 인구가 늘어나고 있으니, 이 둘을 최우선 인구 통제 대상으로 내거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자세한 사항은 제가 미국으로 넘어가면 그때 상의하도록 합시다.”

    이번 문제는 화상 회의를 통해 하기보다는 미국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 바뀐 미국 대통령과 아직 정상회담을 열지도 않았다. 이 기회에 힐러리와 정상회담을 명분으로 미국에 넘어갈 예정이다.

    이놈의 대통령 직책 때문에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것도 쉽지가 않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을 가지는 자리이지만, 그만큼 제한되는 것이 많다. 하지만 세계 정부의 대통령이 된다면 이런 답답함도 풀리지 않을까?

    * * *

    “중국과 일본이 베리칩 상용화를 시작하면서 안보 최우선이라는 방침에 합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틀 전에 일어난 테러에 의해 수백 명이 사망한 독일에서도 베리칩을 상용화시키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죽었다. 그리고 그가 이끌던 알카에다 조직은 거의 박멸되었다고 언론에 발표됐다. 하지만 폭탄 테러는 줄어들 기미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나 버렸다. 모두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을 복수하겠다는 명분인데, 문제는 이들이 미국에다 폭탄을 터뜨리지 않고 애꿎은 유럽에 화풀이를 하는 중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에 입국하려면 아무리 여행 목적이라도 베리칩을 맞아야 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다. 즉, 베리칩을 맞는 순간 폭탄 테러는 꿈도 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을 비롯해 베리칩을 상용화시킨 국가들은 테러에 안전해질 수가 있었다. 물론, 이건 철저히 내가 의도한 일이긴 하지만.

    “베리칩 상용화로 인해 미국발 쇼크가 전 세계를 덮었지만, 김태산 대통령의 빠른 대처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에는 큰 타격이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김태산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93%로 올라가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채널과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내 이름을 칭송하기 바쁘다.

    그중 50%는 내가 돈을 뿌려서 언론 조작을 한 것도 있지만, 나머지 50%는 정말로 날 존경하는 사람들이 글을 올린다.

    국정 지지율 93%라는 기록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어떠한 당에도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 둘 중 하나라고 꼬집어 말할 수도 없는 상황.

    이런 내 입지 속에서 나는 충분히 국정을 잘 이끌어가고 있고, 처음에는 많은 반대에 부딪힌 베리칩 상용화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더욱 지지율이 올라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음 선거는 보나 마나 뻔하다. 설사 내가 떨어진다고 해도 딱히 걱정하진 않는다. 허수아비를 앞에 세워놓고 난 뒤에서 조종만 하면 되니까.

    “내가 말했던 대로 대한민국이 더 발전한 거 같지 않아?”

    나는 더욱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연욱이 앞에 앉아 내 국정 지지율을 보여주던 TV를 껐다.

    내가 검찰총장 자리를 제시한 지 2년 가까이 되었지만, 이 독한 놈은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드디어 그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인가 보다.

    “범죄율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하던데, 검찰총장이 무슨 소용이야?”

    “소용 있지. 사람 죽이는 것만 범죄야? 몰래 뒤에서 탈세하고 돈 빼돌리는 새끼들도 범죄자야. 그놈들 잡아야지?”

    베리칩을 상용화시켰다고 해서 범죄율이 완벽하게 제로로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욱하는 성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또 몰래 마약을 반입한다. 이런 고질적인 범죄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자리는 있고?”

    “네가 지금이라도 한다고 하면 검찰총장 하나 갈아치우는 게 대수겠냐?”

    연욱이는 입술을 꾹 깨물다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

    결국 녀석은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게 되물었다.

    “도대체 왜 날 자꾸 쓰려는 거야? 다른 사람도 있을 텐데.”

    “그야… 나랑 같이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라서? 만약 네가 여기서 죽어서 또 과거로 돌아가면 내가 곤란하잖아.”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었다.

    연욱이도 오랜만에 웃음을 터뜨리며 내 손을 맞잡았다.

    어쩌면 먼 미래에 나의 허수아비 대통령이 될 사람이 나와 동맹을 맺었다.

    내가 세계 대통령이 되면 한국을 관리할 사람이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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