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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48화 (248/325)
  • 248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4)

    “모두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김일중을 제외한 이 나라를 지탱하는 모든 정치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장소는 국회의사당이 아닌, 내 개인 별장이었다. 그리고 각 기관을 담당하는 장관들과 차관들까지.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내게 인사를 올렸다.

    “요 며칠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아마 몇몇 분들은 모른 척하셨을 수도 있고, 또 몇몇 분들은 그 일에 가담했을 수도 있지요.”

    내 발언에 여기저기서 불편한 침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슬쩍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큰 불에 산이 타면 숲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중에 살아남는 거목이 있다고요. 그리고 그 거목은 천 년을 도모하게 되는 법. 어떻습니까? 앞으로의 나라를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솎아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내 말을 듣고 있는 이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솎아낸다.

    이게 과연 무슨 뜻이겠는가.

    “이런 무식한 방법을 쓰는 건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 없군요. 해결해야 할 건 빠르게 마무리를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여기서 깔끔하게 우리의 업을 털고 갑시다.”

    나는 손을 들어 뒤에서 대기 중이던 조직원들에게 신호를 내렸다.

    그러자 그들이 몇몇 의원들과 차관들. 그리고 국방부 장관까지 끌고 오면서 장내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나는 억지로 끌려온 저들을 내려다보며 소리쳤다.

    “보십시오. 이들은 우리의 대의를 반대하고 사사로운 욕심에 사로잡혀 우리를 팔아먹으려 한 배신자들입니다. 이들을 지금까지 살려둔 이유는 앞으로 배신자가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지 여러분들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자, 시작할까요?”

    이곳은 단순한 별장이 아니다.

    거대한 저택으로 만들어 이렇게 넓은 회의장까지 두었다.

    이 회의장의 규모만 보자면 국회의사당보다 조금 넓다. 그리고 시설은 그보다 훨씬 월등하다.

    난 내 앞에 있던 버튼을 길게 눌렀다.

    그러자 조직원들 손에 붙잡혀 한가운데로 끌려 나온 이들을 주위에 케이지가 아래에서 위로 솟아올랐다.

    족히 수십 명이 안으로 들어가 싸울 수 있는 넓이의 케이지.

    조직원들은 케이지 위로 올라가 바닥으로 각종 무기들을 떨어뜨려 놓았다.

    칼, 도끼, 창, 돌, 펜 등.

    총을 제외한 다양한 원시 무기들이 바닥을 채웠다.

    모두 영문을 몰라 쳐다보고 있을 때, 내 곁에 있던 성일환은 진한 미소를 보였다.

    아마 이 장면은 오랜만에 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화진파의 전통처럼 내려오는 방법이 아니던가.

    어떻게 배신자들을 처리하는지 말이다.

    난 이제 그걸 이들에게 보여줄 생각이다.

    “모두 바닥에 있는 무기를 집으세요. 어떤 무기든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룰은 간단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상대를 죽이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최후의 1인은 그 케이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모든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 겁니다.”

    곳곳에서 경악 어린 기함이 터져 나왔다.

    내 이런 미친 행각이 충격적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어, 어떻게 그런 야만적인 행동을!”

    “우린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난 아직 이들에게 절반밖에 보여주지 않았다.

    이 싸움의 하이라이트는 단순히 저들의 싸움이 아니다. 그리고 난 저들이 스스로 싸우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안다.

    “다 데려오도록 해.”

    스피커를 통해 퍼지는 내 목소리에 따라 조직원들이 많은 사람들을 회의장 안으로 들였다. 갓난아기부터 대학생이 된 아이들. 그리고 노파와 중년, 젊은 여성들까지.

    처음에는 모두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지만, 케이지 안에 붙잡힌 사람들은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보이십니까? 저분들은 여기 배신자들의 가족입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사람들은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내 다음 말에 비명을 지르기까지 했다.

    “싸우지 않는다면 당신들의 가족들을 하나씩 죽이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그 케이지 안에서 죽는다면 가족들도 함께 목숨을 잃는 겁니다. 하지만 최후의 1인은 가족들과 함께 무사히 이곳을 나갈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제 제안이?”

    케이지 안에 있던 투사들이 발악하며 소리쳤다.

    “이, 이럴 수는 없어요! 제, 제발 가족들만은!”

    “이러지 말고 우리 문명인답게 대화로 풉시다!”

    “맞습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회장님!”

    난 그런 그들에게 비웃음을 던졌다.

    “하하, 문명인답게 대화를 나눈다고요? 야만적인 방법으로 저를 사장시키려 했던 분들이 뚫린 입이라고 잘도 떠드시는군요. 뭐 합니까? 얼른 시작하지 않고. 만약 계속 그 자세로 나온다면 저도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난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소!”

    누가 목청을 높이나 봤더니, 국방부 장관이었다.

    내가 잡히는 즉시 군부를 통제하려 했던 놈이지 않던가.

    나는 조직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들은 국방부 장관의 가족들을 끌어내 케이지 앞에 세웠다.

    “정 그러시다면.”

    내가 손을 까닥이자 조직원 하나가 가족들에게 총을 발포했다.

    “무, 무슨 미친 짓이야! 다, 당장 그만둬!”

    난 입가를 비틀며 충격에 빠진 장관을 꾸짖었다.

    “그럼 당장 바닥에 있는 무기를 들고 싸워! 끝까지 살아남으면 나머지 가족들과 평생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난 내가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야.”

    처음에는 충격과 공포로 몸을 부르르 떨던 국방부 장관은 차츰 몸의 떨림을 죽이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도끼를 집어 들었다.

    “하, 하 장관. 당신 미쳤어? 지금 뭐하는 거야?”

    어느 의원의 말에 국방부 장관은 이성을 잃은 눈동자로 대답했다.

    “그래… 어차피 다 죽을 바에는…….”

    “하, 하 장관! 으아아악-!”

    국방부 장관이 도끼를 휘두르면서 앞에 있던 의원의 머리가 으깨졌다.

    그래도 군부 시절 날아다닌 전력이 있었는지 힘이 장사다. 저 뒤룩뒤룩 살이 찌기만 한 머리를 한 번에 으깨 버릴 줄이야.

    “다 죽어라!!”

    “머, 멈춰!!”

    순간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국방부 장관의 도끼질에 모두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한 사람씩 목숨을 잃을 때마다 조직원들은 주저 없이 그와 관련된 가족들을 끌고 나와 처형식을 거행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도망가기만 하던 이들의 행동이 점점 달라졌다.

    자신이 죽으면 가족도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도 본능적으로 달라지는 것이었다.

    민주주의라는 체계. 헌법 위주라는 시스템.

    그런 것들로 채워진 족쇄가 저 케이지 안에서는 소용이 없다.

    결국 인간은 똑같이 야만적인 동물이지 않던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항상 강자만이 승리한다. 그리고 약자를 짓밟아야만 자신이 살 수 있다. 그 법칙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곳이 바로 저 케이지 안이다.

    “이 시발!!”

    “나는 끝까지 살 거야!!”

    모두 이성을 잃고 광기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면서 고통은 잊고 광기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순식간에 케이지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무기를 들고 상대를 미친 듯이 찌르고 베어버린다.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 다시 없을 끔찍한 인간의 본성이 폭주하는 참극이다.

    케이지 밖에 있던 사람들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

    어떤 이는 토악질을 해대며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조직원들이 그걸 허락해 주지 않았다.

    “모두 나가지 말고 똑똑히 지켜봐 주십시오. 저것이 바로 우리를 배신한 배신자들의 최후입니다.”

    나는 술이 따라진 잔을 들고 천천히 음미했다. 그리고 눈으로도 케이지 안에서 벌어지는 투사들의 싸움을 즐겼다.

    성일환도 오랜만에 보는 진풍경이었는지, 황규혁의 죽음으로 슬픔이 가득했던 눈이 사라지고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맞지도 않는 옷을 입으며 사장 노릇을 해야 하니 어지간히 답답했던 모양이다.

    역시, 우리에게는 이런 게 어울린다.

    피와 본능이 난무하는 세계.

    사뭇 예전 그 시절이 그립기까지 하다.

    “죽어, 이 새끼야!!”

    “크아아악-!”

    광기에 젖은 인간들의 팔이 잘리고 눈 하나가 사라져도 멈추지 않고 무기를 휘두른다.

    한 명씩 쓰러질 때마다 이 기괴하고 좀처럼 볼 수 없는 귀중한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가족들도 머리에 구멍이 뻥 뚫린 채 쓰러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술 한 병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쯤.

    “크으으…….”

    국방부 장관과 국정원 부국장만이 두 다리로 서 있었다.

    케이지 밖에는 단 두 사람의 가족들만이 남아 있는 상태.

    서로 아이가 있던 모양인지, 애 울음소리가 시끄럽다.

    난 마이크를 들고 대치만 하고 있는 둘에게 말했다.

    “얼른 하시죠. 전 애들 울음소리를 가장 싫어합니다. 갑자기 제가 마음이 바뀌어서 다 죽이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치달았다. 그리고…….

    푸욱-!

    “커헉-!”

    처음부터 지금까지 큰 활약을 보여주었던 국방부 장관의 다리가 꺾였다.

    부국장은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국방부 장관을 내려다보며 실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 내가 이겼어. 히히. 내, 내가 이겼다고!”

    하지만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지 않던가?

    푹-!

    “크악-!!”

    죽어가던 국방부 장관이 바닥에 있던 칼 하나를 집어 그대로 상대의 뒤를 찌르고 또 찔렀다. 그렇게 수십 번을 찌르기를 반복하니, 회의장 안에는 사람의 살을 파고드는 칼부림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내, 내가… 이, 이겼다.”

    무릎을 꿇은 채로 장관은 같은 말만 반복했다. 그러다 그도 결국 숨이 끊어졌는지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런… 아쉽군요. 최후의 승자가 당당히 케이지 밖으로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이거, 약속은 약속이니 지켜야겠죠?”

    난 웃는 얼굴로 조직원들을 향해 술잔을 들었다. 그러자 그들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장관의 가족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더 이상 애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비명 소리도 모두 사라졌다.

    조금 남은 거라고는 겁에 질려 흐느끼는 몇몇 여자 의원들의 소리랄까.

    “제가 울음소리를 가장 싫어한다고 했을 텐데요? 그게 농담인 줄 아셨나 봅니다.”

    내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장내가 고요해졌다. 그런데 그중 한 의원이 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악마!!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저런 끔찍한 짓을!”

    그렇게 보고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저놈이 무모한 것인가.

    “맞습니다, 어쩌면 저야말로 루시퍼의 환생일 수도 있지요. 그래서 어쩔 겁니까? 당신이 그 알량한 양심으로 절 심판하기라도 할 겁니까?”

    “…….”

    “그러니까 내가 뭘 하든 입 닥치고 있어. 여기 있는 너희들 모두 똑똑히 들어두는 게 좋아. 난 악마보다 더 지독하고 더 잔인해. 오늘 보여준 건 그냥 맛보기일 뿐이야. 정말 내 진면목을 보고 싶다면 이놈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 번 더 나를 건드려 봐. 그땐 어떤 구경거리가 나올지 아주 기대가 되는군.”

    난 길게 심호흡을 하며 노기를 누그러뜨렸다. 그리고 마무리를 지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십시오.”

    이들은 내 마음이 바뀔세라 후다닥 밖으로 빠져나가기 바빴다.

    이 지옥 같은 곳에 더는 머물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오늘 덕분에 좋은 구경했다.”

    성일환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게요. 저도 오랜만에 이 광경을 보는군요. 옛날보다 스케일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요.”

    “흐흐, 그런가? 난 오히려 옛날이 더 재밌던데. 그때는 조직원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했으니까. 그땐 싸움 보는 맛이 났었지.”

    “그렇습니까?”

    “그래. 아무튼, 나도 이만 돌아가마.”

    성일환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자리를 뜨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났는지 발걸음을 멈추고 내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예?”

    “루시퍼의 환생이라는 말 있잖아.”

    “아, 예.”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성일환은 그 말을 끝으로 휘적휘적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루시퍼의 환생이라.

    그냥 비유에 불과하지만 오늘은 확신할 수 있었다.

    난 그놈보다 더 악한 놈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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