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67화 (167/325)
  • 167화. 차가운 바람 (3)

    “정부에 대한 괴소문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누구든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정치의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정치의 진리란 무엇인가?

    바로 언론이다.

    어떻게 언론을 잘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선거의 결과가 달라진다.

    업적 따위는 아무래도 괜찮다.

    언론을 통제해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힘만 있다면 얼마든지 국회의원도 될 수 있고 대통령도 될 수 있다. 그것이 언론의 힘이다.

    히틀러를 보라.

    그는 군중 심리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들을 증오하는 언론을 퍼뜨렸고 단 몇 주 만에 대부분의 독일 국민들을 유대인 혐오자로 만들었다.

    “로이, 제가 말씀드렸던 거는 어떻게 됐습니까?”

    “순조로워. 이제 거하게 터뜨리기만 하면 돼, 흐흐.”

    로이 루스테는 특유의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나에게 로이는 미국에 있는 천성 그룹 공장과 회사를 동시에 침몰시킬 비장의 수였다.

    “계약서는 잘 갖고 계시죠?”

    “물론이지. 내가 돈 안 갚는 놈은 지구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요절을 내거든.”

    나는 이강혁과 로이 루스테를 연결해 주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골든 마피아의 다니엘 로페즈와 연결해 준 것이 맞으리라. 그러나 다니엘 로페즈보다는 로이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일을 맡겼다.

    천성이 원했던 금액은 7억 달러.

    그 정도의 돈은 나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로이를 중개인으로 내세워 리턴 컴퍼니에 있는 돈을 끌어다 썼다. 그리고 계약서를 작성할 때 천성이 돈을 갚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해외에 있는 공장과 지부, 그리고 이강혁이 들고 있는 천성 그룹 지분 20%를 담보로 세우게 했다.

    멍청한 놈이다.

    돈 주고도 못 산다는 천성 그룹의 지분을 20%나 담보로 내놓다니. 하지만 이강혁은 경영권 방어에 크게 경계하지 않고 있다. 이제 자신을 끌어내릴 사람은 없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이강혁의 압력으로 그의 형제들은 벌써 회사 일을 관뒀고,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지분도 충분히 손에 쥐고 있으니 보이는 자신감일 것이다.

    더군다나 해외 진출을 할 때도 이강혁은 성공을 확신했기 때문에 대담하게 담보를 내놓을 수 있었다.

    “내가 여러 라인 돌려서 알아보니까, 지금 한국이 심상치가 않아. 일본 봤지? 거기도 버블 터지고 나서 한동안 물 좀 먹었잖아. 한국도 이제 멀지 않았어. 그러니까 너도 한국에 있는 돈은 전부 빼.”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대비도 해놓았고요.”

    “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워커라면 그랬겠지. 넌 모르는 게 없잖아.”

    로이는 슬쩍 나를 띄우더니 화제를 바꿨다.

    “그런데 워커.”

    “예, 로이.”

    “중국 쪽 있잖아.”

    “예, 그쪽에 무슨 문제라도?”

    내 물음에 로이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가 있긴 하지. 중국이 워낙 폐쇄적인 곳이라서.”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이번에 우리 조직원들이 삼합회한테 당한 모양이야.”

    “중국에 있는 삼합회요?”

    “그래. 그쪽도 그렇고 홍콩, 마카오에서도 잡음이 많아.”

    러시아에는 레드 마피아, 콜롬비아에는 카르텔, 미국에는 마피아가 존재하는 것처럼 중국에도 조직폭력배가 존재한다. 워낙 인구도 많아 그 숫자도 많은데, 이들을 통칭 삼합회라고 부른다.

    이들은 중국, 마카오, 홍콩, 그리고 미국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마약부터 노예 거래까지. 필리핀, 콜롬비아, 멕시코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활동을 해댄다.

    삼합회가 손을 뻗는 곳이 워낙 많다 보니, 네임드 조직이 그런 하찮은 일들까지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그들이 메데인 카르텔을 건드리고 말았다.

    아니, 단순히 메데인 카르텔을 건드린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 골든 연합을 건드린 것이리라.

    “그놈들이 활개를 치게 가만히 놔두실 건 아니죠?”

    “물론이지. 근데 고민이야. 워커도 알다시피 삼합회는 정권 유착이 심해. 얼마나 심하면 그쪽 당원들 절반이 삼합회라는 말까지 나오겠어.”

    중국 공산당원들이 삼합회와 손을 잡고 불법적인 일을 자행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삼합회 소탕에 나선 건 2000년도부터다. 즉, 중국은 지금 삼합회 세상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건드려야 할 것이 있고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어떤 삼합회가 감히 우릴 건드렸는지는 모르겠지만, 톡톡히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그 삼합회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세요. 제가 알아보고 사람을 보내든가 하겠습니다.”

    “사람을 보내? 다 쓸어버리게?”

    “다른 조직이 볼 수 있게 경고는 해둬야죠. 어차피 중국 쪽이야 밀항하기도 쉬워서 사람 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냉전 시대가 끝났지만 각 국가의 첩보 활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하지만 이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지하 세계에서 놀고 있는 조직들이 아니다.

    어떤 국가가 어떤 무기를 만들며 어떤 계획을 짜고 있는지가 최대의 관심사.

    특히 중국은 노예 판매와 마약 거래가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며 세관의 검사도 돈 몇 푼으로 넘길 수가 있어 굉장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삼합회와 잘못 충돌하게 되면 정부의 간섭을 받을 수 있긴 한데 그 전에 빠르게 몸을 빼면 된다.

    “알겠어, 워커. 솔직히 워커가 나설 필요는 없지만, 나 혼자보다는 우리 둘이서 해결하는 게 더 좋지 않겠어?”

    삼합회는 하나로 뭉쳐 있는 조직이 아니다.

    야쿠자와 마피아처럼 통칭으로 불리는 놈들이지 않은가.

    어떤 조직이 겁도 없이 우리 연합을 건드렸는지 알게 되면 나는 주저 없이 히트맨들을 보내 그곳을 타격할 예정이다. 그래야 다른 조직도 경계를 할 것이 아닌가.

    삼합회의 화력이 얼마나 강한지는 몰라도 우리 연합보다 강하겠는가?

    그동안 중국 쪽에는 제대로 진출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단단히 못을 박아 놓아야 할 것 같다.

    * * *

    “바쁘실 텐데 오가라 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부회장님. 오랜만에 조국 땅을 밟아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강철중은 내 부름을 받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왔다.

    그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서류를 꺼내 상 위에 놓았다.

    “메데인과 접촉이 있었던 조직은 상하이에서 활동 중인 천지회라는 곳입니다.”

    “천지회요?”

    “예. 혹시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천지회라.

    꽤 귀찮은 놈들이 걸렸다.

    7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정권 유착도 되어 있는 곳이라 중국과 홍콩까지 영향력을 확대한 놈들이다. 또한 미국에도 진출을 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각 국가에 있는 차이나타운에도 뿌리를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2~3번째로 영향력이 큰 삼합회로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맞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 메데인과 충돌을 하게 된 이유는 그쪽이 가지고 있는 마약을 빼앗기 위함인 것 같았습니다.”

    약을 빼앗기 위해 메데인을 습격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메데인을?

    “중국에서는 메데인의 영향력이 너무 작은가 봐요? 아무리 천지회라고 해도 그렇지 메데인을 건드리다니.”

    “하부 조직원들의 실수인 건지 아니면 상위 간부들의 의지인 건지는 정확히 판단을 내리진 못했습니다.”

    “메데인을 습격할 정도면 단순히 하부 조직원들만으로는 부족할 거예요. 고급 간부들이 일을 꾸몄겠죠.”

    중국이라.

    현재 중국은 장쩌민이 국가주석으로 있다. 즉, 장쩌민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방이 권력을 잡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 정부는 파벌 따위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하지만, 사실 그들은 웬만한 국가를 뛰어넘는 파벌이 존재한다.

    장쩌민이 속해 있는 곳은 상하이방으로, 그는 상하이에서부터 자신을 보좌하던 부하들을 중앙 정부에 불러들여 주요 관직에 앉혀 권력을 탄탄하게 만들었다.

    현재 중국에서 상하이방의 영향력을 따라갈 곳은 없으며 2002년에 장쩌민이 총리 자리를 내려놓고 나서도 그 영향력으로 차기 주석인 후진타오를 압박하게 된다.

    무슨 일만 있으면 군부를 동원하는 경우가 많은 곳이라 깊게 관여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액셀을 밟을 때가 온 모양이다.

    “중국에 파견할 수 있는 히트맨 숫자가 몇이나 됩니까?”

    “…할 생각이십니까?”

    “그쪽에서 먼저 찔렀으니, 우리도 보복을 해야죠. 심장을 찌르진 못해도 팔다리 하나쯤은 가져와야 하지 않겠어요?”

    강철중은 조금 내키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부회장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거기는 정권 유착이 심한 곳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군부가 동원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히트맨을 쓰겠다는 겁니다. 빠르게 주요 간부들만 처리하고 나와야죠. 천지회 전부를 쓸어버리겠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제야 강철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곁에 있으면서 이것저것 본 게 많아서 그런지 걱정을 했던 걸까.

    “알겠습니다. 그럼, 빠르게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예. 중국에 있는 우리 조직원들에게도 말을 해놔서 은밀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처리를 해두죠.”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좀 더 쉬다가 돌아가세요. 당장 급한 문제는 아니니까요.”

    강철중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인 다음 사무실 밖을 나섰다.

    내 말대로 며칠 동안은 한국에 체류하며 휴식을 취할 것이다.

    그동안 나는 여기 일부터 해결을 해야겠다.

    “외환 위기가 온다는 괴소문으로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거짓 언론을 강력하게 규탄하며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내릴 예정입니다.”

    뉴스에서 나오는 정부의 발표.

    사실 IMF사태가 터지기 일주일 전, 아니 이틀 전만 하더라도 정부는 외환 위기는 절대 없다며 언론에 공표했다.

    외환 위기설이 점점 커지자 그걸 끄기 위해 나선 진화 작업이었는데, 이틀 후에 정부의 입장은 돌변하게 된다.

    총리가 직접 TV 앞에 나와 구제 금융을 신청하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의 일이 아주 볼 만할 거 같다.

    * * *

    끝없이 성장할 줄로만 알았던 대한민국.

    하지만 1996년 GDP성장률이 단 5%에 그치면서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는 급한 마음에 이 모든 게 사치성 수입재가 원인이라고 해명하며 투자를 실시했지만 참담한 실패를 겪게 된다.

    곧이어 1997년 1월.

    미국이 마침내 금리를 인상하면서, 해외 자본에 의지하며 경제 발전을 이뤄가던 온 아시아 국가가 철퇴를 맞게 된다.

    그나마 한차례 버블 경제 붕괴로 무너졌던 일본은 큰 영향을 받진 않았고 중국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하면 약소한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대만 등 국내 통화 가치를 낮추고 해외 자본에 집중한 국가들은 패가망신을 당하게 됐다.

    “재계 14위 한보 그룹이 부도를 신청했습니다.”

    “주가 하락폭이 사상 최대로, 288포인트가 떨어져…….”

    “환율이 폭등하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가면 금방 2,000원대로 오를 것이라는 절망적인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언론사에서 외환 위기가 한국을 직격했음을 알렸다.

    재계 14위 한보 그룹이 몰락했고 이어 삼미 그룹도 부도를 신청했다. 또한 진로 그룹까지 백기를 들면서 도미노처럼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를 일으켰다.

    하지만 무서운 점은 이게 단순히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훗날 젊은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그 이름.

    헬조선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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