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정상 (3)
영국 제73대 수상, 토니 블레어는 1997년부터 총리직을 맡아 지금까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토니 블레어의 여당인 노동당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그만큼 영국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정치는 자신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테러와의 전쟁이 선포된 후, 영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의 파병을 해 부시의 푸들이라는 치욕스러운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우파인 노동당이면서도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펼쳐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굳건하게 총리직을 맡은 채로 영국을 다스리는 중이었다.
“알렌 국장, 긴급하게 호출을 한 이유가 뭡니까?”
MI6의 알렌 국장이 수상을 비롯해 주요 인사들을 긴급 소집했다.
항상 능글맞은 미소를 하고 있던 알렌 국장이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표정이 굳어 있었다. 그 때문에 회의장 안에는 묘한 긴장감까지 흘렀다.
“몇 달 전부터 MI6는 테러와의 전쟁을 대비해 많은 조사를 해왔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테러 조직부터 시작해 각 아랍 국가에 있는 조직들을 감시해 왔죠. 그런데 뜬금없이 이런 이름이 나왔습니다.”
스크린에는 GU라는 도장이 찍힌 서류 문서가 나타났다.
“GU가 뭔지 아십니까? 바로 Golden Union을 뜻합니다. 테러 조직들을 몰래 감시하며 그들을 조사하던 중에 왜 골든 연합이라는 이름이 나왔을까요? 총리님께서는 골든 연합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토니 블레어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메데인 카르텔은요?”
“그건 들어봤지.”
“메데인 카르텔이 바로 이 골든 연합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제야 총리의 안색이 조금 일그러졌다.
“메데인 카르텔이면 콜롬비아 출신의 카르텔 아닙니까? 그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들었는데. 그들이 연합에 소속되어 있다고요?”
“예, 믿기 힘든 이야기이겠지만, 메데인 카르텔은 골든 연합의 소속원입니다. 그 외에도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멕시코에 이르는 각 나라의 범죄 조직들이 전부 골든 연합에 가입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일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각 범죄 조직을 총망라하는 거대한 연합이라니.
그런데 왜 그들의 이름이 테러 조직을 조사하던 중에 나왔을까?
“설마 그들이 테러 조직을…….”
“그것도 맞추셨습니다. 이들은 알카에다를 비롯해 영향력 있는 테러 조직에게 돈을 뿌리고 있지요. 저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오사마 빈 라덴도 골든 연합의 보호 아래 테러 조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미국이 이걸 가만히 두고 볼 것만 같습니까?!”
9.11 테러로 세계는 극도의 공포로 밀려났다. 단순히 테러 때문이 아니다.
완전히 폭발해 버린 미국 때문이었다.
테러 조직을 옹호하는 곳이 있다면 핵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미국의 발언에 모든 국가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골든 연합이 테러 조직을 지원한다?
미국이 이걸 가만 놔두겠는가?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답이 국장에게서 나왔다.
“이것 또한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골든 연합은 미국 정권과 깊은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내지는 못했으나, 확실한 건 미국 대통령조차 골든 연합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그걸 확신합니까? 미국이 범죄단체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는 걸 누가 믿겠어요?”
“저도 믿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을 필두로 골든 연합은 급속도로 성장했고 지금은 미국,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대국들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스크린에 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동양인?”
“예, 동양인입니다. 한국인으로, 마피아들은 그를 미스터 블랙이라고 부릅니다. 본명은 김태산으로 현재 화진 그룹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미스터 블랙? 거기다가 화진 그룹 부회장? 이 사람이 정말 골든 연합의 수장이라고요?”
“그렇습니다. 화진 그룹은 원래 조직폭력배였습니다. 그러다 김태산이 그곳을 지금의 그룹 반열로 키웠고요. 그런데 회장 자리에는 앉지 않았지요. 아무래도 노출을 피하기 위해 쓴 방법인 거 같으나, 한국에서는 김태산의 명성이 상당합니다. 온 국민들이 그를 선량한 기업인이라고 칭송하고 있으니까요.”
토니 블레어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설마, 대한민국 언론과 정치권도 전부 장악당한 겁니까?”
“예, 그를 선량한 기업인이라고 포장을 한 것은 모두 대한민국 언론이었습니다.”
모든 나라의 정치인들은 언론에 의해 이미지가 결정된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이 개입해 작당하고 언론 조작에 들어가면 아무리 깨끗한 정치인이라도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언론이 작정하고 이미지메이킹에 들어가면 세계 최악의 인간도 마더 테레사 같은 선한 인물이 될 수 있다.
“이 정도의 규모를 가진 연합이 있다는 걸 왜 나는 듣지 못했죠?”
“죄송합니다, 총리님. 저희도 그동안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으나, 정확한 윤곽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테러 조직에게서 GU라는 도장이 찍힌 서류를 발견했고, 그때부터 미친 듯이 조사에 임한 것이었습니다.”
영국 정보국이 미국만 조사하겠는가?
그들이 중점으로 두는 곳은 같은 유럽 국가다. 특히 독일을 제일 많이 주시하고 있다. 그러던 중에 테러를 조사하다 우연찮게 골든 연합이 걸린 것이다.
“갑자기 이들에 대해 말하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있나요?”
알렌 국장은 아까 전보다 더욱 표정이 안 좋아졌다.
“예,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제야 본론이 나온 것 같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알렌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골든 연합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20명의 요원들 중 10명이 사망. 5명이 실종 상태입니다.”
“뭐, 뭣?”
“왜 그들이 사망한 줄 아십니까? 요원들을 살해한 건 각 나라에 있는 정보국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각 나라에 있는 정보국이라니.”
“말 그대로입니다. 미국 정보국, 러시아 정보국, 중국, 한국, 일본 등등. 각 국가에 있는 첩보 기관들이 모두 영국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 총리님과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을 말이죠.”
총리는 잠시 사고가 정지되었다.
세계 강국들이 모두 영국의 뒤를 조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수상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구린 곳을 파고드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전문이지 않던가?
“그동안 MI6가 뭘 해도 상관하지 않던 사람들이 골든 연합에 대해 조사를 시작하니 갑자기 태세를 전환한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미 대부분의 국가들이 골든 연합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는 겁니다. 바로 저 미스터 블랙의 손에 말이죠.”
총리는 마른침을 삼키며 스크린에 웃는 얼굴로 나와 있는 김태산을 바라보았다.
하나도 아니고 수많은 나라의 정보국을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힘이라니.
미국 대통령이 왜 그들을 건드리지 못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이 왜 우리의 뒤를 조사하는 거죠?”
“뻔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숨기고 싶은 것을 파헤쳐 그걸 빌미로 협박을 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여기 있어요.”
알렌 국장은 총리와 각 간부들에게 서류를 나눠 주었다.
“이게 뭡니까?”
“저희가 조사하던 중에 나온 프로젝트 서류입니다. 마치 가져가서 보라는 식으로 그쪽에서 던져 준 거 같더군요.”
“그 말은 우리가 이걸 볼 수 있게 일부러 정보를 노출시켰다?”
“예,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쓸데없는 정보가 담긴 서류이지 않은가.
제대로 보안을 신경 쓰지 않았다는 건 말이다.
하지만 총리는 금방 그런 생각을 지우게 되었다.
“이, 이런 미, 미친놈들!”
“저도 총리님과 아주 똑같은 감탄사를 터뜨렸었죠. 그런데 이 서류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베리칩 프로젝트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며, 이미 북한을 상대로 대대적인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북한에서 시작된 베리칩 프로젝트.
이건 온 인류를 통치하겠다는 야망이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다.
“이, 이걸 승인한 미친놈이 있다는 겁니까?”
“미 국방부에서 지원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골든 연합, 그러니까 미스터 블랙이 있지요.”
총리는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놈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인가.
정말 베리칩 프로젝트가 완성된다면 세계는 다른 의미로 종말을 맞게 된다.
더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 체계적인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먼저 애완견에게 베리칩을 심어놓아 국민들로 하여금 베리칩의 안정성을 믿게 하고 있지요. 이건 곧 기술 발전을 핑계로 신용카드를 대신해서 쓰게 할 겁니다. 몇몇은 거부를 할 수 있어도 그 편리함 때문에 사람들은 결국 베리칩을 쓰게 되겠죠.”
베리칩의 강점은 바로 잃어버릴 수 없는 지갑이라는 것이다. 또한 생체 보안이기 때문에 절대 해킹을 할 수도 없다. 앞으로 시대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보안 문제에 굉장히 민감해질 터. 그것을 보안하기 위한 해답으로 베리칩이 나온다면?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결국 모두가 그 칩을 맞고 생활하게 될 것이다. 국가가 나서서 정책을 수립한다면 국민은 그 결정에 따라야 하니까.
토니 블레어는 잠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생각에 빠졌다.
이 정도로 거대한 그림자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테러와의 전쟁도 사실 그들의 손에 조작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의 다음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알렌 국장.”
“예, 총리님.”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이 연합에 대해 계속 조사를 하도록 하세요. 누가 연합원이고 또 영국에도 얼마나 많은 골든 연합이 있는지까지.”
“알겠습니다.”
예전부터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건 느끼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광기에 휩쓸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영국의 총리로서 토니 블레어는 자신의 할 일을 다 할 생각이었다.
이 아름다운 대영제국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 * *
“대충 마쳤다고요?”
“예, MI6에서 파견된 요원들 중 대부분을 사살했고 나머지는 회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미국 CIA와 러시아 첩보 기관이 힘을 합치니 무서울 게 없더군요. 조사하면 아주 안 나오는 게 없어요.”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시대 때 첩보 기관을 아주 활발하게 움직인 곳이다.
그들의 정보력은 다른 국가에 비할 데가 못 된다.
“영국을 칠 수 있는 무기만 있으면 됩니다. 총리에 대한 것도 괜찮고 영국 여왕에 대한 것도 괜찮겠군요. 이 정도면 만족하시겠죠, 미스터 김?”
아니,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영국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내 목적이다.
“중동 국가에 있는 테러 조직들을 슬슬 움직일 때가 된 거 같군요.”
“그들을요?”
“예, 먼저 메데인 카르테을 선두로 대대적인 유럽 진출을 꾀하는 겁니다.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에 있는 기업들까지 총동원해서 경제적으로 영국을 압박한다면 아주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겁니다.”
다니엘 로페즈는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경제적으로 먼저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든 다음, 국민의 안보를 위협하자는 거군요. 그것도 세계 전역을 공포에 빠뜨린 테러 조직으로.”
“예, 지금쯤 영국 수상도 우리에 대한 조사를 어느 정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 놓고 테러를 저지르고 경제적인 압박을 가한다면 어떻게 나올까요?”
“미스터 김, 영국이 최악의 행동을 할 수도 있어요. 만약 전쟁을 선포하기라도 한다면…….”
“누구에게 말이죠? 골든 연합은 세계 전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누구에게 전쟁을 선포하겠습니까? 그리고 설령 폭탄 발언을 한다고 해도 우리는 아니라고 잡아떼면 돼요. 토니 블레어를 미친 사람 취급하면 된다는 겁니다.”
토니 블레어가 아무리 골든 연합에 대해 밝히려 든다고 해도 나는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 만약 그런 방식으로 나온다면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해결을 볼 것이다.
대영제국이 골든 연합의 이름 앞에 짓밟히는 걸 모두가 보게 만들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