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81화 (181/325)
  • 181화. 오랑캐는 오랑캐로 (6)

    “고, 골든 연합……!”

    이 노련한 남성은 골든 연합을 분명히 알고 있다.

    조금 규모가 있는 조직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골든 연합을 알 수밖에 없을 터. 이미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조직이 아닌가.

    진입하기 힘들다는 러시아까지 치고 들어간 메데인 카르텔은 골든 연합의 선봉장으로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거기다가 다니엘 로페즈가 운영 중인 마피아도 미국 최고의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이쪽 세계에 빠삭한 사람이라면 골든 연합을 모를 수가 없다.

    “그것도 수장?”

    적잖게 놀라 보이는 이 남성은 눈을 몇 번 깜빡이다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완전히 당했군.”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세계를 장악해 나가고 있다는 골든 연합이 언젠가 중국에 들어올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훅 치고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

    “저희 조직에 관심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당연하지, 세계적으로 그 정도의 규모를 갖추고 있는 연합은 없으니까.”

    전 세계에 있는 마피아 조직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것 같았다.

    “이거야말로 손자병법 아닌가? 적과 적이 싸우게 한 뒤, 그 둘을 동시에 잡는다라……. 하하, 설마 계략에 우리 화자두가 놀아날 줄이야.”

    “누구라도 걸렸을 겁니다. 아까도 보세요. 제가 돈을 퍼다 나르니, 다들 껌뻑 죽지 않습니까. 돈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골든 연합의 힘은 결국 돈이다?”

    “돈은 그 누구보다도 많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남성은 피식 웃으며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두목들을 바라보았다.

    “화자두와 천지회가 한탕 하고 나면 골든 연합의 조직원들이 들이닥치는 건가?”

    “잘 알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결코 포기를 가리키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를 보는 듯했다.

    “좋아. 그럼, 나와 거래를 하지.”

    “거래요?”

    “그래. 원활하게 화자두와 천지회를 정복하고 싶지 않나? 이대로 가면 어차피 그쪽도 많은 피를 보게 될 거야. 설사 우리 모두를 잡는다고 해도 화자두가 다스리던 이 상하이를 순식간에 관장하기란 쉽지 않지.”

    틀린 말은 아니다. 줄곧 그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해왔었고, 아직 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덥석 미끼를 무는 건 초보나 하는 짓이다.

    “제가 왜 당신과 거래를 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걸 원치 않았다면 처음부터 내게 정체를 밝히지 말았어야지. 내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자네를 붙잡아 무릎 꿇릴 수 있어. 아니면 이 자리에서 머리통을 날려 버릴 수도 있지.”

    난 힐끗 미소를 지으며 받아쳤다.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는 골든 연합의 수장입니다. 그 뜻은 수많은 사람들이 저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 명의 스나이퍼들이 이 사무실을 조준하고 있어요. 당신이 품 안에 있는 총을 꺼내드는 순간, 그들이 당신의 머리통을 먼저 날려 버릴 겁니다.”

    남성은 모든 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줄곧 여유 있는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꽤 하는군. 역시, 젊은 나이에 그 거대한 연합을 이끄는 지도자답다고 해야 하나.”

    “기본 중의 기본이죠. 전 절대 제 목숨을 담보로 일하지 않습니다. 안전이 최우선이지 않겠습니까.”

    “하하, 좋아. 자네가 이겼네, 이겼어. 그냥 나는 여기 앉아서 임종을 기다리면 되는 건가?”

    “발버둥이라도 치시는 줄 알았는데요.”

    “발버둥치는 순간 총살이라고 경고까지 들었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하나? 그냥 조용히 기다려야지.”

    포기가 빠른 건가. 아니면 협상을 위한 밀당인가.

    이번에는 내가 넘어가 줘야겠다.

    “좋습니다. 그럼, 각자 원하는 게 뭔지 한번 알아볼까요?”

    새침하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던 남성은 그제야 부드럽게 인상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부터 말하도록 하지. 화자두와 천지회를 정리하고 나면 내가 최우선적으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 도움을 주겠네. 저기 있는 멍청한 놈들보다 차라리 나 혼자 정리를 해주는 게 백배 천배는 나을 거야.”

    그건 방금 전 회의를 통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다.

    “좋습니다. 대신, 화자두와 천지회를 접수하는 건 바로 메데인 카르텔이 될 겁니다. 그들에게 조력을 해주셔야 할 겁니다.”

    “메데인 카르텔이라……. 역시 그들이었나. 그렇지 않아도 천지회가 메데인을 한번 건드렸다고 들었는데. 그 보복에 우리 화자두까지 엮인 거였구먼.”

    “이왕 청소를 하는 거 한꺼번에 하는 게 좋으니까요.”

    남성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수십 년을 이어온 조직인데, 이렇게 쉽게 뽑힐 줄이야.”

    “감성적이시군요.”

    “당연하지, 내가 20년 동안 이 조직에 충성을 다했는데.”

    20년 동안 충성을 다한 사람치고는 방향 전환이 빨랐다. 나의 눈빛을 의식한 것일까. 노년의 남성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말게. 나이가 드니까 눈치도 빨라지고 젊은 날 패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은 노년의 욕망만으로 움직이는 거니까.”

    모험보다는 안전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제 내가 원하는 걸 말해볼까?”

    상대는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제 내가 상대의 제안을 받아들일 차례였다.

    “어차피 처음부터 이건 나한테 불리한 계약이야. 그쪽이 갑이고, 난 을이니까. 그러니 무리한 부탁은 하지 않겠네. 메데인 카르텔이 상하이를 점령하고 나면 나는 그들을 도와 안정이 잡히도록 해주지. 대신, 내게도 두목 자리 하나는 던져줘야겠어.”

    메데인 카르텔이 중국을 점령하게 되면 화자두처럼 여러 명의 두목이 필요할 터.

    이 남자는 그중 한자리를 자신에게 던져 달라는 뜻이었다.

    요구하지 않아도 그렇게 해줄 생각이었다.

    “좋습니다.”

    “쉽게 받아들이는군.”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으신 것 같아서요.”

    “하하. 첫 대면 만에 그걸 알 수 있다고?”

    “그건 차차 알아가면 됩니다. 그리고 제가 평생 이쪽 세계 사람들만 상대해서 그런지 눈썰미 하나는 누구보다 좋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남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것 같군. 그럼 이걸로 거래 성립인가?”

    “그렇습니다.”

    내가 먼저 손을 건네자 남성도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라우팽이라고 합니다.”

    거래가 성사되니, 라우팽은 스스로의 이름을 밝히며 극존칭을 썼다.

    “라우팽 씨,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인사를 길게 나눌 수 없을 것 같군요. 당장 여기부터 해결해야 하니까요.”

    “하하, 그렇죠. 그럼, 오늘부터 골든 연합의 일원이 되었으니 나름 활약상을 펼쳐 보이겠습니다.”

    라우팽은 쓰고 있던 모자를 살짝 비틀어 내게 인사를 올렸다. 그런 다음 언성을 높여가며 명령을 내리고 있는 두목들에게 다가갔다.

    무얼 하려는 걸까. 설마 여기까지 와서 나를 배신할 생각은 아닐 테고…….

    “이보게, 친구들.”

    “뭐 하는 거야! 지금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여기서 다 죽고 싶지 않으면 너도 빨리 움직여!”

    다른 두목들은 라우팽을 욕설로 다그쳤다. 하지만 그는 평온한 얼굴로 온몸에 문신을 한 두목 하나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너무 급하게 움직이는 것 같아서. 좀 쉬라고.”

    “무, 무슨 짓… 크아악-!”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도 깜짝 놀랐다.

    라우팽은 칼 한 자루로 상대의 목을 그어놓은 다음, 바로 옆에 있는 두목의 심장을 정확하게 찔렀다.

    “이 개새끼! 뭐 하는 짓이야!”

    “하하, 정들었던 자네들과 나름 고별식을 갖는 거지.”

    비명 소리를 듣고 다른 두목들이 달려왔지만, 그는 태연하게 품 안에 있던 총을 들고 발포했다. 한 발, 한 발이 아주 정확하게 상대의 이마를 꿰뚫었다. 한두 번 쏴본 솜씨가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저 새끼부터 잡아!!”

    “두목을 지켜라!”

    네 명의 두목이 라우팽의 손에 속절없이 죽어나가면서부터 회의장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죽은 두목의 조직원들과 그렇지 않은 조직원들. 그리고 라우팽의 조직원들이 서로 섞여 싸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굉장히 아무렇지도 않게 싸움을 하는 사람이다.

    뭐랄까. 마치 중국판 성일환을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이게 무슨 미친 짓이야!”

    너무 놀라 손발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샤오쯔이도 조직원들 뒤에 숨어 라우팽에게 욕설을 날렸다. 라우팽은 태연한 얼굴로 피가 묻은 칼을 닦아내며 말했다.

    “샤오쯔이, 자네도 알고 있었잖아. 대두목이 힘을 상실했을 때부터 이미 화자두는 서로의 욕심을 위해 움직이는 단체가 되었어. 미래가 없다는 거지. 그러니까 밑바닥에서 구르는 천지회 같은 놈들이 우리를 겁도 없이 치는 거 아니겠어?”

    “그거랑 이게 지금 무슨 상관이라고…….”

    “상관있지. 침몰하는 함선에서 함께 죽을 순 없잖아. 살 사람은 살아야지.”

    “이 개자식!”

    샤오쯔이는 분노로 치를 떨며 침을 뱉어버리고는 내게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라우팽과 다르지 않게 평온한 내 얼굴을 본 탓일까.

    “서, 설마 당신이…….”

    “생각보다 눈치가 별로 없으시네요. 맞습니다. 천지회를 이쪽에 끌어들인 건 바로 접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라우팽 씨도 저희와 뜻을 함께하기로 했고요.”

    나와 라우팽을 번갈아 쳐다보던 샤오쯔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쳤어. 당신들 다 미쳤다고! 너희들이 감히 누굴 건드린 줄 알아?!”

    “알다마다요. 중국 최고의 삼합회 화자두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타이틀도 사실은 허울뿐이라는 걸 전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이렇게 뒤통수를 쳐드리는 겁니다.”

    더 이상 길게 볼 것도 없을 것 같았다.

    얻을 건 다 얻었고, 이제 여기 있는 쓰레기들을 정리하기만 하면 된다.

    나는 반대편 건물에서 잘 보이게 손을 흔들며 얼른 청소를 시작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라우팽 씨, 혹시 모르니까 엎드려 계세요.”

    “하하, 보스께서 이렇게 서 계시는데, 저만 혼자 숨을 순 없죠.”

    벌써부터 라우팽은 간질간질한 아부를 시작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샤오쯔이에게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샤오쯔이 씨. 당신의 아름다운 외모는 절대 이런 쪽 일을 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더군요. 아까워도 어쩌겠습니까.”

    “내가 너희 둘 다 죽여 버릴 거야!”

    “그렇게 하세요. 할 수 있으시다면.”

    “뭣들 하고 있어! 저 두 놈부터 쏴버려!!”

    샤오쯔이는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그 광기 어린 명령에 조직원들은 각자 총을 들고 나와 라우팽을 조준했다.

    깜짝 놀란 진대섭이 내게 말했다.

    “사장님! 얼른 피하십시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

    타탕-! 타타탕-!

    내 뒤로는 든든한 아군이 있는데 말이다.

    “크악-!”

    “컥-!”

    나를 조준하고 있던 조직원들의 가슴과 머리에 큼지막한 구멍이 생겨났다.

    유리창을 뚫고 온 총알들이 박힌 것이었다.

    미리 반대편 건물에서 대기 중이던 조직원들의 작품이다.

    “이, 이건 뭐…….”

    회의장에서 난투를 벌이던 조직원들은 그제야 반대편 건물에 스나이퍼들이 깔렸다는 걸 눈치챘다.

    당황한 샤오쯔이는 도망치는 조직원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안녕히 가십시오, 샤오쯔이 씨.”

    타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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