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301화 (301/325)

301화. 권력의 욕망 (1)

베리칩 상용화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는 관심이 더욱더 늘어나고 있다. 베리칩 상용화 덕분에 과학 기술이 한층 더 진보되고 있으며, 이것으로 수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확신했다.

그리고 베리칩 상용화 5개월 만에 미국은 모든 결제 수단을 베리칩으로 대체하겠다는 발표를 하게 된다. 이로써 모든 불법 탈세를 막고 신체 인식을 통한 돈 거래로 보안 수준을 최고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 세계 시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달러가 철폐된다는 것은 달러가 종이 쪼가리로 변해 버린다는 뜻이니까.

당분간 세계 경제를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계속 그들이 삶을 이어나가려면 베리칩을 스스로의 몸을 박아버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달러를 없애 버리면 남는 건 베리칩을 통한 돈 거래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것을 고안한 건 바로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 경제를 흔들어놓기 위함이었다. 경제생활을 가지고 협박하면 그 나라도 결국 베리칩을 자기들 몸에 심어버릴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끼겠지만, 이것이 자신의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면 자벌적으로 나서게 될 터.

그동안 베리칩을 반대하며, 이것은 세계를 통제하려는 흑막의 계획이라고 떠들던 종교 단체들은 대부분이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리고 나머지는 베리칩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알아서 찌그러졌다.

베리칩 하나로 범죄율 제로에 가까운 신화를 이끌어내고 있지 않은가?

나쁜 짓을 하지 않는 선량한 시민들에게는 아주 자유로운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어디나 그렇듯, 이런 상황을 못 마땅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꼭 있다.

“언젠가는 터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한폭탄 같은 거죠.”

화상 회의를 통해 다니엘 로페즈가 먼저 의견을 밝혔다. 그 말에 공감한다는 듯 로이 루스테가 거들었다.

“맞아. 푸틴은 옛날부터 우리랑 협력만 하는 관계였지, 골든 연합의 소속은 아니잖아.”

화진 그룹 빌딩이 폭탄에 의해 날아갔을 때, 여러 지도자들이 날 배신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푸틴은 잠잠했다. 그리고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고 계속해서 골든 연합 소속 기업들과 교류해 왔다. 그건 러시아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결코 우리 연합을 좋게 봐서가 아니라.

그런데 마침내 잠잠하던 푸틴이 우리 연합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나섰다.

“베리칩은 테러를 막는 게 아니라 또 다른 테러를 유발하는 수단이 될 겁니다. 미국과 한국의 어리석은 결정에 저는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군요. 우리 러시아는 결단코 베리칩을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만약 경제적인 부분으로 우리 러시아를 압박할 경우, 나는 핵전쟁을 불사해서라도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참극을 막아낼 겁니다.”

미국과 한국이 베리칩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보는 것과 동시에, 조만간 미국 달러가 철폐된다는 이유로 각 국가에서도 베리칩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는 추세다. 그런데 푸틴이 태클을 걸고 나선 것.

베리칩이 곧 골든 연합의 야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푸틴은 러시아에 베리칩이 들어오는 걸 막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를 압박할 경우, 핵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건 그 어떠한 테러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즉, 조금의 테러라도 일어날 경우 모든 걸 골든 연합의 책임으로 전가해 미국과 한국을 동시에 날려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나는 시가를 입에 물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감히 시베리아 호랑이 따위가 이 세계의 신이 되려 하는 내게 반항을 해?

푸틴이 가지고 있는 핵무기가 비대칭 전략무기라는 것이 거슬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뜻대로 설치게 놔둘 순 없다.

“현재 푸틴 다음으로 권력이 강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입니다. 푸틴의 비서실장이면서 차후 러시아 대통령이 될 사람이죠. 아시다시피 러시아는 연속 3선을 금지하는 법이 있지 않습니까? 그 때문에 푸틴이 잠시 총리로 물러나 있고 드미트리를 다음 대통령으로 내세운다고 하더군요.”

역시, 역사는 바뀌지 않았다.

현재 시기가 2007년.

그 유명한 아이폰이 등장하는 해이다. 그리고 내년이면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총리직으로 내려가고 드미트리가 다음 대통령이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푸틴은 바지사장으로 드미트리를 내세우고 자신은 잠시 총리직에 있다 다시 대통령이 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계획은 아주 잘 맞아떨어지게 된다.

최강 권력을 자랑하는 푸틴은 총리직으로 잠시 쉬고 있다가 다음 대통령직을 이어받아 다시 한번 러시아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물론, 어마어마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 밑에 있는 KGB 인사들은? 드미트리가 2인자라는 걸 못 마땅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요?”

푸틴은 KGB 출신답게, 자신과 함께 지금까지 여정을 함께해 온 KGB 출신 간부들에게 막강한 힘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푸틴이 죽는 날까지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다 숨을 거둔다면 드미트리를 포함해 그들끼리의 피 터지는 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그것 때문에 항상 경계의 촉각을 세우는 나라들이 참 많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져 나가는 건 항상 있는 일이니까.

“드미트리가 내년에 확실히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의 승부수는 거기다 두어야 합니다. 드미트리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분명히 자신만의 야망이 있는 인물이에요. 푸틴의 그늘에 계속 머무르는 걸 싫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드미트리는 그 별명답게 바지사장의 역할을 아주 잘해내게 된다. 간간히 푸틴을 견제하는 발언을 언론에 통해 내놓기는 하지만, 그건 푸틴과 짜고 친 언론플레이다.

푸틴은 왕이고 드미트리는 그 왕을 지키는 호위무사에 불과할 뿐.

그저 대리인 역할이나 하면서 2인자에게 걸맞은 권력과 호사를 누리는 것이 드미트리의 낙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치를 하고 또 권력이란 맛을 보게 되면 결코 그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란 동물이다.

그러므로 나는 드미트리의 야망에 베팅을 하는 것이다. 그는 과연 지금 2인자의 자리에 만족하고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는 분명히 푸틴의 뒤통수를 치고 러시아를 독차지할 음흉한 계획을 속으로 꾸미고 있을 것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오래전부터 푸틴과 친분이 있는 인물입니다. 대학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고 같은 KGB 출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푸틴이 신뢰하고 있고요. 그래서 그를 다음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미스터 로페즈의 말이 맞습니다. 드미트리는 확실한 푸틴의 사람이지요. 겉으로 보면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과연 그가 2인자 자리에 만족할 것 같습니까? 겉으로는 아니라고 해도 분명 속으로는 자신에게 기회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안답니까?”

“그 말씀은…… 한번 찔러는 보자는 거군요.”

“예, 그가 정말 푸틴에게 충성을 다하는 개일지, 아니면 주인을 물기 위해 숨을 참고 있는 늑대일지. 어디 한번 보자는 겁니다.”

그때 김아름이 내게 물었다.

“만약 드미트리가 거부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가 이것을 푸틴에게 말한다면…….”

“아뇨. 드미트리는 절대 그렇게 못 합니다. 우리가 이런 제안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푸틴은 드미트리에게 굉장한 거부감을 느끼게 될 테니까요. 지금은 신뢰하는 심복이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골든 연합이 드미트리를 선택했다는 걸 알면 그 시선이 바뀌겠죠. 아무리 드미트리가 충성을 다 바쳐도 푸틴은 예전처럼 그를 신뢰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드미트리가 모를 리 없어요.”

푸틴은 신중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드미트리가 우리의 제안을 거부했다고 해도 그걸 믿어줄 리 없다. 설령 믿는다고 해도 또다시 누군가가 드미트리를 유혹할 거라 생각해 아예 치워 버릴 것이다.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되면 일단 제거해 보고야 마는 것이 푸틴이지 않던가?

그런 점에서는 나와 아주 비슷한 성향을 지녔다.

“그리고 드미트리는 푸틴 다음으로 권력이 강한 사람이에요. 그가 움직일 수 있는 인력이 상당하다는 겁니다. 거기다가 대통령 자리까지 앉는다면 대통령의 권한까지 갖게 되죠. 핵무기 발사 권한은 철저하게 대통령의 권한입니다. 아무리 푸틴이 잠깐 물러나 있다고 해도 그 권한을 빼앗을 순 없어요.”

“드미트리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기다리자는 겁니까?”

“예. 지금 당장 제안을 던지기보다는, 일단 그가 권력의 맛을 보고 그것을 음미하고 있을 때까지 기다리자는 겁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제안을 거부한다면요?”

“그땐 다른 KGB 출신 간부들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요. 푸틴이 죽으면 다음 권력을 잡기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미리 선별해 놓으세요. 그들의 야망이 과연 어디까지인지 한번 봅시다.”

드미트리라면 좋겠지만, 꼭 그가 우리의 열쇠가 되지 않아도 된다. 그다음 후보자들을 선별해 놓고 푸틴의 뒷덜미를 물 만한 놈을 물색하면 될 것이다.

“대통령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이번에 중국과 일본에서도 베리칩을 상용화한다고 하던데요. 거기다가 북한도 모든 DMZ를 철거하고 공식적으로 길을 열었다고 들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 베리칩 상용화 계획은 아주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다. 솔직히 조만간 일본은 엄청난 실험대에 오르게 되겠지만, 일단 그들을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베리칩을 강제로 상용화시켰다. 그리고 북한과의 종전 선언과 모든 길을 열어 일반 차량으로도 넘나들 수 있도록 했다. 물론, 북한도 베리칩 상용화로 여권이 없이도 들어갈 수 있게 조치를 취해 놓았다.

“사람들이 몇백 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위대한 지도자가 한국에 나타났다고 난리입니다. 특히 그동안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북한 문제를 이리도 깔끔하게 해결하시다니. 축하드립니다.”

“하하. 여기 계신 분들이 다 저를 도와주기 때문이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린 영원히 이 세계의 평화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죠, 대통령님. 그럼, 대통령님의 말씀대로 러시아에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참으로 든든한 이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저들도 기회를 기다리는 하이에나와 같은 신세다.

드미트리가 그런 것처럼, 사람은 한번 권력이란 맛을 보게 되면 끝없이 더 많은 권력을 탐하게 된다. 돈과 권력은 바닷물 같다고 하지 않던가?

다니엘 로페즈가, 로이 루스테가, 어쩌면 김아름이 내 뒷덜미를 물어뜯을 기회만 노리고 있을 수도 있다. 저들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본성과 권력이라는 유혹은 항상 의심해야 한다.

저들이 지금은 나를 떠받들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언제든지 돌변해 나를 몰아낼 수도 있다.

이건 결코 저들의 잘못이 아니다. 권력이라는 욕망이 사람을 그리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를 가지면 다른 하나가 가지고 싶은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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