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08화 (208/325)
  • 208화. 진정한 지배자 (1)

    “모두 회의실로 모여주십시오.”

    대기업 총수와 고위급 간부들만이 참석할 수 있는 전동련.

    언론 플레이를 위한 연회가 끝이 나고 이제부터 진짜 회의가 시작되려 한다.

    모두 회의장에 모여 각자의 자리에 앉았고, 상석은 비어져 있었다.

    왜냐하면 저곳은 나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김태산 부회장님의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모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상석에 다가가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자리에 앉자. 저들도 다 같이 자리에 앉아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모두 이렇게 모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회의를 통해 여러 중요한 안건을 처리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회의 진행에 모두들 성심성의껏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예, 부회장님.”

    나의 시작 멘트가 있고 난 뒤, 첫 안건 발의자가 일어서 발언하기 시작했다.

    “그럼, 첫 번째 안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6월 15일에 남북 정상 회담이 열리게 됩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이 화전양면 전술을 벌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대마 그룹이 앞장서서 북한으로 회사를 진출시키고 있는 이 중요한 시기에 북한이 또 도발을 일으키게 되면 회사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 예상됩니다.”

    누가 말을 하고 있나 보니, 대마 그룹 회장을 따라온 고위 간부였다.

    난 짧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이건 마치 저를 심문하는 것 같군요. 저더러 북한의 행동을 예측하고 통제라도 해달라는 겁니까?”

    “부회장님, 대마 그룹은 수천억이 넘는 돈을 북한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일이 꼬이면 아무래도 복잡해지지 않겠습니까?”

    북한의 화전양면 전술은 한두 번 당해보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북한으로 넘어가 공장을 세운다는 것도 큰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일.

    즉, 대마 그룹은 내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저번에 북한을 한번 다녀왔습니다.”

    내 대답에 회의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이 순간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북한… 으로요? 부회장님이?”

    “예, 중국 외교관들과 함께 넘어갈 일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도 만나보았지요.”

    “그, 그게 사실입니까?”

    “하지만 그런 말은 없었는데…….”

    당연히 저들은 모를 것이다. 중국과 북한 측에서도 은밀하게 진행한 일이니까.

    물론, 한국 정부에서는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청와대에서도 알고 있는 일입니다. 대통령님이 북한으로 넘어가시기 전에 제가 사전 점검을 했다고 하는 게 맞겠군요. 아무튼, 개성 공단에 관한 일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피해가 없도록 제가 잘 조율해 드리지요.”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대마 그룹 회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다음으로는 대선에 관한 내용입니다. 현재 지지율을 보면 여당의 노승엽 의원과 야당의 이현진 의원이 대등한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 중 누구를 청와대에 보내시겠습니까?”

    한 나라의 대통령이 바로 이 회의에서 결정된다.

    참 무서운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건 다른 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이라고 해서 우리와 다를 거라 보는가?

    이들도 500인 회의라는 재벌들의 모임을 통해 차기 대통령을 결정짓는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전동련에서 차기 대통령을 뽑는다.

    누구에게 돈이 흘러가냐에 따라 언론이 따라줄 것이며, 그 언론에 따라 국민의 마음이 움직이는 법이니까.

    “이미 총선에서는 여당이 야당에게 큰 패배를 당했습니다. 국민들은 진보보다는 보수가 낫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요. 이럴 바에는 차라리 보수 쪽에 표를 몰아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진보를 뽑기보다는 차라리 보수를 뽑는 게 어떨지…….”

    “하지만 지금은 북한과 외교적으로 잘 풀리고 있는 때입니다. 괜히 보수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가 불똥이 튈 수도 있어요. 그냥 여당에 표를 줘서 이번 대선까지는 진보 정권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좋을 것 같군요.”

    한쪽은 보수, 다른 한쪽은 진보.

    저마다 원하는 게 다르니,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될 만한 정권을 밀고 있다.

    예전에는 이들이 투표를 통해 어떤 정권을 밀어줄지를 택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든 결정권은 나한테 있다.

    “진보로 갑시다.”

    “……!”

    어수선하던 회의장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북한과의 관계가 진척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화진 그룹도 조만간 북한으로 진출할 생각이고요. 이런 와중에 북한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보수 정당에게 정권을 맡기기에는 위험성이 큽니다. 지금은 진보에 힘을 실어주어 북한을 달래는 것이 좋을 듯 보입니다.”

    “부회장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야…….”

    “흠흠.”

    이번 안건은 여기서 결정이 되었다.

    차기 대통령은 역사대로 노승엽이 될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을 뽑을까 싶었지만, 그냥 가만히 놔두기로 결정했다.

    대통령을 바꾸는 일이다. 그런 내가 알고 있는 미래가 크게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주변 사람들을 이용해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게 낫다.

    어차피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크게 패하는 바람에, 노승엽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도 제대로 힘을 발휘하진 못할 것이다. 어쩌면 취임하는 순간부터 식물 정권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실제로도 노승엽은 탄핵 소추안까지 발의될 만큼 최악의 상황까지 몰린다. 물론, 법원에서 기각을 시키긴 하지만 식물 정권에서는 영영 벗어나지 못하게 되리라.

    “다음 안건으로는 장성들에 관한 임명 문제입니다. 현 정권에서는 진보 성향이 강한 장성들을 뽑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번 뇌물수수 혐의로 직위가 박탈된 국방부 장관과 육군참모총장 자리 때문인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전동련 회의는 원래 이렇지 않았다.

    이 정도로 정권에 깊숙이 관련하는 곳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거의 노조에 관한 문제를 풀거나 혹은 단합을 통해 가격을 맞추는 등, 외부에는 밝힐 수 없는 구린 일을 꾸몄다. 하지만 지금은 그 근본부터가 달라졌다.

    내가 전동련의 핵심이 되면서부터 참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여기서 장관부터 장성급까지의 자리가 결정되기도 한다.

    나는 비서가 건넨 리스트를 찬찬히 살피며 몇 명을 지목했다.

    “이 사람들이면 될 겁니다.”

    이들 모두 내가 키운 군 간부들이다.

    국방부 장관과 육군 참모 총장은 내 쪽 사람이 아니라서 뇌물 문제를 파고들어 자리를 박탈시켰다.

    단순히 국회를 점령한다고 해서 나라를 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군부까지 장악을 해놓아야 마음이 놓이지 않겠는가?

    그래야 누구도 내게 함부로 대항할 수가 없다.

    “이 내용을 청와대에 전달하도록 하세요. 만일 그쪽에서 다른 얘기가 나온다면 그때 따로 제게 말씀을 해주시고요.”

    “아마 부회장님의 말씀대로 청와대도 따를 겁니다.”

    “그래야 할 겁니다. 그런데 제가 추천한 사람을 뽑지 않고 청와대가 다른 리스트를 만든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라고 꼭 말씀해 주십시오. 그 리스트에 적힌 사람들 전부 줄초상 나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예, 부회장님.”

    청와대의 귀와 입술이 되어주는 대리인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나라의 대통령조차 나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끼는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는 나의 힘에 두려움을 표하는 것인가.

    “남북 정상 회담이 끝나면 IMF에서 우리나라에게 빌려 준 부채를 전부 상환하게 될 겁니다. 그럼, 여기 계신 분들도 전부 안심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긴장을 늦추지 마십시오. 철에 따라 폭풍은 항상 오는 법이니까.”

    “예, 부회장님.”

    이미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는 외환 위기에 고꾸라져 나라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심각한 위기 속에 있었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인 이상하게도 위기가 생기면 하나로 뭉치는 미스터리한 힘이 있어 생각보다 금방 외환 위기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문제라면 그들의 힘 덕분에 나 같은 재벌들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만큼 재벌들이 살기 좋은 땅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정치권은 재벌을 탄압하기보다 섬기고 있고, 만일 재벌이 잘못을 저지르면 솜방망이 처벌로 끝을 낸다.

    가끔 보여주기식으로 크게 칼을 휘두르기도 하지만, 아주 잠깐뿐이다.

    조만간 이 땅은 국민들에게 ‘헬조선’이란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얻게 되지만, 재벌들에게는 ‘헤븐’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러나 이 재벌들에게도 폭풍은 오게 마련이다.

    재벌들 중에 더 큰 재벌을 만들고자 하는 폭풍.

    바로 나 같은 존재를 위한 폭풍 말이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IMF 사태 이후로 다들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텐데, 곧 있으면 외환 위기도 끝나게 될 테니 그땐 다 같이 모여 축배라도 들어야죠.”

    지긋지긋한 외환 위기가 드디어 끝난다는 통보에 전동련 회원들은 안색을 밝게 폈다. 하지만 외환 위기가 끝난다고 해서 내가 붙잡고 있는 개 목줄이 느슨해지진 않을 것이다.

    내가 외국에 나가 있다고 해서 이들에 대한 보고가 들어오지 않는 게 아니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수많은 정보들을 받고 그것들을 추려낸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의 힘이 있어야 이 나라가 살 게 아닙니까?”

    어느 정도 시간이 되어 나는 마무리 멘트를 내놓았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그리고 중반부터는 강세를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간혹 이 나라의 근간을 흔들어놓으려고 하는 불손한 세력들이 있다는 얘기가 들어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닙니까. 오직 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힘쓰는 우리에게 몹쓸 짓을 하려는 세력이 있다니…….”

    내가 스윽 시선을 돌리자 전동련 회원들은 감히 눈도 못 마주치고 고개를 숙였다.

    괜히 내 눈에 찍혔다가는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난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럴 때면 제가 어쩔 수 없이 강압적인 방법을 씁니다. 때론 상식보다 물리적인 힘을 통하는 것이 빠른 해결 방법을 제공해 주니까요. 그리고 제가 바라건대, 여기 계신 분들에게 그런 험한 짓을 벌이고 싶진 않군요. 제 말씀, 이해해 주실 수 있겠지요?”

    “예, 부회장님.”

    대답 하나는 잘한다.

    “앞으로 우리가 하나로 힘을 합친다면 우린 더 잘살 수 있습니다.”

    즉, 반항하지 않고 내 통치에 따르기만 한다면 지금처럼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나라는 그 어떤 때보다 더욱 막강해질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세계 최고로 범죄율이 낮은 나라. 땅은 작지만, 세계 최강의 힘을 가진 나라, 대한민국. 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입니까? 우리가 서로 분열되지 않고 계속 힘을 모은 채로 나라를 운영한다면 머지않아 가능하게 될 겁니다.”

    그 어떤 나라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강해질 수 있는 나라.

    세계 최대 강국, 대한민국.

    그것이 내가 원하는 조국의 모습이다.

    “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 중 누구라도 그 뜻에 반하여 행동한다면 저는 나라의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잔인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금도 전국에 CCTV가 깔리는 중이다. 그리고 경찰은 범죄자를 잡기 위해 더욱 크게 활동을 하며 시시각각 범죄율을 낮추고 있다. 이대로만 간다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범죄율이 낮은 나라가 될 터.

    하지만 그건 단순히 외부적으로 공개된 범죄율을 뜻한다. 공권력도 간섭할 수 없는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여기 있지 않은가.

    그것도 한 기업을 대표하는 재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사람.

    진정으로 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단 한 사람.

    “모두 제 마음을 부디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나 김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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