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58화 (158/325)
  • 158화. 버블 대박 (3)

    이재욱이 정리한 투자 리스트를 확인한 뒤, 난 내가 알고 있는 기업들을 산출해 따로 정리를 해두었다. 그리고 그것을 황규혁에게 넘겼다.

    그는 이제 내 대리인으로써 JK 금융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말이 투자지, 실상은 외국자본이 국내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는 행위나 다름이 없다. 일본도 지금 그러고 있지 않은가?

    이게 버블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전문가들은 기업의 몰상식한 매입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그 결과 소니는 콜롬비아 영화사를 매입했고, 파나소닉은 무려 유니버셜을 매입하기까지 했다.

    딱 우리나라가 경제 파탄이 나기 직전의 상황을 보는 것만 같다고 해야 할까. 물론, 피해 면에서는 일본이 더 심하긴 하다.

    “드디어 터졌습니다.”

    하지만 버블 경제가 폭발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흥분한 목소리로 뉴스 아나운서가 일본 경제의 침몰을 알렸다.

    “어제 밤 대장성의 기습적인 제도 발표로 주식과 부동산이 모두 폭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스타트는 대장성이었다. 대장성을 우리나라로 따지면 기획재정부인데, 이들은 출자총액제한제도라는 신의 악수를 두면서 버블 경제를 그야말로 폭발시켰다.

    이 제도가 발의되면서 금리가 엄청난 수준으로 상승했으며 완화되어 있던 부동산도 규제를 타이트하게 해놓았다. 이로 인해 부동산과 주식, 둘 다 모두 폭락해 일본은 대공황 그 자체가 되었다.

    이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10배가량 폭락하면서 부동산 투기에 돈을 쏟아부었던 사람들은 전부 파산했고, 그나마 간당간당하게 버티던 사람들도 다시 가격이 오를 것이라 믿으며 끝까지 집을 팔지 않았다.

    결국 빈집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게 되었으며 파멸된 경제로 인해 출산율도 상당히 낮아지게 된 시기가 바로 이때부터다.

    “터져도 아주 거하게 터졌네요.”

    이재욱은 짧게 혀를 차며 TV에서 연일 보여주는 일본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1988년만 하더라도 세계 50대 기업 중, 33개나 일본 기업이었다고 하니 정말 말도 안 되는, 미친 수준의 성장이었다.

    하지만 그건 성장이 아닌 거품이지 않은가?

    그래서 버블 경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정부가 금리를 낮추고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면서 사람들은 제대로 된 담보도 없이 돈을 마구잡이로 빌려 부동산 투기와 주식 매입에 나섰다.

    당연히 돈이 몰리고 또 몰리니 회사가 성장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일본인들은 세계로 뻗어나가 땅 투기에 나섰으며, 일본 기업들은 해외에 있는 회사를 매입하는 등 경제 침공을 벌였다.

    그것 때문에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미국인들조차 일본이 곧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냐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만큼 일본의 성장은 말도 안 될 수준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요즘 나오는 영화들도 미래에는 일본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식의 내용이 많다.

    하지만 그런 것을 모두 비웃기라도 하는 듯, 일본은 한순간에 침몰했다.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죠. 술집 여자가 마음에 들면 그 술집을 사준다는 게 유행일 정도였잖아요. 안 망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닙니까?”

    믿기지 않겠지만 술집 여자에게 돈 몇 푼 쥐여주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그곳 술집을 사주는 게 유행이었다. 그만큼 일본은 아주 물 쓰듯 돈을 썼다.

    더 믿기 힘든 건 바로 이것이다.

    “뉴욕의 상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일본 부동산 재벌 유코 히데키한테 넘어갔어요. 사실, 대장성에서 저런 악수만 두지 않았으면 일본이 어디까지 치고 갔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뉴욕의 상징이며 마천루의 전설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경제 하락세를 보이던 미국은 그들의 자존심과도 같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일본인 부동산 부자에게 넘겨야 했다.

    “그렇군요……. 결국 일본 스스로 자폭을 택한 건가요?”

    일본의 버블 경제는 파탄의 길로 인도했지만, 나라의 재정을 현명하게 다뤄야 하는 대장성의 문제도 심각했다.

    일단, 일본 정부는 너무 안일하게 상황을 대처했는데, 금리를 급작스럽게 올려 버리면서 혼란을 초래했고, 부동산까지 강압적으로 규제하면서 그야말로 핵폭탄을 터뜨렸다.

    물론 일본 정부의 입장도 충분히 고려해야 할 만한 일이었다.

    무려 3조 원에 달하는 돈을 개인이 은행에서 빌려 국가적인 사기를 치는 일이 벌어지면서 경각심을 높인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 페이스가 빨랐다는 게 문제였다.

    “일본 정부가 좀 더 지혜롭게 페이스 조절을 했다면 이 정도로 일이 꼬이진 않았을 텐데… 아쉽긴 하네요.”

    말은 그렇게 해도 속으로는 잔뜩 미소를 짓고 있다.

    일본이 나락으로 떨어져 허우적거릴 때, 나는 저들이 해외 시장을 점령하려 했던 것처럼 나도 일본의 경제 시장을 점령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한탕을 위해 미리 깔아둔 장치가 있지 않던가.

    “태산아!!”

    아니나 다를까, 황규혁이 숨을 헐떡이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뉴스 봤냐?”

    “예, 봤습니다. 이제 형님, 바빠지시겠어요.”

    황규혁은 살짝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도대체가 너란 놈은… 어떻게 안 거야?”

    “하하. 제가 원래 보는 눈 하나는 기가 막히잖아요. 지금쯤이면 터질 거라고 생각했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 달 안에 이게…….”

    옵션 만기일 기간은 한 달이었다. 이제 일주일만 기다리면 만기일이다.

    지금쯤 전 세계 기관들과 보험 회사들이 만기일 안에 돈을 채워 넣기 위해 발등에 불 떨어진 듯 움직일 것이다.

    나는 그들이 가져다주는 돈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고.

    “형님. 제가 준 리스트, 갖고 계시죠?”

    “응? 아, 응.”

    “잘 갖고 계세요. 회사가 성장하고 나면 거기 있는 리스트대로 매입을 해야 하니까요.”

    버블 경제 폭발 후, 일본을 지배하던 6대 그룹도 해체 위기에 놓인다.

    미쓰비시 은행, 미쓰이 은행, 스미토모 은행, 후지 은행, 산와 은행, 그리고 다이이치 은행.

    이 여섯 개는 일본의 6대 그룹이자 주축 은행이다.

    1950~60년대에 일본이 고도성장을 이뤄낼 때, 시중 은행들 중심으로 결성된 기업 집단이다. 표면적으로는 친목 단체이나, 실상은 이들끼리 서로 협력하고 다해먹었다는 게 맞다.

    이번 버블 폭탄에서 가장 피해를 받은 것이 저 은행들이지 않던가. 더군다나 내가 옵션을 사들인 것도 대부분 저 여섯 개 은행이 운영하는 기관에서 발행된 것들이다.

    “미쓰비시 은행? 이거 전범 기업 아니었냐?”

    “미쓰비시도 그렇고 전범 기업은 꽤 많죠.”

    2차 세계 대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을 강제 징용해 노동력을 착취한 기업들.

    그중 미쓰비시가 대표적이다.

    “근데 여긴 매입 못해?”

    “못하죠. 일본 정부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을 겁니다. 차라리 파산을 당하게 할지언정 일본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는 그 대기업을, 그것도 한국인 손에 넘기긴 싫겠죠.”

    저 여섯 개 은행들이 버블 경제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던 건 일본 정부의 힘이었다.

    물론, 그들이 로비에 들인 돈도 상당하겠으나 저들마저 무너진다면 일본 경제가 완전히 아수라장으로 번질 것이라는 걸 어찌 정부에서 모르겠는가.

    그로 인해 버블 경제 후에는 가장 세력이 넓은 미쓰비시를 중심으로 재계 재편에 들어간다. 여러 회사들을 강제로 미쓰비시에 인수 합병시키고 그러지 못하는 회사는 일본 3대 기업 중 하나인 미쓰이에 합병시키는 등, 몰아주기식의 진화 작업이 시작된다.

    마음 같아서는 미쓰비시를 꿀꺽하고 싶지만, 그 거대한 기업을 삼키도록 일본 정부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미쓰비시보다 좀 낮은 기업들을 인수하는 게 훨씬 더 빠를 터.

    “여기가 제일 적합할 듯해요.”

    황규혁은 내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

    “스미토모 그룹?”

    일본 3대 기업 중 제일 인지도가 낮으며, 20세기 불황에 정부의 압박으로 재편에 들어간 그룹이다. 본격적인 재편이 시작되면 스미토모 그룹의 계열사들이 하나둘 미쓰이 그룹으로 합병되는데, 그로 인해 3대 기업 중에서는 영향력이 가장 낮아진다.

    “여기가 은행, 금속, 화학, 건설…. 뭐 안 하는 게 없네.”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이잖아요. 손에 잡히는 건 뭐든 하죠.”

    “그런데 우리가 여길 꿀꺽 한다고? 아까 미쓰비시는 안 된다며.”

    “거기랑은 레벨이 다르잖아요. 미쓰비시는 정경 유착이 심해서 발악을 해도 거긴 못 먹습니다.”

    쉽게 말해서 미쓰비시는 훗날 우리나라의 천성 그룹이라고 보면 된다.

    이곳도 정경 유착 때문에 논란이 많은데, 우리나라처럼 일본도 그냥저냥 소리 소문 없이 논란거리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좋아. 그런데 여긴 또 뭐야? 유니버셜?”

    “하하. 그건 제 소소한 바람으로…….”

    “유니버셜이 뭔데?”

    “영화사예요.”

    황규혁은 무슨 뜬금없이 영화사를 매입하냐며 나를 구박했다. 하지만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한국에도 세워지는 것이 나의 소소한 바람인 걸 어쩌나? 그리고 유명 영화사들을 지금부터 천천히 매입한 다음, 히트를 칠 만한 영화들을 고른다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한국에 세워진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굳이 오사카, 싱가폴, LA에 있는 유니버셜에 가서 어트랙션을 탈 필요도 없고.

    한국에 유니버셜이 생긴다라.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린다.

    유니버셜이 들어오면 자연스레 디즈니랜드도 따라 들어올 테니까.

    “너 갑자기 왜 실실 웃냐?”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워낙 이쪽 방면으로는 내가 예전부터 좋아했던 거라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다.

    “근데 너, 혹시 연예계에도 관심 있는 거냐?”

    “연예계요?”

    “그래. 연예계도 우리랑 연관이 많잖아.”

    초창기 연예계는 조폭과 연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뭐, 그건 시대가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대형 기획사가 아닌 이상 조폭들이 끼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지금 시대는 그게 극성을 부릴 때이지 않은가.

    “그 이수환이라는 양반이 있는데, 기획사 설립한 지 별로 안 되었거든. 근데 요즘 꽤 잘나가나 봐. 법인도 설립하려고 투자금 모은다고 하던데. 관심 있으면 네가 해보든가.”

    이수환이라.

    그 이름이 황규혁에게서 나올지 몰랐다.

    훗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기획사 중 큰 영향력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SH.

    이수환이 대표로 만들어진 대형 기획사다.

    대한민국 아이돌의 역사를 만들어낼 곳이며, 수많은 히트곡들과 슈퍼스타들을 배출하게 된다. 그 유명한 서우진과 아이들이란 대한민국 초일류 그룹도 SH를 통해 나온 것이지 않던가.

    근데 아직 법인으로 설립되지도 않았구나.

    그러고 보니 1992년부터 서우진과 아이들이 대히트를 치면서 1995년에 정식으로 법인 설립을 한다.

    내가 이렇게 잘 기억하는 이유가 검사 시절 때 하도 많은 연예인들을 조사하며 필로폰부터 대마초까지 마약류로 구속하는 바람에 그렇다.

    연예인 하나 잡으면 기획사 전체가 탈탈 털리기 때문에 그들에 대해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다.

    “뭐……. 꽤 흥미롭네요.”

    “그냥 관심 있으면 해보라고. 솔직히 조폭 중에서 기획사 손대는 놈들은 대부분 여자 만지려고 하는 거긴 한데, 넌 아니니까.”

    일단 생각을 좀 더 해봐야겠다.

    언론 통제가 가장 좋다고는 하지만,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SNS가 왕성하게 발달하면 그땐 언론보다는 연예인들의 입이 더욱 중요해진다.

    그들이 어떤 몰이를 하느냐에 따라 판세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이수환은 그렇다 치고, 양현우와 박신영은 어떻게 하지?

    하나만 먹기에는 너무 아쉽지 않을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