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22화 (222/325)
  • 222화. 블랙 프라이데이

    “지금 러시아 상태가 어떻습니까?”

    “대호황입니다. 선발대로 간 우리 투자사들이 불을 지펴놓으니 개미들이 알아서 모여들었습니다.”

    러시아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은 지 이제 한 달째.

    일본의 버블 경제가 터지기 직전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사람들이 그야말로 미쳐 날뛰고 있더군요. 일본에서 유행했던 프리터족을 아십니까? 지금 러시아가 딱 그 꼴입니다. 정말 물 쓰듯이 돈을 쓰고 있어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러시아에 묶여 있던 대출 제한을 풀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달러로 돈을 빌리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은행장들이 요즘 죽는 소리만 하고 있지요.”

    생색을 내려는 것인가.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들에게는 잘 말을 해두세요. 손실을 보는 비용이 있다면 그건 내가 책임진다고 말입니다. 제가 담보를 선다면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다른 분도 아니고 회장님이시라면 누구라도 믿고 따를 겁니다.”

    수천 억 달러가 러시아로 유입되었다.

    내가 여기서 펑 터뜨린다면 막대한 손실을 입는 은행들이 나올 터.

    난 그들에게 피해를 본 비용만큼 보상을 해줄 생각이며, 그 보상금은 러시아에 떨어져 있는 전리품으로 채울 것이다.

    이들은 내 확답을 받자 안색이 훨씬 나아졌다.

    “이 회사들의 상태가 어떤지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예, 회장님.”

    투자사 대표들은 내가 건넨 서류를 읽으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저 회장님. 혹시 이 회사들의 주인이…….”

    “바로 보셨습니다. 러시아 레드 마피아들의 소유입니다. 그것도 러시아 3대 레드 마피아들의 소유이니, 결코 규모가 작진 않을 겁니다.”

    “역시 그랬군요. 그렇지 않아도 사전 조사를 했던 터라 대충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동향이 지금 어떻습니까?”

    “다른 곳과 똑같습니다. 갑자기 흐르는 폭포수에 몸을 맡기고 있죠. 지금 제정신이 아닐 겁니다.”

    제대로 돈놀이에 빠졌다는 건가.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내게 유리하다.

    “어느 시점이 가장 완벽할 것 같습니까? 여러 대표님들의 의견이 듣고 싶군요.”

    “이미 포화 상태입니다. 러시아에 있는 기업들도 미쳤고 국민들도 전부 미쳤습니다. 그 광기가 고작 한 달 만에 폭발했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을 만큼요.”

    일본 버블 경제와 비교해 봤을 때, 러시아는 그에 몇 배가 되는 광기를 보여주고 있다.

    소련이 붕괴되고 나서 극심한 침체기에 묻혀 있던 러시아다.

    어쩌면 이런 광기는 예언된 일이지 않을까.

    “저희 측에서는 일주일만 더 있다가 전부 빼버리면 어떨까 싶습니다.”

    “일주일이요?”

    “예, 그렇지 않아도 러시아 정부가 계속해서 정책을 내놓고 있지 않습니까? 해외 투자를 막고자 하는 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철수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뺀다면…….”

    “우리가 욕을 먹기보다는 러시아 정부가 욕을 먹는다는 것이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월가에서 오랫동안 굴러왔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이런 쪽으로 머리 돌아가는 건 기가 막히게 빠르다.

    “좋습니다. 그 말씀대로 행동에 옮기도록 하죠. 정확히 일주일 후에 철수합니다. 그때 모든 돈을 거둬들이고 채권도 풀어서 압박을 넣으세요. 러시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예, 회장님.”

    대표들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집무실 밖을 나갔다.

    일주일 후라…….

    러시아에 내려질 블랙 프라이데이가 다가오고 있다.

    * * *

    급락에 급락을 이어가는 증시.

    엄청난 급성장으로 1,500에 머물던 러시아 증시는 어느새 650까지 떨어졌다.

    러시아 금융원은 주가의 급락을 막기 위해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바람처럼 들어왔던 돈이, 다시 바람처럼 사라지고 있다.

    외국 은행을 통해 달러를 빌린 기업들은 벌써부터 채권 압박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에 따른 줄도산이 이어지고 있었다.

    “650……. 앞으로 여기서 더 떨어질까?”

    “원래 러시아 증시가 500대에서 머물렀습니다. 갑작스럽게 오른 만큼, 그 여파가 대단할 겁니다.”

    “그러니까 그 말은 650 아래로 더 떨어진다?”

    “예, 400대까지 내려갈 것 같습니다.”

    푸틴은 얼굴을 가리며 짙은 신음을 뱉었다.

    완전히 당했다.

    그 음흉한 동양인에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쪽으로 투자를 했던 외국 투자사들이 전부 러시아 정부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내놓은 정책은 외국 투자를 철저히 막겠다는 것으로 분석되어 어쩔 수 없이 돈을 뺄 수밖에 없었다고 말입니다.”

    “사기는 지들이 쳐놓고 책임은 우리에게 묻겠다?”

    “자기들은 죄가 없다고 발을 쏙 빼고 있습니다.”

    “이런 사기꾼 새끼들! 당장 그놈들을 전부 잡아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장관들이 아우성을 치며 푸틴에게 요구했지만, 그는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잡아와? 어떻게? 구속영장이라도 보낼까? 미국 정부에서 잘도 우리에게 그놈들을 양도해 주겠군.”

    “…….”

    현실적으로 그들을 붙잡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기죄로 고소하겠다며 미국 정부를 협박할 순 있다. 하지만 이미 부시가 밝히지 않았던가? 제2의 냉전시대가 열린다고 할지라도 미국은 절대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거라고.

    “제 생각으로는… 협상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푸틴은 새로운 의견을 내놓는 SVR 국장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협상?”

    “예, 그 협상의 대상이 누군지는 총리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국장의 말을 회의실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었다.

    “대장끼리 만나서 결판을 내라?”

    “어차피 그 작자가 이런 쇼를 한 이유는 바로 총리님과 제대로 협상을 하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일방적으로 우리 러시아를 두드려 팬 놈이야. 지나가다 총을 맞지 않으면 다행인 거라고.”

    “정말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앞으로 더 끔찍한 일들이 우리 러시아를 휩쓸게 될 겁니다.”

    국장은 덤덤하게 푸틴의 말을 받아쳤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암살은 저도 이미 생각해 본 옵션입니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저번 날 미스터 블랙을 납치하셨다가 어떤 협박을 들었는지?”

    푸틴이 미스터 블랙을 납치해 독대를 했다는 건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

    그러나 무슨 이유로 그가 풀려났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놈이 감히 총리님께 협박을 해요?”

    “예, 그것도 지독한 협박이었죠. 모스크바 한복판에서 핵탄두를 터뜨리겠다고 했으니까요.”

    “뭐, 뭐요?!”

    장관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모양인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체르노빌 사건이 아직도 눈에 선한 그들이 아닌가?

    “총리님과 동등한 입장에서 다시 협상을 하고 싶은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만나보시겠습니까?”

    이미 러시아를 대표하는 3대 레드 마피아들이 운영하는 회사들은 차례로 무너지고 있다. 마치 이걸 노렸다는 듯이 해외 자본에 집중 공격을 받아 그리된 것인데, 이로 인해 세를 떨치던 레드 마피아들은 당분간 소강상태에 접어들 터.

    경제적으로 상대를 무너뜨렸으니, 그다음은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러시아 곳곳에 잠입해 있는 메데인 카르텔이 그들을 쓸어버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자네가 연락을 할 건가?”

    “예, 러시아로 오라고 하겠습니다.”

    “순순히 올까? 암살의 위협도 있을 텐데.”

    “미스터 블랙은 아마 여기까지 예상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멍청한 짓이라.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없애야 할 놈인데, 그러질 못하고 있는 이 현실이 참담하기만 하다.

    “좋아. 날을 한번 잡아보지.”

    “예, 총리님.”

    * * *

    블랙 프라이데이.

    광기로 가득 찼던 러시아가 혼돈으로 가득 차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혼돈과 어둠으로 가득 찬 러시아의 금요일은 전 세계의 시장 흐름과 비슷했다.

    “이것은 명백히 러시아 정부의 잘못입니다. 우리는 러시아를 최고의 투자 지역으로 뽑았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우리를 사기꾼으로 몰아 갖은 정책으로 해외 자본 유입을 막았지요. 우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

    골드만삭스에서 정식 발표가 나왔다.

    월가의 투자사가 전부 돈을 거둬들인 건 러시아 정부가 내놓은 정책 때문이라는 것.

    이 일로 인해 러시아 주가는 바닥을 치는 중이었고 혼란에 빠진 개미들은 갈팡질팡하는 중이다.

    단순히 러시아뿐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한국 등등 전 세계의 개미들이 달려든 시장이 바로 러시아다. 그리고 하늘 높은 줄 모르며 치솟던 주가가 고작 하루 만에 반토막이 났다.

    전 세계를 덮친 블랙 프라이데이.

    당연히 비난의 화살은 처음부터 작전을 시작하고 주가를 돈으로 조작한 투자사가 아니라 바로 러시아 정부였다.

    이래서 언론의 힘이 무서운 것이다.

    사람들은 언론의 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니까.

    “레드 마피아들이 운영 중이던 회사 250곳이 부도 신청을 냈습니다. 또한 러시아 대기업들도 흔들리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시시각각 들어오는 정보를 받아들이며 러시아 현황을 파악했다.

    내 예상대로 작전은 성공이다. 아니, 기대 이상이다.

    이 정도로 많은 개미들이 우리의 작전에 참여해 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당초 우리가 예상했던 수치보다 세 배나 많은 자금이 개미들로부터 투입되었으니, 러시아는 가히 경천동지할 노릇일 터.

    “그런데 러시아가 이대로 추락해 버리면 그것도 큰일이 아닐지…….”

    김아름은 줄곧 숨기고 있던 우려를 드러냈다.

    “압니다. 러시아가 소련처럼 또 무너지게 되면 그 혼란은 이루 말할 수가 없겠죠. 전쟁에 미친놈들이 권력을 잡는 순간, 3차 대전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요. 거기다가 러시아가 폭삭 망해 버리면 주변국들도 곤욕을 치르게 될 겁니다.”

    “그런데도 계속하시는 겁니까?”

    “어쩌겠어요. 저쪽 대장이 나서야 하는데 안 나서고 버티지 않습니까?”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김아름은 더 이상 반문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회장님, SVR 국장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했습니다.”

    일전에 열어둔 핫라인으로 SVR 국장이 전화를 걸었다.

    그가 전화를 걸었다는 건 푸틴의 명령 때문일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국장님.”

    “처음 인사드리는군요, 회장님.”

    이미 목소리부터 노기가 느껴진다.

    최강이라 자부했던 러시아가 속수무책으로 두드려 맞았으니 그 자존심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까.

    “이 이른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회장님,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전화한 이유를 아실 텐데요?”

    신변잡기 할 마음은 없으니,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얼른 들어가자는 것인가.

    나도 원하는 바다.

    “총리님께서 저와 만나기를 원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만남 장소는 모스크바…….”

    “아니요, 제가 왜 굳이 고생해서 거기까지 가야 합니까? 만남 장소는 백악관. 직접 비행기 타고 오십시오.”

    “뭐, 뭐라고요?”

    “싫음 말던가요. 솔직히 급한 사람이 와야지, 느긋한 사람이 가야겠습니까?”

    이를 가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요.”

    “하하, 실수라. 그 실수 한번 거하게 또 해볼까요? 지금도 망신창이가 된 러시아인데 여기서 제가 또 흔들어놓는다면 어떻게 되는지 보시겠습니까?”

    “…….”

    국장은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 네 총리한테 똑똑히 전해. 내 얼굴 보고 싶으면 백악관으로 오라고. 사람한테 오라 가라 하지 말고 말이야. 알았어? 그리고 한 번만 더 건방지게 나한테 말했다가는 네 인생도 거기서 끝장날 줄 알아.”

    나는 거칠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디서 감히 심부름꾼 따위가 자존심을 드러낸단 말인가.

    그저 고개만 숙이고 앵무새처럼 말만 전달하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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