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49화 (249/325)
  • 249화. 역린 (1)

    “이창석 의원님.”

    “예, 회, 회장님.”

    이창석 의원은 두려움으로 가득한 눈동자를 띠며 나를 감히 바라보지도 못했다.

    그는 내가 회의장에서 어떤 미친 짓을 벌였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던가.

    수많은 사람들이 내 미친 짓에 죽어나갔지만, 누구 하나 나를 말리거나 막지 않았다.

    그것도 한 나라의 장관이 죽어가는데도 말이다.

    “이번의 사태와 이창석 의원님과는 연관이 없다고 믿겠습니다.”

    “무, 물론입니다. 회장님을 향한 저의 충성심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창석이 이번 일에 연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진보 놈들이 벌인 일이지 않던가. 보수 쪽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차기 대권은 문제없이 이창석 의원님이 양도받으실 겁니다.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이 바뀌는 거지요. 하지만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걸 마음대로 하려 든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김일중 대통령도 비슷한 대답을 하긴 했지요. 하지만 결과가 어떻습니까? 부디 의원님은 제가 신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 손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싶진 않군요.”

    나의 경고에 이창석은 마른침을 삼켰다.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일이 뭐겠는가?

    바로 탄핵이다.

    나는 그 정도의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낼 수 있다.

    “회장님의 뜻. 잘 알겠습니다.”

    “예, 잘 알아들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이창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저 양반, 지금 표정은 저래도 속으로는 웃음꽃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이창석 입장에서도 십년감수할 만한 일이 아니었던가.

    만약 김일중의 작전이 성공해서 내가 체포되었다면 이창석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자연스레 다음 정권은 진보가 가져갔을 터.

    그러나 정권이 패배하고 내가 승리하면서 이창석은 예정대로 차기 정권의 주인이 되었다.

    물론, 투표 결과를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노현우 의원이 대선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이미 뜻을 밝힌 바람에 진보에 표가 몰릴 일은 없다.

    이제 이 대한민국에 새로운 바람이 불려고 한다.

    * * *

    2002년은 참 호사다마한 해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의 황금기를 이끈 해이기도 하며 여러 악재도 겹친 때다.

    나는 이번 한 해를 김일중을 공격함과 동시에 이창석 의원을 띄워주었다.

    김일중 대통령 아들들이 저지른 비리를 파헤쳤고 여러 비리 사건을 한곳에 묶어 현 정권을 완전히 격침시켜 버렸다.

    감히 나를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로 인해 진보 정당 지지율이 급격하게 내려갔고 보수 정당만 살판났다.

    또 2002년 하면 월드컵이지 않던가?

    히딩크 열풍이 불면서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하게 된다.

    이번 해에는 젊은 남녀들이 월드컵이라는 호황을 맞아 서로 불을 지르는 일이 빈번했으며 출산율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해로 기록될 예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터져 버렸다.

    2002년 6월 29일.

    월드컵 3, 4위전이 벌어지는 날.

    북한이 NLL을 침범해 연평도에 있는 해군을 공격하면서 제2의 연평 해전이 벌어졌다.

    “북한과의 연락은?”

    “아직 되지 않습니다, 회장님.”

    뜬금없는 날벼락이라고 해야 하나.

    나도 제2연평해전이 월드컵 3, 4위전에 벌어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회귀하기 전에 분명 그날 북한이 공격을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역사가 바뀌었다.

    나는 북한과의 지속적인 교류로 남북 관계를 정상화시켰고 북한이 더는 무력 도발을 하지 않게 잘 다독여 주었다. 그런데 역사의 큰 흐름을 바꿀 수가 없는 것인가.

    북한이 이런 식으로 기습적인 공격을 펼칠 줄이야.

    그동안 내가 쌓아놓은 업적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거기다가 김정일은 내 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

    이건 명백히 나와의 관계를 엎어버리겠다는 뜻이 아닌가.

    “중국에 전화부터 걸어. 그리고 중국 지부를 맡고 있는 라우팽에게 지금 여기 상황이 어떤지 똑똑히 전해. 아니다. 바로 나한테 연결해.”

    “예, 회장님.”

    내 비서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내게 전화기를 내밀며 말했다.

    “회장님, 지금 군부 측 사람들이 전부 회장님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 모여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원래 이런 일은 대통령이 맡는 게 옳다. 하지만 지금 정권은 내 손에 의해 완전히 박살 나버렸다. 그렇기에 군부 쪽 사람들도 미리 줄을 서는 것이다. 그들의 미래가 내 손에 달려 있다는 걸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진 그룹은 군부와 깊숙이 관련되어 있어 모든 방산 비리를 책임지고 있지 않던가? 나는 급한 대로 그들이 모여 있는 회의장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새로 선임된 국방부 장관의 인사를 시작으로 각 장성들이 내게 고개를 숙이려 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얼른 본론으로 들어갔다.

    “모두 앉으세요. 그리고 상황 보고부터 해주시죠.”

    “예, 회장님.”

    육군참모총장의 눈짓에 젊은 장교 하나가 나와 작전 판을 보여주며 브리핑에 돌입했다.

    “6월 29일 오전 10시에 북한 경비정 두 척이 NLL을 1.1㎞ 침범했습니다. 이에 따라 참수리 편대가 투입되어 이들을 내쫓으려 했지만, 상대가 먼저 발포를 하면서 교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상황은 어때?”

    “우리 측 참수리 357정이 침몰했고 북한 측도 함정 하나가 침몰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NLL 바깥 지역으로 퇴각하고 그쪽 기지에서 스틱스 대함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돼 모두 추격을 멈춘 상태입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빠르게 상황이 정리된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6명의 장정들이 사망했다. 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다른 나라의 해전이었으면 관심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에서, 그것도 내가 통치하고 있는 나라의 병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이는 절대 용납할 수가 없다.

    김정일도 바보가 아니지 않던가.

    그는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의 것을 건드렸다는 건 제대로 한판 붙어보자는 것이다.

    “육해공 모두 잘 들으십시오.”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니, 모두 긴장감이 역력한 표정으로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는 지금 이 길로 중국과 러시아 측에 도움을 청할 겁니다. 즉,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편을 들지 않을 예정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미국에도 연락을 넣어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게 할 겁니다.”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졌다는 세 개의 국가가 내 말에 따라 움직인다.

    이것보다 무시무시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회의장에 모인 이들이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 말씀은 전면전입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입니다. 저는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북한의 이와 같은 만행을 심판해야겠습니다.”

    내가 질문을 던졌던 국방부 장관은 난색을 표하며 말을 이었다.

    “그냥 예전처럼 항의를 표하고 북한 측의 사과를 요구하면 어떻겠습니까?”

    “사과요? 그쪽 사람들이 언제 한번이라도 사과를 한 적이 있습니까? 항상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며 부정하기에 바빴지. 그들은 결코 우리에게 고개를 조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 더 이상 북한에 끌려다닐 생각도 없고요. 그들이 시작한 일이니, 아예 끝을 봐야겠습니다.”

    전면전을 각오한 일이다. 그리고 북한은 내가 전면전으로 상황을 이끌어낸다면 깜짝 놀라 내 앞에 달려올 것이다.

    믿었던 중국과 러시아가 전부 등을 돌린다면 김정일의 표정이 참 볼만할 것 같다.

    “하지만 북한은 지금 비대칭 전력 무기를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에 따른 피해도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비대칭 전력 무기란 핵무기를 뜻한다. 그리고 생화학 무기도 그에 속한다. 하지만 지금의 북한은 아직 핵무기를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생화학 공격은 무시할 수가 없다.

    아무리 방호복이 잘 갖추어 있다고 해도 북한은 우리나라 전국에 20번은 넘게 뿌릴 수 있는 생화학 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던가.

    즉, 저게 터져 버리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극심한 고통 속에 죽어나갈 것이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전쟁이 언제 끝날까요?”

    내 물음에 공군참모총장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3일입니다.”

    “3일?”

    “예, 만약 중국, 러시아, 미국이 대한민국을 전적으로 돕는다면 3일 안에 모든 전쟁이 끝납니다. 중국의 공군과 미국의 공군이 합세해 평양에 있는 핵심 기지를 모두 폭파시킨다면 지휘 체계가 전부 무너져 북한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북한은 모든 무기가 노후화되어 오래 전쟁을 할 수가 없습니다.”

    3일이라.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다.

    3일 안에 북한 지휘 체계를 전부 박살 낼 수 있다니.

    그만큼 오랫동안 북한이라는 나라를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최적의 공격 루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연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리라.

    “그렇다면 사망자 수는 어느 정도 됩니까?”

    “적어도 우리나라 국민의 1/3이 사망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3일 안에 전쟁이 끝나는데요?”

    “생화학 무기가 서울에 집중될 것이 뻔합니다. 그 외 지역도 피해를 입겠지요. 1/3도 사실 낮은 수치일 수도 있습니다. 이래나 저래나 대한민국의 문명은 6.25 시절로 돌아가는 겁니다.”

    전쟁이 아무리 3일 안에 끝난다고 해도 피해 상황은 절대 낮지가 않았다.

    대한민국의 국운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래서 현대전이 무섭다.

    버튼 클릭 한 번에 수천만 명의 목숨이 날아가니까.

    “잘 알겠습니다. 일단 모두 전면전을 각오하며 대기해 주십시오. 각 군에 비상사태를 알려 언제든지 북진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으세요. 추후 다른 국가들과 연락을 해서 상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예, 회장님.”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발 빠르게 사라졌다.

    어쩌면 전면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모두 초조한 얼굴이었지만, 결코 물러설 기미가 보이진 않는다.

    적의 공격을 받았다는 울분이 쌓여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북한의 도발에도 참고 넘어가기를 반복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번은 다를 것이다.

    감히 이 나라를 건드린 대가가 무엇인지 철저히 보여줄 생각이다.

    “회장님, 중국 라우팽 회장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비서 하나가 달려와 조심스레 내게 전화기를 건넸다.

    내가 전화를 받자 그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회장님.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북한이 저와 영영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널 모양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중국 정부 측 사람들에게 제 말을 전달해 주시겠습니까?”

    “예, 어떤 것이든요. 그렇지 않아도 그쪽도 정신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그 사람들에게 똑똑히 전해주십시오. 저는 이번 일을 그냥 묵과할 생각이 없으며, 중국은 북한이 아니라 대한민국 편을 들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또한 이 사태는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니, 그에 따른 행동을 해주길 바란다고요.”

    전면전이란 말에 라우팽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전면전이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제3차 세계 대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 혼자 편을 먹고 다른 국가들은 전부 대한민국 편에 선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지요.”

    중국과 러시아가 내 편을 들면 그 어떤 나라도 북한 편에 서지 못할 것이다. 그놈들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한다는 건데, 그런 압박감을 김정일이 견딜 수 있을까?

    “라우팽 씨, 전 지금 아주 진지합니다. 그러니 중국에 제 말을 전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저도 사람을 돌려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라우팽과의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다른 곳에도 연락을 돌렸다.

    내가 가진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김정일은 정녕 모른단 말인가.

    나의 나라를 건드린 그 무모한 짓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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