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화. 구원자 (2)
이 버튼 하나면 모든 게 시작된다.
이 버튼 하나로 시작될 이 세계에 참극은 역사에 길이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훗날 이 사태가 모두 나로 인해 비롯되었다는 것을 후손들이 알면 그들은 날 뭐라고 평가할까?
학살자, 아니면 구원자?
나는 이것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쟁도, 학살도 없는 세계.
더 이상 누군가의 살인과 폭행으로 죽지 않고, 또한 병으로 죽지 않을 수 있는 세계.
모두가 원하는 만큼 삶을 살며 함께 잘살 수 있는, 마치 천국과도 같은 세계.
그런 세계를 만들어도 과연 후손들은 날 학살자라 부를 수 있을까.
척박한 땅에 씨앗을 뿌리려면 거름과 물이 많이 필요한 법.
저들의 시체가 곧 거름이 될 것이며, 저들의 피가 곧 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될 터. 그땐 내게 향하던 손가락질이 모두 경외와 칭송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생각을 마친 나는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걸었다.
“강철중 사장님.”
“예, 대통령님.”
“…시작하세요.”
“예,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강철중은 긴말하지 않고 결의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
* * *
“꺄아아악!!”
온 세계가 비명에 가득 찬 건 아마 오늘밖에 없을 것이다.
9월 11일.
9.11 테러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미국 시민들은 각 주마다 자리를 잡고 추모식을 벌였다. 사방 곳곳에서 그날의 일을 잊지 말자며 추모를 하고 있는 모습이 생방송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무려 10곳에서 동시다발적인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알라께서는 위대하시다!”
콰콰쾅-!!
일반인이 만든 사제 폭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폭탄들이 시민들이 모인 광장 한가운데에 터져 버렸다.
자살 폭탄 테러범들은 모두 알라의 위대함을 외치며 폭탄과 함께 수백 수천 명의 시민들과 목숨을 잃었다.
미국 전역이 패닉에 빠져 버렸고 심지어 오마바 대통령이 추모 연설 중에 폭탄이 터지기까지 했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또 이런 짓을! 설마, 김태산 그 사람의 짓입니까?”
황급히 차량을 타고 대피했던 오바마는 열불을 토해냈다. 긴급 소집된 사령관들과 수뇌부들은 저마다 눈치만 보고 있었다.
“말을 해보세요! 지금 저 화면이 안 보이십니까? 미국 전역이 지옥으로 변했어요!”
TV로 생중계되고 있는 실제 상황.
온 동네가 불에 휩싸였고 9.11 테러를 추모하기 위해 놓인 꽃다발이 모두 재가 되어 사라졌다. 또한 수천 구의 시체들이 새까맣게 탄 채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대통령님, 모든 건 다 통제하에 이뤄지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통제? 지금 통제라고 했습니까? 이 미친 짓을 가만두고 보자는 겁니까, 지금!”
“하하,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이런 일이 곧 일어날 거라는 건 예측하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뭐예요?! 당신이 그러고도 국방부 장관이야? 당신은 오늘부터 해고야! 그리고 여기 있는 사령관님들은 당장 한국을 공격할 준비를 하세요!”
오바마의 명령에 사령관들은 쭈뼛쭈뼛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오바마가 뒤에 있던 경호원들에게 불호령을 내렸다
“뭐 하고 있어! 얼른 국방부 장관부터 밖으로 내보내!”
“예, 대통령님.”
사람 두 명이 장관에게 다가가자, 장관 뒤에 있던 사령관 한 명이 총을 꺼내 경호원들을 쓰러뜨렸다.
“뭐, 뭐 하는 짓입니까!”
사령실에서 일어난 총성에 경호원들이 대거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국방부 장관 넬슨은 웃으며 대통령에게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모든 건 통제하에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단 머리를 식히셔야 할 분은 아무래도 대통령님이신 것 같군요.”
“뭐, 뭐요? 지금 그게 무슨…….”
“뭣들 하고 있나. 대통령님은 지금 정신적으로 충격이 커서 제대로 국정을 볼 수가 없어. 그러니까 어서 안으로 모셔.”
경호원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자, 사령관 중 하나가 목청을 높였다.
“장관님 말씀 안 들려! 어서 안으로 모시라니까!”
“예!”
“이, 이거 안 놔! 나는 미국의 대통령이야!”
그 말에 넬슨 장관이 비웃었다.
“웃기지 마세요. 미국 대통령이란 자리가 사라진 지 언젠데.”
“……!”
그제야 오바마는 깨달았다. 미 정부는 이미 예전부터 김태산 손아귀에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미국 국민이 대량 학살을 당하고 있는데도 이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단순히 돈 때문에? 생명에 위협을 느껴서?
아니, 이들은 철저히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김태산이란 인간이 꿈꾸고 있는 세계를, 바로 신세계 질서를 이룩하려는 것이다.
돈이나 협박 때문이었다면 진작 그만두었을 터. 하지만 이들도 김태산의 신념에 감염되어 있기에 이와 같은 학살을 당연시 여기고 있다.
오바마는 정신을 차렸다.
저들의 눈동자를 보라.
만약 오바마 자신이 반항을 했다는 사실이 김태산의 귀에 들어가면 부시와 똑같은 정치 파멸을 겪어야 할지 모른다.
“그만. 나도 무슨 말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제정신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어쩔 계획인지 들어봅시다. 나도 그 뜻에 참여할 테니까.”
“뭐, 그러신다면야 저희도 더는 대통령님을 막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대통령님 팔에 뭐가 들어 있는지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잠깐 잊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는 대가로 오바마는 왼쪽 팔에 베리칩을 심었다.
악마와 영원히 깰 수 없는 계약을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허수아비에 불과한 이 자리가 뭐라고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버리다니. 하지만 후회하기에는 늦었다. 이미 자신은 악마의 영역에 발을 두었고, 빠져나갈 수 없다면 살아남아야 한다.
* * *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버린 폭탄 테러.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일이기에 실수란 없었다.
강철중은 미리 파견해 놓은 무슬림 형제단을 이용해 수십여 개의 건물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추모식 중에 폭탄이 터진 덕분에 사망자만 수천 명이 넘고 부상자는 그 이상이었다.
다른 날도 아니고, 9.11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에 미국 국민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또한 미 정부는 주가 폭락을 막기 위해 일단 주식시장 거래를 전면 금지시켰다. 나름 꼼수를 부린 것이다.
하지만 이번 테러는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재난 사건이다. 당연히 국민들은 정부를 욕하기 시작했고 확실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더군다나 이번 사건의 주동자로 밝혀진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조직을 하루빨리 멸망시켜야 한다며 아우성을 쳤다.
“나는 앞으로도 알라를 대신해 미국을 응징할 것이다. 이미 내게는 완벽한 테러 계획이 있고, 미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두려워하라, 미국 시민들이여. 알라께서 너희 앞에 재림하시리라.”
빈 라덴이 인터넷상에 올린 영상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가 저지른 테러 장면이 버젓이 영상에 들어가 있었으며, 그때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음흉한 미소와 함께 알라의 응징을 외쳤다. 국민들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안전한 미국을 원한다!”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내려라!!”
이와 같은 혼돈에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폭력적인 그들을 진압하는 경찰들도 애를 먹어야 했다.
“곧 있으면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문을 낭독한다고 합니다.”
새벽부터 누구 전화인가 했더니, 다니엘 로페즈였다.
혼란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미국은 이제 큰 변화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언론 조사를 해본 결과, 현재 국민들은 극단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이 사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에 따라 오바마가 특단의 조치를 내리려 한다는 소문이 쫙 퍼져 있는 상태. 그건 바로 베리칩 프로젝트다.
“언제쯤 하죠?”
“1시간 후입니다. 한번 지켜보십시오.”
“그래야겠군요. 소식, 감사합니다.”
“예, 그럼 보시고 다시 전화 주십시오.”
기대가 된다.
역사적인 순간이지 않은가.
미국의 새로운, 아니, 전 세계의 새로운 날이 시작될 것이다.
“대통령님께서 오십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카메라 앞에 서자 기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디 모두 착석해 주십시오.”
굉장히 무거운 표정.
베리칩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순간 인류는 영원히 통제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것을 시작하는 것이 바로 오바마 자신이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 마음이 무겁겠지. 하지만 네가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건 없다.
“오늘 저는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오바마는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비장한 각오가 엿보인다.
“수많은 테러 공격. 그리고 이어지는 협박들. 저는 더 이상 이것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미국이 이처럼 무력하게 당하는 꼴을 보니, 화가 치밀어 잠도 잘 수가 없습니다.”
오바마의 장점이라면 사람을 흡입하는 연설력이 있다는 것이다.
언변이 좋다기보다는, 그가 보여주는 인상과 목소리가 그 무기다.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가 상대에게 어떤 사람인지 인식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그것도 80%가 넘게. 그런 점에서 오바마는 완벽한 설득가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했습니다.”
오바마는 잠시 말을 끌며 갈등에 빠진 얼굴빛을 보였다.
지금에 와서 양심이 찔리기라도 하는 것인가. 하지만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이윽고 그는 양심보다는 이성을 따라 입을 열었다.
“우리 정부는 지금 이 시간부터 계엄령을 선포하며 오바마 케어의 조항에 따라 온 국민에게…….”
갑자기 오바마가 말을 멈췄다.
온 국민에게 베리칩을 박아버린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그는 연설문을 덮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이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또한 이 나라의 대통령이기에 모든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것이 미국 대통령의 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건…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에요.”
잠깐. 지금 저놈이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지?
나도 모르게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나고 말았다. 저놈이 설마 마지막 때에 와서 우릴 배신하겠다는 건가?
“국민 여러분. 지금부터 하는 말은 모두 진실입니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것이니, 부디 헤아려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저를 비롯해 이제까지 정부는…….”
저 새끼가 진짜로!
픽-!
갑자기 화면이 꺼져 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송출이 끊긴 것이다.
난 리모컨을 던지며 비서실장에게 소리쳤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빨리 알아봐!”
“아, 예. 대통령님.”
이런 중요한 순간에 방송이 끊기다니. 신호가 잘 안 잡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뉴스 속보를 보내 드립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장면일 수 있으니, 어린이와 함께 보고 계신 분들은 아이들의 시청을 삼가게 해주십시오.”
신호 문제가 아니었다.
CNN 아나운서가 나오더니 경고의 말과 함께 한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럴 수가…….”
같이 화면을 보고 있던 비서실장과 더불어 몇몇 사람들은 입을 막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보시고 계신 것은 바로 백악관입니다. 백악관에 갑작스러운 폭발이 일어나 현재 대통령의 신변을 알 수가 없으며…….”
이럴 순 없다.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러나 저 화면을 보라.
미국의 백악관이 악마 같은 화염에 불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