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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51화 (251/325)
  • 251화. 격차 (1)

    김정일과의 만남 일정은 예상 외로 빠르게 정해졌다.

    나는 북한으로 떠나기 전 중국 측 간부들과 긴밀한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내게, 아니, 내 돈에 충성을 다하는 북한 측 간부들과도 소통하며 앞으로의 일을 정했다.

    그들의 도움으로 북한에 방문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건데, 김정일이 나와 만나고 싶다는 뜻을 먼저 전한 것이 핵심이었다.

    “김정일을 사냥하기로 결심하신 겁니까?”

    라우팽은 흥미롭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마도?”

    솔직히 말해서 아직 결정을 내리진 못했다.

    최종 결정은 김정일의 행동에 달려있다.

    그는 내게 먼저 만날 것을 청했고, 난 그 요청을 수락했다.

    과연 어떻게 새치 혀를 놀릴 것인지 지켜볼 생각이다.

    “김정일이 회장님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북한은 중국 간부들도 함부로 들어가지 않아요. 그만큼 김씨 일가 사람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죠.”

    저 말은 사실이다.

    실제로 김정일은 자신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중국 측 간부를 몇 명 죽이기까지 했다. 그러한 일 때문에 중국 정부에 심한 압박을 받긴 했지만, 강경한 대책을 내놓진 못했다.

    남북으로 갈려 있는 한반도의 아슬아슬한 균형이 자칫하면 깨질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김정일이 안하무인이 된 것도 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대충 생각해 둔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요한 건 중국 정부가 손발을 제대로 맞춰주는 겁니다. 만약 상황이 악화된다면 말이죠.”

    “그건 제가 잘 조율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엇박자로 나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골치 아파집니다.”

    “미국 쪽은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언론 통제도 확실하게 해주세요.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를 대비해서 말이죠.”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를 대비하라는 말에 라우팽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꽤 큰 파장이 일겠군요. 그래도 김정일이 죽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에 따른 언론 보도도 준비해 놓겠습니다.”

    “예, 조용히 묻어가는 게 좋겠죠. 더는 언급이 되지 않게 말입니다.”

    만약 김정일과의 대화가 좋게 진행된다면 연평 해전은 조용히 언론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당분간 보수 쪽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난리를 치긴 하겠지만, 인간은 항상 그랬듯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게 마련이다.

    과연 김정일과의 대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다.

    그는 어떤 카드를 들고 내 앞에 나타날까?

    * * *

    “방문을 환영합니다.”

    김정일이 아니라 김정일의 따까리가 마중 나왔다. 나는 슬쩍 상대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러자 상대도 내 눈빛을 의식한 것인지 조용히 귓속말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수령님께서는 태양궁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도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왔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환영식에서부터 인심이 느껴지는군요. 그쪽에서는 더는 저와 협력할 수 없다는 뜻입니까?”

    예전에 비해 턱없이 초라해진 환영식이다.

    여기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김정일은 나와 기 싸움을 하려는 것이다.

    “회장님, 부디 원만하게 대화로 푸시길 바랍니다.”

    내게 일부러 눈치까지 주는 것을 보니, 김정일이 단단히 준비를 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은근 기대가 되었다. 과연 그놈이 얼마나 내 앞에서 재롱을 피울지 말이다.

    나는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공항을 빠져나왔다. 한 가지 웃긴 점이 있다면 나를 따라온 경호원들을 전부 공항에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니던가. 하지만 긴장이 되진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태양궁 안으로 들어오니, 김정일이 자리에 앉은 채로 나를 반겼다.

    그는 고개를 까닥이며 내게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주변을 보니 김정일의 손가락 신호 한 번이면 당장에라도 날 벌집으로 만들 기세다.

    난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 앉았다.

    “제가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겁니까? 저는 위원장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 중이라고 생각했는데요?”

    “하하, 좋은 관계를 망친 건 당신이지, 절대 내가 아니야.”

    어쭈, 말까지 놓았다.

    아주 나를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것이 꼭 내가 북한 주민이라도 된 기분이다.

    “제가 망쳤다고요? 어떤 것이?”

    “왜 슬슬 간을 보면서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북한에 투입시키지 않은 거지?”

    설마, 고작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비즈니스라는 게 무작정 돌격한다고 다 되는 줄 아십니까? 북한도 준비할 시간을 주셔야죠. 그리고 공장 하나 세우는 것도 몇 개월이 걸립니다. 거기다가 부지를 다지기 위해 땅을 갈아버리는 것도 시간이 걸리고요. 더군다나 북한은 경제적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바닥부터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가지고 뭐라 하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만약 이런 걸로 트집을 잡는 거라면 김정일은 스스로의 무식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가 무슨 대한민국도 아니고 아무런 비즈니스적인 입지를 다지지 못한 북한이지 않던가. 나도 불도저처럼 일을 진행하고 싶긴 하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물론, 내가 원한다면 이곳에 있는 주민들을 전부 노예처럼 부리며 일을 시킬 순 있다. 그러나 여긴 북한이지 않은가. 지금은 서로 땅이 갈라져 있어도 결국 한민족이다.

    대한민국과 북한을 완전히 다른 종족처럼 나눌 생각은 없다.

    우리나라가 나의 권력으로 세계 제일의 강국이 된다면 북한도 그다음을 잇는 강대국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중국과 미국에 절절거리지 않은 채 서로 협력하는 세계 최강국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다.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혀 있는 김정일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우리 시원하게 말을 좀 해봅시다. 도대체 뭐 때문에 함정을 보내 NLL을 침범한 겁니까? 이건 우리나라 정부가 아니라 제게 뭔가 메시지를 보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김정일은 날 흘겨보더니 앞에 있던 술잔을 들고 입을 축였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예, 좀 알고 싶군요.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해라, 이게 과연 오해일까 싶네.”

    그는 손가락을 튕겨 누군가를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김정일의 수족들 손에 붙잡힌 채로 끌려온 남자는 꼴이 말이 아니었다.

    몰골이 저 지경까지 된 것을 보니, 심한 고문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누군지 알아?”

    난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는데요?”

    “그렇지? 내가 딱 죽기 전까지 패놓으라고 했거든. 저놈 이름이 리영호야.”

    리영호라면 북한 육군 차수에 있는 사람이다.

    어디서 낯이 익다 싶었는데, 하도 피떡이 되어 있어서 알아보질 못했다.

    “리영호를 비롯해 감히 너와 손을 잡고 뒤에서 수작질을 부리고 있는 간부 놈들을 하나씩 붙잡고 있어. 내가 너한테 허락한 건 경제적인 협력이야. 그런데 내 권력을 탐해?!”

    이 양반은 지금 자신의 권력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난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웃었어?”

    “예, 생각해 보니까 너무 황당해서요. 그러니까 이 모든 짓거리가 나를 여기까지 유인하기 위함이었다는 거잖습니까?”

    “눈치가 빠르네. 맞아. 네놈을 여기까지 끌고 와서 단단히 교육을 시켜주려고 했지.”

    미친 건가?

    아니면 멍청한 건가.

    “저를 죽이시려고요?”

    “그랬다가는 문제가 되겠지. 하지만 네놈을 가둬놓고 협상을 한다면? 아, 물론 호화로운 감옥 생활을 보내게 해줄 생각은 없어. 네놈이 제발 살려달라고 울면서 빌도록 끔찍한 고문을 해주지.”

    저게 협박이라면 약하다.

    나는 진짜 협박이 뭔지 보여줄 생각이다.

    “1976년 8월 18일. 이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뜬금없는 내 물음에 김정일은 살짝 당황한 표정을 보였다.

    내가 질질 짜면서 무릎이라도 꿇을 줄 알았는가?

    나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날은 판문점 도끼 사건으로 불립니다. 이때 북한군 30명이 가지치기를 하고 있던 UN군을 공격하고 미국 장교까지 죽이는 사태가 벌어졌죠.”

    순간 김정일의 표정이 붉게 변했다.

    자신들의 수치나 다름없는 일을 언급했으니,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멍청이일 것이다.

    “하필이면 미국 장교를 죽이는 바람에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갔죠. 아마 기억이 나실 겁니다. 그 일을 주도한 것은 위원장님이었으니까요.”

    김정일의 얼굴이 볼만했다.

    김일성이 살아 있을 당시, 김정일은 아직 후계자에 불과했다.

    그는 젊은 혈기로 자신의 입지를 넓히고자 일을 하나 벌였는데, 그게 바로 판문점 도끼 사건이다. 그런데 일이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면서 김정일은 김일성에게 욕이란 욕은 다 먹고 후계자 구도까지 흔들리게 되었다.

    미국 장교가 죽었다는 말에 미국이 12,000명의 군대와 항공모함까지 파견시켜 북한을 쑥대밭으로 만들 준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중국과 소련까지 북한이 벌인 미친 짓에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평양으로 가는 길목을 열어주려고 하기까지 했다.

    이에 김일성은 고개를 조아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으며 김정일은 이 일로 미국의 무서움을 깨닫게 되었다.

    “그날의 치욕을 다시 한번 겪고 싶으신 겁니까? 만약 제 털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 드리지요. 먼저 중국에 있는 중공군 30만 명이 남하하게 될 것이며 한국은 전면전을 개시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북한을 공격하게 될 겁니다. 그뿐입니까? 미국도 항공모함과 병력을 파견해 이 나라를 끝장내려 하겠죠.”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고작 너 한 사람 때문에 그 나라들이 움직일 거 같아? 지금은 네놈한테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네가 죽으면 아무도 널 쳐다보지 않을 거야.”

    “그런가요? 그럼, 한번 시험을 해보죠. 지금 아무나 시켜서 제 머리통을 날려 버리라고 하십시오. 과연 초일류 강대국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기대가 되는군요.”

    “이 미친 새끼가!”

    김정일은 자신의 권총을 꺼내 내 머리에 겨누었다.

    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뭘 망설이십니까? 쏘십시오. 제 목숨과 함께 북한의 명운도 날아가는 겁니다.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중국, 미국, 러시아를 가리지 않고 핵폭탄이 평양을 타격할 겁니다. 이 땅위에 살아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도 끝없이 핵이 날아들 거예요. 거짓말인 것 같죠?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이 방아쇠를 당기면 알 수 있습니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김정일.

    그의 손이 떨리고 있음을 난 느낄 수 있었다.

    “당신과 내 차이점이 뭔지 말해줄까요? 나는 넘치는 돈이 있다는 것이고 그 돈들로 권력과 사람을 샀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닌, 경외와 존경으로 얻은 사람들도 있지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전화 한 통화면 미군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난 그런 사람들을 내 아래에 두고 있고요. 당신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에게 싸움을 걸은 겁니다.”

    “다, 닥쳐!”

    “이것이 당신과 나의 차이점입니다. 난 돈도 많고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뭐가 있죠? 북한은 세계에서 제일 빈곤한 국가 중 하나로 속하지요. 거기다가 사람은? 저 뒤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 당신의 명령에 움직이는 충견으로 보이십니까?”

    “뭐, 뭐야?”

    나는 입꼬리를 꿈틀거리며 뒤에 가만히 서 있던 경호원들에게 소리쳤다.

    “뭐 하고 있어? 이 돼지 새끼가 감히 내 이마에 총구를 들이대고 있는데. 보고만 있을 거야?”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십 명의 경호원들이 달려와 김정일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댔다.

    몇몇은 그의 몸을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난 이 나라의 수령이다!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다니! 다들 죽고 싶어?!”

    발버둥을 치며 욕지거리를 뱉어보았지만, 누구 하나 김정일의 말에 대꾸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증오로 가득 찬 눈동자로 김정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공조하고 있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것까지는 내버려 두고 지켜봤다. 어쨌든 나에게 협력하기로 한 한 집단의 수장이니까. 하지만 끝까지 분수를 깨우치지 못하고 결국 선을 넘는군.

    난 그런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아 말했다.

    “봤지? 이게 당신과 나의 격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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