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신세계의 신 (1)
마치 핵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백악관에 거대한 버섯구름이 생겨났다. 나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갑자기 왜 백악관이 폭발했단 말인가. 난 백악관을 폭발시키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그렇다는 건 내 쪽에서 공격한 게 아니라는 건데.
그럼, 도대체 누가?
의문을 풀지 못하고 화면만 쳐다보고 있을 때, 내 정신을 깨운 것은 전화벨 소리였다.
사방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려온다. 날 급히 찾는 사람들일 것이다.
“지금 보시고 계십니까?”
다니엘 로페즈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도 백악관이 터져 나갈 줄은 꿈에도 몰랐던 모양이다.
“예, 그렇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보는 중입니다.”
“대통령님께서 시킨 일입니까?”
내가 미쳤다고 그런 짓을 벌이겠는가.
“전 아닙니다.”
“아니,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놈이 저런 짓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미국 백악관을 공격하다니. 나조차 하지 않은 일을 할 정도의 힘을 가진 자가 누구란 말인가.
“일단 조사부터 해주세요. 저도 모든 라인을 동원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다니엘 로페즈가 전화를 끊기 무섭게 이번에는 로이 루스테에게서 연락이 왔다.
“워커!! 지금 보고 있어?!”
“백악관 말입니까?”
“그래! 그거 워커가 한 짓이야?”
왜 이 양반들은 다 내 짓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여기저기 폭탄을 터뜨리고 다니는 테러범도 아니고.
난 다니엘에게 했던 대답을 똑같이 로이에게 들려주었다.
“전 아닙니다.”
“그래? 워커가 아니라면 누가 저런 잔악한 짓을 할 수가 있다는 거야!”
“…….”
“아무튼, 알겠어. 어떤 놈 짓인지 내가 알아볼게.”
“고맙습니다.”
나는 로이와 연락을 끊고 바로 김아름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 그런데 강철중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강철중 사장님?”
“예, 대통령님, 백악관 일로 전화드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했지만, 제 짓이 아닌…….”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려고 할 때, 강철중이 고해성사를 했다.
“아뇨. 사실, 제 작품입니다.”
“…뭐라고요?”
“제 짓입니다, 대통령님. 미리 보고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강철중의 짓이었단 말인가?
다른 놈 짓이었다면 배후를 찾는 데에 시간을 꽤 들였겠지만, 그나마 강철중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왜 그런 짓을 벌인 겁니까?!”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안 높아지는 게 이상한 거지.
강철중은 방금 미국의 대통령과 백악관을 동시에 날려 버렸으니까!
하지만 돌아오는 강철중의 목소리는 의외로 침착했다.
“대통령님, 오바마가 폭탄 발언을 하려는 걸 보지 않으셨습니까?”
폭탄 발언?
그러고 보니 오바마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그가 알고 있는 골든 연합에 대해 전부 떠들어댈 기세였다.
“얼마 전부터 오바마의 행동이 수상하다는 정보를 받고 그를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큰 고민이라도 있는 듯, 혼자 술을 마시면서 취해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죠.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백악관에 폭탄을 설치해 두었습니다.”
“오바마가 골든 연합에 대해 낱낱이 밝히려고 하자 어쩔 수 없이 그 폭탄들을 터뜨렸다는 겁니까?”
“예,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저도 오바마 그놈이 정말 그런 미친 짓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흥분을 천천히 가라앉혔다. 강철중에게 화를 낸다고 해도 그는 자신의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만약 오바마의 폭탄 발언이 그대로 생방송을 타고 나갔다면 그 혼란은 이루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수습하는 데에만 시간을 꽤 허비했을 터.
그러므로 이건 강철중만의 잘못이 아니다. 애초에 오바마를 관리하지 못한 나와 미국 인사들의 잘못이다.
“베리칩을 꺼버리는 것도 고려를 했으나, 만약 베리칩이 거기서 터져 버렸으면 오히려 사람들이 더욱 의문을 가질 것 같아 백악관을 날려 버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베리칩을 끄지 않고 차라리 백악관을 날린 게 잘한 일이다.
베리칩이 생방송으로 터졌다면 얼마나 많은 의문을 낳았겠는가?
그러나 백악관이 저렇게 터져 버리다니.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아직 갈피가 집히지 않고 있다.
“알겠습니다. 강철중 사장님이 엉뚱한 판단을 내린 거라 보진 않습니다. 합당한 결정을 내린 것이고, 오바마의 입을 어떻게든 막았어야 했으니까요.”
“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강철중과 전화를 끊고 바로 여러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들이 엄한 곳을 뒤지며 백악관 폭파범을 찾는 수고를 막아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논의했다.
“대통령이 죽으면 부대통령이 백악관을 장악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대통령마저 그 난리에 휩쓸려 죽었다는 겁니다.”
“또 누가 죽었죠?”
“부대통령을 비롯해 여러 의원들의 목숨이 날아갔습니다. 다행히 장관급 인사들은 백악관에 있지 않아서 난리를 피할 수 있었죠.”
부대통령이 죽어버렸으니, 대통령 권한은 그 밑에 사람에게 전달된다.
대통령, 부대통령, 그다음이 누구겠는가?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직을 대신 맡게 될 겁니다.”
다니엘의 말에 화상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국무장관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경호원들이 국무장관을 국회로 데려가고 있습니다. 오늘 선서를 하고 빠르게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게 조치할 겁니다.”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이 된다라.
첫 흑인 대통령이 살해당하자 이번에는 미국 첫 여성 대통령이 다음 순서가 되어버렸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국무장관 힐러리는 확실히 우리 쪽 사람이겠죠?”
“클린턴 가문 자체가 열렬한 골든 연합원들입니다. 힐러리는 무조건적으로 대통령님의 말을 따를 겁니다. 의외로 그녀도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을 아주 좋아하더라고요. 특히 인구수를 줄여 완전한 통제를 이룬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항상 겉으로는 인권을 떠드는 여자가 뒤로는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솔직히 좀 놀랐다.
“문제가 되는 건 힐러리가 백인우월주의 성향이 있다는 겁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그녀는 다른 유색인종이 섞여 있는 미국을 매우 싫어하는 것 같더군요.”
이것도 의외였다.
내가 회귀하기 전에 힐러리는 항상 인권을 중시했고, 이방인을 무시하며 그들을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던 트럼프와 항상 마찰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그러다 결국 힐러리는 트럼프에게 패배하고 만다.
“국무장관 힐러리는 철저히 우리의 이상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김아름이 보증해 주는 것이다. 그 무엇보다 믿음이 간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뒷수습이겠군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내 물음에 먼저 다니엘 로페즈가 대답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미국을 공포에 몰아넣는 겁니다. 그리고 힐러리는 오바마의 죽음을 기리며 그가 실행하려 했던 오바마 케어를 신성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람의 죽음이란, 그것도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의 죽음이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모든 여론이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어도 한 사람의 죽음으로 기세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죽음을 일부러 이용하거나, 조작하는 정치인들도 더러 있다. 지금도 그와 같은 경우다.
오바마의 죽음을 영웅적인 희생으로 포장해 미국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힐러리를 앞장세워 오바마가 생전 추진하려 했던 오바마 케어를 실시해 모든 국민들의 몸에 베리칩을 박아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다른 나라에게도 베리칩을 의무적으로 삽입하게 해 테러로부터 안전해지라고 강요하는 것.
이것이 나의 계획이다.
“비록 과격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백악관이 폭발하면서 우리에게는 기회가 됐습니다. 미스터 로페즈의 말씀처럼, 우리는 오바마의 죽음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됩니다. 그를 영웅으로 만들고, 그가 추구하던 법안을 신성시하여 반대하는 세력들의 의견을 전부 묻어버려야 합니다.”
내 말에 모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백악관이 날아간 건 굉장히 충격적인 일이지만, 이미 닥친 상황이니, 차라리 이걸 이용하자는 마음인 것이다.
“국무장관… 아니, 힐러리 대통령에게 똑똑히 전하세요. 오바마의 죽음을 영웅적으로 포장하라고. 그리고 그가 추진하려 했던 오바마 케어를 반드시 이행하라고 말입니다. 아마 그의 죽음을 이용한다면 반대 여론도 우릴 따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통화를 끊고 이제 한국 대통령으로서의 본분으로 돌아갔다.
미국 대통령이 테러에 당했으니, 위로문을 발표해야 하지 않겠는가?
* * *
“저 힐러리는 미국의 대통령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이며, 우리의 영웅이었던 오바마 대통령의 죽음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그가 이루려고 했던 위대한 미국을 위해 모든 힘을 다하겠습니다.”
역시, 전 남편이 대통령이었어서 그런지 연설을 하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아주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님께서는 오바마 케어 법안에 포함되어 있는 조항을 발동시키기 위해 그날 국민대담화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끔찍한 테러를 당하셨고, 이는 테러 조직이 우리의 계획을 방해하려 했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우리 미국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죽음으로 남겼던 법안을 꼭 이행할 예정입니다.”
이제 중요한 파트가 나오려고 한다. 미국 전역이 힐러리의 발표로 엄청난 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오바마 케어 법안을 따라 현재 국가가 비상사태에 이르러 정부에서는 모든 국민의 안전을 위해 의무적으로 칩을 삽입하게 할 겁니다. 즉, 미국 시민이라면 반드시 몸에 칩을 이식해야 하고, 이로써 테러를 비롯한 모든 범죄를 사전에 차단할 예정입니다. 만약 칩을 이식하지 않을 시에는, 미 정부의 법에 따라 처벌할 것이며 외국인일 경우 곧바로 추방 명령을 내릴 것입니다.”
하이라이트가 드디어 공개되었다.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칩을 맞아야 한다. 이것이 오바마 케어의 핵심이다.
힐러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 칩의 이름은 베리칩으로, 모든 신용카드와 현금을 없애고 오직 생체인식칩인, 베리칩으로만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이를 거부하는 기업이나 시민이 있을 경우 미국 법에 따라 테러리스트로 간주, 강력히 처벌할 것입니다. 법안은 상하원의 협조하에 당장 국회를 통과할 것이며, 시행될 것입니다. 그러니 국민 여러분께서는 모두의 안전을 위해 베리칩을 이식에 협조하기를 바랍니다.”
환율이 폭락하는 소리가 여기서도 들린다.
이 법안이 현실화되면 신용카드와 현금은 이번 년도 안에 전부 없어질 것이다. 즉, 미국 달러가 종이쪼가리로 변한다는 것.
이는 굉장히 위험한 경제 대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마 모든 나라가 영향을 받아 도미노처럼 쓰러지게 될 터. 물론, 그에 따른 대비를 해 놓긴 했지만 당분간 온 세계가 혼란에 빠질 것이다.
“현재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내리고 당장에라도 군사 작전을 실행할 준비를 마쳤으며, 이번 테러 주동자가 누군지 색출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국내에 있는 모든 테러리스트들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빠르면 다음 달부터 베리칩 이식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힐러리는 정확하게 선을 그어버렸다.
다음 달부터 이식이 시작된다.
“만약 이 법안을 반대하거나 베리칩 이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 정부는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부디 베리칩을 이식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여러분의 안전을 지킬 수 있습니다.”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내가 꿈꾸던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몸에 박혀 있는 칩. 그리고 그들을 조종하는 나.
이것이야말로 신세계의 신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