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74화 (174/325)
  • 174화. 떠나가는 거목. (2)

    “여기 말씀하신 서류입니다.”

    이재욱은 조심스럽게 내 책상 위로 서류를 올려놓았다.

    현재 일본 야쿠자 구도를 정리한 파일이다.

    검사 시절 때의 버릇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나는 구두를 통해 상세 설명을 듣기보다는 정리된 서류를 보는 것이 훨씬 편했다.

    “흠…….”

    난 서류를 하나씩 넘기며 한동안 꼼꼼히 살펴보았다.

    와타나베의 야마구치 구미와 황규혁의 니치카야 카이.

    일본 전역을 발아래 두고 있는 야마구치 구미의 영향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정경 유착은 물론, 산업적인 면에서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니, 과연 일본 최고의 야쿠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거대한 야마구치 구미라고 해도 그에 적대하는 세력은 반드시 있게 마련.

    제3대 일본 야쿠자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가 대표적이다.

    당연히 1위는 야마구치 구미이고, 2위는 스미요시 카이, 3위는 이나가와 카이다.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가 협력을 해?”

    “제가 야마구치 구미와 황규혁 사장님의 니치카야를 통해 알아낸 정보들입니다. 그 외에도 일본에 있는 정보원들을 통해서도 꾸준히 정보를 모았고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재욱은 사무적인 일에 밝은 사람이다.

    무언가를 조사하고 행정적인 정리를 하는 일에는 탁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미요시 카이가 정말 이나가와 카이랑 손을 잡았다는 거야?”

    “이미 스미요시 카이는 여러 중소기업들을 이나가와 카이와 합병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두 곳의 주요 간부들이 만나는 일이 많아졌죠. 아무래도 이 두 조직이 서로 힘을 합치는 게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답니다.”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의 연합이라.

    꽤 흥미로운 전개다.

    “발버둥을 치겠다는 건가. 이대로 놔두면 야마구치 구미가 다 먹을 것 같으니까.”

    “야마구치 구미도 그렇지만 뒤에서 바짝 쫓아오고 있는 니치카야 카이도 두려울 겁니다. 아무래도 야마구치 구미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뒤로는 사장님의 든든한 지원이 있어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으니까요.”

    내가 황규혁을 부추겨 야마구치 구미와 전쟁을 일으키려 하지 않는 것은 와타나베의 행동 때문이었다.

    와타나베도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사람이라 나와 황규혁의 관계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니치카야 카이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 야마구치 구미는 관동 지방에 있는 세력을 줄여 니치카야 카이에게 넘겨주기까지 했다.

    명백하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너희들과 싸울 생각이 없다는 걸.

    차라리 와타나베가 니치카야 카이를 견제하며 우격다짐으로 나왔다면 나도 사람을 써서 야마구치 구미의 수뇌부를 전부 박살 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저런 자세로 나오고 있는데 내가 먼저 칼을 뽑을 순 없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의 니치카야 카이로 와타나베의 야마구치 구미를 먹는 건 무리가 있다.

    욕심 부리다 큰 걸 삼키게 되면 오히려 공멸을 당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황규혁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서로 조심하며 와타나베와 아슬아슬한 균형을 맞추는 중이다.

    그러나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의 사정은 다르다.

    이들에게 와타나베와 황규혁은 동맹 관계 그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항상 싸우기에 바빴던 이들도 위기감을 느껴, 서로 손을 잡은 것이리라.

    와타나베와 황규혁도 그 두 조직을 치고 요리해 먹는 일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단지 그들은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

    “만약 두 세력이 합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서류에 나온 그대로입니다. 와타나베의 세력을 위협할 정도의 막강한 힘을 갖추게 됩니다. 현재 야마구치 구미를 지탱하고 있는 조직원 수가 1만 7,500명. 그리고 숫자를 파악하지 못한 비조직원 숫자가 3만 명이 넘습니다.”

    야마구치 구미의 세력이 얼마나 큰지 대충 실감이 간다.

    1만 7,500명. 거기다가 비조직원 수가 3만 명이다. 이정도로 많은 숫자를 가진 야마구치 구미를 두 세력의 연합이 위협할 수 있다?

    도대체 숫자가 얼마나 되기에.

    “만약 이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 연합 조직원 숫자는 2만 5,000명으로 추산되며 비조직원 숫자는 4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다가 사업장의 영향력도 훨씬 더 커져서, 접점에 있는 야마구치 구미와 니치카야 카이의 세력을 축소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생각보다 나비 효과가 크다.

    정말 두 세력이 힘을 합치게 된다면 와타나베의 야마구치 구미는 큰 위기를 맞이할 터. 황규혁의 니치카야 카이도 이 큰 바람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이 두 세력이 힘을 합친 다음 보이게 될 행보라는 건데…….

    “만약 연합이 생긴다면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전 100%라고 봅니다.”

    50%, 70%, 90%도 아닌 100%라고 확신하는 이재욱이었다.

    “어째서?”

    이재욱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꺼내 보였다.

    “스미요시 카이와 이나가와 카이가 서로 힘을 합쳤다고는 하지만, 둘은 원래부터 숙적 관계였습니다.”

    “일시적인 연합일 뿐이다?”

    “예. 이들은 아직도 서로를 증오하고 있을 겁니다. 언제라도 기회가 생기면 뒤통수를 치겠지요. 지금은 단지 공공의 적이 생겨 동침을 하는 것일 뿐. 야마구치 구미가 무너지면 당장에라도 상대의 등 뒤에 비수를 꽂을 겁니다.”

    이재욱의 통찰력이 날카롭다.

    틀린 말이 아니다.

    나도 이 두 조직의 원한 관계를 잘 알고 있다.

    몇 년을 걸쳐 피와 피를 흘리며 쌓아온 숙적 관계이지 않던가. 단순히 공공의 적이 생겼다고 해서 그 증오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결국 이 둘은 지금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와타나베의 야마구치 구미를 제거하고 황규혁의 니치카야 카이를 무너뜨리고 나면 일본의 패권을 둔 서로의 마지막 싸움을 벌이게 되리라.

    어쩌면 이번 연합이, 일본 야쿠자 조직들에게 있어서는 최후의 전쟁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 1인자를 가리기 위한 전쟁.

    그 조짐이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알겠어. 나가 봐.”

    “예, 부회장님.”

    아무래도 이건 황규혁과 다시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이재욱이 나가고 나서 황규혁에게 전화를 걸어 만날 장소부터 잡았다.

    * * *

    “스미요시와 이나가와?”

    “알고 계셨던 일입니까?”

    황규혁은 대답대신 소주잔을 들이켰다.

    “크- 언제 먹어도 소주랑 삼겹살은 천상의 조합 아니냐?”

    “형님?”

    내 추궁에 황규혁은 피식 웃으며 다시 잔에 소주를 채웠다.

    “사람 풀어서 알아온 거냐?”

    “저한테 말씀도 안 하려고 하셨습니까?”

    “말했잖아. 네 도움 없이 내 스스로의 힘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괜찮아. 그리고 큰 형님 저러시니까 나도 그 이야기를 꺼낼 마음이 들지 않더라.”

    점점 상태가 악화되고 있는 권용일이다.

    분명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했던 양반이 오늘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그것 때문에 황규혁은 더욱더 안색이 좋지 않았다.

    “아직 그 두 세력이 힘을 합친 것도 아니잖아. 그런 낌새를 보이는 것뿐이지. 너도 알겠지만, 그놈들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 새끼들이야. 괜히 어정쩡하게 연합을 했다가는 도리어 우리 손에 박살이 날 걸?”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니치카야 카이가 박살 날 수도 있다.

    스미요시과 이나가와가 제대로 연합을 한다면 말이다.

    “사태를 심각하게 보셔야 합니다. 정말 둘이 힘을 합치면 돌이킬 수가 없어요. 그땐…….”

    “전쟁이지. 와타나베와도 그 이야기는 했어. 둘이 힘을 합치는 순간,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수밖에 없다고. 그런데 아직은 아니야. 스미요시도 그렇고 이나가와도 그렇고, 그 둘은 지난 세월 동안 쌓아온 원한이 너무 많아.”

    핵심 간부들의 갈등을 말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각자의 조직을 지탱해 온 간부들은 스미요시에게, 혹은 이나가와에게 동료를 잃거나 혹은 아끼는 부하를 잃었을 수도 있다. 심하면 가족 전체가 몰살당하기도 한다. 그런 원한이 쌓인 조직끼리 손을 잡는다는 것은 금방 이뤄질 수 없는 일이다.

    그 두 조직도 분명히 그걸 알고 있을 터.

    서로 힘을 합치기까지는 분명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둘이 정말 합쳐 버리기 전에 먼저 싹을 자르는 게…….”

    차라리 둘이 힘을 합치려고 한다면 먼저 박살을 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황규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랬다가는 정말 전대미문의 연합이 생길 수도 있어. 처음에는 주춤거리던 놈들이 우리가 공격을 한다는 걸 알면 가만있을 거 같냐? 쥐새끼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야. 그놈들은 살기 위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손을 잡을 거다.”

    선공이 오히려 악수가 된다는 건가.

    하지만 피해를 감수해서라도 연합이 체계적으로 만들어지기 전에 치는 것이 이로울 거라고 난 생각했다. 그러나 와타나베와 황규혁의 생각은 아무래도 다른 모양이다.

    “우리는 오히려 그 둘이 합쳐지기를 바라고 있어. 아까도 내가 말했듯이, 그 둘은 쌓인 게 너무 많아서 연합 내부에 분란이 생길게 뻔하니까. 그럼, 따로 있는 것보다 서로 합쳐 있는 게 더욱 안 좋을 수 있다는 거지.”

    둘을 한곳에 모아 내분을 일으키게 한 다음, 전멸을 시키겠다는 계획인가?

    잘되면 대박이고 조금이라도 핀트가 어긋나면 쪽박이다.

    “형님. 아무래도 그건…….”

    “알아. 도박이지. 그래도 해볼 만하지 않냐? 지금 아니면 나중에는 더 잡기가 힘들어질지도 몰라. 기회가 왔을 때 싹 몰아버려야 속이 편해.”

    황규혁은 잔을 쭉 마신 다음 담배를 입에 물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술은 안 마셔도 담배는 꼭 피우고야 마는 사람이다.

    저러고도 쌩쌩한 걸 보면 유전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분명하다.

    “아무튼, 더 자세한 건 나중에 하자고. 내가 볼 때 적어도 3년은 시간이 필요할 거야. 그 둘에게. 그동안 우리는 계속 견제하면서 주시하고 있어야지.”

    3년이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와타나베의 야마구치 구미와 황규혁의 니치카야 카이가 얼마나 더 성장할지 기대가 된다.

    “알겠습니다. 저도 더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형님, 언제라도 힘이 필요하시면 불러주세요.”

    “당연하지. 네가 그런 말 안 해도 부려먹으려고 했어.”

    우리의 저녁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는 듯싶었다.

    내 나름의 궁금증도 풀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헐레벌떡 달려오는 정식이를 보고 오늘은 긴 저녁이 될 것임을 직감했다.

    “태, 태산아! 아, 황규혁 형님도 여기 계셨군요.”

    “무슨 일이야, 정식아.”

    “아아. 그, 그게… 깨어나셨다.”

    “응?”

    “큰 형님께서 깨어나셨다고!”

    나는 황규혁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식아, 운전 좀 부탁하자.”

    “알겠어. 형님도 얼른 타세요!”

    “그래. 고맙다!”

    우리는 얼른 차에 올라 권용일이 입원하고 있는 천성 병원으로 달려갔다.

    “일환이 형님.”

    “아. 황규혁이, 그리고 태산이도 왔구나.”

    “예.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성일환은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오지 않았어.”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한 모양이다.

    “일단… 들어가자. 오늘 형님께서 너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시니까.”

    어두운 성일환의 목소리에 나는 불안한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단순히 그가 깨어나서 연락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권용일은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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