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80화 (180/325)
  • 180화. 오랑캐는 오랑캐로 (5)

    “지금… 뭐라고 하셨죠?”

    “방금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어제 저녁 천지회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샤오챵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아주 흥미로운 제안을 했죠.”

    “그 흥미롭다는 제안이 천지회더러 우리 화자두를 없애라는 거다?”

    “예, 바로 그렇습니다.”

    진대섭을 통해 내 말을 들은 샤오쯔이가 뭐라 소리를 쳤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조직원들이 달려와 나와 진대섭에게 칼을 들이댔다.

    “여기 상하이는 상대가 뭐만 말하면 칼을 들이대는 게 취미인가 봅니다.”

    “당신이 먼저 우리를 도발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거지요.”

    “샤오쯔이 씨는 그나마 머리가 좀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경솔하시네요.”

    “뭐라고요?”

    나는 전혀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샤오쯔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생각해 보세요. 제가 천지회랑 손을 잡았다고 왜 샤오쯔이 씨에게 말했겠습니까?”

    “그거야…….”

    “전 지금 샤오쯔이 씨에게 도움을 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천지회를 말살시킬 수 있는 완벽한 기회를요.”

    그제야 뭔가 눈치를 챘는지 샤오쯔이는 눈짓을 통해 조직원들이 칼을 거두도록 했다.

    “일단… 들어는 보죠.”

    샤오쯔이는 다시 요염하게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천지회에게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현재 화자두는 외형이 커 보이지만, 내실이 잡히지가 않아 외부적인 공격에 아주 취약할 거라고.”

    정곡을 찌른 탓인지 잔을 들고 있던 샤오쯔이의 손이 살짝 떨려왔다.

    “그래서요?”

    하지만 의외로 대답은 침착하게 했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했죠. 화자두를 다스리고 있는 두목들은 서로를 끝장내기 위해 칼을 갈고 있는 상황이니, 그들이 내분을 일으키도록 조장하겠다고 했죠.”

    샤오쯔이가 힐끗 미소를 보였다.

    “화자두에 대해 아시는 게 많네요.”

    “모르는 게 이상하겠죠. 화자두 안에서 춘추전국시대가 벌어진다는 건 이미 유명한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당당하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것도 화자두의 일원한테 말이죠.”

    그녀의 눈웃음에 따라 나도 비슷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제가 왜 천지회한테 그런 제안을 했는지 아십니까?”

    “대충은요. 천지회를 속이겠다는 거잖아요, 지금?”

    “맞습니다. 화자두에 있는 두목들이 내분이 일어난 척해준다면, 천지회는 주저 없이 움직일 겁니다.”

    천지회는 지금 화자두에 내분이 일어나라고 간절히 고사를 지내는 중이다. 그래야 역습을 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길 테니까.

    “우리 두목님들이 잘 움직여 줄지…….”

    “이게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아니면 제가 직접 두목님들을 하나씩 만나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만나게 되실 거예요. 7명의 두목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천지회를 몰아내는 일에 대해 긴밀히 회의를 하기로 했거든요.”

    7명의 두목들을 한자리에서 만난다라.

    통역을 하던 진대섭은 아찔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에 반해 나는 꽤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저도 준비를 하겠습니다.”

    “예, 곧 연락을 드릴게요. 그리고 현찰로 1억 달러를 준비하시는 일도 절대 잊지 마세요.”

    현찰로 1억 달러라니.

    역시 발상부터가 양아치인 놈들이다. 하지만 원한다면 뜻대로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입니다.”

    어차피 이놈들이 그 돈을 만질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 * *

    정확히 이틀 후, 화자두에게서 연락이 와 약속 장소를 알려주었다. 예상대로 그들이 장소로 잡은 곳은 화자두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상하이 그랜드 빌딩이었다.

    고층으로 만들어진 빌딩으로, 중국 최고의 삼합회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위용을 자랑한다.

    나는 약속 시간과 장소를 받자마자 강철중을 호텔 룸으로 불러들였다.

    “사흘 후요?”

    “예, 가능하시겠습니까?”

    급하게 중국으로 들어와 최종 인원 점검에 나섰던 강철중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게 아니라서 훨씬 편하겠군요.”

    “예, 그리고 이번 작전에는 단순히 우리만 끼어드는 게 아닙니다. 천지회가 화자두를 깡그리 밀어 버리면서 어느 정도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바로 그때 움직이셔야 합니다.”

    “예, 사장님. 명심하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신호를 주긴 하겠지만, 아무튼 가능한 최고의 멤버들로 구성해 주세요.”

    “걱정 마십시오. 짱깨 놈들의 오금이 저리도록 만들 수 있는 멤버들로 이미 구성을 해놓았습니다.”

    듬직한 강철중을 보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럼, 메데인 카르텔은 뭘 하면 좋지?”

    그러고 보니 로이의 존재를 깜빡 잊고 있었다. 그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나와 강철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로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지 않나요? 화자두와 천지회가 동시에 무너지게 되는 순간, 로이는 잔당들을 복속시키거나 제거를 해서 이 구역을 전부 메데인의 것으로 만들어야죠.”

    “음? 잠깐만. 그 말은 단순히 천지회만 없애는 게 아니고……”

    로이의 물음에 나는 음흉한 입꼬리를 씰룩이며 대답했다.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둘 다 없애야죠.”

    오랑캐를 오랑캐로 무찌른 다음, 남은 오랑캐는 내 손으로 요절을 내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 * *

    “반갑습니다, 여러분. 리턴 컴퍼니의 금융사 사장, 김태산이라고 합니다.”

    나의 인사를 시작으로 화자두 두목 회의, 아니, 심사가 시작되었다.

    “일단…….”

    “아아, 그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지? 어차피 서로 얼굴 보며 오래 앉아 있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말이야.”

    시작부터 삐딱하게 나오는 사람이 있다.

    겉모습을 보면 이제 노년의 나이에 접어드는 사람이었다. 쉽게 말해서 꼰대 같은 놈이라는 것이다.

    “그럴까요? 그럼,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계시는 샤오쯔이 씨를 통해 들으셨겠지만, 저는 상하이에 점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천지회를 화자두가 나서서 없애 주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건 다 들었어. 그래서 말인데, 1억 달러는 준비를 했나?”

    “물론입니다. 혹시 오실 때 주차장에서 화물차 한 대를 보지 못하셨나요? 그 화물차가 싣고 온 컨테이너에 빳빳한 1억 달러의 지폐들이 쌓여 있습니다.”

    돈 이야기가 나오니 다들 눈빛을 반짝인다.

    “하지만 고작 1억 달러로 천지회를 없애 달라 부탁을 하다니. 너무 도둑놈 심보 아니야?”

    “그 말이 맞아. 1억 달러는 너무 적은 거 같은데.”

    이놈들이야말로 진짜 도둑놈들이다.

    1억 달러는 상당한 액수를 자랑하는 돈이다. 그런데 그게 적다고 말하다니. 하지만 그렇다고 돈 문제로 이들과 싸울 생각은 없다.

    왜냐고?

    내게 1억 달러는 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숫자니까. 거기다가 이놈들이 그 돈을 만질 일은 없다.

    “비용에 관한 문제도 제가 미리 고지를 드렸던 것 같은데요. 1억 달러는 단순히 시작에 불과합니다. 더 요청을 하신다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내가 선뜻 요청을 받아들이자 이놈들은 맛 좋은 사냥감을 바라보는 듯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삐딱하게 토를 달던 저 남성만은 반응이 달랐다.

    “뭔가 이상한데?”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가 듣기로 자네는 사업가라고 하던데. 삼합회 싸움에 갑자기 끼어들어 1억 달러라는 거금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는다? 당연히 이상하지 않겠나?”

    “하하,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먼저 공안과 친구가 되어야 하고 그다음은 삼합회와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내 대답에 다른 두목들이 저 남성에게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옳소. 이 대륙에서 사업을 벌이려면 우리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맞는 말이야. 왜 그쪽은 사람을 의심부터 하나?”

    아니, 의심을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저 남자 말대로 1억 달러를 거리낌 없이 내놓는 걸 당연히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게 맞다. 하지만 이놈들은 눈앞에 보이는 돈과 중국 최고의 삼합회라는 화자두의 오만함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졌다.

    설마 저놈이 화자두의 뒤통수를 때리겠냐는 오만한 생각.

    그 생각이 바로 저들의 족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저희 회사에서 사업을 하려 할 때마다 천지회에서 압박이 가해졌습니다. 그들의 등쌀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차라리 중국 최고의 삼합회와 손을 잡고 맘 편하게 사업을 하리라 결심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다?”

    “예, 중국 최고의 삼합회는 바로 화자두이지 않습니까?”

    한 번 더 띄워주니 이놈들은 헤벌쭉 웃으며 좋아하고 있다. 물론, 저 남자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현명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촉이 좋다고 해야 할까.

    그 어떤 것이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나는 이 계획을 반대하겠어. 서로 간의 아무런 신뢰도 없는데 이런 큰일을 할 순 없지.”

    이미 늦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다니……. 너무 아쉽군요. 하지만 다른 분들은 오케이를 하실 것 같은데요?”

    “당연하지, 그쪽은 싫으면 빠져.”

    “그래, 나눠 먹을 것도 부족하니까.”

    저 남자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두목들은 이미 내 편으로 돌아선 상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미 이놈들은 때가 늦었다.

    “그럼…….”

    콰앙-!

    내가 입을 떼는 순간,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조직원 하나가 다급하게 들어와 소리쳤다.

    “크,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처, 천지회가 쳐들어왔습니다, 두목!”

    천지회라는 말에 두목들은 전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나도 열연을 펼칠 때가 온 건가.

    나도 그들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안색이 하얗게 질린 연기를 해야 했다.

    “어, 어떡하죠? 천지회가 갑자기 왜 이곳에……. 혹시 정보가 빠져나간 게 아닙니까?”

    목소리까지 떠는 나의 물음에 두목들은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쯧쯧, 젊은 사람이 겁은 많아서……. 괜찮아, 여기가 그렇게 쉽게 뚫리는 줄 알아? 우리가 모아 놓은 조직원 수가 몇 명인데.”

    줄곧 통역을 맡았던 진대섭은 어쩔 줄을 모르며 내 옆에 찰싹 붙었다.

    “사장님, 이제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진정하세요. 다 잘 해결이 될 겁니다.”

    그래도 대륙 최고의 삼합회답게 두목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이리저리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자리에 앉은 채로 심호흡을 이어갔다.

    겁먹은 연기를 하려니, 영 몸이 따라 주질 않는다. 하지만 그리 어색하진 않은 것 같은…….

    “무슨 꿍꿍이지?”

    그런데 그때 노년의 남성이 의자를 가져와 내 앞에 앉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가 연기하고 있다는 게 다 보여. 자네는 우리 7명의 두목들을 앞에 두고서도 목소리 하나 떨지 않은 채로 덤덤하게 말을 하던 사람이었어. 보통 그러는 게 쉽지가 않거든. 그것도 조직원 출신이 아닌 회사 사장이라는 사람이 말이야.”

    “세계가 다르다는 겁니까?”

    “그렇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서 태평하게 거래를 청한다?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해도 일개 사업가 따위가 삼합회와 엮이기는 쉽지가 않지.”

    역시, 예상은 했지만 눈썰미가 기가 막히게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묻는 거야. 무슨 꿍꿍이냐고.”

    “꿍꿍이라……. 그렇게까지 저를 잘 보고 있으시다니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난 열심히 펼치던 연기를 관두고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저 노년의 남성은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이제이라고 아십니까?”

    “오랑캐는 오랑캐로 물리친다? 당연히 알…….”

    대답을 하던 남성이 말을 멈추고 손뼉을 크게 쳤다.

    “오랑캐는 오랑캐로 물리친다? 자네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웃기는 발상이군. 화자두를 천지회 따위로 없앨 수 있다고 보나?”

    “아뇨, 하지만 둘 다 타격은 크겠죠. 어부지리라는 게 바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줄곧 여유 있는 표정만 보여주었던 남성은 드디어 내 뜻을 알아차렸는지 얼굴이 빠르게 굳어갔다.

    “너… 정체가 뭐야?”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눈동자를 잘게 떨고 있는 남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골든 연합의 수장을 맡고 있는 워커 김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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