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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72화 (172/325)
  • 172화. 풍성한 수확 (4)

    천성 그룹 회장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이 언론을 타면서 빠르게 물타기 여론 조작이 시작되었다. 나는 메이저 언론사부터 시작해 소규모 언론까지 돈을 뿌려 천성 죽이기에 나섰다.

    [외환 위기의 주범은 바로 천성이다!]

    수십만 명이 넘는 실직자가 발생했고, 파탄이 난 가정이 수만이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노숙 생활을 하고 있으며 눈물과 절망이 단 하루라도 끊이질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위로가 아니다.

    원망하고 손가락질하며 돌을 던질 희생양이 필요하다.

    이건 모두 나의 탓이 아닌, 남의 탓이라고 돌려야 할 명분 말이다.

    난 그들의 손에 돈 대신 돌을 쥐여줄 수 있었다.

    “천성 그룹 회장을 사형시켜라!!”

    “IMF의 주범 천성을 해체시켜라!”

    “이강혁 회장은 물러나라!!”

    언론의 말만 믿고 성난 시민들은 피켓을 들고 나와 시위에 돌입했다.

    규모가 꽤 된다는 보고에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걸 두고 군중 심리라고 하지 않던가.

    한번 바람을 불게 해주면 모든 곳에 불똥이 튀어 타오른다. 사람들은 정말 이 모든 게 천성 때문이라는 걸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다시 검사 옷 입으니까, 잘 어울린다.”

    “내가 원래 검찰청에서 제일 잘난 놈이었어. 기억 안 나냐?”

    아직은 신참내기 평검사이지만, 내 힘으로 연욱이는 특별수사본부에 들어가 이강혁을 취조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한마디로 초고속 승진 고속도로가 뻥 뚫려 있다는 것이다.

    “잘됐어?”

    “지독해, 그 양반. 잘나신 변호사들을 대동해서 오긴 했는데, 어떻게든 빠져나갈 심산인가 봐.”

    “그래서? 좀 더 걸릴 거 같아?”

    “내가 누구냐. 속전속결의 제왕이잖아.”

    연욱이는 피식 웃으며 서류 하나를 내게 던져 주었다.

    “이강혁은 정재원을 방패로 삼으려고 했던 거 같은데, 내가 먼저 정재원을 불러서 증인으로 만들어 버리니까 그 양반, 충격이 꽤 컸던 모양이더라.”

    언젠가 고기 방패로 쓰려고 옆에 끼고 다녔던 충복이 배신을 했으니, 당연히 충격이 클 수밖에. 순간 멍청하게 넋이 나간 이강혁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게 안타까울 뿐이다.

    “변호사들도 꼬랑지를 내리더라고. 네가 미리 손 쓴 거냐?”

    “당연하지. 이강혁을 보호해 주면 무슨 꼴이 나는지 살짝 귀띔을 줬지.”

    살짝 귀띔을 주었다기보다는 그중 몇 명을 본보기로 갈아버렸다는 게 맞을 것이다.

    “아무튼, 이거나 잘 받아 챙겨. 이강혁 친필 사인이 들어 있는 각서니까.”

    나는 연욱이가 건네준 서류를 쭉 읽어 보았다.

    집행 유예로 사건을 마무리하는 대신, 이강혁이 들고 있는 주식들을 전부 토해내겠다는 각서였다.

    이강혁도 연이어 천성과 자신의 잘못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있는 언론을 보며 느꼈을 것이다. 더는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여기서 고집을 피우며 버텼다가는 수십 년을 감옥에서 썩어야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항복을 선언한 것이리라.

    “그런데 마지막으로 네 얼굴 보고 싶다던데.”

    “나를?”

    “그래. 내키지 않으면 안 봐도 돼.”

    “아니, 오히려 땡큐지.”

    그렇지 않아도 이강혁을 한번 보고 싶긴 했다.

    내가 천성을 갖게 되면, 이강혁을 볼 일이 없지 않은가.

    그 초라한 마지막 모습을 이 눈에 잘 새겨줘야겠다.

    * * *

    “다 가졌다는 얼굴이군.”

    “적어도 이 나라에서 제가 가장 갖고 싶었던 걸 얻었으니까요.”

    이강혁은 입술을 잘게 씹으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래도 오래 버티실 줄 알았더니, 의외로 빨리 두 손을 드셨네요.”

    “그랬다가는 나를 영원히 감옥에 처넣었겠지.”

    “맞습니다. 그리고 천성도 망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거예요. 어차피 천성은 제 돈 아니면 파산이지 않습니까? 천성이 쫄딱 망하고 나면 그때 남은 찌꺼기들을 모아도 별문제는 없었어요.”

    만약 이강혁이 끝까지 버텼다면 나는 천성이 망하는 걸 방관했을 것이다. 그리고 천성에서 쓸 만한 것들만 골라 화진 그룹에 흡수시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많은 계획들이 틀어지게 된다. 그래서 더욱 강하게 이강혁을 압박했던 것이다.

    “마지막 인사라도 하려고 저를 부르신 겁니까?”

    “그런 셈이지. 앞으로 천성을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볼 것도 있고.”

    “쓸데없는 오지랖이십니다. 이강혁 씨는 더 이상 천성 그룹의 회장이 아닙니다.”

    나는 이강혁을 회장이라 부르지 않고 이강혁 씨라고 불렀다.

    그 차이를 분명하게 느낀 이강혁은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이대로… 천성을 화진에 흡수시킬 생각인가? 내 아버지가 일으키신 그 기업을…….”

    “그렇게 억울하시면 천성을 잘 경영하셨어야죠.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천성이란 이름을 지울 생각은 없으니까. 그리고 앞으로 천성 그룹은 이강찬 씨가 이끌게 될 겁니다.”

    “뭐, 뭐야? 강찬이가?!”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다.

    천성 그룹을 완전히 해체시켜 버리겠다는 말보다 더 놀란 표정을 짓는 것 같다.

    “서, 설마… 처음부터 이러려고 그랬던 건가?”

    “예, 제가 이강혁 씨의 얼굴을 처음 봤을 때부터 계획했던 일입니다. 천성을 빼앗고, 그 천성이란 자동차를 운전시키는 기사로 이강찬 씨를 선택하기로.”

    “도, 도대체 너란 놈은…….”

    할 말을 다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강혁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각서까지 쓰셨으니, 모든 지분을 토해내시는 대로 거기서 나오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서두르십시오. 그 더러운 곳에서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이강혁은 넋이 나간 얼굴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통쾌하거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진 않는다.

    회귀를 했을 때부터 꿈꿔왔던 복수다. 그러나 막상 천성이라는 그룹을 손아귀에 넣어도 내 갈증을 채워주진 못했다.

    아직.

    아직 부족하다.

    이 타는 갈증을 풀어주기에는.

    * * *

    [평검사의 반란! 천성 그룹을 고발하다!]

    [총장도 인정한 장연욱 검사의 실력. 그야말로 이 나라를 위하는 정의로운 기사다.]

    [더는 썩은 검찰이 아닌, 진심으로 국민을 위한 검찰. 그 앞에는 장연욱이 있었다.]

    연욱이를 스타 검사로 띄우기 위한 작업이 아주 순조로웠다.

    천성 그룹을 조사하고 이강혁을 비롯해 수많은 임원들을 구속시킨 그의 활약은 신문과 뉴스를 타고 전국에 퍼졌다.

    이제 막 들어온 신입에 불과하지만, 불의를 참지 못하는 그 마음과 열정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검찰청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며 여론을 조작했다.

    [외환 위기에서 구원자로 나타난 화진 그룹.]

    [재계 1위로 우뚝 선 화진 그룹. 7억 달러라는 거금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아.]

    [화진 그룹 부회장 김태산. 외환 위기에 빠진 국가를 위해 전 재산을 기부.]

    [세상에 몇 없는 청렴한 경영인, 김태산. 그는 누구인가?]

    연욱이에 이어 나에 대한 기사도 차근차근 쌓여가고 있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모든 재산을 털어 7억 달러라는 거금을 내놓았다는 선행이 알려지면서 나에 대한 여론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대로만 일이 진행된다면 연욱이는 스타 검사가 될 것이고, 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존경받는 경영인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이미지를 차곡차곡 쌓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무슨 일이 생겨도 여론을 방패로 쓸 수가 있다.

    “저는 기존에 있던 방식들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천성으로 거듭나게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저 한국에서만 머무는 기업이 아니라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기업이 되겠습니다. 그 첫 목표로 세계 최고의 전자 회사인 소니를 뛰어넘고자 합니다.”

    천성 그룹의 새로운 회장으로 취임한 이강찬은 처음부터 아주 세게 나갔다.

    소니를 뛰어넘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밝힌 것이었다.

    난 슬쩍 취임회에 모인 임원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모두 헛기침만 내뱉을 뿐, 누구 하나 이강찬의 꿈에 동조를 하지 않았다. 그만큼 소니를 넘겠다는 이강찬의 포부는 비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 꿈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이들은 현재 천성이 누구 손에 좌지우지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이강찬은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이강찬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확실한 조치가 필요하다.

    “오늘 저는 중대 발표 하나를 하고자 합니다.”

    이강찬의 취임사가 끝나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쯤, 나는 앞에 서서 모든 임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아시다시피 천성 그룹의 대주주는 바로 접니다. 하지만 저는 천성 그룹 경영에 일체 관여하지 않을 것이며 전적으로 모든 걸 이강찬 회장님께 맡기겠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들고 있는 모든 지분의 권한을 이강찬 회장님께 드릴 것이며 임원의 인사 결정 또한 이강찬 회장님께 맡길 겁니다.”

    나의 파격적인 발표에 임원들은 눈을 크게 뜨며 나와 이강찬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제 저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고개를 숙여야 할 방향이 바로 이강찬 쪽이라는 것을.

    나는 단상에서 내려와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냈다.

    이번 외환 위기를 통해 나는 풍성한 수확을 올리지 않았던가.

    천성이라는 대기업을 손아귀에 넣었고, 각종 언론사와 여론도 전부 내 편으로 만들었다.

    돈으로 얻을 것은 모두 얻었으니, 이제 이 나라의 지배자가 될 차례다.

    * * *

    “우리 모두가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힘을 합친다면 분명히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새로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일중은 통한의 심정으로 취임사를 진행하며 희망찬 미래를 그렸다. 김일중에게 맡겨진 임무는 오직 하나.

    외환 위기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 첫 단계로 김일중은 금 모으기라는 운동을 시작해 서민들로 하여금 나라 빚을 갚도록 선동했다.

    금 모으기.

    참 뜻깊은 운동이면서도 씁쓸해지는 선동이다.

    국민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주머니를 털어 국가의 빚을 갚게 하는 건데, 문제는 이게 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돈 많은 기업인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몇 년만 지나 보면 국민들도 알게 될 것이다.

    자신들의 주머니를 털고 보니 결국 배를 불리게 된 건 기업인들이고 배를 곯는 건 자신들이라는 것을.

    예전의 나였다면 정의감에 불타올라 이 운동을 막았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나도 국민들의 돈을 뜯어먹는 기업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거둬들인 국민들의 피땀 섞인 금으로 나의 주머니를 채우게 될 터.

    금 모으기 운동에 관한 뉴스를 볼 때마다 씁쓸한 생각이 함께 스쳐 지나간다.

    “당선 축하드립니다, 대통령님.”

    “아닙니다. 이제 행복 끝, 고생 시작이지 않겠습니까? 앞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저는 항상 대통령님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청와대에 들어간 김일중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비서나 밑의 사람을 써서 전화를 하는 게 아닌, 자신이 직접 전화를 건 것이었다.

    그만큼 김일중은 내가 이 나라에서 떨치고 있는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조만간 기업인들을 모아 만찬을 할 예정입니다. 그때 꼭 참석해 주십시오.”

    “예, 이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모두가 모여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제 이 나라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우리는 이 고비를 넘어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뀐 건 거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외환 위기에서 버틴 기업들은 완전히 뿌리를 내려 이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할 것이고, 서민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피폐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각종 언론에서는 외환 위기를 무사히 벗어났다고 떠들어댈 터.

    그러나 바뀐 건 하나도 없다.

    평생직장이라는 것이 사라지고 무한 경쟁이 시작되어 하루하루가 모든 젊은이들에게 지옥 같아 질 것이다. 그리고 기업들은 더욱 안하무인이 되어 그런 젊은이들의 노동을 착취해 배를 불리게 된다.

    결국, 이번 외환 위기를 극복해 이득을 보는 것은 국민들이 아닌, 바로 나 같은 기업인이라는 것.

    “그럼, 또 연락하겠습니다.”

    “예, 대통령님.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시면 연락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그중에서 나는 가장 큰 수혜자가 되어 이 나라를 죽는 그 순간까지 통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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