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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52화 (252/325)
  • 252화. 격차 (2)

    김정일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자신을 지키는 경호원들이 하라는 경호는 하지 않고 총을 들이대다니?

    하지만 이건 내가 오래전부터 꾸며온 일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당신에게 쌓인 원한이 많은 사람들이야. 제 가족들이 당신 손에 죽었거든. 아니면 억지로 끌려와서 당신의 성 노리개가 되었거나. 당신은 아마 꿈에도 몰랐을 걸? 내가 오래전부터 하나씩 천천히 당신 주변에 이들을 깔아놓았다는 걸.”

    이 정도 했으면 김정일은 이제 머리가 아플 것이다.

    경호원들을 관리하는 간부가 배신을 한 것인가?

    그렇다는 건 그 외 다른 간부들은?

    어디서부터가 아군이고 어디서부터가 배신자인지 알 수가 없을 터.

    나는 의자에 앉아 김정일이 즐겨 피우는 시가 박스를 열어 불을 붙였다.

    “당신 주변 사람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게 어렵지 않았어. 다들 손에 달러를 쥐여주니까 아주 미치려 하더라고. 그리고 이번에 화진 그룹이 북한으로 들어왔잖아. 한국에서 북한으로 납품되는 음식들을 전부 돌리니까 거기에 또 한 번 미치더라고.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아?”

    “그, 그 말은 전부 나를…….”

    “당연한 거 아닌가? 모두 당신을 따랐던 건 살길이 거기밖에 없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나를 따르면 네가 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줄 수 있지. 여기 사람들의 욕망은 아주 단순해. 밥을 굶지 않아도 되고 돈이 부족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들이 원하는 건 딱 그거 하나야. 이 기본적인 것조차 해주질 않으니 다들 배신을 하는 거지.”

    북한의 붕괴는 예견된 일이다.

    내가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았으면 이 체제가 유지되었겠지만, 북한 간부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구원자 역할을 내가 자처하면서 판도가 달라진 것이다.

    이미 밑바닥부터 위까지 전부 내가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바깥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내가 당신을 만나는 순간, 북한 간부들더러 행동에 나서라고 했거든. 나를 따르는 놈들은 살려두고 그렇지 않는 놈들은 전부 없애 버리라고. 지금쯤 누가 당신 편에 섰고, 누가 내 편에 섰는지 대충 각이 나왔을 거야. 과연 당신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김정일은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꾹 깨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종간나 새끼! 모든 게 네 계획대로 될 줄 알아? 나는 이 나라의 신이다! 그리고 이놈들은 전부 신을 섬기는 종에 불과해. 그런데 그놈들이 누굴 배신해?”

    “하하, 김씨 일가는 신이라고 세뇌 교육을 그렇게 하더니, 자기 스스로가 정말 신이라도 된 줄 아나? 내가 너에 대한 평가를 간단하게 내려줄게. 넌 벌레보다 못한 새끼에 불과해. 그런 새끼가 감히 진짜 절대자의 위치에 다다른 내게 반항을 해?”

    난 자리에서 일어나 반쯤 피운 시가를 김정일의 이마에 비벼 버렸다.

    “으아아악-!!”

    “참아, 원래 노예를 길들일 땐 이렇게 낙인을 먼저 찍어야 하니깐.”

    “이, 이 개새끼! 감히 나를! 가, 감히 크아아악-!”

    신 놀음을 오랫동안 하더니 진짜 자기가 신이라도 된 줄 알고 있는 건가.

    끝까지 거짓으로 가득한 스스로의 정체성을 버리지 못한다.

    나는 시가를 바닥에 떨어뜨린 다음 김정일의 이마에 새겨진 화상 자국을 살펴보았다.

    “이 정도면 봐줄 만하네. 신의 자리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한 놈에게는 딱 어울리는 자국이야.”

    난 다시 자리에 앉아 술을 들이켰다.

    김정일은 계속해서 고성을 지르며 욕지거리를 내뱉다가 원한과 증오로 가득한 경호원들 손에 두드려 맞기 시작했다.

    “죽이지는 마라. 너희들도 쉽게 죽이는 걸 원하진 않을 거 아니야.”

    아예 죽일 생각으로 김정일을 구타하던 경호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도 김정일을 편하게 죽일 생각은 없던 모양이다. 그만큼 쌓인 원한의 크기가 크다는 뜻이리라.

    이래서 인과응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가.

    그간 지은 죄가 있으니,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회장님.”

    김정일이 더는 꽥꽥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을 때쯤.

    간부들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난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펼쳤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습니까?”

    “김정일의 친인척 중 3명을 빼고는 전부 회장님의 뜻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3명? 하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작은데요. 그래도 같은 핏줄이라 보호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누가 저런 미친놈을 감싼다고 합니까? 다들 어쩔 수 없이 따른 것에 불과하죠.”

    날이 선 평가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는 김정일을 내려다보았다.

    “들었어? 당신 황천길 동료가 3명이라는데.”

    김정일은 피를 흘리면서도 끝까지 할 말은 했다.

    “이 개자식들. 감히 나를 배신해? 너희들이 그러고도 위대한 인민공화국의 간부들이야?!”

    “입 닥쳐, 이 돼지 새끼야! 김씨 일가만 아니었으면 이 나라는 정말 위대해졌을지도 몰라. 그런데 너희들이 다 망쳤어. 알아? 지금이라도 이 나라는 다시 시작해야 돼. 그래야 더는 굶어 죽는 인민이 나오지 않을 거 아니야!”

    저 간부는 진심으로 화가 난 듯 보였다.

    스스로의 권력 때문이 아닌,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이 나라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자, 이제 어느 정도 정리는 된 거 같은데, 앞으로의 일을 결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시는 바와 같이 김정일은 오늘부로 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올 겁니다. 문제는 후계자예요. 김정일을 끌어내렸다고 해서 북한 정권을 아예 박살 내는 건 문제가 되지 않겠어요?”

    갑작스럽게 공산당을 민주주의로 바꾸는 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미 이 나라는 선군정치로 기틀을 마련해 두었다. 그리고 공산당 시스템을 민주주의적으로 한 번에 바꾼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난 그런 귀찮고 수고스러운 일을 할 생각이 없다.

    차라리 북한은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날 도와주는 것이다.

    “김정일의 다음 후계자가 김정은이라고 들었는데. 그놈부터 잡아오시지요. 오늘 제 아비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똑똑히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몇몇 간부들이 음흉한 미소를 보였다.

    그동안 김씨 일가에 쌓인 울분을 여기서 다 풀어버릴 것처럼 보였다.

    “바로 대령해 보이겠습니다.”

    나는 한껏 달아오른 흥취를 즐기며 느긋하게 술잔을 기울였다.

    북한 3대 독재자가 될 김정은의 얼굴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그놈이 제 아비의 꼴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빨리 보고 싶었다.

    * * *

    “아, 아버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김정은은 날씬한 얼굴과 몸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놈이 살을 불리기 시작한 건 본격적으로 김정일의 뒤를 잇기 직전이었다.

    김일성의 부활이라는 거짓된 선동을 일으키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우지 않았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는 놈들이다.

    그깟 환생론을 들먹이기 위해 스스로 살을 찌우다니.

    “당신들! 아버지한테 무슨 짓을!”

    이제까지 북한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해 오던 아버지의 모습만 보다가 지금은 바닥에서 기고 있는 늙은이를 보니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김정은.”

    내 부름에 김정은은 눈을 번뜩이며 날 노려보았다.

    “눈이 마음에 들지 않네.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그렇게 노려보나?”

    그 말에 따라 경호원 하나가 김정은의 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이제 19살밖에 되지 않은 놈이다.

    한창 버르장머리가 없을 때라는 것이다.

    이런 놈일수록 버릇을 단단히 고쳐줘야 한다.

    매가 약이라고 하지 않던가?

    “또 한 번 그런 눈깔을 하고 있으면 내가 친절하게 눈알을 뽑아드리지.”

    “…….”

    제 아비가 저 꼴이 된 것을 보니, 진짜 그럴 수도 있다는 걸 느낀 모양이다.

    김정은은 입을 꾹 다문 채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 테고. 네 아버지가 왜 저런 꼴을 당했는지도 대충은 알겠지? 난 폭력을 싫어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한번 폭력을 행사하면 그땐 누구보다도 잔인하게 해. 그것도 내 명령에 불복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알아들었어?”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어른이 말씀하면 대답을 해야지.”

    그러자 내 눈짓에 따라 경호원 하나가 김정은의 얼굴에 발길질을 날렸다.

    난 철퍼덕 쓰러지는 김정은을 보며 왠지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회귀하기 전에 저놈이 어떤 모습을 했는지를 봤기 때문인가.

    그때는 도저히 손이 닿지 않는 놈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내 손에 저 두 놈의 목숨 줄이 쥐여 있다.

    “네 아버지는 오늘부로 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그럼, 후계자가 필요하겠지? 그래서 지금 고민 중이야. 너랑 네 아비를 둘 다 죽이고 다른 놈을 이 자리에 앉힐까 하고.”

    김정은의 표정이 달라졌다.

    “어떻게 생각해?”

    “아, 아버지를 어,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 하긴. 죽여야지. 설마, 내게 반기를 든 놈이 살기를 바라는 거야? 난 그렇게 자비심이 많진 않아. 배신자라면 그게 설령 피를 나눈 형제라도 죽이는 게 바로 나야. 하물며 김정일 저놈을 죽이는 게 망설여질까?”

    내가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은 김정은은 몸을 떨며 말했다.

    “워, 원하는 것이 뭡니까?”

    “네가 결정해.”

    난 작은 칼 하나를 김정은에게 던져 주었다.

    “그 칼로 네 눈앞에 있는 아버지를 찔러 죽인다면 네 목숨은 살려준다. 그리고 차기 위원장 자리도 너한테 주지. 하지만 효심이 너무 깊어 차마 네 아버지를 죽일 수 없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너랑 네 아비를 사이좋게 보내줄 수밖에. 아! 물론, 쉽게 죽일 생각은 없어. 둘 다 천천히,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줄 생각이니까.”

    김정은은 경악으로 가득 찬 눈동자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간부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 하지만 누구도 그를 두둔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들 재밌겠다는 듯 팔짱을 끼고 있었다.

    “뭐 해? 회장님이 말씀하시잖아.”

    “얼른 그 칼로 저 돼지 새끼를 찔러 죽이라우! 안 그럼 넌 내 손에 죽는다.”

    과연 김정은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스스로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제 아비를 찔러 죽일까?

    나는 흐뭇한 미소로 천천히 칼에 손을 뻗는 김정은을 바라보았다.

    “사람 죽이는 게 처음은 아닐 거 아니야. 내가 들으니까,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서슴없이 사람을 죽였다며? 이것도 간단해. 네 미래를 위한 아주 간단한 희생이잖아. 네 아버지도 너를 대신해 죽고 싶을 걸? 아니지. 차라리 이러는 건 어떨까?”

    난 김정일에게도 칼 한 자루를 던져 주었다.

    “만약 네가 네 아들을 찔러 죽인다면 그 하찮은 목숨을 살려주지. 위원장 자리도 박탈하지 않고 그대로 놔둘게. 어때?”

    그 말에 김정은과 김정일의 표정이 만감을 교차했다.

    처음에는 일어설 힘도 없어 보이던 김정일은 갑자기 눈빛을 반짝이며 은근슬쩍 아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리고 내게 물었다.

    그게 정말이냐고.

    난 이번에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아들의 목숨을 희생하더라도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는 건가?

    “그래, 난 내가 한 말은 반드시 지키거든.”

    김정일은 애써 몸을 일으켜 바닥에 떨어진 칼을 붙잡았다.

    김정은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이 나라의 신이야. 그런 내가 죽으면 인민들이 큰 도탄에 빠지게 될 거다. 그러니까 네가 기꺼이 나를 위해 희생하거라. 네 명예로운 희생은 내가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저게 아버지라는 사람이 칠 수 있는 대사란 말인가.

    하지만 뻔하디뻔한 부자지간의 절절한 애정이 나오지 않아 다행이려나?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나는 김정은의 반응이 궁금했다.

    “아버지…….”

    “그래, 정은아. 미안하다. 그러니까… 컥-!”

    이건 예상 밖이라고 해야 하나.

    김정은은 김정일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힘껏 칼을 찔러 넣었다.

    복부에 박힌 칼끝에 김정일은 신음을 터뜨리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너, 너 이 새끼…….”

    “제가 왜 아버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단 말입니까? 살 만큼 사셨으니, 아버지가 절 위해 희생을 해주십시오.”

    “자, 잠깐. 크억-!”

    내가 일부러 짧은 칼을 준 이유가 있다.

    한 번으로는 상대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괴성을 지르며 계속해서 제 아비의 몸을 찔렀다.

    그렇게 나는 다 늙은 몸뚱이에 구멍이 뚫리는 소리를 안주 삼아 조용히 술을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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