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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57화 (157/325)
  • 157화. 버블 대박 (2)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황규혁을 바라보았다.

    진심인가, 이 양반?

    “형님이 일본으로 가시면 영등포는 어떻게 하고요.”

    “야. 곧 있으면 거기도 인수인계해야 돼. 언제까지 우리가 깡패처럼 살 거야. 회장님이 그러셨잖아. 기업이랑 조직을 별개로 운영한다고. 기존에 있던 간부들 몇몇만 남고 나머지는 다 회사 쪽으로 빠진다고 하잖냐.”

    저 말은 사실이다.

    이제 화진은 화진파라는 이름을 없애고 화진 그룹으로 쭉 성장을 해야 한다. 물론, 화진파가 이미 대한민국의 거리를 점령했기 때문에 쉽사리 버리진 못할 터. 그렇다고 하나로 합칠 순 없으니, 따로 분리해서 키우겠다는 것이 나와 권용일의 합의점이었다.

    사실, 권용일은 화진파를 이제 그만 해체시키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미 메데인과 공동 연합까지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화진파를 해체시킬 순 없는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라도 내가 은밀히 움직일 수 있는 인원들이 필요하다.

    고민이다.

    황규혁을 일본에 보낸다?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전개였다. 거기다가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을 보내봤자…….

    “그냥 보내주기만 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그리고 네가 까라면 깔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황규혁의 성격을 모르는가?

    그는 분명 내 말만 따라 일을 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왜 황규혁이 일본으로 고생길을 자초한단 말인가?

    “형님.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내 물음에 황규혁이 씁쓸하게 대답했다.

    “왜긴. 재미없어서이지.”

    “재미가 없어요?”

    “그래. 여긴 이제 네가 다 먹었잖아. 더는 먹을 곳도 없고. 거기다가 조직도 분리시킨다고 하니 지루하지. 예전처럼 뭔가 스릴 넘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이제 그냥 네 말만 듣고 행동하면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재미가 없지.”

    그럼, 지금 일본에 가겠다는 이유가 단순히 심심해서?

    참 황규혁다운 사고방식이라고 해야 하나.

    “거기 가도 똑같아요. 거기서도 어차피 제 말대로 움직이셔야 합니다.”

    “그건 알지. 대신, 거기는 먹을 곳이 많잖아.”

    “먹을 곳이 많아요?”

    “야쿠자들.”

    이런. 설마 이 양반이…….

    “형님 거기 가서 지금 야쿠자들이랑 한번 붙어보겠다는 겁니까?”

    “왜. 안 돼?”

    “야쿠자들, 막 나가는 거 아시죠?”

    “그렇게 따지면 우리도, 오성파도 만만치 않았어.”

    “제 말은 그런 게 아니고…….”

    황규혁은 책상을 탕 치며 내게 말했다.

    “태산아. 솔직히 말해서 너도 일본에 믿을 만한 사람 보내고 싶잖아. 그리고 거기 있는 야쿠자 새끼들이랑 짝짜꿍해서 뭐 하려고. 차라리 우리가 먹어버린 다음에 마음대로 휘두르는 게 낫지.”

    나는 황규혁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 물어보았다.

    “형님. 혹시 화진파가 그랬던 것처럼 일본에서도 그런 조직을 만드시려는 겁니까?”

    “이제야 말이 통하네. 그래, 쪽바리들 내 발 앞에 무릎 꿇리는 거, 꽤 괜찮지 않냐?”

    “너무 공상적인 걸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

    “왜? 안 될 게 뭐 있어? 너 어차피 하려는 거 잘되면 돈도 많이 벌고 그런 거 아니냐?”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 내 월급이다 생각하고 그 돈 조금만 써서 나와바리 하나 만들고 천천히 넓히면 되잖아.”

    황규혁이 이렇게 고집을 피우는 건 처음 본다.

    “형님. 원래 꿈이 대조직의 보스였습니까?”

    “하하. 몰랐냐? 맞아. 근데 네가 너무 잘나서 여기서는 안 되겠다 싶었지.”

    ‘하!’ 하고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황규혁의 목표가 대조직의 보스였다니. 그런데도 나 같은 될성부른 잎을 보고도 무조건적인 지지를 해줬다고?

    참 사람이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그러나 그 순수한 멍청함이 오늘 황규혁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뭐 더는 말릴 수가 없네요.”

    “그럼, 허락해 주는 거야?”

    “예, 형님. 대신, 이번에는 제가 하라는 대로 꼭 하셔야 돼요.”

    “그걸 말이라고.”

    황규혁은 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황규혁이 일본으로 간다라. 거기다가 야쿠자와 싸워 하나의 대조직을 이루려고 한다. 과연 이것이 나에게 좋은 방향을 작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황규혁이 야쿠자들을 누르고 거대 조직을 만들 수 있느냐였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일본에 새로운 조직을 만드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을 지배하는 천성 그룹처럼 일본을 지배하는 기업을 만들려는 것이다.

    “형님. 저는 야쿠자 조직을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더 거대한 걸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아이고. 누구 말씀이시라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뭘 시키든 잘할 테니까.”

    황규혁은 껄껄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좀 걱정이 되긴 하는데, 일단 한번 놔둬야 하나.

    어차피 밑져야 본전일 테니까. 하지만 이 양반이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이번에 아주 판을 제대로 터뜨릴 참인데.

    * * *

    나는 불도저처럼 일을 진행했다. 일본이 붕괴하기 전까지 남은 날이 별로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규혁을 서둘러 보내 와타나베가 내게 던져준 금융 회사를 기반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그 시작은 옵션이었다.

    “제정신이십니까?”

    일본에서 한국까지 출장을 나온 JK 금융 대표와 임원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이 회사의 지분을 전부 사들여 대주주가 되었다. 와타나베가 종이 쪼가리만한 가격으로 팔아버렸으니, 나는 이제 이 회사의 소유자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까 이들이 내 명령에 따라 한국까지 달려온 것이었다.

    JK 금융업은 일본에서 딱히 알아주는 곳이 아니다. 그냥 쩌리 중의 쩌리이며 이름만 금융업을 달고 있는 곳이다. 그저 버블로 한창 주식 열기가 뜨거우니 와타나베가 마구잡이로 금융 회사를 사들여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받은 건 그중에서도 돈벌이가 시원찮은 곳이며 그닥 신경도 쓸 필요 없는 중소기업이었다.

    “뭐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말이 안 되는 요구를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거 분명히 다 날아갑니다.”

    JK 금융 대표 타마키 히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니, 여기 있는 누구라도 내 말을 들으면 저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요? 전 잘될 거 같은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풋옵션을 그만큼이나 개설하게 되면 당연히…….”

    “당연히 쪽박 차는 거죠.”

    옵션 투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가진 투자 방법이다.

    로또 1등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 수 있는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풋옵션도 그중 하나다.

    풋옵션이란 옵션 만기일에 지정된 가격으로 특정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다.

    도박 중의 도박이라는 것이다.

    카지노만 도박이 아니다. 주식 시장은 세계 전체가 참여하는 거대한 도박판이다.

    “그걸 아시면서 풋옵션을 발행하시겠다고요? 그것도 만기일을 1달로?”

    “아마 기관에서 미친 듯이 사들이겠죠?”

    “당연하죠! 김태산 씨의 돈을 전부 다 털어먹으려고 기관이 날파리처럼 꼬이게 될 겁니다.”

    “제가 바라는 게 바로 그겁니다.”

    난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능한 모든 풋옵션을 사들이세요. 가능하면 새로 만들어 기관에 팔아도 됩니다.”

    풋옵션이라는 건 결국 개인 투자자와 기관끼리의 거래다.

    거의 기관이 매도를 하고 개인 투자자가 매수를 하는데, 나는 풋옵션을 발행하기도 하고 사들이기도 할 것이다.

    “기, 김태산 사장님!”

    끝까지 항의를 하는 타마키 히로에게 인상을 찡그렸다.

    “이보세요, 타마키 대표님.”

    지금까지는 살근살근한 목소리로 대해 주었지만, 이렇게 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강하게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JK 금융에 지원되는 돈은 전부 제 주머니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회사의 지분 전체를 제가 가지고 있고요.”

    “…….”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죠? 까라면 까라는 겁니다.”

    험악해진 분위기에 대표를 비롯해 임원들은 사무실에 있는 내 조직원들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하지만 어떤 불이익이 일어난다고 해도 저희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물론입니다. 이번 일이 잘못돼서 회사가 파산된다고 해도 여러분의 생활은 제가 책임져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걸, 말 그대로 모든 걸 쓸어 담아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대표와 임원들은 전부 사무실 밖을 나갔다.

    “괜… 찮은 거 맞냐?”

    모든 것을 조용히 지켜보던 황규혁은 눈칫밥으로 상황 파악을 마쳤다. 그리고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아무리 일본이 망한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한 달 안에 그게 가능할까?”

    전문가들도 일본이 지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희망찬 미래만 보여주는 것은 더욱더 개미들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돈을 뜯어놓겠는가? 이러니까 세상에서 제일 믿지 못할 놈이 바로 전문가라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황규혁은 일본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 있게 밝히기까지 했다. 하지만 막상 그거대로 움직이려니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형님, 제가 말해서 안 된 게 하나라도 있습니까? 이번에도 믿어보세요. 꼭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그래도 이거 나가리 되면 손해가…….”

    풋옵션은 양날의 검이다.

    만일 내 생각이 틀려 모든 게 비틀어지면, 풋옵션 만기 때 나는 고스란히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내가 개설한 풋옵션이라면 거래자에게 제공한 프리미엄만 손해를 보겠지만, 내가 프리미엄을 주고 사는 풋옵션이라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가 없다. 즉, 그쪽과 약속한 가격에 반드시 특정 상품을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잘되면 대박, 안 되면 쪽박이라는 것.

    그리고 난 대박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형님은 준비만 해두세요. 앞으로 돈이 쏟아져 들어오게 될 겁니다. 그때 공격적인 투자로 일본 기업들을 마구잡이로 사둬야 해요. 그렇게 되면 야쿠자들도 단번에 짓누를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겁니다.”

    버블 경제가 터지면 결국 돈 많은 놈이 다 갖게 되어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그렇게 성공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미리 접수했지만, 일부러 영국 전역에 나폴레옹이 승리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려 모든 주가를 휴지 조각으로 만들었다. 그런 뒤 그들은 그걸 고스란히 쓸어 담아 유럽의 지배자가 되었다.

    나도, 황규혁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회사가 성장하게 될 겁니다. 어쩌면 한국에 있는 대기업들보다 훨씬 더 큰 수준으로요. 그래서 형님께 재차 물은 겁니다. 이거, 감당하실 수 있으세요?

    황규혁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말은… 내가 대기업의…….”

    “예, 야쿠자 조직의 오야붕이 아니라 대기업의 회장이 되시는 겁니다. 그것도 일본을 지배하게 될!”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황규혁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에게 물었다.

    “정말 하실 수 있겠어요?”

    그는 길게 고민하지도 않고 비장한 표정으로 내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이것으로 결정되었다.

    황규혁은 이제 JK 금융 아니, JK 그룹의 회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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